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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 Stephen Shin’s Reflections on the Mess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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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시기에 더 많이 기도하고 말은 적게 하라고, 나는 너희 모두를 부른다. 하느님께서 너희를 부르시는 계명에 따라 기도 중에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살아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와 함께 기도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시기에 더 많이 기도하고 말은 적게 하라고, 나는 너희 모두를 부른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더 많이 기도하고, 말은 적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짧지만 의미심장한 이 말씀을 통해 성모님께서는 우리 삶의 중심을 더욱 더 하느님께로 되돌리라고 요청하십니다. 우선 우리가 더 많이 기도해야 하는 대상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더 기도 많이 하라는 것은 하느님께 더 많은 시간을 드리고, 그분께 더욱 가까이 가라는 말입니다. 하느님과 더욱 밀접하게 지내는 가운데 그분을 중심에 모시고 살라는 부르심입니다.
     또한 더 많이 기도하라는 성모님의 부르심은, 동시에 우리가 아직 성모님 보시기에 만족할 만큼 충분한 기도를 바치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기도와 단식 그리고 자선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는 이 사순 시기에, 우리는 지금까지의 우리 기도의 양과 질에 만족하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이 바칠 수 있을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우리는 말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은 적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무 쓸데없는 말,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우리의 시간과 마음을 거기에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말은 적게 하고 하느님께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을 드리기 위해 더 많은 기도를 바치면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가려고 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많은 은총을 내려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이 바로 은총의 시기임을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너희를 부르시는 계명에 따라 기도 중에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살아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와 함께 기도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계명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우리의 온 마음과 정신과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의 몸처럼 사랑하라는 이 두 계명이 모든 계명들 가운데 으뜸이 된다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시는지를 묵상할 때면, 항상 이 두 계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매일매일 부름 받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우리 삶의 목표이고, 모든 행동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언제나 자신을 내어주도록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찾는 기준이 됩니다. 그 모범을 바로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특별히 겟세마니 동산에서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 수난을 앞두고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 39) 예수님께서도 인간적으로는 십자가의 수난을 피하고 싶으셨지만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거기에 있다고 받아 들이셨기 때문에, 기도 중에 그 뜻을 다시금 확인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당신 자신을 십자가의 죽음에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예수님은 끊임없는 기도로 언제나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찾고 받아 들이고, 그 뜻대로 살 수 있기를 간구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이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바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루카 11, 9-13)
     복음서 곳곳에서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는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기도문을 알려주셨을 때, 즉흥적으로 이 기도문을 만들어주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오랜 전부터 이 기도를 스스로 아버지 하느님께 바치곤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도 당신을 따라 같은 기도를 바치기를 원하셨기에 다음과 같은 기도를 그들에게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기도 중에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살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기도 중에만 찾아질 수 있습니다. 모든 기도가 하느님의 뜻을 찾도록 도와주지만 특별히 주님의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만을 먼저 찾게 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잘 가르쳐 줍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 38)라고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셨던 성모님께서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와 함께 기도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모송을 외우면서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셨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기도한다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시는지, 우리에 대해 어떤 뜻을 갖고 계시는지 좀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15년 1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기도 속에서 너희의 소명을 살라고 너희를 부른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지금 사탄은, 전염성이 강한 증오와 불안의 바람으로 인간과 그의 영혼을 숨막히게 하고 싶어 한다. 하느님과 기도가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 안에 기쁨이 없다. 매일매일 증오와 전쟁이 커져가고 있다. 어린 자녀들아, 열정을 가지고 다시 거룩함과 사랑의 길을 걷기 시작하라고, 나는 너희를 부르고 있다. 이 때문에 내가 너희들 가운데 오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희를 부르시는 그분의 그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 아니라, 인간적인 사랑만 알고, 그것으로만 사랑하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 함께 사랑과 용서가 되어 주도록 하자. 어린 자녀들아,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늘 너희 마음 안에 있기를 바란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기도 속에서 너희의 소명을 살라고 너희를 부른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어린 나이에 봉쇄 깔멜 수녀원에 들어가 그곳에서 9년 동안 수도 생활한 후 24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예수님의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의 삶을 살고 싶어했지만, 봉쇄 수도원에서 살아야 했기에 그 꿈을 직접적으로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방식으로 선교사들의 주보 성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고 희생함으로써 그들이 선교를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소명이 바로 사랑임을 깊이 깨달았고,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하고자 했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모든 기도와 모든 희생을 사랑으로 봉헌하면서 온 세상 곳곳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영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사랑하여라.”(요한 15,16-17) 이 말씀대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분의 제자로 뽑힌 사람들, 즉 소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신분이나 위치 그리고 삶의 환경에 상관없이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을 열매로 맺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사랑하여라.” 우리의 소명은 바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는 하느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사랑의 소명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겸손과 희생을 늘 요구하기 때문에 대단히 의지적으로 행해야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사랑하려는 우리의 노력과 의지가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할 수 있는 힘, 은총을 하늘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그 은총은 기도할 때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루카 복음 11장 5-8절에서 끊임없이 간청하라고 당부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루카 11,9-10) 다른 것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소명인 사랑을 살기 위해 필요한 은총을 청하는 기도를 바치는데 절대로 그것을 거절하실 리가 없으십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안에서 너희의 소명을 살아라.”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지금 사탄은, 전염성이 강한 증오와 불안의 바람으로 인간과 그의 영혼을 숨막히게 하고 싶어 한다. 

사도 요한은 그의 첫 번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 요한 4,7-8) 사도 요한의 고백처럼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이신 하느님은 모든 인간이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 반대로 인간이 사랑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느님처럼 인간이 사랑을 하면, 하느님을 모시고 평화를 누리면서 다른 이들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평화와 행복, 구원을 절대로 바라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모든 인간 관계를 파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만일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증오가 생기고 마음이 불안해지면,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이 우리 마음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우리 영혼의 숨을 막아 버리려고 시도한다는 것을 재빨리 눈치채야 합니다. 그러면 사탄이 어떻게 우리 마음 안에 증오와 불안의 씨앗을 뿌릴까요? 사탄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긴 사람들을 통해서, 그들이 벌이는 증오의 범죄와 사회 불안을 통해서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금 수 많은 사람들이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대중 매체들을 통해, 특별히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온 세상 곳곳에 뿌려대고 있습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을 향한 사탄의 공격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만큼 영적인 전투가 치열하다는 뜻이고, 사탄이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으며, 성모님의 티 없으신 성심의 승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비록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탄이 우리 인간과 우리 영혼의 숨통을 막아버리기 위해 전염성이 강한 그의 증오와 불안의 바람을 끊임없이 불러 일으키려고 해도, 우리가 기도 안에서 우리의 소명, 즉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그분의 힘으로 사랑을 살면, 그 바람은 우리에게 그 어떠한 해도 끼칠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 기도가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 안에 기쁨이 없다. 매일매일 증오와 전쟁이 커져가고 있다. 어린 자녀들아, 열정을 가지고 다시 거룩함과 사랑의 길을 걷기 시작하라고, 나는 너희를 부르고 있다. 이 때문에 내가 너희들 가운데 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편리하고 안락하며 수많은 오락과 즐거움의 도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정말 늘 기쁘고 행복합니까? 인간적인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도구들이나 상황들은 대단히 일시적인 것입니다. 또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들이 우리의 마음에 참된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지속적이고 변하지 않는 기쁨은 오직 영적인 데서만 옵니다. 즉 하느님을 믿고 사랑함으로써 그분을 우리 삶에 늘 모시고 살 때, 하느님과 사랑의 관계를 늘 유지하기 위해 기도할 때만 우리의 마음은 그분이 주시는 기쁨으로 채워집니다. 이 기쁨은 세상의 그 누구도 줄 수 없고,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기쁨입니다. 
     하느님과 기도가 없는 마음은 사탄이 쉽게 들어와 자기 마음대로 휘저을 수 있는 위험에 쉽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탄은 그 마음에 들어와 미움의 씨앗을 뿌리고, 마음에 미움을 품은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가족, 이웃, 직장 동료, 그 외 수 많은 사람들과 전쟁을 시작합니다. 또 사탄은 민족들 사이에, 나라와 나라들 사이에 패권 다툼이나 배타적이고 악의적인 종교적 신념 때문에 미움과 갈등을 불러 일으켜 내전과 전쟁을 하게끔 부추기고 있습니다.
     갈수록 늘어가는 미움과 전쟁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더 많은 힘과 군대와 무기입니까? 아닙니다. 성모님께서는 모든 인간이 거룩함과 사랑의 길을 걸을 때 전염병처럼 온 세상을 덮고 있는 증오와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사탄이 아니라 하느님이,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 전쟁이 아니라 평화가 우리와 세상을 다스리려면, 우리가 거룩하게 되고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류가 변화되고 세상이 바뀌는 것은 우리 자신, 즉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거룩해지고, 다른 사람이 먼저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전에 내가 먼저 거룩해지고, 내가 먼저 사랑해야 된다고 말하고 그를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성모님께서는 33년 7개월 동안 계속 해서 메주고리예에 발현하시면서 우리 인류를 찾아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너희를 부르시는 그분의 그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 아니라, 인간적인 사랑만 알고, 그것으로만 사랑하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 함께 사랑과 용서가 되어 주도록 하자. 어린 자녀들아,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늘 너희 마음 안에 있기를 바란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적인 사랑의 차이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아무런 조건 없이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고, 인간적인 사랑은 어떤 조건이 붙고, 대가를 바라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 사랑의 대상인 인간이 중심이지만, 인간적인 사랑은 사랑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베푸는 사람이 중심이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기에 그분께서 보여주시는 사랑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하느님 자신이시며 인간이 되어 오신 예수님께서 그 구체적인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십자가의 희생제사를 통해서였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희생제물로 바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폭력을 가하고,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앙갚음하지도 않으며, 용서하는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성모님의 말씀을 묵상해봅시다. “하느님께서 너희를 부르시는 그분의 그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 아니라, 인간적인 사랑만 알고, 그것으로만 사랑하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 함께 사랑과 용서가 되어주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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