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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 Stephen Shin’s Reflections on the Mess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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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내 아들 예수님을 내 품에 안아 너희에게 모셔 오고 있으며, 그분에게서 너희를 위한 평화가 오고 너희 가운데 평화가 있기를 청하고 있다. 그분의 평화와 기쁨이 너희 마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내 아들에게 기도하고, 그분을 흠숭하여라. 나는 너희가 더욱더 기도에 열려지도록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내 아들 예수님을 내 품에 안아 너희에게 모셔 오고 있으며, 그분에게서 너희를 위한 평화가 오고 너희 가운데 평화가 있기를 청하고 있다.

예수님의 성탄절 아침 어느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한 종업원이 영어로 “Happy Holidays (휴일을 축하합니다)!”라고 제게 인사했고, 저는 “Merry Christmas (성탄을 축하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올 때 같은 종업원이 역시 “Happy Holidays!”라고 인사했습니다. 성탄과 새해 등을 하나로 묶어서 인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예수님 없이 지내는 요즘의 성탄 문화를 반영하는 것 같아 저로서는 씁쓸한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성탄 시즌이 되면, 아니 11월 중순부터 이미 라디오의 어느 채널에서는 하루 종일 성탄 캐롤만 틀어주고, 텔레비전에서는 Happy Holidays를 연발하면서 성탄과 새해를 겨냥한 광고와 문안들이 쏟아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반 쇼핑과 선물 사기에 빠져들고, 어떻게 하면 이 휴일들을 잘 즐길까 고민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성탄절이 생겼고, 인간은 그분의 오심과 그 의미를 기억하면서 거룩하게 이 시기를 지내야 하는데 정작 세상의 성탄절에는 예수님의 자리가 없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셨던 첫 성탄절에 베들레헴의 여관들에는 그분을 위한 방이 없었습니다. 그분을 태중에 모신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방을 구하려고 애를 썼으나 모든 문들이 그분들에게는 닫혀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사정을 딱하게 여긴 어느 목동의 도움으로 동물들을 위한 동굴로 인도되어 성모님은 거기에서 예수님을 낳으셨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은 말구유에 뉘여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들의 무관심과 불친절 속에서 배척을 받고 계십니다. 예수님 때문에 성탄절이 생겨났으나 세상 사람들은 그 성탄절에 예수님을 전혀 찾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 조차도 입에 올리지 않으며, 그저 인간이 즐기는 하나의 휴일로만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품에 예수님을 안고 그분을 우리에게 모셔오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탄절에 우리가 우리의 온 힘과 마음과 정신을 다해 바라봐야 할 분은 바로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모셔오고 계시는 아기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아니시면 이 성탄절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성모님은 모든 인류에게 당신의 아들 구세주 예수님을 모셔다 주고자 하시지만, 그분을 자신의 품에 받아 안기 위해 팔을 벌리는 사람, 마음을 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팔을 활짝 열고 성모님으로부터 아기 예수님을 건네 받아야 합니다. 
     성탄절은 선물을 교환하거나 파티를 하거나 가족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마련된 시간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것들은 부가적인 것들이 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성탄절은 예수님께서 내 안에 태어나시도록 그분께 우리의 마음과 삶을 완전히 개방하고, 그분께서 주시는 평화와 기쁨을 받아들이는 때입니다. 어느 차량 범퍼 스티커의 문구처럼 “성탄절에 예수님이 계시도록 합시다.”


그분의 평화와 기쁨이 너희 마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내 아들에게 기도하고, 그분을 흠숭하여라. 나는 너희가 더욱더 기도에 열려지도록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기도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사랑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에, 기도 역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기 위해 마음을 열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기도하기 위해서 먼저 하느님께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계속해서 한없이 넓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로 넓혀진 마음에 하느님이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평화와 기쁨이 흘러 들어올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할 때 제일 먼저 우리는 하느님의 현존을 생각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느님이라는 대상이 있고, 그분은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나 살아계신 분이시고 인격적인 분이시기에 우리가 기도할 때는 살아 계신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사랑을 받기를 원하시는 그분이 우리 앞에, 옆에, 뒤에, 우리 둘레에 완전하고 충만하게 현존하신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의식해야 합니다. 그 현존을 의식하면서 먼저 그분께 한없는 흠숭과 찬미를 드리며 우리의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평화와 기쁨이 우리 마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그분께 기도하고, 그분을 흠숭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는 바로 예수님의 성체가 모셔진 감실 앞입니다. 예수님의 몸이 모셔져 있는 감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작은 감실 안에 모셔진 우주의 왕, 만민의 왕이요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흠숭하십시오. 요즘 같은 시기에는 감실과 더불어 아기 예수님이 뉘여 계시고 성모님과 요셉 성인이 함께 그분을 모시고 있는 구유 앞으로 가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만일 그럴 시간이 없거나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십자고상 앞으로 가서 십자가에 달려 계신 그분을 직접 바라보면서 기도하고 그분을 흠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메시지에서 종종 우리를 “나의 어린 자녀들아!”라고 부르시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성모님이 보시기에 우리는 여전히 작고 어린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이기에, 성모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좋은 길로 이끌어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지켜주고자 하십니다. 이는 기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려고 애쓰지만 우리의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모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기도하기 힘들고, 기도하기 싫어질 때, “나는 너희가 더욱더 기도에 열려지도록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하신 오늘 메시지를 떠올립시다.

   
 
 
2014년 11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특별히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어린 자녀들아, 기도하여라. 그러면 너희가 누구이고, 너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희망하는 사람이 되어라. 사랑이 없는 모든 이들을 위해 사랑이 되어라. 어린 자녀들아, 너희가 기도하고, 너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고자 하시는 하느님과 그분의 뜻에 너희를 열기만 한다면, 너희는 모든 것이 되고 모든 것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매일매일 내 아들 예수님 앞에서 너희를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특별히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어린 자녀들아, 기도하여라. 그러면 너희가 누구이고, 너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계속 해서 숨을 쉬고 있습니다. 숨을 계속 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공기가 우리의 몸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공기가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오는지 전혀 의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매번 숨을 쉴 때마다 우리 몸에 들어오는 공기는 바로 조금 전 숨의 공기와는 전연 다른 새로운 공기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유지되기 위해 숨쉬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숨을 쉬어야 합니다. 영혼의 숨을 쉬어야 합니다. 바로 기도를 통해서 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라는 정의가 생겨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영혼은 숨을 멈춘 죽은 영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매일 매일, 아니 매 순간 영혼의 호흡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육신의 호흡으로 새로운 공기가 들어오듯이 영혼의 호흡인 기도는 바치는 순간마다 새로운 것입니다. 어제 바친 기도, 오늘 바치는 기도, 내일 바칠 기도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비록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 같을 수가 없습니다.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수없이 외우는 성모송은 그 하나 하나가 전혀 새로운 기도입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기도하라고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를 부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기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는 말씀 속에서 성모님께서 얼마나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기도가 우리의 삶, 영혼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닫도록 이끄시는 성모님의 크신 배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정말로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반성해봐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이 죽는다는 것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지 깊이 자문해봐야 합니다. 매일 매일, 매 순간 다른 모든 것에 앞에 기도를 특별하게 여기고, 특별한 마음과 자세로 기도를 바쳐야 한다고 큰 다짐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치는 기도의 직접적인 수혜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기도하면 우리에게 좋은 일이 생깁니다. 성모님께서는 기도하면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줍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그분의 피조물, 그분의 자녀, 그분의 백성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 앞에 죄인이고, 그분의 용서와 자비를 늘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 줍니다. 기도는 비록 우리가 나약하지만 하느님 안에서 있을 때 하느님의 힘으로 강하게 될 수 있으며,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즉, 기도는 우리가 유한한 존재이지만 하느님과 함께 하면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으며, 그분의 사랑 받는 자녀라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는 항상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바로 하느님과 그분의 뜻 그리고 그분이 주시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향해 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희망하는 사람이 되어라. 사랑이 없는 모든 이들을 위해 사랑이 되어라.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우리가 복음을 늘 읽고, 살고, 체험하면서 그 복음을 우리 안에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진정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복음화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복음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은 그 뿌리를 하느님께 두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 십자가의 죽음을 당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희망을 멈추지 않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아버지 하느님이 사랑 그 자체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먼저 그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먼저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고,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장이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가 기도하고, 너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고자 하시는 하느님과 그분의 뜻에 너희를 열기만 한다면, 너희는 모든 것이 되고 모든 것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매일매일 내 아들 예수님 앞에서 너희를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경, 특별히 구약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주제 중의 하나는 인간이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면 생명과 축복, 상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죽음과 저주,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인간이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그 반대의 길을 걸었을 때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열왕기와 역대기를 읽어보십시오. 수 많은 왕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명을 따랐을 때와 따르지 않았을 때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 아주 자세하게 적어놓고 있습니다. 
     역대기 하권 17장 이하에는 하느님께 기도하고, 그분과 그분의 뜻에 자신을 열었던 유다의 임금 여호사팟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하느님을 찾고 그분이 계명에 따라 걷고 가나안의 신 바알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알의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을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또 대신들과 사제들을 유다의 모든 성읍으로 보내 주님의 율법서를 가지고 백성들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그는 오직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따르는데 충실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손에서 나라를 튼튼하게 해 주셨으며 그의 부와 영광을 대단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압 자손들과 암몬 자손들이 므운 사람들과 큰 무리를 이루어 여호사팟에게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대군이 싸움을 걸어왔기 때문에 이길 승산이 없었고 여호사팟은 두려웠습니다. 그는 바로 주님께 문의하기로 하고 온 유다에 단식을 선포한 다음, 백성들과 함께 모여 다음과 같이 하느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 당신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아니십니까? 또 당신은 민족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당신의 손에 힘과 권능이 있기에 아무도 당신께 맞서지 못합니다. 저 암몬 자손들과 모압과 세이르 산 주민들을 보십시오. 저희를 치러 온 저 큰 무리를 대적할 힘이 저희에게는 없습니다. 저희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신만 바라볼 뿐입니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회중 가운데 있던 야하지엘에게 주님의 영이 내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온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들과 여호사팟 임금님, 제 말을 들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 큰 무리 앞에서 두려워하지도 당황하지도 마라. 이 전쟁은 너희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다. 내일 그들과 맞서러 내려가라. 이 전쟁에서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다. 제자리를 지키고 서서, 주님이 너희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는 것을 보기만 하여라. 주님이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여호사팟 왕은 백성들에게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주 여러분의 하느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굳건해질 것이오. 그분의 예언자들을 믿으시오. 그러면 성공할 것이오.”라고 말한 후 군대 앞에 거룩한 예복을 입고 주님께 노래와 찬양을 드릴 사람들을 앞세웠고, 그들은 “주님을 찬송하여라. 주님 자애는 영원하시다.”라고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복병을 보내 적군들을 전멸시키셨습니다. 여호사팟 임금은 전혀 아무런 싸움도 하지 않은 채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께 마음을 다해 의탁하면서 기도하고 믿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오직 그분의 뜻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손길과 응답이 함께 하기에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기도하고 하느님과 그분의 뜻에 자신을 여는 사람은 모든 것이 되고,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십니다.

   
 
 
2014년 10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때에 기도하고, 이미 빛속에 있는 모든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여라. 그들이 회개의 길에 있는 너희에게 매일매일 모범이 되고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의 인생은 짧고 지나가는 것임을 깨달아라. 그러므로 영원을 그리워하고, 기도하면서 계속 너희 마음을 준비하여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내 아들 앞에서 너희 각자를 위해, 특별히 나와 내 아들에게 자신을 봉헌한 이들을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때에 기도하고, 이미 빛속에 있는 모든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여라. 그들이 회개의 길에 있는 너희에게 매일매일 모범이 되고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

11월 1일은 모든 성인의 대축일입니다. 이 대축일을 일주일 정도 앞둔 시점에서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빛 속에 있는 모든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여라. 그들이 회개의 길에 있는 너희에게 매일매일 모범이 되고,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인들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그분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았던 분들이기 때문에 어둠이 아니라 빛 속에서 걸었던 분들입니다. 그들은 이 지상에 사는 동안 그들의 믿음과 성덕, 기도와 희생의 모범적인 삶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감화를 주었고, 회개의 삶을 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제 이 세상을 떠나 모든 성인의 모후이신 성모님과 더불어 천국에 있는 그들은 영원한 빛이신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면서도 우리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즉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 전구함으로써 지상에 있는 우리들을 여전히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인들의 전구를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분들에게 전구를 청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바로 연도 중에 이루어집니다. 죽은 이를 위해 바치는 연도 중에 우리는 모든 성인의 호칭 기도를 바치면서 각 성인에게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청원합니다. 가톨릭 교회 외에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기도이고 전통입니다. 이제 이 전통을 살아 있는 우리들을 위해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죽은 자들만이 아니라 산 자의 하느님이시고, 성인들은 죽은 이들뿐만 아니라 산 이들을 위해서도 하느님께 전구할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기도서에 수록되어 있는 ‘성인 호칭 기도’를 매일 바치거나, 자신이 특별한 신심을 가지고 있는 성인들을 선별하여 나름대로의 성인 호칭 기도를 만들어 바쳐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성인들이 전구를 청하면 우리는 이 지상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영적 후원자들을 가지게 됩니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나 우리가 성인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들의 전구를 청하게 되면, 그들은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를 바치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전구를 들으시어 우리에게 필요한 은총을 허락하십니다. 이 얼마나 든든한 일입니까?
그러나 성인들의 전구만을 청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이 지상에 사는 동안 그 누구보다도 거룩한 삶을 살았던 분들이기에 우리는 그들의 삶에 대해 알고 그 삶에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 성인들의 삶을 함께 엮어 놓은 성인전이나 개별 성인의 전기를 읽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인터넷을 통해 매일매일 축일을 지내는 성인들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들의 모범적인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면 좋을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의 인생은 짧고 지나가는 것임을 깨달아라. 그러므로 영원을 그리워하고, 기도하면서 계속 너희 마음을 준비하여라.

11월은 위령 성월이고, 12월은 2014년의 마지막 달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면서 기도하고, 한 해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잘 정리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한 해의 시작이 있었다면 그 끝이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 사이에 놓여 있는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짧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죽음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깊이 인식하지 않고 마치 이 지상에서의 삶이 계속되고 영원할 것처럼 착각하면서 그에 매몰되어 살아갑니다. 
     성모님께서는 다시금 우리에게 지상에서의 우리의 삶은 짧고 지나가는 것임을 깨닫고, 대신 영원을 그리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영원한 집은 이 지상에 있지 않고 죽음을 넘은 후에 갈 수 있는 천국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모님 말씀처럼 영원을 그리워하고, 우리의 마음을 지나가는 지상의 삶에 빼앗기지 않고 천국을 늘 그리워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내 아들 앞에서 너희 각자를 위해, 특별히 나와 내 아들에게 자신을 봉헌한 이들을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이번 달 메시지 서두에서 성모님께서는 ‘이 은총의 때’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시기 위해, 성모님이 계속 해서 메주고리예에 발현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를 인도해주시며, 우리를 위해 전구해주시는데 어느 누가 이 때를 ‘은총의 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님의 도움과 인도를 받으면서 우리는 회개의 길에 있습니다. 성모님을 통해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 받고, 완전히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를 성모님과 예수님께 온전히 봉헌해야 합니다. 봉헌은 우리 삶의 주도권을 그분들께 드리는 것입니다. 성모님과 예수님께서 우리 삶을 움직이시도록 우리의 모든 것, 심지어 우리의 죄와 잘못과 모든 문제들까지도 그분들 손에 맡겨 드리면, 이 지상에서의 우리의 삶은 은총과 평화로 가득한 삶이 될 것이고, 그 삶을 마친 후에는 성인들과 더불어 빛 속에 살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인 천국으로 인도될 것입니다.

   
 
 
2014년 9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자신의 빛으로 다른 이들에게 빛과 아름다움을 줌으로써 그들을 기쁘게 하는 별들처럼 되라고, 오늘도 나는 너희를 부른다. 어린 자녀들아, 또한 내 사랑과 내 아들의 사랑에서 멀어져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너희가 찬란한 빛, 아름다움, 기쁨과 평화 그리고 특별히 기도가 되어라. 어린 자녀들아, 너희 마음 안에 있는 신앙의 기쁨, 그 기쁨 속에서 너희의 신앙과 기도를 증거하여라. 그리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소중한 선물인 평화를 위해 기도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자신의 빛으로 다른 이들에게 빛과 아름다움을 줌으로써 그들을 기쁘게 하는 별들처럼 되라고, 오늘도 나는 너희를 부른다. 어린 자녀들아, 또한 내 사랑과 내 아들의 사랑에서 멀어져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너희가 찬란한 빛, 아름다움, 기쁨과 평화 그리고 특별히 기도가 되어라.

지난 6월 미국과 캐나다에서 일하시는 51 분의 한국 수녀님들 피정 지도를 했습니다. 열흘 간의 침묵 대피정이었습니다. 열흘 동안 매우 열심히 기도하시는 수녀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교회가 기도하고, 교회가 살아 있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산보를 하면서 묵주를 들고 기도하시는 수녀님들, 아주 오랫동안 성체조배를 하면서 예수님을 경배하시는 수녀님들의 모습 그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릅니다.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하나가 되려고 기도하는 수녀님들의 모습은 피정이 끝나갈 무렵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얼굴에는 평화와 기쁨이 가득했고, 모두 아름다우신 모습이었습니다. 인간적인 꾸밈이 아니라 영적인 기운으로 가득 찬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그 빛과 아름다움은 그를 바라보는 저 역시 기쁘게 했습니다. 수녀님들께서 임지로 돌아가셔서도 그 아름다운 모습을 잃지 않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저는 순례자들과 함께 메주고리예 순례를 갈 때마다 이와 똑 같은 체험을 하곤 합니다. 순례자들은 메주고리예에서 미사, 성시간, 묵주기도, 십자가의 길, 십자가 경배, 개인 기도, 고해성사 등을 하면서 기도의 바다에 푹 빠집니다. 그래서 순례가 끝나갈 무렵이 되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빛나고 아름답게 변해 있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봐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 얼굴에서 발산되는 빛과 아름다움에 저절로 감탄하고 기뻐하게 됩니다.
     수녀님들 열흘 대피정과 메주고리예 순례의 공통점은 바로 마음을 다해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빛이신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 있고, 그럴 때만 우리 영혼은 빛이 나고, 그 빛은 우리의 외모를 통해서도 풍겨나가 주위 사람들에게 저절로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성모님께서는 특별히 당신과 예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이들을 위해 우리가 찬란한 빛, 아름다움, 기쁨과 평화, 특별히 기도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단죄하거나 말로 설득하여 마음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모님과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성모님과 예수님의 사랑에서 멀어져 있는 사람들을 그 사랑에로 인도할 사명과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 마음 안에 있는 신앙의 기쁨, 그 기쁨 속에서 너희의 신앙과 기도를 증거하여라. 그리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소중한 선물인 평화를 위해 기도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 16-18) 그러나 이 말씀을 매일의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매일 장밋빛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이 잘 풀려나가다가도 예상치 않았던 문제와 어려움이 생기고, 때로는 참기 힘든 고난과 시련이 밀려오곤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려움에 처하고, 시련을 겪게 되면 의기소침해지고 걱정하며 슬픔에 잠깁니다.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선하신 하느님의 섭리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떠한 상황에 놓이게 되도 기뻐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으나 다시 살아나셨고, 바로 그분이 늘 우리와 함께 계시며, 끝내는 그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 33)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참된 진리로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언제나 기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의 기쁨은 세상이 주는 그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전혀 다른 기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는 주님께서 일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이날은 주님께서 만드신 날 우리 기뻐하며 즐거워하세.”(시편 118, 23-24)라고 언제나 노래할 수 있습니다.

   
 
 
2014년 8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사탄이 내가 여기에 가지고 있는 계획을 파괴하고 너희의 평화를 뺐고 싶어 하니, 내 지향들을 위해 기도하여라.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께서 너희 각자를 통해 활동하시도록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여라. 너희의 마음이 하느님의 뜻에 열려지기를 바란다. 나는 너희를 사랑하고 모성적 축복으로 너희를 축복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사탄이 내가 여기에 가지고 있는 계획을 파괴하고 너희의 평화를 뺐고 싶어 하니, 내 지향들을 위해 기도하여라.

당신을 평화의 모후라고 소개하신 성모님께서는 지난 33년 2개월 동안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작은 마을 메주고리예에서 매일 같이 발현하고 계십니다. 이 발현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인류를 하느님께로 되돌아가게 만들어 그분에게서 평화와 구원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메주고리예에 가지고 계시는 계획은 바로 이것이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먼저 메주고리예 마을과 본당 그리고 발현목격증인들을 선택하시어 끊임없이 메시지를 주시고,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해 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 메시지대로 살도록 요청하셨으며, 세상 곳곳에서 그 메시지를 들은 수 많은 사람들이 그 메시지를 실천에 옮김으로써 영적으로 풍성한 열매들이 맺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루카 15, 10) 회개하는 죄인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고 하셨는데 왜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합니까? 그들이 흠숭하고 지극히 높게 모시는 그들의 주님이신 하느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죄인들의 멸망을 바라시지 않고 그들의 회개를 원하십니다. 죄인들 역시 당신의 피조물이고,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당신 자녀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 오늘날 성모님을 메주고리예에 계속 보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가장 반대하고 달갑게 여기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바로 사탄입니다. 그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살아있는 초자연적인 영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약 성경 곳곳에서 그의 존재에 대해 말씀하셨고, 메주고리예 성모님께서도 이번까지 합하면 무려 86번이나 당신의 메시지에서 그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께서 그의 서간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원수인 그는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1베드 5, 8 참조) 
그러면 이 사탄이 가장 활발하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메주고리예입니다. 그곳은 하느님의 은총이 풍성이 내리고 성모님의 현존이 그 어느 곳보다 강력한 곳인데 어떻게 사탄이 그곳에서 가장 강력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그가 싫어하는 일들이 그곳에서 가장 강력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원수인 성모님이 매일 그곳에서 발현하시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마음을 다해 기도를 하면서 회개하고 믿음이 깊어지면서 예수님을 자신들의 구원자 하느님으로 새롭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바로 그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것을 가장 적극적으로 막으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 세상의 그 어느 곳보다 메주고리예를 가장 싫어합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메주고리예에 가지고 계시는 그 계획을 파괴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구체적인 모습을 알 수는 없지만 성모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직접 보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분의 지향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의식을 하든 못하든 사탄은 우리의 일상 속에 들어와 우리의 평화를 몰래 빼앗아 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평화 속에 머무는 것, 즉 하느님 안에 머무는 것을 사탄은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우리의 평화를 빼앗아 가려고 할까요? 그는 아주 교묘하게 또 우리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다양한 상황과 방법을 통해 우리 마음 안에 미움, 분노, 두려움, 의심, 걱정, 시기, 질투 그리고 탐욕과 같은 것들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것들이 마음 속에 들어왔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사탄이 우리에게서 평화를 빼앗아가려고 일을 꾸미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즉시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를 악에서 보호해주고, 우리에게서 악을 몰아내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쫓아내지 못한 더러운 영에 들린 어떤 아이에게서 그 영을 쫓아내시자 제자들이 와서 왜 자기들은 그것을 쫓아내지 못했는지 물었을 때,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 29) 오직 기도만이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께서 너희 각자를 통해 활동하시도록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여라. 너희의 마음이 하느님의 뜻에 열려지기를 바란다. 나는 너희를 사랑하고 모성적 축복으로 너희를 축복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기도는 악을 물리치는 효과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을 하느님의 뜻에 열려지도록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를 해야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의 뜻에 열리고, 그래야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 활동하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이며, 그분은 인격적인 분이시기에 우리와 함께, 또 우리를 통하여 활동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어떤 사람도 아니고, 하느님 자신이 직접 우리를 통해 활동을 하신다는데 얼마나 황송한 일입니까?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 활동하시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하는 작업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느님 아닌 것, 하느님 보시기에 추한 것, 하느님의 뜻에 따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모든 것을 다 없애는 작업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어 우리를 통해 활동하시도록 그분에게 고속도로를 깔아드리는 작업입니다. 하느님만이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시도록 그분과 그분의 뜻에만 마음을 열어드리는 작업이 바로 기도입니다. 

   
 
 
2014년 7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너희가 자신을 열고 회개하도록 너희에게 표징들을 주고 계시는 이 때, 너희는 어떤 은총 속에서 살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느님과 기도에로 돌아오고, 기도가 너희 마음, 가정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다시 우위를 차지하게 하여라. 그러면 성령께서 매일 너희 각자를 위한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계획에 너희 자신을 더욱더 개방하도록 너희를 인도하고 영감을 주실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성인들과 천사들과 함께 너희를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너희가 자신을 열고 회개하도록 너희에게 표징들을 주고 계시는 이 때, 너희는 어떤 은총 속에서 살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심으로써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임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마다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르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라고 고백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관계는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감히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으니 그런 아버지를 둔 우리의 존엄함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반면 지극히 높으신 분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위해 한없이 당신 자신을 낮추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의 존엄함이 절대로 낮아지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더 한없이 높이 칭송을 받으시고, 늘 그러하셔야 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에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 15)라고 말씀하시는 분께서 어찌 우리를 잊으시고 우리를 포기하시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분께 열고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그 무엇보다도 원하십니다. 육신의 부모들에게 자녀의 안녕이 최고인 것처럼 우리의 천상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그분의 자녀들인 우리의 안녕과 구원 역시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수많은 표징들을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자연, 역사적인 사건, 기적적인 일들, 심지어는 일상의 작은 일들 안에서도 그분은 계속 우리에게 여러 가지 많은 표징들을 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는 많이 보면서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귀가 열려 있으면서도 듣지 못한다.”(이사 42, 20)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우리의 회개를 위해 하늘에서 보내시는 수많은 표징들을 보고도 식별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수많은 기적과 놀라운 표징들을 직접 보면서도 계속해서 완고함을 버리지 않았던 이집트 왕 파라오처럼 수많은 표징들을 보면서도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우리가 당신께 마음을 열고 회개하도록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가장 큰 표징은 바로 성모님과 메주고리예입니다. 지난 19세기부터 금세기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을 세상에 수없이 보내셨습니다. 세상 곳곳에서 수없이 발현하신 성모님께서 가지고 오신 메시지는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고, 그 하느님께 마음을 열기 위해 기도해야 하며, 회개하고 죄를 짓지 않음으로써 성화되어 구원의 대열로 나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수많이 많은 성모 발현들과 그 메시지들에게도 불구하고 인류는 그것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작은 시골 마을 메주고리예를 선택하시어 그곳에 성모님을 보내시면서 당신께로 돌아오라고 인류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이 지상에서의 성모님의 마지막 발현이 될지 모를 메주고리예 발현은 그 자체가 대단한 선물이고 표징입니다. 지난 33년간 4천만 이상의 사람들이 메주고리예를 다녀갔고, 그 열매는 대단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메주고리예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반대 받는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을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이 시대의 가장 큰 표징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하는 것입니까? 불신앙 때문입니다. 베들레헴 인근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 10-12)라고 한 천사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었던 그 목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수많은 표징들이 주어져 있습니다. 더 이상의 그 어떤 표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표징들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면서 우리의 귀와 눈을 열어 그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을 뵈옵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열고 그분께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기도에로 돌아오고, 기도가 너희 마음, 가정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다시 우위를 차지하게 하여라. 그러면 성령께서 매일 너희 각자를 위한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계획에 너희 자신을 더욱더 개방하도록 너희를 인도하고 영감을 주실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성인들과 천사들과 함께 너희를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다. 그런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하느님과 기도에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다른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했다면 그것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 보시기에 하느님과 기도 외에 우리에게 필요한 다른 것은 없으십니다. 
     우리 마음을 무엇이 다스리는가에 따라 우리 삶의 내용도 달라집니다. 기도가 우리 마음, 우리 가정 그리고 우리가 속한 모든 공동체를 다스리게 되면, 모든 것이 영적으로 변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변하는 그만큼 성령께서는 더 힘차게 활동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그분께서 주시는 영감에 의해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 대해 가지고 계시는 뜻과 계획을 더 잘 깨닫게 됩니다.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신 성령 하느님의 인도를 받고 그분의 영감을 받는다면, 우리 마음, 가정, 공동체의 삶은 얼마나 평화롭고 풍요로울 것입니까? 더군다나 성모님과 성인들 그리고 천사들이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를 위해 전구하고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하느님께로 돌아가고, 기도가 우리 마음, 삶, 가정, 교회를 움직일 수 있도록 매일같이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고, 기도하며, 또 기도하는 것입니다. 

   
 
 
2014년 6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내가 여전히 너희와 함께 있고 기도 안에서 너희를 평화의 길로 인도할 수 있도록,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나에게 은총을 주고 계신다. 너희 마음과 영혼은 평화와 사랑, 하느님과 그분의 기쁨을 목말라한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기도하여라, 기도하여라, 기도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기도 안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 모두를 축복하고, 내 아들 예수님 앞에서 너희 각자를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내가 여전히 너희와 함께 있고 기도 안에서 너희를 평화의 길로 인도할 수 있도록,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나에게 은총을 주고 계신다.

이번에 다시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신 날은 성모님 발현 33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지상에서 사셨던 만큼의 시간 동안 성모님께서는 메주고리예에서 발현하셨고, 그 발현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발현이 언제 끝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고, 오직 성모님과 그분을 이 세상에 보내고 계신 지극히 높으신 삼위일체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이 메주고리예를 통하여 여전히 세상에 발현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큰 은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분의 현존이 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은총입니까? 여전히 하느님께서 당신 자비와 구원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놓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시어 당신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하시며 아직도 우리 인류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희망은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성모님을 통해 당신께 돌아오라는 하느님의 초대에 기꺼이 응답한다면, 그 희망은 우리에게 구원과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그 초대에 대한 응답은 ‘기도 안에서’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다시금 기도할 것을 요청하시고, 우리를 향한 당신의 전구를 기억할 것을 당부하십니다.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평화와 구원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희 마음과 영혼은 평화와 사랑, 하느님과 그분의 기쁨을 목말라한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기도하여라, 기도하여라, 기도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기도 안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 모두를 축복하고, 내 아들 예수님 앞에서 너희 각자를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시편저자는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제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합니다. 그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올 수 있겠습니까?"(시편 42, 2-3)  
     하느님을 향한 이 영적인 갈망은 모든 인간의 갈망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만들어졌기에 우리는 그 본성상 하느님을 갈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오스팅 성인은 그의『고백록』에서 “님 위해 우리를 내셨기에 님 안에 쉬기까지는 내 영혼이 평안하지 않나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마음과 영혼이 갈망하는 평화와 사랑 그리고 하느님과 그분이 주시는 기쁨은 오직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하느님께 향할 때만 얻어질 수 있습니다. 아오스팅 성인의 말씀처럼 ‘우리 자신을 하느님 안에서 쉬려고’ 노력할 때, 즉 기도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기도하여라, 기도하여라,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보너스도 받게 됩니다. 인생의 지혜를 얻게 됩니다. 기도하면 하느님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고, 성령께서는 우리를 당신 지혜로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데서 지혜가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으로 그분께 기도할 때, 하느님은 당신 성령의 힘으로 우리를 지혜롭게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재물이 아니라 더 많은 기도와 하느님께서 주시는 삶의 지혜입니다.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를 위해 예수님 앞에서 우리 각자를 위해 전구하고 계시는 성모님의 도움에 힘입어, 기도가 기쁨이 될 때까지, 기도가 우리의 삶이 될 때까지 기도하고, 기도하며, 또 기도하면서 성모님의 부름에 응답합시다.
   
 
 
2014년 5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기도하여라. 그리고 하느님이 없으면 너희는 먼지라는 것을 깨달아라. 그러므로, 너희의 생각과 마음을 하느님과 기도에로 돌려라. 그분의 사랑을 신뢰하여라.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하느님의 영 안에서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모두 부름받았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소중하고, 나는 너희를 거룩함과 영원한 생명에로 부른다. 그러므로 이 삶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라. 나는 너희를 사랑하고, 새로운 회개의 삶으로 너희를 부른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기도하여라. 그리고 하느님이 없으면 너희는 먼지라는 것을 깨달아라. 그러므로, 너희의 생각과 마음을 하느님과 기도에로 돌려라. 그분의 사랑을 신뢰하여라.

기도하면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깨닫는 만큼 인간의 비천함과 한계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진정으로 마음을 다해 기도를 하면 우리 자신이 참으로 보잘것없는 존재이고,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기 2, 7)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기 전까지는 그저 먼지로 빚어진 흙덩어리에 불과합니다. 하느님께서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주셔야 사람이 생명체가 되고, 그 숨을 거두어가시면 몸은 있으나 생명과 영혼이 없는 죽은 시체가 되고 맙니다. 또 “저희의 햇수는 칠십 년 근력이 좋으면 팔십 년. 그 가운데 자랑거리라 해도 고생과 고통이며 어느새 지나쳐 버리니, 저희는 나는 듯 사라집니다.”(시편 90, 10)라는 성경 말씀에서처럼 우리의 생명은 대단히 유한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산다면, 우리는 비록 이 지상에서 유한한 인생을 산다 하더라도 이 지상에서부터 영원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하느님과 기도로 향해 있다면, 이 지상에서부터 천국의 삶을 앞당겨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임마누엘 하느님, 즉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그 임마누엘 하느님을 직접 체험한 사도 요한은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 16)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거두는 법이 없으십니다. 우리 모두가 그 사랑을 깨닫고 그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고 그분의 사랑을 신뢰해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하느님의 영 안에서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모두 부름받았다. 

성 목요일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14, 15-27 참조) 또한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그리고 보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루카 24, 46-49)
     오순절이 되어 제자들이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졌던 그 다락방에 모여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고 있을 때 이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영은 그들 마음 안에 있는 두려움을 몰아내시고, 용기와 지혜를 불어넣어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참된 구세주이심을 설교했고, 그 결과 그 날에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사람이 삼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사도 2장 참조)
     오순절에 열 두 사도들과 성모님에게 내리신 그 하느님의 영, 성령께서는 늘 교회 안에 사시면서 교회를 성화시키시고, 교회에 생명과 활기를 불어 넣어주십니다. 또 사도적 계승을 이어가고 있는 교황님과 주교님들의 안수가 그 특징인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께서는 모든 신자들에게 임하십니다. 그리고 사도들처럼 힘차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너희는 하느님의 영 안에서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모두 부름을 받았다.”고 말씀하심으로써 다시 한 번 이를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영 안에서, 그분의 힘으로써만 예수님의 참된 증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소중하고, 나는 너희를 거룩함과 영원한 생명에로 부른다. 그러므로 이 삶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라. 나는 너희를 사랑하고, 새로운 회개의 삶으로 너희를 부른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시는지 체험한 시편저자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신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당신 손의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시편 8, 5-7) 
     예수님께서는 그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하느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태 10, 29-31)
     하느님께서 이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인간은 성모님께도 역시 소중합니다. 성모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그 마음으로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시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을 닮아 거룩한 사람이 되고, 천국에서 당신과 더불어 예수님 안에서 영원히 살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지상에서의 우리의 삶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그에 대한 집착 때문에 죄를 짓고 영원한 생명을 놓치는 일이 없기를 바라십니다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다시금 하느님께로 돌리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즉,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해야 우리의 삶이 새로워지고, 회개해야 우리는 하느님의 생명을 다시금 새롭게 살 수 있습니다. 회개할 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2014년 4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꽃이 따스한 햇살에 자신을 열듯이,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너희에게 주고 계시는 은총에 너희 마음을 열어라.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에서 멀어져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와 사랑이 되어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내 아들 예수님 앞에서 너희 모두를 위해 전구하고 있으며, 헤아릴 수 없는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꽃이 따스한 햇살에 자신을 열듯이,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너희에게 주고 계시는 은총에 너희 마음을 열어라.  

지난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었습니다. 봄이 과연 올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자연의 이치에 따라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나무에서는 연한 녹색의 새싹들이 돋아 나오고, 꽃들이 피어나 우리 눈은 즐겁기만 합니다. 자연의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정하신 이치에 따라 순응한 결과입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꽃처럼 당신을 통해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에 우리 마음을 열라고 명하십니다.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하게 하느님의 은총을 감사하게 여기고 마음을 여는 사람만이 그분의 은총을 받고, 그 은총의 힘으로 영혼의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혼이 꽃을 피우고,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 예를 간단히 들어보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도 여전히 두려움과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열 한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을 때, 그들은 모든 두려움을 떨치고 확고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들로 변화되었습니다. 살기등등한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데 앞장 섰던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 선포 때문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도 바오로가 되었습니다. 그 뒤를 이은 수많은 순교자, 증거자, 동정 남녀 성인들이 모두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영혼의 거룩한 꽃을 피웠습니다. 그들 모두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하느님의 은총에 완전히 마음을 열었기 때문에 그 은총의 힘으로 거룩하게 변화되어 영혼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었습니다.
     구약의 시편에 따르면, 의인은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시편 1, 3)라고 했습니다. 나무가 시냇가에 심겨 그로부터 필요한 수분을 충분히 공급받아 열매를 내고 시들지 않는 것처럼 의인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하느님 은총의 덕분으로 모든 일에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절대로 그 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 자신을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시들지 않는 나무처럼 만들어야 합니다. 즉, 성모님을 통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에 우리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통해 우리에게 은총을 주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성모님께서 모든 하느님 은총의 중개자로 우리에게 제시되고 계십니다. 과거 성모님을 통해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지금은 그분을 통해 당신의 은총을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은총이 성모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고 있다면, 우리는 성모님께 바라고 의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모님은 우리 모두를 당신의 자녀라고 부르시는 우리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께 청하고 바라면,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지 않으실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은총의 선물이고, 우리는 모든 은총의 중개자이신 성모님을 통해 그 은총을 선물로 받습니다. 
     “모든 눈이 당신께 바라고 당신께서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제때에 주십니다. 당신의 손을 벌리시어 모든 생물을 호의로 배불리십니다.”(시편 145, 15-15 참조)라는 시편의 말씀처럼 하느님은 당신께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당신의 축복을 베풀어주십니다. 물론 여기서 모든 생물에게 호의 베푸시는 하느님의 태도가 중요하지만 모든 눈이 하느님께 바라는 태도 역시 중요합니다. 모든 눈이 하느님을 바란다는 것은 그 마음이 하느님께로 이미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꽃이 따스한 햇살에 자신을 열듯이,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너희에게 주고 계시는 은총에 너희 마음을 열어라.”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에서 멀어져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와 사랑이 되어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내 아들 예수님 앞에서 너희 모두를 위해 전구하고 있으며, 헤아릴 수 없는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에서 멀어져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에서 멀어져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와 사랑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고 사랑하라”고 하셨으면 될 것인데 왜 굳이 “기도와 사랑이 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에서 멀어져 있는 모든 이들과 우리가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때 상대방과는 거리를 두고 일정 정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것만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대방을 나 자신으로 여기고 그와 하나되어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를 사랑한다면, 24시간 우리의 마음은 그를 향한 기도와 사랑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또 상대방이 처해 있는 상황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똑같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우리가 바로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에서 멀어져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와 사랑 그 자체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모범을 우리에게 가장 잘 보여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고,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와 완전히 하나된 상태에서 성모님은 예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전구하고 계시며,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성모님처럼 다른 이들에게 행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에서 멀어져 있는 모든 이들에게 그렇게 해야 합니다.

   
 
 
2014년 3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다시 한 번, 초창기처럼 죄와 싸우기 시작하고 고해성사를 보며 거룩하게 살기로 결심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하느님의 사랑이 너희를 통해 세상에 흘러넘치고, 평화가 너희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할 것이며, 하느님의 축복이 너희를 가득 채울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내 아들 예수님 앞에서 너희 모두를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다시 한 번, 초창기처럼 죄와 싸우기 시작하고 고해성사를 보며 거룩하게 살기로 결심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초창기처럼’이라는 표현은 성모님께서 1981년 메주고리예에서 발현을 시작하실 당시의 첫 날들을 의미합니다. 지금도  메주고리예를 통해 많은 회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발현 초창기만큼 그렇게 강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발현 아주 초기에 메주고리예 본당 신자들은 3일간 단식하고 기도하자는 본당 주임 사제 요조 신부의 말을 듣고 실제로 단식하고 기도하면서 성모님의 메시지를 받아 들였고, 그 결과 오랫동안 불목하고 있던 이웃들과 눈물을 흘리며 본당 안에서 화해를 했습니다. 또한 그 당시 발현목격증인 가운데 가장 어려 열 살 밖에 되지 않는 야콥 촐로가 성당에 본당 신자들과 순례자들이 모여 있었을 때 성모님께서 묵주기도를 바치기를 원하신다고 발표하자, 사람들은 감격하여 모두 눈물을 흘리고, 곧 바로 요조 신부와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기도 했습니다. 이 모두 작은 예에 불과하지만 메주고리예 발현 초창기에 메주고리예 본당 신자들과 그곳을 찾아온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을 열고 성모님의 메시지를 받아 들였는지 잘 보여줍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은 다시금 우리를 당시 발현 맨 처음의 그 시간으로 우리 모두를 초대하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당신 발현 초창기에 온 마음을 열어 당신의 메시지를 받아 들이고 그를 실행에 옮긴 사람들처럼 그렇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다시 한 번, 초창기처럼 죄와 싸우기 시작하고, 고해성사를 보며 거룩하게 살기로 결심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창세기 3장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죄를 짓게 되면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 우리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하느님을 피하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고, 그분께서 주시는 생명을 충만하게 누리며 이웃들과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뒤에는 사탄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알고 있고, 어떻게 우리를 유혹해야 우리가 죄에 떨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굳건한 믿음을가지고 악마를 대적하십시오.”(1베드 5, 8-9a)          
     악마인 사탄과 대적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선 우리의 겸손입니다. 우리 자신이 약하기 그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필요한 것은 사탄이 우리를 죄로 이끌지 못하도록 우리 마음의 빗장을 잠그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비록 사탄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초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허락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마음과 머리 속에 우리를 죄로 인도하려고 하는 어떤 생각이나 유혹이 떠오르면 바로 그 순간 사탄이 활동한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40일 동안 광야에 단식과 기도를 하신 후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사탄의 모든 유혹을 물리치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사탄의 모든 유혹에 “아니다.”라고 과감하게 말해야 합니다.그 위에서 하느님의 힘이 함께 하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것을 믿고, 그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바로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와의 싸움에서 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해성사를 통해 영적으로 더욱더 무장됩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께서 당신의 용서로 우리 영혼을 완전히 씻어주시고, 당신 자비로 우리를 가득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고해성사는 사탄의 힘을 우리에게서 몰아내는 구마의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들어오시는 그 자리에 사탄이 계속 머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의 길이 아니라 거룩함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죄인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사탄이 아니라 하느님을 늘 선택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선택하는 사람만이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너희를 통해 세상에 흘러넘치고, 평화가 너희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할 것이며, 하느님의 축복이 너희를 가득 채울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내 아들 예수님 앞에서 너희 모두를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인도 캘커타의 성녀 마더 데레사는 가톨릭 신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세상 사람들에게도 대단한 추앙을 받았습니다. 왜소한 체구의 한 가톨릭 수녀가 세상을 울렸습니다. 사람들은 마더 데레사 수녀를 통해 가장 버림받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전해지는 것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자신을 하느님 손에 쥐어진 몽당 연필이라고 칭했습니다. 연필은 제 스스로 무엇을 쓰지 못하고 누군가가 손에 쥐고 쓰기 시작할 때 그 빛을 발합니다. 마더 데레사처럼 우리는 모두 하느님 손에 쥐어진 작은 연필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당신 사랑의 드라마를 쓰고자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라고 응답했던 이사야 예언자처럼 우리도 “하느님,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당신 사랑의 전달자로 세상에 보내주십시오.”라고 응답합시다. (이사 6, 8 참조)          
     죄를 피하고 고해성사를 보고 거룩하게 살면서 하느님의 사랑의 전달자가 되면, 하느님은 우리에게 평화와 축복을 주십시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상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상은 세상의 그 누구도 줄 수 없고,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하느님의 평화, 그분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성모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어머니로서 우리를 돌봐주시고, 선생님으로서 하느님과 그분이 주시는 생명, 평화, 사랑 그리고 구원의 길로 가도록 우리를 가르치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그와 더불어 당신의 아들 예수님 앞에서 우리 모두를 위해 전구해주십니다. 이처럼 마음 든든한 성모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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