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시는 아기 예수님, 너희 존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이신 그분을 너희에게 모셔오고 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모든 상황 속에서 희망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라고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보다 나은 미래 속에 있는 너희의 믿음과 희망이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분의 평화로 너희를 축복해 주시도록 내가 예수님과 함께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시는 아기 예수님, 너희 존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이신 그분을 너희에게 모셔오고 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나서 한 천사가 베들레헴 들판의 목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는 목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그 때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 10-14 참조)
성모님께서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시는 아기 예수님을 모셔오고 있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이 찬미의 노래 소리는 성모님의
입을 통해 다시금 이 세상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류에게 평화를 주기 위해 태어나셨고,
성모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이러한 예수님의 간절한 마음을 잘 헤아리고 계셨으며 지금도 그러하십니다. 그러나 선물로 주어지는 이 예수님의 신적이고 천상적인 평화를 누구나 다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예수님은 모든 이에게 당신의 평화를 주고자 하시지만 예수님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그분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그
평화를 받아들이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천사들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가서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 하느님을 찬양했던 베들레헴의 그 목자들같은 사람들이 그럴 수 있습니다.(루카 2,
15-20 참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를 진리로 받아들이며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
바로 그런 사람들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고, 예수님을 통해 주어지는 평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콜로새인들에게 보낸 그의 서간에서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 찬가를 쓰고 있습니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 15-20)
위 찬가에서 나오듯이 만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간을 포함한 만물은 예수님에게서 생명을 얻었고,
그분의 힘으로 존속하고 그분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으며 마침내는 그분 안에서 그 생명의 끝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우리 존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고 말씀하시는 성모님의
말씀은 너무도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존재의 근거이십니다. 그분 없이 우리의 존재는 생겨나지 않았고, 그분 없이 우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분 없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삶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오직 예수님과 연관되어 있을 때에만 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살게 하시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고자 하시는 예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의탁할 때 예수님의 성탄은 우리 구원의 완성이 될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모든 상황 속에서 희망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라고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보다 나은
미래 속에 있는 너희의 믿음과 희망이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분의 평화로 너희를
축복해 주시도록 내가 예수님과 함께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창세기 37장부터 50장까지에는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하느님에 의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야곱의 열 두 아들 가운데 열한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요셉을 통해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그에 딸린 가족 모두를 구원하고자 계획하셨습니다. 아무도 그가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지 못했습니다. 열일곱 살이 되었을 때 그는 형들의 시기를 받아 죽을 뻔하다가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려 이집트로 가게 됩니다. 그는 거기서 이집트 왕 파라오의 경호대장 포티파르의 집 관리인이
됩니다. 그러나 안주인의 유혹을 뿌리치다가 무고하게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 그곳에서 그는 이집트 왕에게 포도주잔을 올리는 시종의 꿈을 해몽에 주었고 그 시종은 해몽대로 석방되어 복권이 되었습니다.
다시 파라오를 섬기게 되면 무고하게 불운한 처지에 빠져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했지만 그 시종은 요셉의
청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 후 2년이 흐른
어느날 파라오는 두 개의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이집트의 모든 현자들이 불려왔지만 아무도 그 꿈들을 해몽하지
못했습니다. 그때서야 파라오에게 포도주잔을 올리는 시종은 요셉의 청을 기억해내고 파라오의 꿈들을 해몽해 줄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요셉은 파라오에게 불려 나와 7년 동안 풍년이 들고 그 후 다시 7년 동안 기근이 들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비하도록 하느님께서
꿈을 통해 보여 주셨으니 그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인재를 뽑아 준비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파라오는
그 자리에서 요셉이야말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적임자라고 말하고 그를 파라오 다음 자리에 가는 이집트의 재상으로 세웁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서른 살이었습니다.
요셉의 해몽대로 7년 동안 풍년이 있었고, 요셉은 앞으로 다가올 기근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7년 후 기근이 찾아왔을 때 이집트에는 그를 견디어 낼만한 곡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과 그의 다른 아들들과 가족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에는 곡식이 없었습니다. 야곱은 그의 아들들을 이집트로
보내어 곡식을 사오게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요셉과 조우를 하게 되고 마침내 요셉은 자신이 바로 그들이
팔아 넘긴 아우 요셉이라는 것을 밝히게 됩니다. 그러자 형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런 그들에게 요셉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이 땅에 기근이
든 지 이태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다섯 해 동안은 밭을 갈지도 거두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시어,
여러분을 위하여 자손들을 이 땅에 일으켜 세우고, 구원받은 이들의 큰 무리가 되도록
여러분의 목숨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여러분이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파라오의
아버지로, 그의 온 집안의 주인으로, 그리고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니 서둘러
아버지께 올라가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이라 하고 이렇게 전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저를 온 이집트의 주인으로 세우셨습니다. 지체하지 마시고 저에게 내려오십시오. 아버지께서 고센 지방에 자리 잡게 되시면,
아버지께서는 아들들과 손자들, 그리고 양 떼와 소 떼 등 모든 재산과 더불어 저와
가까이 계실 수 있습니다기근이 아직도 다섯 해나 계속될 터이니, 제가 그곳에서 아버지를 부양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와 집안, 그리고 아버지께 딸린 것들이 궁핍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후 요셉의 아버지와 다른 모든 형제들과 가족들은 요셉의
말대로 이집트로 완전히 이주하여 아무 어려움 없이 잘 살게 되었고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뀐 야곱은 요셉의 품 안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요셉의 형들은 혹시 요셉이 자신들에게 복수를 하지 않을까 두려워 합니다. 그러자 요셉은 그들을 위로하며 이렇게 다정하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을 부양하겠습니다.”
형들의 시기를 받아 버림받고 죽을 뻔하다가 다른 나라의
노예로 팔려가고 무고하게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요셉은 결코 희망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 시련을 겪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고, 요셉은 많은 기도와 묵상 속에서 주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그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바로 그것이 요셉이 모든 상황 속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근거였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너무나도 열악하고, 심지어 최악으로 보이는 상황에 놓여도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 요셉은 바로 그런 믿음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뒤에 형들에게 했던 말들에서 알 수 있듯이 요셉은 자신의 시련과 불행뿐만 아니라 심지어 형들의 죄과 악까지도 모든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선으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결코 단 한 순간도 희망의 촛불을 끄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한
전쟁 포로가 자신이 갇혀 있던 독일 퀼른 지방의 한 건물 지하실 벽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남겼다고 합니다. “태양이 구름에 가려 햇빛을 볼 수 없을 때에도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비록 하느님이 침묵하고
계실지라도 나는 하느님의 사랑이 엄연히 계심을 믿는다.” 하느님께서 침묵하시는 가운데서도 그분의 현존과 사랑을
믿고 그 믿음 위에서 꺼질 줄 모르는 희망을 지녔던 이름모를 위대한 한 인간의 강렬한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인간이 되어 오신 하느님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을 우리는 임마누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분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그분은 우리 가운데 현존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로 이 세상에 오셨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에게 평화를 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 앞에 무릎 꿇고 경배드리며 다음과 같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 당신은 제 존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이십니다. 오직 당신만이 저에게 보다 나은 미래를 마련해 주실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굳게 믿고 오직
당신께만 저의 모든 희망을 둡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