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에서 치유되다
주디스 잔슨
저는 열아홉 살 때 이름만 장로교회에 속해 있었고, 혼전 임신을 했습니다. 남자친구가 아이를 원하지 않아 임신 8주째에 낙태를 했습니다. 수 년간 그것 때문에 트라우마를 겪었습니다. 우울증, 악몽, 과식증 식이장애에 시달렸습니다. 폭음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1991년 서른 두 살 때 웨인 와이블의 메주고리예 메시지 책을 읽은 다음 가톨릭 신앙에 끌렸습니다. 주말에 그 책을 다 읽었습니다. 혼자서 묵주기도하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그 주말에 기도했지요. “하느님, 이 교회에 관한 모든 걸 믿겠는데, 아직 성모님에 대한 교리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분이 진짜라면 제가 열세 살 때 거듭 났던 것처럼, 그분이 진짜로 느껴지게 해주세요.” 그 즉시 사랑스러운 여성 팔에 안기는 포근한 느낌이 몰려왔으며 그분이 진짜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분은 우주에서 가장 강한 여성이시고, 그분의 아드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정식으로 가톨릭 신자가 되었습니다. 첫 고해성사에서 제일 먼저 낙태에 대해 고백했습니다. 그래도 용서를 받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게 1991년이었습니다. 1997년 저는 성령 기도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고 제 영적 지도자 조 제임스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그 신부님께 한 달에 한 번씩 고해성사를 보았습니다. 메주고리예에 여러 번 다녀온 분으로 본당 신자들에게 메주고리예 메시지에 따라 살라고 가르쳤습니다.
제임스 신부님은 루복 근처, 텍사스 주 슬라톤에 있는 피정의 집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낙태한 사람의 치유를 위해 ‘레이첼 포도원’ 피정을 하자고 하셨습니다. 그 피정 팀이 1998년 보스톤에서 우리 지역에 처음 와서 피정을 열었습니다. 아기가 하늘나라에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몰랐고, 그 아이를 죽인 자신을 용서했습니다 (그 애가 여자애라고 믿었기에 이름도 앨리스라고 지었습니다)! 큰 자유를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웨인 와이블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가톨릭 신자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모님을 만나지도 않았을 테고, 그분이 영원한 저의 어머니라는 것도 몰랐을 것입니다. ‘레이첼 포도원’ 피정에도 가지 않았을 테고, 제임스 신부님과 수 년 동안 일을 하며 치유를 받고 결혼 생활을 지키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성모님이 말씀하신 메주고리예를 다녀간 사람들의 체험담을 통해 “여기 오지 않아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메주고리예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22년간 기도한 끝에 드디어 작년 (2013년) 6월 메주고리예에 가게 되었습니다.
모든 게 상상했던 그대로였고, 아니 그 이상이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온 좋은 아주머니를 만나 단짝이 되었습니다. 제 주위 세상에서는 볼 수 없었을 인간관계의 치유를 보았습니다. 우린 이반의 발현목격에 갔습니다. 이반의 눈을 쳐다보고 악수하고 매일 성모님을 보는 사람을 본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양극화된 정치적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크리자밧산을 오르면서 메주고리예에서 성모님이 여러 번 강조하셨듯이 모든 마음이 사랑에 눈을 뜨고 예수님의 사랑을 찾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산을 오를 때 확실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는 시간당 5 센티가 넘도록 오고 있었고, 우린 서로를 밀어주며 기쁨에 가득 차 있었고, 5월 찬비에 옷은 다 젖었지만 그분의 아드님도 그 산을 오른 후 제가 보기에 심지어 원수까지도 포함하여 이 세상 모든 이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가기 전에 이 세상의 어떤 문제들은 세상적인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젠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걸 압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만 해결책을 찾을 수 있고, 그분의 길이 우리 삶을 위한 궁극적인 목표이자 최선책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님과 성모님, 하느님 아버지 삼위일체가 모든 것을 돌봐주시고 제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해결해주신다고 믿습니다.
메주고리예는 지구의 특별한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천국의 한 조각이고, 아름다운 우리 성모님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그분의 아드님께 돌아가기 전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포근하게 안아주려 부르는 곳이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가톨릭 신자가 된지 17년이 지났을 때 사랑하는 남편도 신자가 되었습니다. 저 만큼 교회를 사랑하는데, 이 아름다운 교회에서 우리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릅니다!
〈www.aqop.org, 『평화 MIR』, 2014년 7/8월호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