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을 통해 예수님께로 - 메주고리예 성모님에 대해 얘기를 듣고서
제임스 파파글리아 신부
친구 여러분: 제프 가레가 자신의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얘기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허락해주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매우 큰 영감을 준다고 느끼실 것입니다. 제가 매일 기도를 드린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제임스 신부
마태오 7장 13절-14절: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솔직히 우리 시대에 사람들이 타락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그 어느때보다도 많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약, 섹스, 포르노, 허영심으로 물질을 쫓는 것 등 죄를 향할 기회는 오늘날 이 사회에 만연합니다. 어두움이 곳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이 더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께 주님이 어떻게 이 불쌍한 죄인을 죄의 늪에서 빼내어 그분의 멋진 빛 속으로 데려 갔는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은 제가 태어난 지17개월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렵게 시작되었습니다. 저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여러 정황에 비추어 보면 그분은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지만)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2년 후 어머니는 재혼하셨습니다. 재혼한 남편은 어머니께 물리적, 감정적, 심리적으로 폭력적이었으며 형과 저에게는 덜하긴 했지만 역시 폭력적이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런 환경은 선과 사랑 속에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심하게 상처를 입으셨고 이제 보면 양아버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저는 사랑 받을 줄 모르면서, 자신은 사랑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십대가 되자 제가 느끼던 내면의 고통을 잊기 위해 그 고통을 덜어줄 갖가지 치유의 길을 실험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상당히 인기가 있었고 운동도 잘 했기 때문에 항상 여자 친구가 있었고 제게 그것의 의미는 간음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고등학교 2학년, 3학년 때 맥주를 많이 마시기 시작해서 온갖 흥청대는 술 파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심령술 점괘판인 위자보드를 해보기 시작했으며 때때로 “그림자” 같은 모습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오랫동안 심취된 것은 아니지만 이것으로 악마가 나에게 죽도록 달라붙게 문을 열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기도와 단식만으로 몰아낼 수 있는 악마였습니다. 대학 때도 비슷하게 섹스, 마약, 운동, 락앤롤에 빠졌습니다. 제 양심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이 때 (절친과 또 다른 좋은 친구를 포함하여) 제 친구 여섯 명이 한 달 간격으로 두 번의 자동차 사고로 죽었습니다. 이것으로 최후의 네 가지인 죽음, 심판, 천국, 지옥에 대해 잠시 멈추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몇 주 내지 몇 달이 지나자 원래의 생활방식으로 돌아갔습니다. 저의 양심은 돌처럼 차갑게 죽어있었고, 죄책감 없이 기본적으로 무슨 행동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졸업 후 저는 미주리주 캔자스 시로 이사 갔는데 이 때는 제 주변에 어두움이 거의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오랜만에 처음으로 제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1999년 스물세 살 때 암으로 한 번 놀란 적이 있습니다 (다행스럽게 암이 아니라고 판명되었지만) 이렇게 놀라자 다시 한번 죽음에 대해 잠시 생각하게 되었고, 다시 한번 두려움이 가라앉자 원래 생활로 돌아가게 되었으며 더 비뚤어졌습니다. 여자 친구와 동거하며 포르노에 중독되었고 거의 일주일에 한 번은 고주망태가 되어 정신을 잃었습니다.
2001년 9월 11일이 되었습니다. 911 테러사건으로 저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그렇게 큰 충격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날의 끔찍한 사건들로 오랫동안 선과 악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 어느 때보다 내성적이 되었습니다. 911 사건이 있은 후 얼마 안되어 제 인생의 의미를 더 많이 찾기 시작했으며, 하느님의 뜻에 의해 우연히 보스니아의 시골 마을에 발현하는 성모님에 대한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미친 듯이 파고 들었다는 기억이 납니다. 묵주기도, 속죄, 미사, 고해성사의 메시지가 제 영혼 속에서 불이 붙기 시작했고, 가슴 깊이 성모님의 말씀이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삶에 평화를 원한다면 하느님께 돌아가고 그분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모님은 또한 제가 평생 궁금해하던 너무나 심오한 질문에 답을 주셨습니다. 제가 그토록 비참하고 비참한 상태에서 때로는 그분께 부르짖기도 했는데 왜 하느님은 절 도와주지 않으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성모님의 메시지 중에 이렇게 그 질문에 답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너희에게 완전히 회개하라고 당부하는데, 이것은 하느님을 선택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어렵다. 하느님은 너희가 그분께 구하는 모든 것을 주실 수 있지만, 너희는 아프고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을 때만 그분을 찾고서는 하느님이 들어주지 않으시고 너희와는 멀리 계시고 너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자녀들아!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너희가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면 굳은 믿음을 갖고 은총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은총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자녀들아, 날마다 나는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하느님께 더 가까이 데리고 가고 싶지만 너희가 죄를 포기하기를 꺼리면 내가 도와줄 수가 없다. 그러니 자녀들아, 너희의 삶을 하느님의 손에 맡겨라.”
그렇게 답이 있었습니다. 왜 하느님이 제가 그토록 여러 번 부르짖었는데도 절대 도와주지 않은지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제가 비참할 때 하느님이 도와주지 않은 것은 제가 죄를 포기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길로 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항상 제 방식으로 제 길을 가도록 해주셨지만 제 방식은 옳은 길이 아니었지요. 왜냐하면 하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길이고 진리이며 생명이다.” 그래서 그 때부터 변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묵주기도를 시작한 것이며 묵주를 통해 성모님은 8-10년만에 처음으로 저를 고해성사로 다시 데려가셨습니다. 그리고는 되도록 자주 미사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모님은 묵주의 힘을 통해 제가 지상에서 만든 저의 지옥에서, 그리고 아마 죽은 후 제가 갔을 지옥에서 이 불쌍한 영혼을 구해주셨습니다. 주님은 교회에서 성체성사를 통해 제게 다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저를 치유해주셨고 제 앞에 계속 사명을 펼쳐주십니다.
현재 저는 매우 아름답고 멋진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7살, 4살, 6개월이 된 예쁜 세 딸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밤 같이 묵주기도를 하며 최선을 다해 우리 아이들에게 가톨릭 신앙의 진리를 가르치려고 합니다. 존 퀸과 함께 ‘용감한 사제 (Courageous Priest)’라는 웹사이트를 같이 만들었습니다. 용감한 사제’는 우리 나라와 우리 세상을 뒤덮고 만연하는 악에 대항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사제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피임, 낙태, 동성애 결혼 등과 같은 논란이 되는 주제에 대항하는 용감한 사제들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라피 신부, 버크 대주교, 샤푸 대주교, 그리고 또한 제임스 파파글리아 신부 같은 용감한 사제를 따르고 싶은 분들은 ‘용감한 사제’에 오셔서 읽어보세요.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제프 가레
〈http://thereedofgod.blogspot.com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