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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0-07 09:38
성체성사의 본당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738  
“성체성사의 본당”
까멜로 신부와의  인터뷰

P. 알피드 C.

까르멜로.png


질문: 까멜로 신부님, 메주고리예에서 2년을 보내셨지요. 어떻게 그런 기회가 왔고, 그게 신부님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까멜로 신부: 그것은 메주고리예에 이탈리아 순례자들을 돌볼 이탈리아 사제가 없다고 ‘에코 오브 마리아’에 실린 자그마한 기사를 통해서 분명 성모님이 부르신 것이었습니다. 저를 개인적으로 부르시는 거라고 받아들였으며 그게 정말 제가 할 일이라면 표징으로 성모님께 거기 갈 수 있는 표와 머물 곳을 마련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데 한 사람이 메주고리예에 가는 표 하나가 남았는데 누구에게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메주고리예에서 슬라브코 신부에게 이것에 대해 물어보니까 그분은 성모님이 저를 하느님의 계획을 더 잘 이해하도록 그 곳에 머물도록 부른 것이라고 확인해주었습니다.
     거의 2년을 메주고리예에서 지내면서 (1995-1997) 이태리어와 불어를 쓰는 순례자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성체성사를 집전하며, 특히 고해성사를 주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하루에 고해성사를 8시간, 10시간까지 주었고, 여기서 하느님의 은총을 가장 강력하고도 가장 역력하게, 가장 놀랍게 체험했습니다. 그런 은총 한가운데 제가 있었습니다. 매우 평범한 것 같았지만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은총만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질문: 이런 체험을 한 후 성모님의 인도가 중요하게 여겨졌나요?
까멜로 신부: 제가 메주고리예를 떠났을 때 특히 성모님께 ‘항상 너와 함께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으니까 저와 함께 계셔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제 자신을 성모님께 봉헌했고, 형식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마치 메주고리예에서 제가 성모님의 자궁을 거쳐 다시 태어난 것 같았습니다. 특히, 인간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써, 사제로써 새로운 식의 삶, 새로운 사고방식, 특히 새로운 존재를 부여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모든 단계, 모든 일, 모든 행위, 사목 활동, 미래에 저를 위해 주님이 준비하신 모든 것을 성모님께 봉헌했습니다. 성모님이 제 앞에 걸어가시며 모든 것을 준비해주신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성모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제 것이 아니고 제 존재, 제가 가진 모든 것이 성모님의 것입니다. 이렇게 다시 태어난 상태가 저를, 당연히 이해해야 할 사람들도 항상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그런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주었습니다.
     성모님이 권하시는 다섯 개의 조약돌의 삶을 살기 시작했고 이것이 저의 사제직을 굳건히 해주었습니다. 제가 돌아왔을 때 주교님께서 상주 사제가 없었던 (메씨나 지방) 비글리아토레의 작은 산촌 마을 본당을 저에게 맡기셨습니다. 사람들은 주일 미사에서만 사제를 만나는데 익숙했습니다. 저는 본당이 마치 주교좌 성당인 것처럼 계속해서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성체조배를 했으며, 성무일도를 바쳤습니다. 저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주님, 사람들이 오든 안 오든 저는 당신을 위한, 당신의 영광을 위한, 영혼의 구원을 위한 사제입니다. 당신과 보내는 시간, 당신을 위한 저의 사랑을 사람들이 여기 많이 안 온다고 줄일 수는 없습니다!” 점차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고 이러한 신앙의 삶을 사는 방법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복음에 따라 살도록 성모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본당은 순명을 통해 기본적으로 교황과 주교와 함께 보편적인 교회의 폐를 통해 숨쉬고 있습니다.

질문: 본당신자들이 충실하게 미사에 참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메주고리예에서 성모님이 말씀하신, 본당 공동체는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당신자들이 처음에 어떻게 반응하던가요?
까멜로 신부: 성모님께 봉헌하는 준비부터 시작했습니다. 점차 본당은 하느님의 신비를 점점 더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봉헌한 후 우리는 좋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밤낮으로, 매주, 매달, 끝임 없이 일년 이상 지속적인 성체조배를 하고 있습니다. 있습니다. 매주 1시간씩 사람들을 순번을 돌아가며 조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하루 24시간 확실하게 성체조배하러 오는 사람들이 이어집니다. 지속적인 성체조배는 당연히 성체성사의 결실로 이루어졌습니다. 시간을 보지 않고 정성껏 성체성사가 거행되었습니다. 말씀의 전례를 통해 말씀하시고 성체 안에서 그분 자신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며, 성체조배를 통해 그분과 다정한 대화를 계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우리 본당 신자는 겨우 2,000명밖에 안되고 다른 성직자는 전혀 없이 저 혼자서 말입니다.

질문: 성직자는 없지만 미사와 기도의 순간에 활기를 불어넣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요…
까멜로 신부: 평신도들이 성체조배, 성체성사 거행에 도움을 많이 줍니다. 그리고 “하느님 자비의 원죄 없으신 어머니의 작은 양떼”라는 단체가 있는데 공동 생활을 하기로 결정한 그곳 수녀님 다섯 분과 또 일부 형제님들과 가족들도 있습니다. 이 분들은 자신들의 삶을 완전히 주님께 바치기로 결심했고, 그래서 본당 공동체의 기도를 촉진시키는 누룩의 역할을 하십니다.

질문: 이 단체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까멜로 신부: 이 단체는 제 영혼을 불러주신 하느님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고, 좀더 철저하고 복음적 방식으로 복음을 실천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응답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탈리아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제가 메주고리예에서 무슨 경험을 했는지 물었지만, 그 경험을 실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뭐라고 답할지 몰랐습니다. 
     그 대신, 완전히 성모님께 맡기고 성모님의 자궁에 돌아와 다시 태어난 제 자신을 보았습니다. 저는 (본당)에 33일간 성모님을 통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 일체께 봉헌할 준비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가 삼위 일체 중심에서 살도록 도와줄 수 있는 분은 성모님이시며 그렇게 하여 우리 생명을 세계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께 봉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모님을 보라”라는 큰 운동이 탄생되었습니다.
     시실리 전역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그 운동을 지키려고 합니다. 현재 육 천명이 자신을 봉헌하였습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봉헌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신앙의 제스처 정도로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토록 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모님을 보라” 운동 안에서 “작은 양떼들” 단체가 탄생했습니다.

질문: 자신을 영혼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 바쳤다고 하셨는데요. 이에 대한 체험은 어땠습니까?
까멜로 신부: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의 자비에 우리 자신을 번제물, 희생제물로 봉헌하도록 우리를 부르신다고 느낍니다. 고통의 부정적인 차원이 아니라 선물로서, 예수님이 자신을 바친 것처럼, 즐겁게 의식적으로 선물을 드리듯이, 성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혼의 구원을 위해 사랑의 희생제물이 되라는 것이고, 성체성사를 거행하면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제대요 희생제물이자 사제이신 예수님과 우리가 합쳐지기 때문입니다. 봉헌한 제 자신과 자신을 봉헌하신 예수님이 합쳐져 성체성사 안에서 세상 끝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사제로써 매우 강하게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을 “살아있는 제물로, 거룩하고 하느님이 받아줄 수 있도록 우리를 바치도록 요청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영혼의 신앙입니다.”라고 성 바오로는 말합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예수님 생명의 선물, 그분과 합쳐진 우리 자신의 생명의 선물을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상 생활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주님이 우리가 살도록 주시는 모든 것을 왜 그런지 묻지 말고 받아들이고, 그러나 모든 것이 주님에게서 오고, 우리는 은총의 작용 속에서 그분께 모든 것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자비와 예수님의 재림을 갈구하며 그분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질문: 사제로써의 삶을 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신부님 내면과 주위에 넘치는 은총에 대해서요.
까멜로 신부: 저의 사제직을 통해 저는 정말로 예수님의 사제직과 합쳐졌으며 이것은 보편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제가 된다는 것은 인간을 하느님께 데려가고 하느님을 인간에게 모시고 오는 것이며, 그냥 제단에서 미사를 집전하거나 고해성사를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을 위해 감사와 봉헌을 하느님께 바치는 일은 사제직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고해성사 사목을 통해 저는 모든 시대의 모든 인류의 모든 고통과 문제를 하느님께 들고 갑니다. 메주고리예에서 성모님이 사제의 직무, 특히 화해의 성사의 위대함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전에 저는 고해성사 사목 중에 용서의 은총에 감동하는 사람들을 못 보았기 때문에 걱정했지만 메주고리예에서 큰 기적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죄에 짓눌려 도착했고 얼굴도 슬프고 스트레스를 받아 굳어져 있었습니다. 고해를 하면서 이들의 영혼이 되살아나고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1년 후에 성모님이 고해성사 사목을 통해 사제들을 새롭게 하시겠다고 약속했다는 내용을 읽게 되었습니다!
     영적 지도에서 사제는 아버지가 되고 하느님의 아버지 어머니가 같이 합쳐진 상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사제의 이러한 아버지-어머니 상이 성스러운 부모 역할을 제대로 못한 인간 부모에게서 상처받은 영혼들을 치유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이야말로 하느님이 자신을 성모님, 교회, 사제의 사목을 통해 영혼들에게 다가가고 싶어하신다고 절실히 느낍니다.

질문: 목자로써 신부님의 영혼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까멜로 신부: 한편으론 죄의 삶을 살고 있는 영혼들의 모든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죄 때문에 그들을 거부한 교회 때문에, 교회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는지를 봅니다. 예수님은 지금은 심판할 때가 아니고 자비를 베풀어야 할 때라고 하셨습니다. 고해소는 자비와 용서와 치유의 장소가 아니라 법정이 되어버렸습니다. 메주고리예뿐 아니라 여기서도 주님은 저를 교회에서 멀어진 상처받은 영혼들과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들은 이혼이나 재혼, 많은 젊은이들의 빗나간 성적 성향 때문에 하느님의, 교회의 심판을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입니다.저는 이러한 고통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사람들은 말하자면 “우연히” 목자를 찾아온다고 하지만 주님은 많은 것을 이용하여 영혼들이 사제의 사목에 접하도록 하십니다. 특히 성사 거행과 복음화 도중에 영혼들은 사랑의 끌림을 경험하게 됩니다.
     제가 이런 것들을 모두 경험했기 때문에 알고 있습니다. 저도 거절 당했습니다. 하느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제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어루만지게 해주셨고 저를 심판하시지 않고 그분은 저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심을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완전한 신뢰하면서 그분께 제 자신을 맡긴다면 하느님의 사랑만이 제게 새 삶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기도는 “저의 생명을 당신께 드립니다” 였습니다.
     그것으로 죄와 상처 깊은 계곡에서 빠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저를 끌어내주셨습니다. 제가 비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느님은 저를 이용하여 다른 이들에게 그분의 자비를 베푸십니다. 저는 나쁜 죄를 경험하고 상처받은 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합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영혼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이해하는 일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제 영혼에 계신 예수님의 영혼이 하는 일입니다. 그들의 얘기를 듣는 것은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사제직은 모두에게 다가갑니다.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은 사람에게도. 사제직은 연옥영혼도 어루만질 수 있는 보편적인 차원을 갖고 있습니다.

질문: 신부님은 분명히 성모님의 학교에서 공부하셨군요.
까멜로 신부: 저는 모든 것이 성모님 덕분이라 생각하고 그 사실을 그 어느 때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성모님을 통해 저는 진정 예수님이 누구인지,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강한 힘을 발견했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 성모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셨기 때문에 우리도 하느님께 다가가기 위해 우리 자신을 성모님께 맡기는 것이 극히 당연합니다.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www.aqop.org, 『평화 MIR』, 2013년 5/6월호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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