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때에, 하느님께서 너희 개인의 회개를 통해 너희를 부활로 이끄실 수 있도록 너희의 삶을 그분께 봉헌하라고 나는 너희를 다시금 부른다.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께서는 너희 가까이 계시며 너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계시지만, 너희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깨우고, 너희가 봄꽃처럼 거룩함의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교회의 승인하에)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때에, 하느님께서 너희 개인의 회개를 통해 너희를 부활로 이끄실 수 있도록 너희의 삶을 그분께 봉헌하라고 나는 너희를 다시금 부른다.
지난 2월 18일 재의 수요일에 우리는 머리에 재를 얹으며 사순절을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그 어느 때보다 깊이 묵상하고, 그분의 부활을 준비하는 이 사순절을 재를 얹으며 시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가 깊습니다. 재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우리 존재의 무상함을 상징하는 동시에 회개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회개해야 하지만, 사순절에는 더욱 깊은 회개로 부름을 받습니다. 그래서 재의 수요일에 사제의 손을 통해 머리에 재를 받으며,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이 회개하겠다는 내적 결심을 외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충북 음성 꽃동네의 표어가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은총입니다.”라고 합니다. 저는 여기에 덧붙여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회개할 마음만 있어도 은총입니다.”
왜냐하면 회개는 우리의 구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하느님과 그분의 계명으로 돌아서겠다고 결심하지 않으면 회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회개가 없다면 구원에도 참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위해 먹고 사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회개는 그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회개는 우리 영혼이 이 세상에서 참된 행복과 평화를 누릴 것인지, 그리고 다음 세상에서 지옥과 연옥, 혹은 천국에서 살게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의 회개를 통해 우리를 부활로 이끄실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그분께 봉헌하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부활, 곧 새롭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고자 하십니다. 이것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한결같은 뜻입니다.
그리고 그 뜻은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통해 결정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봉헌하셨기에, 부활의 길이 열렸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께서 이루신 그 부활에 우리가 참여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먼저 회개하라고 성모님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회개는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입니다. 회개는 철저히 개인적인 일이며,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회개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겠습니까? 먼저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다음은 고해소를 찾는 것입니다. 고해성사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사죄경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받은 뒤, 죄를 피하고 잘못된 삶을 고치며 하느님의 계명을 따르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모범을 본받아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사랑의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과정은 단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회개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매일 계속되어야 하는 여정입니다.
어떤 이는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심각한 오류입니다. 죄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의 양심이 살아 있다는 뜻이며,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할 수 있겠습니까? 루카 복음 15장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작은아들과, 같은 복음 18장의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에 나오는 세리처럼, 자신의 죄를 의식하고 그것을 인정하며 고백하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께서는 너희 가까이 계시며 너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계시지만, 너희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깨우고, 너희가 봄꽃처럼 거룩함의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친근하게 느끼면 그와 함께 있고 싶어 하며, 될 수 있으면 가까이 있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게 공감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 가까이 계시며,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말인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완전히 준비되어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모님께서는 “너희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라는 말씀으로 우리의 현재 상태를 적나라하게 표현하십니다. 깊은 잠에 빠지면 자기 밖에 누가 있는지, 그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또 나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인 깊은 잠에 빠져, 하느님께서 우리 가까이 계시며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계신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우리를 바라보시는 성모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전해져 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그저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우리는 스스로 그 깊은 잠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것이기에,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깨우십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기도와 회개의 시간 안에서 새롭게 깨어 있도록 이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거룩하게 되어 그 빛을 다른 이들에게 비추게 하심으로써, 그들 역시 영적인 깊은 잠에서 깨어나 거룩함의 길을 함께 걷게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 60,1; 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