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너희와 함께 기뻐하며 내가 너희와 함께 하고, 너희를 인도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어린 자녀들아, 평화가 위험에 처해 있고 가정이 공격을 받고 있다. 어린 자녀들아, 나는 너희를 부르고 있다. 가정에서 기도로 돌아가라. 성경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매일 읽어라.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사랑하여 그것이 지상에서 너희에게 유익이 되게 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너희와 함께 기뻐하며 내가 너희와 함께 하고, 너희를 인도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오늘은 성모님 메주고리예 발현 43주년 기념일입니다. 43년이라는 시간은 참으로 긴 세월입니다. 이 긴 세월 동안 성모님은 매일 발현하셨고, 지금도 세 사람의 발현목격증인인 마리야, 이반 그리고 비츠카를 통해 그 매일 발현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오래 지속되고 있는 성모님 발현은 역사상 처음 있는 놀라운 일이고, 앞으로 지상에서 이와 같은 발현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은 하느님의 계획과 뜻에 따른 것이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셨기에 성모님이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에게 발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43년이나 이어지고 있는 성모님의 발현을 허락하신 것일까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인 모든 인류가 예수님 안에서 구원과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은 모든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의 발로이고 그 외적 표징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피조물 가운데 하느님의 계획과 뜻을 가장 잘 알아듣고 그에 가장 완전하게 순명하시는 분은 성모님 밖에 없습니다. 성모님에게 하느님의 계획과 뜻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계획과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그 실현을 위해 일하는 당신의 특사로 성모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비록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특사로 이 땅에 오고 계시지만, 메주고리예 발현에는 성모님의 자발성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분 역시 당신의 자녀들인 인류를 사랑하고 그들 모두가 구원과 평화를 얻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모든 인류의 어머니로서 당신 자녀들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한번도 멈추신 적이 없기 때문에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를 찾아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메주고리예 발현 43주년 기념일인 오늘도 역시 성모님은 우리들을 “사랑하는 자녀들”이라고 부르십니다. 만민의 어머니이신 그분께는 자녀의 인종, 언어, 종교, 피부색, 지위 등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엄청난 죄를 짓고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있는 악한 사람일지라도 그 역시 성모님의 사랑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당신 자녀들에 대해 가지고 계신 성모님의 사랑은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는’(마태 5, 45 참조) 하느님의 그 사랑을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오늘 “나는 너희와 함께 기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기뻐하지만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와 함께 기뻐하시는 성모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예수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그리고 온 인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우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성모님께 이렇게 말씀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도 어머니와 함께 기뻐합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며, 사랑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모님과 함께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어머니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고아들처럼 버려져 있지 않습니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거룩함과 구원과 평화의 길로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길을 잃지 않고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랑에 힘입어 하느님과 이웃 그리고 우리 자신을 더욱더 사랑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성모님이 그렇게 하시도록 허락해 주신 결과입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처럼 우리 역시 그렇게 성모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느님께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 감사드려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아, 평화가 위험에 처해 있고 가정이 공격을 받고 있다. 어린 자녀들아, 나는 너희를 부르고 있다. 가정에서 기도로 돌아가라. 성경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매일 읽어라.
성모님께서 “평화가 위험에 처해 있고 가정이 공격을 받고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도대체 누가 평화를 위험에 빠뜨리고, 누가 가정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까? 전쟁과 증오를 부추기고 세상을 파멸시키고 우리를 멸망의 길로 인도하려고 하는 사탄과 그의 하수인이 된 사람들이 바로 그 범인입니다. 이들의 계획과 행동을 막을 수 있는 길은 기도와 단식 밖에 없습니다. 그 가운데서 오늘 성모님은 “가정에서 기도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는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것은 가정을 영적인 요새로 만드는 일입니다. 가족이 함께 기도할 때 사탄이 그 가정을 공격할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 식구들이 함께 기도할 때 그 가정은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하느님의 집, 곧 작은 가정 교회가 됩니다.
하느님의 집인 성당에 감실이 중심이 되는 것처럼 하느님의 또 다른 작은 교회인 가정에 성경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가족 모두가 볼 수 있는 곳, 눈에 잘 띄는 곳에 성경을 두면 그것을 통해 그 가정의 중심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우리는 시각적으로 매일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을 펴서 매일 가족이 함께 읽으면 우리의 영과 마음과 삶이 바뀝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시는지, 어떻게 해야 우리가 거룩하게 되고 구원과 평화의 길로 갈 수 있는지, 성경은 우리에게 그 모든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 안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진리와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이 담겨 있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저 “성경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매일 읽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기에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나 공부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지향만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그리고 개인적으로 매일 성경을 펴고 읽으면서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과 영혼에 태어나시고,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고 충만해지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청합시다. 당신의 능력으로 말씀이신 예수님을 성모님의 태중에 잉태하게 하셨던 성령님께서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읽을 때 우리 마음과 영혼 안에 예수님의 모습을 새겨 주시도록 간절히 청합시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사랑하여 그것이 지상에서 너희에게 유익이 되게 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이 지상에서의 우리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이 마치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영원히 살지 못하고 어느 날엔가 죽음을 맞이하고 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날이 언젠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날은 오늘이 될 수도 있고, 내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 오늘 하루만 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실제로 그 하루조차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그럼 우리가 오늘 하루만 살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가 오늘 하루 중에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생명의 주인이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 중요한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다른 일상을 하면서도 미사 참례, 묵주기도, 성경 읽기, 묵상, 십자가의 길 바치기, 성체조배, 자선적인 봉사 등을 하고 저녁을 맞이하여 다시금 무릎을 꿇고 그렇게 하루를 살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면 그런 삶은 하느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삶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짧은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고, 성공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의 삶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지는 꽃이나 풀과 같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언제나 그 자리에 영원히 계시고, 그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외적으로 표현했던 우리의 모든 행위만이 남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바로 이 단순하지만 가장 확고한 진리를 믿고 그 진리를 우리의 삶으로 살도록 우리 모두를 부르고 초대하십니다. 내일로 미루거나 다른 시간이나 기회를 기다리지 말고 바로 오늘 이 순간부터 성모님의 부르심과 초대에 응답합시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시기에, 나는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가 서로 선을 행하도록 격려하고 기쁨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도 모임을 만들어라. 너희는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새롭게 회개하고 거룩함과 희망의 길을 선택하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평화를 충만하게 주실 수 있게 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시기에, 나는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성모님 말씀대로 지금 이 시기는 ‘은총의 시기’입니다. 비록 우리가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고, 우리가 그분께서 주시는 은총의 힘으로 살아 가면서 그 힘으로 그분께 영광과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과 함께 있기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은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이 은총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라고, 즉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오직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그분께 온 마음을 드리면서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일에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느님만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오직 하느님께만 속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물이나 사람이 우리 마음을 차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마음이 하느님께만 속해 있어야 우리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고, 하느님께서는 그 마음 안에 머무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을 하느님께 드릴 때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의 첫자리를 차지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그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우리 삶의 맨첫자리에 놓으라고 하신 성모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가 서로 선을 행하도록 격려하고 기쁨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도 모임을 만들어라.
우리 각자가 마음으로 기도하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또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어린 자녀들아, 너희가 서로 선을 행하도록 격려하고 기쁨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도 모임을 만들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성모님께서 바라시는 이러한 기도 모임의 첫 단위는 바로 가정입니다. 부부가 함께 기도하고,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기도하면 거기서 바로 기도 모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 기도 모임을 통해 가족들이 서로에게 좋을 일을 행하고 그렇게 하도록 격려하며 함께 사랑하고 용서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느님과 성모님 안에서 기쁨을 느끼며 성장해 나갑니다.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들이 함께 모여 기도할 수 없는 가정들이 있습니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비록 함께 기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한 가족이 다른 가족을 위해 기도하면 그 기도의 힘이 다른 가족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믿고 가족들이 각각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지금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가족 일원을 위해 사랑으로 기도해 준다면 그 기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 19-20) 이 말씀에 따르면 기도 모임의 크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사람, 세 사람이 함께 기도하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 세 사람일지라도 한마음으로 기도해야 그 청원이 하느님께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마음을 모아 함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모아 한마음으로 기도하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자기를 버리고 철저하게 이타적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 모임 구성원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바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를 먼저 생각하는 이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이것 없이는 기도 모임이 존립할 수 없습니다.
너희는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새롭게 회개하고 거룩함과 희망의 길을 선택하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평화를 충만하게 주실 수 있게 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께서는 “너희는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디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말씀일까요? 하느님과 그분의 계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계명 그리고 우리 자신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는 우리 인생에서 단 한 번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매순간 끊임없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한눈을 팔기 때문에 우리의 시선을 다시금 하느님께로 향하는 작업, 즉 회개를 계속해서 해야 합니다. 매일의 양심성찰과 매달의 고해성사가 우리의 계속되는 회개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고 그분의 계명을 따라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성모님 말씀대로 거룩함과 희망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되기 위해 마음으로 기도하고, 갈리지 않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며 죄를 피해야 합니다. 사라져 가고 있는 이 지상의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변함이 없으시고 영원하신 하느님께만 모든 희망을 두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 가까이 있고 그분의 계명을 따라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악, 증오 그리고 평화 부재의 바람이 생명을 파괴하기 위해 지구 전역에 불고 있다. 그 때문에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너희를 평화의 길, 하느님과 사람들과의 일치로 인도하도록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것이다. 어린 자녀들인 너희는 나의 펼쳐진 손이다. 모든 마음이 갈망하는 보물인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단식하고 희생을 봉헌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악, 증오 그리고 평화 부재의 바람이 생명을 파괴하기 위해 지구 전역에 불고 있다. 그 때문에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너희를 평화의 길, 하느님과 사람들과의 일치로 인도하도록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것이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 전쟁으로 인해 두 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고통을 당했고, 그 피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또 하나의 큰 전쟁이 터졌습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입니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준군사 조직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수천발의 로켓을 발사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를 응징하기 위해 막대한 군사적 공격을 감행하며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살상당하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며 기본적인 생필품도 없는 가운데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전쟁 역시 하마스와 이스라엘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 여파는 이웃 중동 나라들과 온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마치 바람이 불면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 넘실대며 이곳 저곳으로 불어가듯이 말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전쟁 뒤에는 사탄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악마인 그는 악과 증오를 퍼뜨리고 평화와 생명을 파괴하기 위해 사람들로 하여금 전쟁을 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나라들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집단들, 가정 그리고 각 개인의 마음 안에서조차도 전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에 덧붙여 사탄은 각종 대중매체들과 인터넷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 등을 통해서 사람들 정신과 마음속에 악과 증오를 증폭시키고 평화를 깨뜨리며 사람들 사이의 분열을 조장합니다.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성모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아! 악, 증오 그리고 평화 부재의 바람이 생명을 파괴하기 위해 지구 전역에 불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구의 어느 한 두 곳이 아니라 지구 전역을 언급하고 계십니다. 생명들을 파괴하기 위해 지구 전역에서 불고 있는 악, 증오 그리고 평화 부재의 바람을 바라다보고 계시는 성모님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텔레비전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수많은 인명 피해 상황 뉴스를 아무런 감흥 없이 남의 일처럼 바라다보고 있는 시청자와 같은 입장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눈 앞에서 죽고 부상당하고 극한의 고통을 겪고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고 비탄 속에서 통곡하시며 그들을 당신 품에 안으시는 어머니이시기에 그런 태도를 취하실 수 없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평화의 길, 하느님과 사람들과의 일치로 인도하도록 이 어머니를 우리에게 보내 주고 계십니다. 비록 우리의 머리로는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악과 증오 그리고 평화 부재의 바람을 막아내고 소멸시킬 수 있는 길은 오직 그 방법 밖에 없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특사로 세상에 파견되고 계시는 성모님께서는 평화의 길, 하느님과 사람들과의 일치에 이르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를 해야 하느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회개하게 되며, 그를 통해 하느님과 화해하고 그때 가서야 비로소 참평화의 길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선물이기 때문에 하느님 가까이 가고, 그분과 하나 되어야 비로소 우리는 평화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평화의 길을 찾기 위한 정치인들의 대화와 타협, 외교적 노력 등을 절대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로는 진정한 평화를 이 땅에서 구현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자리에 평화는 절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적’ ‘대적자’ ‘고소자’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말 ‘사탄’은 ‘디아볼로’라는 그리스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사탄의 그리스말인 ‘디아볼로’는 그의 속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줍니다. ‘디아볼로’는 ‘분열시키는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처럼 사탄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고, 사람들을 분열시킵니다.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방해하고 사람들을 멸망과 죽음으로 이끌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람들이 당신과 하나가 되고, 서로 일치하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구원과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을 악, 증오 그리고 평화 부재의 바람이 전역에서 불고 있는 이 지구로 보내시어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하고자 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인 너희는 나의 펼쳐진 손이다. 모든 마음이 갈망하는 보물인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단식하고 희생을 봉헌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세 3, 5)라고 말하며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사탄과 달리 성모님께서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 38)라고 말씀하시며 하느님 앞에 자신을 한껏 낮추셨습니다. 성모님께서 호칭하시는 대로 우리가 그분의 ‘어린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역시 성모님과 같은 겸손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겸손을 바탕으로 성모님께서 명하시는 것은 모두 행하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우리를 쓰시도록 우리 자신을 완전히 맡겨 드려야 합니다.
“너희는 나의 펼쳐진 손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당신과 동일시하십니다. 우리를 단순한 도구나 종으로 생각하지 않고 당신의 분신으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펼쳐진 손인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모든 마음이 갈망하는 보물인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단식하고 희생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입니다. 지식이나 돈이나 그 어떤 재능도 필요치 않습니다. 다만 성모님의 분신으로서 어머니를 도와 세상 구원과 평화를 위해 헌신해야 하겠다는 마음과 실천할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