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너희와 함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세상과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선과 악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너희가 희망과 기도의 사람이 되고,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창조주 하느님께 깊은 신뢰를 가지기를 바란다. 너희 안에, 그리고 너희 주변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란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되도록, 어머니의 축복으로 너희를 축복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너희와 함께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세상과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선과 악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너희와 함께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는 말씀을 통해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공동 기도 지향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알려 주십니다. 바로 평화입니다. 다른 수많은 기도 지향이 있을 수 있으나 성모님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에게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할까요?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이며, 6월 25일 메시지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평화가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과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선과 악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세상과 사람들의 마음에서 평화를 앗아가려고 하는 사탄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몸소 우리와 함께 평화를 위해 기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께서 우리와 함께 평화를 위해 기도하신다고 하시니 얼마나 든든한 말씀입니까? 우리의 미약한 기도에 성모님의 강력한 기도가 더해진다면, 그 기도는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평화를 위해 기도할 때, 성모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기도하신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각자 처해 있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 다른 기도 지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지향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개인적인 기도 지향들에 앞서 항상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가장 중요한 지향으로 두고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느님과 성모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 지향의 우선순위를 조정함으로써 하느님과 성모님 그리고 우리의 이웃을 도울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의 평화와 구원에 도움이 됩니다.
너희가 희망과 기도의 사람이 되고,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창조주 하느님께 깊은 신뢰를 가지기를 바란다. 너희 안에, 그리고 너희 주변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란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희망과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희망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긍정적인 인생관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느님은 분명히 존재하시고 그분은 언제나 우리를 절망과 비탄에서 구해 주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절대로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항상 모든 것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며 받아들입니다. 비록 인간적으로 볼 때 그 어떠한 해결책이나 길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희망합니다.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큰 어려움이나 절망 가운데서도 모든 것이 다 잘 되리라고 믿습니다. 인간적으로 아무런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걱정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도합니다. 그는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하며 기도합니다. 여기서 오상의 비오 성인의 말씀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걱정하지 말고 기도하며 희망하십시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분은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세상 만물, 아니 우주 전체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다.’는 표현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만 하시면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루카 1, 37)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우리의 창조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그것은 바로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깊은 신뢰, 즉 믿음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창조주 하느님께 깊은 신뢰를 드리고 그분을 굳게 믿는다면,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11, 23)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우리가 죽더라도 우리를 살게 해 주고(요한 11, 25 참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요한 6, 47 참조)
어린 자녀들아, 너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되도록, 어머니의 축복으로 너희를 축복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탄은 세상과 사람들의 마음속에 증오의 씨앗을 뿌리고 모든 관계를 분열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께서는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주변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라십니다. 성모님께서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우리를 찾아오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와 이 세상의 평화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우리와 이 세상이 평화로 가득하기를 바라십니다. 평화의 모후로서 이 세상에 오신 성모님께서는 발현 셋째 날, 즉 1981년 6월 26일 메주고리예에서의 첫 번째 발현지인 포드브르도(발현산)에서 여섯 명의 아이들에게 나타나신 후, 산을 내려가던 마리야에게 다시 나타나시어 “평화, 평화, 오직 평화만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마리야는 성모님 뒤에 있는 십자가를 보았는데, 성모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며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사람들 사이에 평화가 있어야 한다.”고 두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43년 이상이 지난 2024년 8월 25일 메시지를 통해 성모님께서는 여전히 다음과 같이 평화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너희와 함께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너희 안에, 그리고 너희 주변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란다.”
우리 안에 평화가 없다면, 우리 주변에 평화를 가득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평화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평화로부터 시작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주변에 평화가 가득할 수 있도록 성모님과 함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어머니 마리아의 축복을 늘 청합시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너희와 함께 기뻐하며 내가 너희와 함께 하고, 너희를 인도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어린 자녀들아, 평화가 위험에 처해 있고 가정이 공격을 받고 있다. 어린 자녀들아, 나는 너희를 부르고 있다. 가정에서 기도로 돌아가라. 성경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매일 읽어라.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사랑하여 그것이 지상에서 너희에게 유익이 되게 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너희와 함께 기뻐하며 내가 너희와 함께 하고, 너희를 인도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오늘은 성모님 메주고리예 발현 43주년 기념일입니다. 43년이라는 시간은 참으로 긴 세월입니다. 이 긴 세월 동안 성모님은 매일 발현하셨고, 지금도 세 사람의 발현목격증인인 마리야, 이반 그리고 비츠카를 통해 그 매일 발현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오래 지속되고 있는 성모님 발현은 역사상 처음 있는 놀라운 일이고, 앞으로 지상에서 이와 같은 발현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은 하느님의 계획과 뜻에 따른 것이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셨기에 성모님이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에게 발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43년이나 이어지고 있는 성모님의 발현을 허락하신 것일까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인 모든 인류가 예수님 안에서 구원과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은 모든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의 발로이고 그 외적 표징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피조물 가운데 하느님의 계획과 뜻을 가장 잘 알아듣고 그에 가장 완전하게 순명하시는 분은 성모님 밖에 없습니다. 성모님에게 하느님의 계획과 뜻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계획과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그 실현을 위해 일하는 당신의 특사로 성모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비록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특사로 이 땅에 오고 계시지만, 메주고리예 발현에는 성모님의 자발성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분 역시 당신의 자녀들인 인류를 사랑하고 그들 모두가 구원과 평화를 얻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모든 인류의 어머니로서 당신 자녀들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한번도 멈추신 적이 없기 때문에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를 찾아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메주고리예 발현 43주년 기념일인 오늘도 역시 성모님은 우리들을 “사랑하는 자녀들”이라고 부르십니다. 만민의 어머니이신 그분께는 자녀의 인종, 언어, 종교, 피부색, 지위 등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엄청난 죄를 짓고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있는 악한 사람일지라도 그 역시 성모님의 사랑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당신 자녀들에 대해 가지고 계신 성모님의 사랑은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는’(마태 5, 45 참조) 하느님의 그 사랑을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오늘 “나는 너희와 함께 기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기뻐하지만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와 함께 기뻐하시는 성모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예수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그리고 온 인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우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성모님께 이렇게 말씀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도 어머니와 함께 기뻐합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며, 사랑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모님과 함께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어머니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고아들처럼 버려져 있지 않습니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거룩함과 구원과 평화의 길로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길을 잃지 않고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랑에 힘입어 하느님과 이웃 그리고 우리 자신을 더욱더 사랑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성모님이 그렇게 하시도록 허락해 주신 결과입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처럼 우리 역시 그렇게 성모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느님께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 감사드려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아, 평화가 위험에 처해 있고 가정이 공격을 받고 있다. 어린 자녀들아, 나는 너희를 부르고 있다. 가정에서 기도로 돌아가라. 성경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매일 읽어라.
성모님께서 “평화가 위험에 처해 있고 가정이 공격을 받고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도대체 누가 평화를 위험에 빠뜨리고, 누가 가정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까? 전쟁과 증오를 부추기고 세상을 파멸시키고 우리를 멸망의 길로 인도하려고 하는 사탄과 그의 하수인이 된 사람들이 바로 그 범인입니다. 이들의 계획과 행동을 막을 수 있는 길은 기도와 단식 밖에 없습니다. 그 가운데서 오늘 성모님은 “가정에서 기도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는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것은 가정을 영적인 요새로 만드는 일입니다. 가족이 함께 기도할 때 사탄이 그 가정을 공격할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 식구들이 함께 기도할 때 그 가정은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하느님의 집, 곧 작은 가정 교회가 됩니다.
하느님의 집인 성당에 감실이 중심이 되는 것처럼 하느님의 또 다른 작은 교회인 가정에 성경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가족 모두가 볼 수 있는 곳, 눈에 잘 띄는 곳에 성경을 두면 그것을 통해 그 가정의 중심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우리는 시각적으로 매일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을 펴서 매일 가족이 함께 읽으면 우리의 영과 마음과 삶이 바뀝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시는지, 어떻게 해야 우리가 거룩하게 되고 구원과 평화의 길로 갈 수 있는지, 성경은 우리에게 그 모든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 안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진리와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이 담겨 있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저 “성경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매일 읽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기에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나 공부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지향만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그리고 개인적으로 매일 성경을 펴고 읽으면서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과 영혼에 태어나시고,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고 충만해지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청합시다. 당신의 능력으로 말씀이신 예수님을 성모님의 태중에 잉태하게 하셨던 성령님께서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읽을 때 우리 마음과 영혼 안에 예수님의 모습을 새겨 주시도록 간절히 청합시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사랑하여 그것이 지상에서 너희에게 유익이 되게 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이 지상에서의 우리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이 마치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영원히 살지 못하고 어느 날엔가 죽음을 맞이하고 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날이 언젠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날은 오늘이 될 수도 있고, 내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 오늘 하루만 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실제로 그 하루조차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그럼 우리가 오늘 하루만 살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가 오늘 하루 중에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생명의 주인이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 중요한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다른 일상을 하면서도 미사 참례, 묵주기도, 성경 읽기, 묵상, 십자가의 길 바치기, 성체조배, 자선적인 봉사 등을 하고 저녁을 맞이하여 다시금 무릎을 꿇고 그렇게 하루를 살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면 그런 삶은 하느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삶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짧은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고, 성공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의 삶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지는 꽃이나 풀과 같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언제나 그 자리에 영원히 계시고, 그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외적으로 표현했던 우리의 모든 행위만이 남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바로 이 단순하지만 가장 확고한 진리를 믿고 그 진리를 우리의 삶으로 살도록 우리 모두를 부르고 초대하십니다. 내일로 미루거나 다른 시간이나 기회를 기다리지 말고 바로 오늘 이 순간부터 성모님의 부르심과 초대에 응답합시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시기에, 나는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가 서로 선을 행하도록 격려하고 기쁨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도 모임을 만들어라. 너희는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새롭게 회개하고 거룩함과 희망의 길을 선택하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평화를 충만하게 주실 수 있게 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시기에, 나는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성모님 말씀대로 지금 이 시기는 ‘은총의 시기’입니다. 비록 우리가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고, 우리가 그분께서 주시는 은총의 힘으로 살아 가면서 그 힘으로 그분께 영광과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과 함께 있기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은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이 은총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라고, 즉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오직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그분께 온 마음을 드리면서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일에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느님만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오직 하느님께만 속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물이나 사람이 우리 마음을 차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마음이 하느님께만 속해 있어야 우리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고, 하느님께서는 그 마음 안에 머무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을 하느님께 드릴 때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의 첫자리를 차지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그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우리 삶의 맨첫자리에 놓으라고 하신 성모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가 서로 선을 행하도록 격려하고 기쁨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도 모임을 만들어라.
우리 각자가 마음으로 기도하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또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어린 자녀들아, 너희가 서로 선을 행하도록 격려하고 기쁨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도 모임을 만들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성모님께서 바라시는 이러한 기도 모임의 첫 단위는 바로 가정입니다. 부부가 함께 기도하고,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기도하면 거기서 바로 기도 모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 기도 모임을 통해 가족들이 서로에게 좋을 일을 행하고 그렇게 하도록 격려하며 함께 사랑하고 용서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느님과 성모님 안에서 기쁨을 느끼며 성장해 나갑니다.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들이 함께 모여 기도할 수 없는 가정들이 있습니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비록 함께 기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한 가족이 다른 가족을 위해 기도하면 그 기도의 힘이 다른 가족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믿고 가족들이 각각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지금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가족 일원을 위해 사랑으로 기도해 준다면 그 기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 19-20) 이 말씀에 따르면 기도 모임의 크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사람, 세 사람이 함께 기도하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 세 사람일지라도 한마음으로 기도해야 그 청원이 하느님께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마음을 모아 함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모아 한마음으로 기도하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자기를 버리고 철저하게 이타적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 모임 구성원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바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를 먼저 생각하는 이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이것 없이는 기도 모임이 존립할 수 없습니다.
너희는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새롭게 회개하고 거룩함과 희망의 길을 선택하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평화를 충만하게 주실 수 있게 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께서는 “너희는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디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말씀일까요? 하느님과 그분의 계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계명 그리고 우리 자신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는 우리 인생에서 단 한 번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매순간 끊임없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한눈을 팔기 때문에 우리의 시선을 다시금 하느님께로 향하는 작업, 즉 회개를 계속해서 해야 합니다. 매일의 양심성찰과 매달의 고해성사가 우리의 계속되는 회개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고 그분의 계명을 따라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성모님 말씀대로 거룩함과 희망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되기 위해 마음으로 기도하고, 갈리지 않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며 죄를 피해야 합니다. 사라져 가고 있는 이 지상의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변함이 없으시고 영원하신 하느님께만 모든 희망을 두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 가까이 있고 그분의 계명을 따라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