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가 모든 피조물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경축하는 오늘, 나는 그분께서 너희 삶의 왕이 되시기를 간절히 원한다. 어린 자녀들아, 오직 줌으로써만, 너희는 너희 각자를 위한 예수님 십자가 희생의 선물을 이해할 수 있다.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께서 너희를 완전히 변화시키고 그분의 은총으로 너희를 가득 채워 주시도록 그분께 시간을 드려라. 그러면 너희는 다른 이들을 위한 은총이 될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나는 너희와 평화가 없는 이 세상을 위해 하느님께로부터 오고 있는 은총과 사랑의 선물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찬미 예수님!" 성모님께서 즐겨 하시는 인사말입니다. 성모님의 이 인사말대로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찬미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그분의 생명과 구원을 생각하면 우리의 목숨과 모든 시간을 다해 그분께 찬미와 감사를 드린다고 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의 왕이 되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왕이 되시려면 그분 앞에 우리 자신을 철저히 낮추어야 합니다. 그분이 언제나 최고가 되셔야 합니다. 그분의 뜻과 말씀이 우리 삶의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물이나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다스리고 이끄시도록 맡겨드려야 그분이 진정 우리 삶의 왕이 되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의 왕이시지만 세상의 왕들이나 권력자들과 달리 참으로 겸손한 분이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의 겸손하심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필리 2, 6-10)
예수님의 겸손은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의 겸손 안에는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는 희생적인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가 모든 피조물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경축하는 오늘, 나는 그분께서 너희 삶의 왕이 되시기를 간절히 원한다. 어린 자녀들아, 오직 줌으로써만, 너희는 너희 각자를 위한 예수님 십자가 희생의 선물을 이해할 수 있다.” 겸손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자기 삶의 왕으로 모실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어 줄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겸손하고 내어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자신을 낮추시고, 특별히 십자가상에서 당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물론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또한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오직 줌으로써만, 너희는 너희를 위한 예수님 십자가 희생의 선물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로 성모님은 그 길을 알려 주고 계십니다. 하느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오직 내어 주는’ 희생적인 사랑의 실천을 통해 우리 각자를 위한 예수님 십자가 희생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그 의미를 체험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 시간을 드리라고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돈과 시간을 씁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려면 우리가 하느님을 위해 얼마나 시간을 드리고 있는지 따져보면 됩니다. 그럼 하느님께 시간을 드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과 마주 앉아 대화와 사랑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즉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고, 우리가 마음을 열고 기도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마음과 영혼 안에 들어오십니다. 그러면 그분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의 어두운 모든 곳을 두루 밝혀 주시어 평화와 선으로 가득 차게 하십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하느님을 더욱 갈망하게 되고, 하느님은 그 안에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가득히 부어 주십니다. 하느님께 시간을 드리고, 그 시간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시간을 드리면, 하느님은 우리를 ‘오직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의 사람’으로 완전히 바꾸어 주시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은총이 됩니다. 결국 하느님께 시간을 드리는 것은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고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며 다른 이들에게 축복이 되는 길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평화가 없는 것은 인류가 하느님이시며 사람이 되신 예수님,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희생을 통해 그분께서 보여 주신 사랑과 겸손 그리고 평화의 길을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메주고리예를 통해 계속해서 이 땅에 오고 계시는 평화의 모후께서는 이번 달 메시지에서 다시금 예수님을 우리 삶의 왕으로 모시라고 촉구하십니다. 또한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보여 주신 예수님의 사랑과 겸손과 평화의 길을 본받으라고 요청하십니다. 구원과 평화의 길을 알려 주시는 성모님의 존재와 발현 자체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총과 사랑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