"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내가 너희와 함께하며, 너희를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 인도할 수 있음을 전능하신 분께 감사드린다. 너희와 너희의 영적인 삶을 파괴하는 이념들은 덧없는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나는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너희에게 미래와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교회의 승인 하에)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내가 너희와 함께하며, 너희를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 인도할 수 있음을 전능하신 분께 감사드린다.
오늘은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 44주년 기념일입니다. 44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우리를 찾아오신 성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성모님께서는 이토록 긴 시간 동안 계속해서 우리를 찾아오고 계신 것일까요? 오늘 주신 메시지 안에서, 성모님께서는 그 이유를 분명히 밝혀 주십니다. 바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 인도하시기 위해 성모님께서는 지난 44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메주고리예를 통해 우리 곁에 오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모님께서는 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 인도하려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성모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어머니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들이기 때문에 성모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러 계십니다. 더욱이, 성모님의 눈에 우리는 여전히 어린 자녀들이기에, 그만큼 더 많은 보호와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멸망이 아니라 구원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하시며,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위해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와 함께하시며, 기도하고 믿으며 회개하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단식하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법을 친히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를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 인도할 수 있음을 전능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성모님께서는 다시금, 메주고리예 발현의 주체는 다름 아닌 전능하신 하느님이심을 분명히 밝혀 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 또한 성모님께서 그러하시듯, 성모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 인도하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깊은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44년 동안, 성모님을 당신의 예언자요, 우리의 어머니요, 영적인 스승으로 보내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그리고 그 발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성모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실 하느님께,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립시다.
너희와 너희의 영적인 삶을 파괴하는 이데올로기들은 덧없는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나는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하느님과 함께한다면 너희에게 미래와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지난 44년 동안,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수많은 메시지 안에서 단 한 번도 ‘이데올로기’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데올로기’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이데올로기는 사회나 체계의 근간이 되는 사상적 틀을 의미하며, 인간과 사회, 역사, 세계를 해석하고 그 방향을 제시하는 체계적이고 집단적인 신념 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용어는 종종 정치적 목적이나 지배 논리와 연결되어 사용되곤 합니다. 자본주의,공산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그리고 민족주의 등은 모두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의 예입니다.
성모님께서는 특정 이데올로기를 명시적으로 지적하지는 않으셨지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와 너희의 영적인 삶을 파괴하는 이데올로기들은 덧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와 우리의 영적인 삶을 무너뜨리는 이데올로기들은 어떤 것들일까요? 하느님 대신 돈이나 재물, 물질, 권력, 힘 등을 거짓된 신처럼 섬기게 만드는 모든 사상과 태도는, 결국 우리와 우리의 영적인 삶을 파괴하는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안에서 다양한 이데올로기의 영향 아래 살아가고 있으며, 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이 모든 이데올로기들이 결국은 덧없이 지나가는 것들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마음과 정신, 그리고 영혼을 그것들에 빼앗기지 말고, 참된 미래와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오직 한 분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간곡히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성인이 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과 관련된 한 가지 일화가 떠오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교황님은 폴란드 출신이셨습니다. 폴란드 크라쿠프 대교구장이자 추기경이었던 카를 보이티와는 공산주의 정권 아래 있던 조국 폴란드의 현실 속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선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공식적으로 폴란드를 방문하셨고, 이는 공산주의 정권에 큰 위협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교황님께서는 하느님을 인간의 삶에서 밀어내려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특히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에 맞서시며 그 종식을 위해 다방면에서 헌신적으로 노력하셨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인 1989년, 냉전 시대의 상징이었던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동독과 서독이 하나의 독일로 통일되었고, 같은 해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의 공산 정권들도 잇따라 붕괴되었습니다. 폴란드 역시 이 역사적인 흐름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 정권의 몰락과 민주 정부의 수립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과 폴란드 국민 모두에게 크나큰 기쁨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의 한가운데서, 교황님은 또 다른 근심에 잠기셨습니다. 모든 것이 마치 해결된 듯 보였지만, 이제 민주화된 폴란드가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됨에 따라 폴란드인들이 돈과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고, 도덕적으로 타락하며, 하느님을 뒷전으로 미룬 채 영적으로 나태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이는 시대의 흐름을 영적인 눈으로 꿰뚫어보시는 교황님의 예언자적 통찰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교황님의 그 우려는 시간이 지나며 상당 부분 현실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가고, 서서히 사라져갑니다. 돈과 재물, 권력과 힘, 명예와 이 세상, 그리고 온갖 이데올로기들까지도 모두 덧없고, 영원하지 않으며, 결국은 사라질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만이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할 때만 비로소 우리에게 참된 미래가 있고, 영원한 생명이 주어집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께서는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로 인도하시고, 끊임없이 우리에게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간곡히 호소하고 계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