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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3-06 00:01
메주고리예에서 일어난 짐의 기적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370  
메주고리예에서 일어난 짐의 기적


발현산 사진.jpg


순례단을 이끄는 짐 브라운의 “작은 기적”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알콜 중독의 삶을 살아온 그는 투덜대며 메주고리예에 끌려 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을 영원히 바꿔 놓을 일을 경험했습니다. 여기 그의 체험담입니다.

일생일대의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얼싸안으며 서로 만나 기뻐하는 걸 보았기 때문이고, 그것도 새냔 공항에서 새벽 5시에 말이지요. 미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데, 모두를 즐거워하며 기뻐하면서 저에게 이제 삶이 완전히 달라질 거라고 했습니다. 어떤 여자가 다가오더니 제 머리를 어루만지며 제가 사랑이 넘치며 모습도 아주 달라지고 제 기분도 아주 달라질 거라고 하길래 전 혼자서 “날 가만 내버려두지 않으면 당신이야말로 달라지게 만들겠어!”라고 중얼거렸습니다.

비행기에 타자 그 여자는 제 뒤에 앉아서 저를 압도했고, 그리고 여기 도착해서 버스에 타서는 저에게 자신의 체험에 대해 얘기해주었고 정말 듣고 있다는 게 힘들었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 여자가 태양이 빙빙 도는 걸 보았다고 하길래 저는 “여보세요. 전 알콜 중독자예요. 20년 동안 매일 술을 마셨다고요. 아일랜드 모든 마을이 빙빙 도는 걸 봤다고요. 호텔 방에 들어가서 누우면 모든 천장이 빙빙 도는 걸 보았다고요. 트랄리 대로에서 차가 옆으로 기울며 달려오는 것도 보았다고요. 그러니 댁이 보았다는 거 모두 잊어버리고 절 가만 내버려 두세요.”

아주 작은 집에서 저는 다른 세 사람하고만 투숙하게 하여 “그 미친 사람들하고 떨어지게 해주시니, 진짜 하느님이 계신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쁜 뒷마당도 있어서 여기서 일주일을 지내다 나중에 7일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머지 사람들과 합류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며 아무도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를 거고 보고 싶어하지도 않을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절 찾으러 왔습니다. 저는 한 아일랜드 남자와 같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갤웨이 순례단과 같이 왔고 사람들은 그 길 잃은 양을 찾으러 온 집을 뒤졌습니다. 그리곤 저를 스탄카 하우스로 데려갔는데 거기엔 40명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전 거기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미사를 봉헌하러 갔을 땐 사람들이 빽빽했습니다. “여기서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집에서도 미사에 가지 않는데. 미사에 안 간 지가 10년이 되었는데 여기 사람들이 가득 찬 성당에 내가 와있고, 앉을 자리도 없잖아.” 그 때는 남은 일주일은 숨어서 지내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발현산에 올라가게 되었고 혼자 조용히 있는 한 남자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이 곳에 대해 뭐 아는 게 있나요?” 그 남자는 “알지요. 여기 열 번 왔어요.”라고 했습니다. “성모님이 발현했다는 장소만 알려주실래요?”라고 제가 물었습니다. 거기 올라가서 무릎을 꿇고 성모송을 세 번 바치고 혼자서 아일랜드로 돌아갈 방법이 있는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갔을 때 무슨 일이 생겼습니다. 여기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뭔가 있는 걸 그냥 느꼈습니다. 그냥 좋았습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변했습니다. 저는 당시 알콜 중독 치료모임의 12-단계 프로그램을 7년째 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것으로 정신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울 것이라고 했지만 늘 뭔가가 부족한 것을 느꼈습니다. 정말 슬픈 상황도 보았고 정말 슬픈 장례식도 보았지만 눈물이 나오질 않고, 거의 30년 동안 울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엄청난 심리 치료를 받으면서 저의 어느 부분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머리와 마음은 같은 사람의 것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 둘을 연결할 수 없었습니다. 눈물은 안 나도 슬픈 느낌은 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고쳐먹고 이틀 후 숙소 밖에 앉아있다가 존 맥카티와 얘기하던 중 그는 제가 허리를 구부렸기 때문에 뭔가를 떨어뜨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제 머리가 억지로 눌렸습니다. 마치 뭔가를 땅에서 줍는 것처럼 말이지요. 전 그에게 저를 압도한 그 느낌을 그도 알아챘는지, 그도 느꼈는지 물었습니다. “아마 그분일 거에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숙소에 있던 여자 얘기를 하는 줄 알았는데, 그는 “그게 아니고 성모님 말이에요. 시간을 보세요. 7시 20분 전이잖아요.” 전 그 남자가 농담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선 전 “그렇죠. 성모님이 여긴 몇 년째 안 오시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게 아니라, 성모님은 이곳에 매일 밤 7시 20분 전에 오신다니까요.”

그것은 그냥 스쳐 넘겼는데 다음 날 미사에서 사제가 평화의 인사를 나누라고 했습니다. 사제는 “평화의 인사를 나누기 전에 자신의 마음 안을 들여다보면서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는지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한 달 전에 웨스트포트에서 우리 부모님을 봉헌한 미사가 있었는데 미드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예약을 해두었지만 갈 수가 없어서 저에게 “엄마, 아버지를 봉헌한 미사인데 오빠가 가야겠어.”라고 하길래, “싫어, 가고 싶지 않아.”라고 했습니다. 전 너무나 화가 나고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알콜 중독자의 가정에서 자라 아버지가 너무도 미웠습니다. 당시엔 어머니에게도 그렇게 화가 나있었다는 걸 몰랐지만, 어머니한테 그런 상황에서 저를 보호해달라고 여러 번 부탁을 했었고, 어머니도 도리가 없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해는 했지만 고통이 없어지는 게 아니었고 그 땐 버림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부모님 모두에게 그렇게 분노하고 있는 줄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날 미사에서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눈물이 마치 쌀알처럼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뭉쳐서 떨어졌습니다. 그냥 물처럼 흐른 게 아니고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느낀 것은 단지 태어나서 그토록 큰 환희와 용서하겠다는 걸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집에 알콜 중독자가 있었기 때문에 돈이 거의 없었고 어머니도 일해야 했기 때문에 부모님 모두 많은 희생을 치렀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두 분 다 수 년간 제 생일을 챙겨주시고 산타클로스 선물을 준비하시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만 보였습니다. 그게 2000년의 제 모습이었습니다. 극도의 고통이 빠져나갔고 고통은 기쁨과 용서, 사랑,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겠다는 감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걸 혼자만 비밀로 간직하기에는 너무나 귀중해서 다른 이들도 이것을 경험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모님은 정기적으로 발현목격증인에게 메시지를 주시지만 저에게 주신 메시지는: “그들을 데려오고, 그들의 잘잘못을 심판하지 말아라. 그건 너의 몫이 아니란다. 성부와 성자, 성령의 삼위 일체는 완성되었다. 짐 브라운이 할 일은 누구든 가려는 사람이 있으면 이곳 메주고리예로 데려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면 제 임무는 완성됩니다.

                                                                                〈www.aqop.org, 『평화 MIR』, 2014년 7/8월호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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