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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내 아들 예수님을 너희에게 모셔오고 있으며, 그분을 품에 안고 그분의 평화와 천국에 대한 열망을 너희에게 주고 있다. 나는 너희와 함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고, 평화가 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나는 어머니로서 평화의 복을 누리도록 너희 모두를 축복해 주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내 아들 예수님을 너희에게 모셔오고 있으며, 그분을 품에 안고 그분의 평화와 천국에 대한 열망을 너희에게 주고 있다.
예수님의 성탄절이 되어도 세상은 예수님보다는 싼타 클로스를, 성탄 미사 참례보다는 선물 준비와 카드 보내기를 더 강조합니다. 세상은 성탄절을 인간적으로 즐기는 근사한 휴가 시즌으로 만들고, 교묘하게 우리에게서 예수님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우리의 구세주로 태어나시는 예수님이신데 정작 성탄절에서 그분의 모습을 지워버리려고 합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고, 예수님 없이 성탄절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오늘도 역시 나는 내 아들 예수님을 너희에게 모셔오고 있다”고 말씀하심으로써 너무도 단순하지만 분명한 사실, 즉 성탄절에 싼타 클로스가 아니라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다시금 상기시켜 주십니다. 성탄절에 우리의 눈은 오직 성모님을 통해 이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에게만 고정되어야 합니다.
나는 너희와 함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고, 평화가 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나는 어머니로서 평화의 복을 누리도록 너희 모두를 축복해 주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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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십니다. 성모님께서도 당신 자신을 위해가 아니라 이 세상과 우리 인류를 위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모셔오십니다. 성모님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모시는 것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 예수님을 모셔서는 안 되고,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심으로써 그분과 같은 사람으로 변화되어 다른 이들에게도 우리가 예수님을 모셔다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오셨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의 그 큰 뜻을 알아 듣고, 그 구원 사업에 함께 동참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나는 너희와 함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고, 평화가 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길을 제시하십니다. 모든 가정, 공동체, 이웃, 교회 그리고 온 세상의 평화를 위해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고, 우리 자신이 가는 곳마다 평화의 꽃을 피워야 하겠습니다.
2015년 11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너희 모두를 부르고 있다. 내 지향들을 위해 기도하여라. 평화가 위험에 처해 있다. 어린 자녀들아, 그러니 기도하고, 사탄이 온갖 방법으로 공격하고 유혹하고 있는 이 불안한 세상에서 평화와 희망을 전해 주는 사람들이 되어라. 어린 자녀들아, 기도 중에 굳건해지고 믿음 속에서 용기를 내어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내 아들 예수님 앞에서 너희 모두를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너희 모두를 부르고 있다. 내 지향들을 위해 기도하여라. 평화가 위험에 처해 있다.
1981년 6월 26일 메주고리예 발현 3일째 되던 날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첫 번째 발현지인 포드브르도(발현산)에서 여섯 명의 아이들에게 나타나신 후, 산을 내려 오던 발현목격증인 마리야 파블로비치에게 다시 나타나시어 말씀하셨습니다. “평화, 평화, 오직 평화만을!” 그때 마리야는 성모님 뒤에 있는 십자가를 보았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며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사람들 사이에 평화가 있어야 한다.”라고 두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사람들 사이에 평화가 있어야 한다.”는 이 메시지가 바로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의 중심 주제이고, 이것이 바로 성모님 발현의 이유입니다.
34년 전 성모님께서는 당신을 평화의 모후라고 소개하시면서 메주고리예 발현을 시작하셨고, 지금도 매일 발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매월 25일에는 발현목격증인 마리야를 통해서, 매월 2일에는 발현목격증인 미리야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계속 메시지를 주고 계십니다. 왜 성모님은 아직도 매일 같이 메주고리예에서 발현하시고, 계속해서 메시지를 주고 계시는 것입니까? 여전히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사람들 사이에 평화가 실현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평화가 실현되고 있지 않은 것입니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여러 전쟁들이 그 이유입니까? 혹은 얼마 전 전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프랑스 파리 테러를 자행한 IS(이슬람 국가) 때문에 그런 것입니까? 물론 외적으로 볼 때 그런 것들이 우리 인류가 평화를 실현하지 못하게 만들고, 평화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요인들입니다.
그러나 평화가 위험에 처하고, 우리 인류가 여전히 평화를 실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인류가 하느님을 잊고, 그분을 저버리고, 그분을 주님으로 섬기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하느님께로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평화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평화 그 자체이시고, 그 원천이신 하느님께로 완전히 마음을 돌려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과 뜻에 따라 삶을 철저하게 개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성모님께서는 우리 인류에게 기도하고, 굳건하게 믿고, 회개하며, 보속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그러니 기도하고, 사탄이 온갖 방법으로 공격하고 유혹하고 있는 이 불안한 세상에서 평화와 희망을 전해 주는 사람들이 되어라.
우리 인류가 평화를 실현하지 못하게 하고, 평화를 위험에 빠뜨리는 만드는 또 다른 영적 요인은 바로 사탄의 존재입니다. 사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인류를 가장 강력하게 공격하며 유혹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하느님 아닌 것들, 예컨대 돈, 섹스, 힘과 명예 등을 하느님처럼 섬기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관심을 거두고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것들에 탐닉하도록 각종 대중 매체의 영향에 빠져들게 하여 기도보다는 그런 쪽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시간을 쓰게 만듭니다. 또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에 미움과 탐욕, 시기와 분노, 의심과 절망의 씨앗을 뿌려 개인을 불안으로 몰아넣고, 가정 불화와 사회 불안을 조성하고, 국가간 전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 어느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비율의 이혼, 낙태, 안락사, 그리고 테러와 전쟁 뒤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사탄이 그 실제 배후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러한 사탄의 공격과 유혹으로 불안에 빠져 있는 이 세상 안에서 우리가 평화와 희망을 전해주는 사람들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강력한 초자연적 힘을 가진 사탄에 맞서 우리가 평화와 희망의 사도가 되라고 요청하십니다. 과연 우리에게 그럴 힘이 있으며, 얼마나 그 효과가 있을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성모님, 수많은 천사들과 성인들, 그리고 열심한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이 늘 우리와 영적으로 함께 하기에 우리는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의 영적 원군들과 기도로 함께 하면서 우리가 먼저 평화와 희망을 구하고 살며 전파한다면, 그 힘은 널리 퍼져나갈 것이고, 사탄의 공격과 유혹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기도 중에 굳건해지고, 믿음 속에서 용기를 내어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내 아들 예수님 앞에서 너희 모두를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만을 바라보게 하고, 그분의 힘에만 의지하게 만듭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키워줍니다. 그렇기에 기도하는 사람은 그 어떠한 상황에 놓여져도 두려워하거나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고, 그 좋으신 하느님께서 자기를 구해주실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 제자들의 배로 오고 계셨을 때, 그를 본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자신도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걸어오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물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센 바람을 보자 그만 무서운 생각이 들어 물속으로 빠졌고, 예수님께 살려달라고 청했습니다. 예수님은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왜 의심을 품었느냐?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14, 22-33 참조)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본 베드로는 예수님이 자기에게 걸어오라고 말씀하시면, 자기도 물 위를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갈 때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거센 바람이 불었을 때, 그는 예수님이 아니라 거센 바람을 보고 무서운 생각을 가지게 되고 용기를 잃었습니다. 바로 물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말씀을 드리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기도하고, 그 말씀에 따랐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갈 때, 그에게는 아무런 두려움이나 걱정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앞에 계심을 잊고 그분이 아니라 거센 바람을 보았을 때 그는 믿음과 용기를 잃고 말았습니다.
성모님 말씀대로 우리는 기도 중에 굳건해지고, 믿음 속에서 용기를 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한 존재이기에 때로는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상황에 직면하면 베드로처럼 믿음과 용기를 잃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모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당신의 아들 예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전구하고 계신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 33)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깁시다.
2015년 10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너희 모두를 위해, 특별히 내 부름에 대해 완고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너희는 은총의 시기를 살고 있지만 하느님께서 나의 현존을 통해 너희에게 주시는 선물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어린 자녀들아, 오늘도 역시 거룩하게 살기로 결심하고 이 시대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아라. 그러면 너희는 거룩함이 실제로 너희 모두를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기쁨이기에, 그분 눈에 너희는 유일하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니 사랑 안에서 기뻐하여라. 평화, 기도 그리고 사랑을 증거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너희 모두를 위해, 특별히 내 부름에 대해 완고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너희는 은총의 시기를 살고 있지만 하느님께서 나의 현존을 통해 너희에게 주시는 선물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인류를 대표하여 그 자리에 있었던 사도 요한을 성모님의 아들로 주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성모님을 만민의 어머니로 삼으셨습니다. 그러기에 그 사실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성모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성모님은 그 자녀들을 사랑하시고, 그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은 “특별히 내 부름에 대해 완고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참 어머니이시기에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심지어 당신의 부름을 들었으나 그에 응답하지 않는 자녀들, 그 부름조차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당신의 발현을 여러 가지 이유로 받아 들이지 않고, 심지어는 그를 박해하는 자녀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십니다. 당신과 뜻이 달라도 포기하지 않고, 그 구원을 위해 마음을 열고 당신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시면서 기도하시는 성모님의 한없는 모성애에 감사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그 성모님을 본받아, 그분과 함께 아직도 성모님의 부름에 완고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다짐을 당연히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은총은 우리를 구원의 길, 예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성모님께서 여전히 우리 가운데 찾아 오시고, 당신의 메시지로 우리를 가르쳐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성모님을 통해 우리를 예수님께로 이끄시며, 우리 모두에게 평화와 구원을 주고자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은총으로 알아 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에 성모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의 표징 그 자체인 성모님과 그분의 메주고리예 발현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다시금 깨달아야 합니다. 당신을 거부하셨던 예루살렘을 보고 다음과 같이 한탄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루카 13, 34-35)
어린 자녀들아, 오늘도 역시 거룩하게 살기로 결심하고 이 시대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아라. 그러면 너희는 거룩함이 실제로 너희 모두를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거룩하게 사는 것은 하느님을 닮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 44)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같이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이 말씀은 하느님의 명령입니다. 명령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기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명령하셨으니, 우리는 반드시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우리보다 배움에 앞선 선생이 필요합니다. 그렇듯이 우리가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보다 앞서 거룩하게 산 사람들, 즉 성인들의 모범을 잘 살펴봄으로써 그들에게서 구체적으로 거룩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특별히 이 시대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대의 성인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수많은 성인들이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성녀 파우스티나, 성 막시밀리안 콜베, 오상의 성 비오 성인, 성 요한 바오로 2세 같은 분들이 떠오릅니다. 특별히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경우는 1978년 교황직에 오르시어 2005년에 돌아가시고, 2014년에 성인품에 올려지셨습니다. 우리와 동시대를 사셨던 성인이십니다. 그러기에 이와 같은 성인이 우리 동시대에서 나오셨다면, 우리 역시 거룩하게 산다는 것을 우리 자신과 전혀 무관한 저 먼 옛날 얘기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안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와 또 다른 우리 동시대의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아 거룩하게 살 수 있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기쁨이기에, 그분 눈에 너희는 유일하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니 사랑 안에서 기뻐하여라. 평화, 기도 그리고 사랑을 증거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부모님에게 가장 큰 기쁨은 무엇입니까? 그 자녀들입니다. 그렇듯이 하느님께 가장 큰 기쁨은 그분의 자녀들인 우리들입니다. 비록 우리가 그분의 피조물이지만, 그분 눈에 우리는 유일하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독보적이고 유일하며 가장 중요하고 사랑하는 자녀로 여기십니다. 하느님은 결코 우리에게서 눈을 떼시는 일이 없으시고, 우리를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시며, 우리를 모든 위험과 죽음에서 구해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기에 이미 오랜 전에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분, 이스라엘아, 너를 빚어 만드신 분,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네가 물 한가운데를 지난다 해도 나 너와 함께 있고 강을 지난다 해도 너를 덮치지 않게 하리라. 네가 불 한가운데를 걷는다 해도 너는 타지 않고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하리라. 나는 주 너의 하느님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너의 구원자이다. 내가 이집트를 너의 몸값으로 내놓고 에티오피아와 스바를 너 대신 내놓는다. 네가 나의 눈에 값지고 소중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가 너 대신 다른 사람들을 내놓고 네 생명 대신 민족들을 내놓는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해 뜨는 곳에서 너의 후손들을 데려오고 해 지는 곳에서 너를 모아 오리라. 내가 북녘에 이르리라. ‘내놓아라.’ 남녘에도 이르리라. ‘잡아 두지 마라. 나의 아들들을 먼 곳에서, 나의 딸들을 땅 끝에서 데려오너라. 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창조한 이들, 내가 빚어 만든 이들을 모두 데려오너라.’”(이사 43, 1-7)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기쁨이고, 그분 눈에 유일하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이기에,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창조주, 구원자이신 하느님께로부터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도 이를 깊이 체험하셨던 사도 바오로의 다음 말씀이 가슴 깊이 다가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와 관련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 31-39)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바로 우리의 창조주요 구원자이시며 우리의 참된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늘 감사 드리고, 그분께서 베푸시는 사랑을 깊이 깨달으며, 그 사랑 안에서 기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모님 말씀대로 평화, 기도 그리고 사랑을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2015년 9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확고한 신앙으로 너희의 마음을 채워 주시도록 성령께 기도하고 있다. 기도와 신앙은 사랑과 기쁨으로 너희의 마음을 가득 채워 줄 것이고, 너희는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표징이 될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마음으로 기도하도록 서로 격려해 주어라. 그러면 기도가 너희의 삶을 충만하게 해 줄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매일같이, 모든 것에 앞서, 너희는 하느님을 경배하면서 그분을 섬기는 증인이 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너희 이웃에게 증인이 될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 모두를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확고한 신앙으로 너희의 마음을 채워 주시도록 성령께 기도하고 있다. 기도와 신앙은 사랑과 기쁨으로 너희의 마음을 가득 채워 줄 것이고, 너희는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표징이 될 것이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매 순간마다 자기 자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참되고 영적인 어머니이신 성모님 역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인 우리에게 지금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잘 알고 계십니다. 성모님 보시기에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확고한 신앙입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성령께서 확고한 신앙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 주시도록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왜 성모님께서는 그 무엇보다도 확고한 신앙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먼저, 너무도 쉽고 간단한 답이지만, 그만큼 우리에게 확고한 신앙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확고한 신앙을 지니고 있다면 굳이 성령께 확고한 신앙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 주시도록 기도하실 필요가 없으실 겁니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더욱 확고한 신앙을 지녀야 할 주변의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점점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그분을 저버리도록 우리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확고한 신앙이 필요합니다.
성모님은 확고한 신앙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주시도록 성령께 기도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성령께 무엇을 청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도 성모님처럼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구원을 위해 가장 필요한 확고한 신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마태 16, 15-17)
이렇듯이 근본적으로 신앙은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기도 중에 사도들처럼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 5) 하고 간절히 청해야 합니다. 비록 신앙이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지만, 신앙은 동시에 우리가 기도할 때 더해집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신앙은 절대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기도의 열매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와 신앙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기도는 신앙을 더욱 증진시키고,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 많은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와 신앙은 우리를 점점 더 하느님 가까이 데려다 주기 때문에 또 다른 성령의 은사인 사랑과 기쁨이 우리에게 주어져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마음에 가득 찬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우리의 모습을 통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기도와 신앙으로 단련되어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 찬 마음이라면, 우리의 얼굴과 눈, 그리고 우리의 전체 모습은 맑고 빛이 날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마태 5, 14-15)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 거룩한 맑음과 빛남은 주변에 저절로 좋은 영향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우리를 통해 하느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마음으로 기도하도록 서로 격려해 주어라. 그러면 기도가 너희의 삶을 충만하게 해 줄 것이다.
사제, 수도자, 평신도 모두 기도해야 하고, 온 교회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신앙인,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숨쉬기를 멈춘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의 영적 호흡인 기도를 통해 우리 안에, 교회 안에 끊임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우리 각자는 기도하고, 서로 서로 기도하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사제는 직접 기도하는 모범을 보이면서 신자들에게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함께 기도하자고 권면하며 신자들과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메주고리예에서처럼 사제가 미사 전에 직접 묵주기도를 인도하고, 성시간을 이끌면서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수도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수도자는 이미 수도자이기를 포기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수도자들을 기도의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도자는 그 누구보다도 기도 그 자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말과 모범으로 동료 수도자들과 신자들에게 함께 기도하자고 권면해야 합니다.
기도는 사제와 수도자의 전유물이 아니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입니다. 기도는 입술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으로 기도하고, 서로 서로 기도하자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부부, 부모와 자식, 본당 신자들, 같은 공동체와 단체원들, 친구와 이웃 등 그 어느 관계에서든 함께 기도하고, 서로 마음으로 기도하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오직 마음으로 기도하는 곳에서만 생명이 넘쳐나고, 삶이 충만해집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매일같이, 모든 것에 앞서, 너희는 하느님을 경배하면서 그분을 섬기는 증인이 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너희 이웃에게 증인이 될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 모두를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어떤 상황에 놓이든지 상관없이 늘 한결같아야 합니다. 그 어떤 아픔이나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을 찬미하면서 그분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치 구약의 욥 성인처럼 말입니다. 때로는 영혼의 어두운 밤이 찾아와 우리의 마음이 건조해져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 있을지라도 그 순간마저도 하느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진짜로 매일같이 하느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을 섬기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리 삶에서 가장 앞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섬김을 우리 삶의 최우선에 두지 않을 때, 우리는 금방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그분을 저버리기 쉽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외면하게 되고, 자신만을 챙기려고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경배하며 섬기면서 그 사랑의 마음을 우리의 형제자매들과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요한 4, 20-21)
2015년 8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기도가 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기도가 너희에게 하느님과의 만남을 위한 날개가 되기를 바란다. 세상은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그분을 버렸기 때문에 시련의 때를 겪고 있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찾고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를 내 아들에게로 인도하고 있지만, 너희는 하느님 자녀로서 자유롭게 '예'라고 응답해야 한다. 어린 자녀들아, 나는 너희를 위해 전구하고 있고 무한한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기도가 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기도가 너희에게 하느님과의 만남을 위한 날개가 되기를 바란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기도가 되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 자신이 기도가 될 수 있을까요? 딱 한 가지 길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적당히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기쁨이 될 때까지 마음으로 많은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오래 달리기를 하고 나면 멈추려고 해도 저절로 계속 다리가 앞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진정으로 마음을 다해 기도를 열심히 오래 많이 하다 보면, 기도는 우리 자신의 한 부분이 되어 자기도 모르게 기도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계속해서 기도하고 싶은 열망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 외에 더 기쁜 것이 없을 정도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그때 우리 자신이 기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수단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은 하느님과 사랑의 관계를 지속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땅에 발을 두고 있는 우리는 늘 지상의 것들에 눈이 가고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에 영적으로 이 지상을 떠나 천상 아버지 하느님과 만나기 위해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상의 날개를 가져야 합니다. 육신은 지상에 있으되 마음과 영혼은 언제나 천상 아버지께로 날아갈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기도가 우리에게 하느님과의 만남을 위한 날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그분을 저버렸기 때문에 시련의 때를 겪고 있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찾고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라.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이끌어낸 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 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신명 6, 4-9)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기적적으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 들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라고 외쳤을 때, 그들은 그 하느님은 아주 보잘것없는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해방시켜주시기 위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기적과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느님, 자신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하느님이라는 것을 너무도 분명하게 인식했고, 틀림없이 마음으로 오직 그분을 잊지 않고 그분만을 섬기기로 다짐했을 것입니다. 모세는 그 하느님을 사랑하고 어떠한 경우에서도 이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심지어 눈에 보이는 표징까지 만들어서 그를 통해 하느님 사랑에 대한 명령을 끊임없이 기억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계명과 법규와 규정들을 지키지 않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너희가 배불리 먹으며 좋은 집들을 짓고 살게 될 때, 또 너희 소 떼와 양 떼가 불어나고 너희에게 은과 금이 많이 생기며, 너희가 가진 모든 것이 불어날 때, 너희 마음이 교만해져,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분은 불 뱀과 전갈이 있는 크고 무서운 광야, 물 없이 메마른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시고, 너희를 위하여 차돌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신 분이시다. 또 그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이 몰랐던 만나를 너희가 먹게 해 주신 분이시다. 그것은 너희를 낮추고 시험하셔서 뒷날에 너희가 잘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너희는 마음속으로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이 재산을 마련하였다.’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그분은 오늘 이처럼,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계약을 이루시려고, 너희가 재산을 모으도록 너희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시다. 만일 너희가 정녕 주 너희 하느님을 잊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 그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경배한다면, 내가 오늘 분명히 경고하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하고야 말 것이다.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처럼 너희도 멸망할 것이다.”(신명 8, 11-20)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가자마자 자신들을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해방시켜주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신 그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많은 시련을 겪고, 마침내는 모세가 예언했던 대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이 바빌론 왕에게 함락되고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바빌론에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게다가 왕을 비롯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가 538년까지 50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 유배 기간 중 자신들이 바빌론에 나라를 빼앗기고, 자신들이 유배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자신들이 지은 죄,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따르지 않고 우상들을 섬긴 죄,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그분을 저버린 죄의 결과라는 것을 철저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뒤였습니다.
그러면 그 후로 이천육백 년이 흐른 오늘날 세상은 어떻습니까?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처럼 오늘날의 세상 역시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그분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불을 보듯이 뻔합니다. 현재 세상이 겪는 시련들은 앞으로 올 더 큰 시련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인간의 죄로 가득했던 노아 시대의 세상을 벌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대홍수를 보내셨던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저버리고 동성애 쾌락에 빠져 타락했던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기 위해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떨어졌던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 어느 때보다도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그분을 이처럼 저버렸던 때는 인류 역사상 없었습니다. 그런 세상에 어떤 벌이 떨어질지 너무도 자명합니다. 하느님은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이시지만 동시에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인류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 전에 인류가 스스로 벌과 멸망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금 하느님을 알아드리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의 뜻대로 살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즉 회개해야 합니다. 그 길만이 인류가 모든 시련, 벌, 그리고 멸망에서 구원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노아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대홍수로 죽었지만 오직 노아와 그의 가족, 통틀어 여덟 명만이 살아 남았습니다. 오직 그들만이 하느님을 잊지 않고, 그분의 뜻대로 의롭게 살고, 그분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인류가 끝까지 회개하지 않을 때 어떤 큰 시련을 겪게 될 지 알고 계시는 성모님께서는 그 모든 시련과 어려움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찾고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를 내 아들에게로 인도하고 있지만, 너희는 하느님 자녀로서 자유롭게 '예'라고 응답해야 한다. 어린 자녀들아, 나는 너희를 위해 전구하고 있고 무한한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하느님은 만물이 창조주이시고,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구세주로 보내기 위해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나자렛 처녀 마리아의 동의를 구하셨습니다. 당신의 뜻과 계획에 무조건 복종하도록 강요하거나 힘으로 밀어 부치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피조물이지만, 동시에 당신의 지극히 사랑하는 딸이기에 마리아가 자유롭게 응답할 수 있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이렇게 피조물인 자신의 자유를 존중하시는 놀라운 하느님을 체험하셨던 성모님께서는 이번 달 메시지에서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를 내 아드님께로 인도하고 있지만, 너희는 하느님 자녀로서 자유롭게 ‘예’라고 응답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 자유 의지에 대한 당신의 존중을 표현하십니다.
또한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라고 부르심으로써 우리가 어디에 속해 있는 사람인지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초대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분께 속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 성모님과 우리에게 하시듯이 우리도 다른 이들의 자유 의지를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사랑은 절대로 강요하거나 힘으로 상대방을 밀어 부쳐 그 자유 의지를 꺾지 않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그러하시고, 늘 우리를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라고 부르시고 우리를 무한히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성모님께서 그러하십니다. 우리를 그처럼 사랑하시고, 우리 자유 의지를 그처럼 존중해 주시는데,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려고 하시는 성모님의 뜻에 우리가 어떻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저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당신의 아들이시며 저의 구세주이신 예수님께로 저를 늘 인도해주십시오. 어머니, 저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Totus Tuus, 아멘.”
2015년 7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기쁘게 너희와 함께 있고, 내가 너희에 대해 지니고 있는 그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라고 어린 자녀들인 너희 모두를 부른다. 어린 자녀들아, 내 사랑은 악보다 강하다. 따라서 하느님 안에서 내 기쁨을 느낄 수 있기 위해 그분께 더욱더 가까이 다가가거라.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 없이 너희에게 미래가 있을 수 없고, 희망도 구원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악을 멀리하고 선을 택하여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와 함께 너희의 모든 필요를 위해 하느님 앞에서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기쁘게 너희와 함께 있고, 내가 너희에 대해 지니고 있는 그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라고 어린 자녀들인 너희 모두를 부른다.
사랑하지 않거나 미워하는 사람과는 함께 있고 싶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는 늘 함께 있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미움은 관계를 갈라놓고, 사랑은 서로를 하나가 되게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와 하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낳으신 하느님의 어머니,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어머니, 성령의 정배이신 성모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의 표시로 기쁘게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세상의 그 누구와 함께 한다고 한들 그 존엄함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성모님 눈에 우리는 어린 자녀들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사랑의 눈으로 당신의 어린 자녀들인 우리를 바라다 보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죄 중에 있을지라도, 아니 대죄를 지어 당신과 하느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때조차도 자비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우리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않고, 오히려 안타까워하시며 회개의 길로 부르십니다.
우리 육신의 어머니들이 자기 자녀들이 모두 늘 안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이 지상에서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거룩하게 살아 천국에서 당신과 함께 영원히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 어느 누구도, 단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예수님과 그분의 나라인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우리에 대한 성모님 사랑의 궁극적인 지향점입니다.
그러나 성모님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헤아릴 수 없는 것인지는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 대해 지니고 있는 그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기도하고, 기도하며, 또 기도하라고 어린 자녀들은 너희 모두를 부른다.”
어린 자녀들아, 내 사랑은 악보다 강하다. 따라서 하느님 안에서 내 기쁨을 느낄 수 있기 위해 그분께 더욱더 가까이 다가가거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맨 마지막에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을 죄로 인도하려고 하는 사탄의 유혹과 그의 악이 늘 우리를 에워싸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도 “어린 자녀들아, 내 사랑은 악보다 강하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악에 대해 언급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사랑이 악보다 강하다고 하심으로써 성모님은 사랑으로 당신의 어린 자녀들인 우리를 악으로부터 지켜주시는 분이시며, 우리가 어머니의 사랑에 의탁하면 악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성모님의 기쁨은 일차적으로 하느님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모님은 기쁨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위해 모든 것을 봉헌하고, 그분의 일을 위해 헌신하기 때문에 기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모님은 또한 하느님의 명을 받아 당신의 어린 자녀들인 우리를 악에서 지켜주시고,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부어주시면서 어머니로서의 모성적 기쁨을 누리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성모님의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더욱 더 가까이 다가 가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 없이 너희에게 미래가 있을 수 없고, 희망도 구원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악을 멀리하고 선을 택하여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와 함께 너희의 모든 필요를 위해 하느님 앞에서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지난 달 메시지에서 “하느님께서 너희의 미래가 되시기를 빈다.”고 말씀하신 성모님께서는 이번 달 메시지에서 “하느님 없이, 너희에게 미래가 있을 수 없고, 희망도 구원도 있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의 미래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그 어떤 미래도, 희망도, 구원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에게 그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참으로 단순한 말이지만 너무도 분명한 진리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미래와 구원에 대해 깊은 염려를 가지고 이와 같은 경고를 주신 것입니다.
악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고,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하게 살면서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수는 없습니다. 오직 선하게 살 때만 하느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미래, 희망, 구원을 주실 수 있는 하느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항상 선을 택해야 합니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우리에게 미래, 희망, 구원이 있는지 결정됩니다. 우리가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성모님께 전구를 청합시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와 함께 너희의 모든 필요를 위해 하느님 앞에서 전구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성모님께 “어머니,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하느님 밖에 없습니다. 제가 늘 하느님만을 그리워하며, 악을 멀리하고 선을 택할 수 있도록 계속 전구해 주십시오.”라고 말씀 드리도록 합시다.
2015년 6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고 너희를 회개로 부를 수 있는 은총을 나에게 주신다.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께서 너희의 미래가 되시기를 빈다. 그리고 전쟁과 평화의 부족, 슬픔이 아니라 기쁨과 평화가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 없이 너희는 결코 평화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너희의 마음이 기쁘게 노래할 수 있도록 하느님과 기도로 돌아가거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고 너희를 회개로 부를 수 있는 은총을 나에게 주신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회개로 부를 수 있는 것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은총을 주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분이시지만 “오늘도 역시”라는 표현을 쓰심으로써, 성모님은 그 은총이 매일 매일 당신에게 새롭게 주어진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하느님 은총의 힘을 강하게 느끼시고, 그 은총의 힘이 어떤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잘 아시면서 모든 공을 하느님과 그분의 은총에 돌려드리려고 하시는 성모님의 겸손이 깊이 느껴집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 45)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지극히 높으신 우리 천상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의로움과 상관없이 우리 각자에게 매일 은총을 내려주고 계십니다. 문제는 매일 매일 주어지는 은총을 우리가 얼마나 잘 인식하고, 감사하게 받아 들이며, 선하게 잘 사용하고 있는지 여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잠을 자고 있는 사이에도 우리에게 은총을 내려 주시고, 우리가 잠에서 깨어 하루는 시작하는 아침에도, 활동하는 낮에도,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에도 우리에게 한없는 은총을 내려주고 계시는데, 우리는 이를 얼마나 인식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인식된 은총에 대해 얼마나 깊이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성모님께서 당신에게 주어진 은총을 우리를 사랑하시고, 회개하도록 우리를 부르시는데 쓰시는 것처럼 우리가 받는 은총을 선하고 거룩한 일에 잘 쓰고 있는지 깊이 성찰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같이 다음 시편과 같은 기도를 바치며 모든 은총과 도움 그리고 힘의 원천은 오직 하느님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산들을 향하여 내 눈을 드네.
내 도움은 어디서 오리오?
내 도움은 주님에게서 오리니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네 발이 비틀거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지키시는 그분께서는 졸지도 않으신다.
보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께서는
졸지도 않으시고 잠들지도 않으신다.
주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주님은 너의 그늘
네 오른쪽에 계시다.
낮에는 해도, 밤에는 달도 너를 해치지 않으리라.
주님께서 모든 악에서 너를 지키시고
네 생명을 지키신다.
나거나 들거나 주님께서 너를 지키신다,
이제부터 영원까지.”(시편 121)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께서 너희의 미래가 되시기를 빈다. 그리고 전쟁과 평화의 부족, 슬픔이 아니라 기쁨과 평화가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 없이 너희는 결코 평화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너희의 마음이 기쁘게 노래할 수 있도록 하느님과 기도로 돌아가거라.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께서 너희의 미래가 되시기를 빈다.”고 하신 성모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카 12, 16-21)
이 비유에서 어리석은 부자의 미래는 자신의 모든 곡식과 재물을 위해 더 큰 곳간을 짓고, 그저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미래는 장미빛 청사진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가는 날 그 모든 것이 한방에 날아간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미래가 되시지 않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날 점점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면서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걱정이 높아가고, 사람들은 저마다 그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생명의 참 주인이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영적인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끊임없이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 하느님 없는 미래를 건설하려고 하는 사람들 마음에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이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마태 6, 31-34)
우리는 텔레비전과 신문 그리고 인터넷 등의 통신 매체를 통해 수없이 쏟아지는 세상의 소식들을 날마다 수시로 접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이야기들은 아주 소수이거나 거의 없을 정도이고, 많은 경우 전쟁과 범죄, 사건과 사고에 관한 소식 등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합니다. 더군다나 잔인하고 참혹한 영상을 통해 그와 같은 뉴스들을 접하다 보면 은연중에 그런 것들의 잔상이 우리 머리 속에 새겨지고, 우리의 마음을 슬프고 어둡게 만듭니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그런 뉴스들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에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그것들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 마음에 참된 기쁨과 평화를 주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시는 통로는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늘 그분의 현존을 의식하면서 기도한다면, 우리는 참된 기쁨과 평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전쟁과 평화의 부족, 슬픔이 아니라 기쁨과 평화가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 없이 너희는 결코 평화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너희의 마음이 기쁘게 노래할 수 있도록 하느님과 기도로 돌아가거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성모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처럼 무한하고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피조물 가운데 가장 하느님을 닮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든든한 원군이신 성모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느끼면서 성모님의 부름에 응답하여 그분 메시지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2015년 5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 모두를 기쁘게 부르고 있다. 기도하고 기도의 힘을 믿어라. 어린 자녀들아, 너희의 마음을 열어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분의 사랑으로 너희를 채워 주실 것이고, 너희는 다른 이들에게 기쁨이 될 것이다. 너희의 증거는 힘이 있을 것이고, 너희가 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의 다정함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가 하느님을 첫자리에 둘 때까지 너희와 너희의 회개를 위해 기도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 모두를 기쁘게 부르고 있다. 기도하고 기도의 힘을 믿어라.
어느 날 안나라는 처녀가 마더 데레사의 사랑의 선교회의 자원봉사자가 되기 위해 영국에서 인도캘커타까지 날아왔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그녀를 받아들였고, 그녀는 자원봉사자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안나에게 중병이 찾아와 육체노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안나에게 영국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습니다. 안나는 몹시 실망했고, 사랑의 선교회에 머물면서 계속 일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마더 데레사는 안나에게 이렇게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안나, 너의 마음을 잘 안다. 그러나 지금 너는 네 몸으로 육체적인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 대신 너는 집으로 돌아가서 이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어. 바로 우리 사랑의 선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야.”
안나는 자기 고국 영국으로 돌아가 열심히 기도했고, 특별히 마더 데레사의 사랑의 선교회를 위해 많은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도 정부 당국은 사랑의 선교회가 고아들을 불법으로 입양시켰다는 이유로 사랑의 선교회와 마더 데레사를 곤경에 빠뜨렸습니다. 그러자 마더 데레사는 직접 안나에게 국제 전화를 걸어 말했습니다. “안나,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너의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로 하늘을 감동시켜라.”
마더 데레사의 이 요청에 따라 안나는 정말 열심히 기도했고, 사랑의 선교회는 무고한 누명을 벗고 그 곤경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기도하는 분이었고, 기도의 힘을 믿었던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안나에게 기도로서 사랑의 선교회를 돕고, 기도의 힘을 믿으면서 기도하도록 요청하셨습니다.
영화 ‘마더 데레사’에서 마더 데레사가 안나에게 “기도로 하늘을 감동시켜라.”라고 말할 때 영어로 “Storm the Heaven!”이라고 말합니다. Storm 이라는 영어 동사는 ‘갑자기 급습하다, 들이 닥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직역하자면, “갑자기 하늘을 급습하다” 입니다. 의역을 하면 ‘있는 힘을 다해, 모든 것을 다해 하느님께 온전히 매달리라는 것’입니다. 즉 하늘이 감동할 만큼 열심히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루카 복음 11장은 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간청하라는 교훈을 주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 11, 5-13)
기도하고, 기도의 힘을 믿는 사람은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들 가운데 살아계시고,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기도하고, 기도의 힘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자신을 한없이 낮출 줄 아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께서 집을 지어 주지 않으시면 그 짓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리라. 주님께서 성읍을 지켜 주지 않으시면 그 지키는 이의 파수가 헛되리라. 일찍 일어남도 늦게 자리에 듦도 고난의 빵을 먹음도 너희에게 헛되리라.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이에게는 잘 때에 그만큼을 주신다.”(시편 127, 1-2)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깁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루카 11, 9-10)
어린 자녀들아, 너희의 마음을 열어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분의 사랑으로 너희를 채워 주실 것이고, 너희는 다른 이들에게 기쁨이 될 것이다. 너희의 증거는 힘이 있을 것이고, 너희가 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의 다정함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항아리가 다른 그 무엇으로 가득 차 있다면, 아무리 그에 물을 채우려고 해도 절대로 채울 수가 없습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기 위해서는 항아리가 먼저 비어져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항아리가 옆으로 뉘어져 있고, 그 입이 땅에 엎어져 있다면 그 역시 물을 채울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항아리는 비어진 상태로, 그 입을 하늘을 향해 열고 반드시 서 있을 때야 비로소 그 안에 물을 채울 수 있게 됩니다.
그렇듯이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다른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올바르지 않으며, 지상의 것에 붙잡혀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 안에 생명의 물, 사랑의 물, 성령을 부어주실 수 없습니다. 성모님 말씀대로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기도로 우리의 마음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나쁜 것들을 다 끄집어내 빈 마음, 깨끗한 마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다듬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그 마음 안에 들어오시고,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워 주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이 가득 채워진다면, 우리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고, 충만하게 됩니다. 우리의 모습도 변하고 얼굴도 빛나게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주는 그런 사랑이기 때문에, 그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되면, 우리 역시 그와 같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자기를 내어주는 사람은 주위 그 누구에게든지 기쁨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의 증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루어집니다. 입으로 아무리 사랑을 이야기하더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그 사랑은 거짓 사랑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묵묵히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되면, 사람들은 그 사랑이 참되다는 것을 느끼고 인정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의 증거는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가 하느님을 첫자리에 둘 때까지 너희와 너희의 회개를 위해 기도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께서는 지난 달 메시지에 이어 이번 달 메시지에서도 처음과 끝에 “나는 너희와 함께 있다.”고 두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 만큼 우리와 함께 하시는 당신의 현존을 강조하시면서 당신이 우리에게 얼마나 친밀한 분이신지 드러내십니다. 또한 메시지 끝 부분에서는 “너희가 하느님을 첫자리에 둘 때까지 너희와 너희의 회개를 위해 기도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당신이 우리와 함께 하는 또 다른 이유를 드러내십니다. 즉 성모님은 우리가 하느님을 우리 삶의 첫자리에 두고 회개하는 법을 가르치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육신의 어머니는 우리의 한정된 육신의 삶을 위해 함께 하지만, 우리 영신의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삶을 위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임마누엘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낳아주신 어머니 마리아께서 우리를 임마누엘 하느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2015년 4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너희를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너희와 함께 있다. 너희가 정신적으로 허약하고 온갖 세상사로 인해 지쳐있기 때문에 너희의 영혼은 불안하기만 하다. 너희 어린 자녀들아, 성령께서 너희를 변모시켜 주시고 그분의 신앙과 희망의 힘으로 너희를 가득 채워 주시도록 그분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악과의 이 전투에서 굳건하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내 아들 예수님 앞에서 너희를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너희를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너희와 함께 있다. 너희가 정신적으로 허약하고, 온갖 세상사로 인해 지쳐있기 때문에 너희의 영혼은 불안하기만 하다.
우리 믿음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바로 구원입니다. 사도 베드로께서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이를 뒷받침해주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1베드 1, 8-9)
우리의 구원은 이 지상에서 시작되지만 그 최종적인 완성은 죽음을 넘어 천국에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지상에서 그 구원을 잘 준비하고, 늘 영원한 삶, 천국을 갈망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지상에서 우리의 구원을 준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온갖 세상사와 사탄의 끊임없는 공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정신적으로 약해지고, 수 없이 밀려오는 걱정, 피로, 두려움 때문에 우리의 영혼은 불안하기만 합니다. 이 약한 우리의 정신, 이 불안한 우리의 영혼은 홀로 일어설 수 없습니다. 외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주 강력한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도움은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이신 성모님에게서 옵니다.
메주고리예를 통해 매일 우리를 찾아 오시는 우리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를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너희와 함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또 어려움에 처한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를 돕기 위해 어머니로서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시면서 성모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묵주를 손에 들고 마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어머니의 손을 잡은 것처럼 생각하면서 그분의 현존을 느껴보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몸과 마음이 그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어머니께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다 말씀 드리고, 도움을 청하십시오.
너희 어린 자녀들아, 성령께서 너희를 변모시켜 주시고 그분의 신앙과 희망의 힘으로 너희를 가득 채워 주시도록 그분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악과의 이 전투에서 굳건하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내 아들 예수님 앞에서 너희를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께서는 성령의 정배이십니다. 기도하시는 중에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으셨던 성모님께서는 성령의 힘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잉태하실 것이라는 예고를 받으셨고, 그 일은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기도하시는 중에 성령이 내려오시고, 그 성령의 힘으로 사도들이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모되는 것을 직접 목격하셨습니다.(사도 1-2장 참조)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성령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고 계시는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너희 어린 자녀들아, 성령께서 너희를 변모시켜 주시고, 그분의 신앙과 희망의 힘으로 너희를 가득 채워주시도록 그분께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햔 13, 26), ”그리고 보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루카 24, 49) 이 말씀대로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고 있던 사도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이전까지는 유다인들이 자신들을 죽일까봐 두려움 속에서 문을 꼭 닫아 걸고 있었던 사도들이 성령은 받은 후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로 변모되었습니다. 더 이상 박해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 심지어 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인간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복음으로 선포하는데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그분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이 일은 성모님의 격려와 사도들의 순종과 기도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은 다음과 같은 말로 우리를 격려하시면서 우리의 순종과 기도를 요청하십니다. 우리가 사도들처럼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모되도록 열망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어린 자녀들아, 성령께서 너희를 변모시켜 주시고, 그분의 신앙과 희망의 힘으로 너희를 가득 채워주시도록 그분께 기도하여라.”
베드로 사도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1베드 5, 8-9) 이 말씀처럼 악마는 늘 우리 주위에서 우리를 죄로 인도하고 영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전투 중에 있습니다. 이 전투에서 굳건하게 되기 위해, 마침내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성모님 말씀대로 성령께 기도합시다. 우리를 변모시켜주시도록, 그분의 신앙과 희망의 힘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주시도록 그분께 기도합시다. 내일 기도하려 하지 말고 오늘, 지금 이 순간 기도함으로써 성모님의 부르심에 응답합시다.
2015년 3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너희를 회개의 길로 인도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은총에 마음을 닫아 놓고 내 부름을 듣지 못한다. 너희 어린 자녀들아, 기도하여라. 그리고 악마가 근대주의를 통해 너희에게 권하는 모든 악한 계획들과 유혹에 맞서 싸워라. 기도 중에 강해지고 악이 너희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너희 안에서 승리하지 못하도록, 너희 손에 십자가를 들고 기도하여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너희를 회개의 길로 인도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은총에 마음을 닫아 놓고 내 부름을 듣지 못한다.
오늘은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의 처녀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을 받고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되리라는 예고를 받은 성모 영보 대축일입니다. 이 예고를 받아들임으로써 마리아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낳게 될 거룩한 어머니, 즉 성모님이 되셨습니다. 마리아가 구세주를 보내주시도록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매일 기도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본인 자신이 그 구세주를 세상에 낳아줄 어머니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리아에게 하느님은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마리아를 구세주의 어머니로 만드는 계획이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그 계획을 전해 들은 마리아는 비록 자신의 이해를 넘어서는 엄청난 일이 자신에게 벌어졌지만 겸손과 순종으로 그 계획을 받아들였습니다. 자기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뒤바뀌고, 일생에 걸친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계획이었지만 마리아는 하느님의 계획과 뜻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온전히 그분께 의탁했습니다.
하느님은 선 그 자체이시고, 두 닢에 팔리는 참새 다섯 마리 가운데 한 마리도 잊지 않으시며,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고 계시는 분(루카 12, 6-7 참조)이기에 우리 각자에게 언제나 가장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 외적으로 보기에 힘들어 보이고,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찾아 오더라도 하느님의 선하신 의지와 섭리를 믿고 그에 온전히 의탁해야 합니다. 성모님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 38)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선한 뜻에 따라 모든 것을 움직여 가시도록 온전히 모든 것을 맡겨 드려야 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는 33년 9개월 동안 메주고리예를 통해 성모님을 우리에게 보내주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성모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회개의 길로 인도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회개하여 구원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바로 그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한 없는 감사를 드려야 하고, 그분의 그 구원 계획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겨 드려야 합니다. 그 은총에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님을 통해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열어야 합니다.
너희 어린 자녀들아, 기도하여라. 그리고 악마가 근대주의를 통해 너희에게 권하는 모든 악한 계획들과 유혹에 맞서 싸워라.
2010년 5월 25일 메시지에서 “그러나 사탄 역시 잠자지 않고, 모더니즘, 즉 근대주의를 통해 너희를 빗나가게 만들며, 그의 길로 너희를 이끌고 간다.”고 말씀하셨던 성모님께서는 이번 달 메시지에서 다시 한번 근대주의에 대해 언급하고 계십니다. 근대주의란 무엇입니까? 제가 썼던 2010년 5월 25일 메시지 묵상의 일부를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모더니즘, 즉 근대주의는 14세기에 시작된 인본주의에 의해 준비되고,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18세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그 위용을 떨치고 있습니다. 근대주의는 하느님, 인간, 세계 그리고 이 지상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인간 사고의 급진적인 변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그럴 듯하지만 근대주의는 인간의 주관적 의식을 최고로 삼고, 그 의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모두 거부합니다. 따라서 믿을 교리, 계시 진리, 초자연적이고 신비적인 신앙 그리고 기적과 하느님 말씀의 표징인 예언을 거부합니다. 또한 근대주의는 오직 자신의 정신과 양심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선생을 필요로 하지 않고, 따라서 교회 교도권과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 근대주의는 1907년 “근대주의는 모든 이단을 포용하고 있다.” 고 선포한 교황 비오 10세의 회칙 ‘Pascendi’에 의해 단죄를 받았고, 여러 교황님께서 그 위험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비록 이름은 다르지만 근대주의는 인간 그리고 인간의 정신과 의식을 그 중심에 놓고 진행되는 진보, 자유주의 그리고 세속화와 동의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창세 3, 5) 라고 이브를 유혹하여 죄를 짓고 빗나가게 했던 사탄의 공격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탄은 인간에게 하느님, 그분의 말씀과 계시, 교회와 성사, 그리고 교황님의 무류권과 교회의 교도권 등을 거부하고 인간의 자의식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동하게 함으로써 인류를 죄와 파멸의 길로 이끌고 있습니다. 사탄은 인간에게 자신의 정신과 의식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게 만듦으로써 하느님과 그분의 계명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도록 만드는 인류 구원의 적대자이고, 악마입니다.”
이러한 악마의 계획과 유혹에 맞서 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선 악마의 영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도록, 교회와 세상 안에서 활개치지 못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이 길을 제시합니다. 예수님께서 세 제자 베드로, 요한, 야고보만 데리고 다볼 산에 올라가 거룩한 변모를 하고 내려 오셨습니다. 남아 있던 다른 제자들은 곤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아이에게서 악한 영을 쫓아내 달라고 청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에게서 악한 영을 쫓아내셨습니다. 제자들이 어찌하여 자기들은 그 영은 쫓아내지 못했는지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 14-29 참조)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께서 “너희 어린 자녀들아, 기도하여라. 그리고 악마가 근대주의를 통해 너희에게 권하는 모든 악한 계획들과 유혹에 맞서 싸워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기도할 것을 먼저 주문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교회를 통해 주어진 하느님의 계시, 신앙, 교리를 굳게 믿고, 교회의 교도권과 가르침에 충실하며, 복음을 있는 그대로 읽고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예컨대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을 먹이셨다고 쓰여져 있으면 곧이 곧 대로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인간이 되어 오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불가능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신성을 믿고,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적인 능력으로 기적을 베풀어 그들 모두를 먹였다고 있는 그대로 복음을 읽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 많은 사람들을 먹이려고 하시자 그에 감동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사람들이 모두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빵과 물고기를 내어 놓아 모두가 배불리 먹게 되었다는 식으로 해석함으로써 교묘하게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악마가 근대주의를 통해 우리에게 퍼뜨리려고 하는 오류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도 중에 강해지고 악이 너희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너희 안에서 승리하지 못하도록, 너희 손에 십자가를 들고 기도하여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산들을 향하여 내 눈을 드네. 내 도움은 어디서 오리오? 내 도움은 주님에게서 오리니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네 발이 비틀거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지키시는 그분께서는 졸지도 않으신다. 보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께서는 졸지도 않으시고 잠들지도 않으신다. 주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주님은 너의 그늘 네 오른쪽에 계시다. 낮에는 해도, 밤에는 달도 너를 해치지 않으리라. 주님께서 모든 악에서 너를 지키시고 네 생명을 지키신다. 나거나 들거나 주님께서 너를 지키신다, 이제부터 영원까지.”(시편 121)
이 시편의 말씀처럼 우리의 도움은 오직 주님에게서만 옵니다. 우리를 모든 악에서 지키시고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분은 주님이시기에 우리는 그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통해서 가능합니까? 바로 기도를 통해서 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주님과 함께 있을 수 있고, 그분의 도움이 우리에게 올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를 모든 악에서 지켜주시고,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신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강해집니다. 어린 아이들이 부모가 그 뒤에 있다는 것을 알 때 든든해하고 힘을 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악을 물리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면 강해집니다. 악이 우리를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승리합니다. 성모님 말씀에 따라 우리 손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들고 기도하면, 바로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대단히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우리 손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랑과 믿음으로 쥐고 기도할 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손을 펼치시어 우리를 악으로부터 보호해주십니다. 우리를 당신의 품 안으로 받아 들이십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여겨지는 그 순간에도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이 계십니다. 그 어머니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때로는 슬퍼하시고, 때로는 안타까워하시고, 때로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또 우리의 기도에 당신의 기도를 함께 모아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시어 우리의 기도가 그 배가 되게 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모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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