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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 Stephen Shin’s Reflections on the Mess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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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개인 기도로 돌아가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어린 자녀들아, 사탄은 강하고 영혼들을 더욱더 자신에게로 끌어당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그렇기 때문에 너희는 기도 중에 깨어 있어야 하고, 선하면서도 단호해야 한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내 모성적 축복으로 너희 모두를 축복해 주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개인 기도로 돌아가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오늘 교회는 성 바오로 사도 회심 축일을 지냅니다. 가톨릭 교회는 그 어느 성인의  회심을 기념하여 축일로 지내지 않지만 바오로 사도의 회심만은 그 예외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의 회심이 그리스도교에 끼친 영향이 지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유다인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의 체계를 세움으로써 그리스도교의 기초를 탄탄하게 만든 위대한 사도였습니다. 
    이제 그의 회심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본시 사울이라는 이름을 지녔던 바오로는 열렬한 유다교 신자였고, 당대의 최고 랍비였던 가말리엘에게 수학한 바리사이로서 미래 유다 종교 지도자로 촉망을 받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그리스도교인들을 박해하는데 앞장 섰습니다. 그는 심지어 시리아 다마스커스에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붙잡아 예루살렘으로 데려 오려고 길을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가 다마스커스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습니다. 그는 땅에 엎어졌고, “사울아, 사울아, 왜 네가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그는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볼 수가 없었습니다. 동행하던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커스로 데려갔습니다. 그는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했고, 그동안 먹고 마시지도 않고 홀로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마스커스에 있는 그분의 제자 하나니아스에게 환시 중에 나타나시어 사울이 머물고 있는 장소를 언급하시며 가서 그에게 안수를 해 주라고 분부하셨습니다. 하나니아스는 “주님,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을 모두 결박할 권한을 수석 사제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습니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하나니아스는 길을 나셨고 사울을 찾아가 그에게 안수를 해 주고 나서 말했습니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그러자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고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음식을 먹으며 기운을 차렸습니다.(사도 9, 1-18 참조)
    사도 바오로의 이 극적인 회심 체험은 많은 것을 시사해 주지만,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개인 기도로 돌아가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라고 하신 이번  달 성모님 메시지와 연관지어 보면 그의 회심 체험 가운데 있었던 개인 기도가 얼마 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재삼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도 바오로는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눈먼 상태가 되어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마스커스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전까지는 모든 것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눈이 멀어 있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 직접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눈먼 상태에서 사흘 동안 개인 기도에 전념합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오직 예수님과 자신, 단 둘이 머물며 대화하는 개인 기도의 시간을 갖습니다. 어떤 기도의 내용이었는지 우리가 알 수는 없으나 분명 그것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왔을 것입니다. 그는 진정 마음으로 기도했고, 그 앞에는 오직 예수님만이 계셨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가운데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들어와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본 대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이 사흘 간의 개인 기도는 그가 처음으로 오직 예수님하고만 지낸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 모두를 깊이 들여다보고 마음으로 예수님과 이야기하면서 죄를 뉘우치고 자신의 미래를 그분 손에 맡겨 드렸을 것입니다. 그의 악행을 포함하여 그의 전 존재를 샅샅이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자기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신 데 대하여 한없는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번 달 메시지에서 개인 기도로 돌아가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개인 기도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예수님과 우리 각자 사이에 대단히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그런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사도 바오로가 그러셨던 것처럼 예수님하고만 머물면서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그분께 다 내보이는 그런 기도의 시간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성체가 모셔져 있는 감실 앞에, 예수님께서 매달려 계시는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홀로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 9) 라고 말씀드리십시오. 만일 그런 여건이  되지 않는 장소나 시간 속에 있더라도 홀로 조용히 침묵 중에 눈을 감고 주님의 현존을 의식적으로 느끼려고 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어 드리고 주님과 마음으로 사랑의 대화를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어린 자녀들아, 사탄은 강하고 영혼들을 더욱더 자신에게로  끌어당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그렇기 때문에 너희는 기도 중에 깨어 있어야 하고, 선하면서도 단호해야 한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내 모성적 축복으로 너희 모두를 축복해 주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메시지를 통해 끊임없이 사탄의 존재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어린 자녀들아, 사탄은 강하고 영혼들을  더욱더 자신에게로 끌어당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고 말씀하십니다.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모님은 사탄의 존재와 그의   초자연적 힘을 언급하시면서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워 주십니다. 성모님 말씀대로  사탄은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그 힘이 강합니다. 이제 그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분주하게 세상을 돌아다 니면서 영혼들을 더욱더 자신에게로 끌어당기고 싶어 합니다. 그들을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을 죄짓게 하여 멸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기 위해서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경각심만 일깨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공격으로부 터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해 주십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리 영혼의 감수성을 높여 선과 악을 잘 분별하게 하고 악을 피하게 만들어 줍니다. 기도하는 영혼은 무한한 선 자체이신 하느님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선을 추구하고 악을 멀리합니다. 기도 중에 깨어 있는 사람은 악마인 사탄의 존재와 그의 공격에  민감하고 하느님의 힘으로 그를 막아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 4, 10) 
    사탄이 제 아무리 강하고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의 유혹 에 맞서 선하면서도 단호하게 “아니오.” 라고 말한다면, 그는 우리에게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습니다. 더 더군다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께서 우리 와 함께 계시고 그분의 모성적 축복으로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데 어떻게 사탄이 우리를 자신에게로 끌어갈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가 옆에 계셔 세상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는 아이처럼 성모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고 그분 축복의  힘으로 사탄에 맞서 싸워야 하겠습니다.

   
 
 
2021년 12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그분께서 너희에게 그분의 평화를 주시도록 내 아들 예수님을 너희에게 모셔오고 있다. 어린 자녀들아, 평화가 없으면 너희에게 미래나 축복이 없다. 그러므로 기도에로 돌아오너라. 기도의 열매는 기쁨과 믿음이고, 너희는 그것들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늘 너희에게 주는 축복을 너희 가족들에게 전해 주고, 너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풍요롭게 해 주어라. 그러면 그들이 너희가 받고 있는 그 은총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그분께서 너희에게 그분의 평화를 주시도록 내 아들 예수님을 너희에게 모셔오고 있다. 어린 자녀들아, 평화가 없으면 너희에게 미래나 축복이 없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그를 위해 희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성모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들이라고 부르시는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가장 좋은 것을 주고자 하십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보다 더 우리에게 필요하고 좋은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참하느님이시요 참인간이시고,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예수님만 있으면 우리에게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바랄 것이 없고, 성모님께 또 다른 무엇을 청하기보다 예수님을 우리에게 모셔오고 계시는 성모님께 감사드리면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열고 팔을 활짝 벌려 예수님을 우리 품에  정성껏 모셔 들여야 합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모셔오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루셨는지도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처녀인 당신의 몸에 예수님을 잉태하셨습니다. 당시 율법 규정에 따르면 처녀가 애를 배면 돌에 맞아 죽을 입장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것을 알고 계셨지만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인간의 구원을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예수님을 잉태하셨던 것입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목숨도 아깝게 여기지 않고 기꺼이 희생 제물로 내놓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계시는 성모님은 천국을 떠나 메주고리예를 통해 이 지상에 계속 오고 계십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 온 인류의 구원 때문입니다. 만민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이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그들이 다시금 하느님께로 돌아와 예수님에게서 구원과 평화를 얻도록 해 주시기 위해 40년이 넘도록 오랫동안 메주고리예에 발현하시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수 많은 메시지를 주시고 우리를 깨우쳐 주고 계십니다. 따라서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은 그 자체가 우리에 대한 성모님의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고, 그 사랑은 늘 현재진행형이기에 성모님은 늘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들이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번 성탄절에 성모님은 가장 큰 사랑의 선물인 예수님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평화를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평화, 사람들 사이에 평화를 이룩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을 우리 마음과 삶에 모셔 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전연 다른 참평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시고 평화 그 자체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면 우리는 평화 그 자체 안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 우리는 결코 평화를 가질 수 없고, 우리에게 평화가 없다면 우리에게 미래도 축복도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열어 주시고,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는 분은 오직 평화의 왕이시며 우리의 하느님이신 예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평화, 그 평화를 주시는 예수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과 세상은 겉은 화려할지 모르나 그 속은 텅비어 늘 공허하기만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삶, 가정, 교회 그리고 세상을 평화로 가득 채워 주시고, 우리의 미래를 열어 주시며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셔 들이면서 그분을 우리에게 모셔오는 성모님께 감사드립시다.

그러므로 기도에로 돌아오너라. 기도의 열매는 기쁨과 믿음이고, 너희는 그것들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고, 우리의 미래를 열어 주시며 우리 축복의 원천이 되시는 예수님을 모셔들이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성모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에로 돌아오너라.” 만일 다른 길이 있었다면 성모님은 분명 그 길을 제시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우리에게 기도에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면서 기도가 유일한 길임을 밝히고 계십니다. 또 “기도의 열매는 기쁨과 믿음이고, 너희는 그것들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기도를 해야 우리가 진정으로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기도하고 있습니까? 기도 아닌 다른 것들에는 수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으면서 정작 기도하는 데는 너무도 인색합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정작 삶을 위해 가장 필요한 기도만 빼고 나머지 것들은 다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인생, 생명 그리고 구원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시들고 마는 꽃처럼 짧기만 합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기도를 시작합시다. 조금 기도하던 사람들은 좀더 노력을 배가합시다. 자기 자신이나 자기 가족만을 위해 기도하던 사람들은 모든 죄인들의 회개와 세상의 평화 그리고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가 오늘 너희에게 주는 축복을 너희 가족들에게 전해 주고, 너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풍요롭게 해 주어라. 그러면 그들이 너희가 받고 있는 그 은총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우리가 오늘 너희에게 주는 축복을”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성모님은 예수님과 함께 우리를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중 축복입니다. 성모님은 그 만큼 우리에게 더 많은 축복을 주고 싶어 하시고, 우리도 우리 가족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와 같은 마음으로 축복을 전해 주기를 바라십니다. 
   사랑하는 마음 없이 우리가 누군가를 축복해 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두 분이 함께 우리를 축복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축복을 받은 우리도 그분들이 우리에게 가지고 계신 그 사랑을 우리 마음 안에 지니고 우리 가족과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의 축복을 해 주기를 바라십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집 안에 있는 우리 식구들, 떨어져 있는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 각자를 축복해 주는 일, 집을 나서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 길을 지나면서 지나치는 이름 모르는 수 많은 타인들에게도 마음에 사랑을 담아 “주님, 성모님, 저 사람, 저 사람들을 축복해 주십시오.”라고 축복의 기도를 바친다면 우리 마음에는 늘 사랑과 평화가 넘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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