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녀들아! 악마가 영혼들을 자기에게로 끌어당기기 위해 그들을 추수하고 있는 평화가 없는 이 때에, 나는 끈기있게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그러면 기도 중에 너희는 사랑과 희망의 하느님을 발견한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 손에 십자가를 쥐어라. 특별히 십자가와 신앙이 거부되고 있는 지금, 사랑은 언제나 이길 수 있다고 십자가가 너희를 격려하기 바란다. 너희는 신앙과 희망이 여전히 살아 있고 새로운 평화의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너희의 삶으로 비추어 주고 모범이 되어야 한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내 아들 예수님 앞에서 너희를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악마가 영혼들을 자기에게로 끌어당기기 위해 그들을 추수하고 있는 평화가 없는 이 때에, 나는 끈기있게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그러면 기도 중에 너희는 사랑과 희망의 하느님을 발견한다.
지금은 사탄이라고도 불리우는 악마와 성모님 사이에 큰 영적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때입니다. 그리고 이번 달 메시지를 보면 그 전투가 거의 막바지에 왔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지금 이 시기를 악마가 영혼들을 자기에게로 끌어당기기 위해 그들을 추수하고 있는 평화가 없는 때라고 규정하십니다. 악마는 인류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이래 지금껏 계속해서 영혼들을 자기에게로 끌어당기기 위해 유혹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유혹의 때가 거의 절정에 달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이번 달 메시지에서 ‘추수’라는 단어를 쓰셨습니다. 추수란 농사의 마지막 단계를 나타내는 말이기에 이제 악마와의 전투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달리 말하면 이제 악마에게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말이고, 또 달리 말하면 성모님 성심 승리의 시간이 거의 다가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지금은 마치 동이 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이 순간 인류에게는 가장 어둠이 짙은 시간, 평화가 없는 때입니다. 이 때 성모님은 우리에게 끊기있게 기도하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 역시 성모님의 군대로 불리움받은 군사들로서 성모님과 함께 악마와의 전투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손에 쥔 무기를 더욱 힘껏 잡아야 합니다. 즉 악마와 대항하여 그를 쳐부수기 위해 우리 손에 묵주를 들고 끊임없이 묵주알을 돌려야 합니다. 때로운 악마의 공격과 유혹이 너무 심해 우리가 죄에 떨어지거나 영적인 부상을 입는다 하더라도 다시금 일어서서 고해성사를 보고 회개하여 끈기있게 기도하며 계속 전투에 참전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를 자기에게로 끌어당기려고 하는 악마의 힘을 약화시키고 우리를 점점 더 하느님 가까이 있게 만듭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 편에 서게 되고 우리 가운데 함께 하고 계시는 사랑과 희망의 하느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악에서 구해주시는 하느님, 비록 악의 유혹에 빠져 죄를 지을지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는 희망의 하느님 그리고 당신에게 매달리는 당신의 자녀들을 평화와 구원으로 이끄시는 그 하느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 손에 십자가를 쥐어라. 특별히 십자가와 신앙이 거부되고 있는 지금, 사랑은 언제나 이길 수 있다고 십자가가 너희를 격려하기 바란다.
인간적으로 볼 때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완전히 패배한 것처럼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하느님께서 인간에서 보여 주실 수 있는 사랑의 절정이었고, 부활로 넘어가기 위해 절대적인 필요한 관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하느님 사랑과 승리의 절대적인 표징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바로 그 십자가를 우리 손에 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손에 쥔 십자가에서 하느님 사랑의 무게를 느끼고, 우리 손에 쥔 그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악과 죽음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를 관상하라고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신앙의 교과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승리하신 그 십자가는 사랑과 선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위해 살고 죽는다면 부활에 이른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아무리 악이 기승을 부리고 승리하는 듯이 보여도 십자가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게 해 주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성모님께서는 또한 특별히 십자가와 신앙이 거부되고 있는 지금, 사랑은 언제나 이길 수 있다고 십자가가 우리를 격려하기 바란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모님 말씀대로 지금은 십자가와 신앙이 거부되고 있는 때입니다. 세상은 늘 져서는 안 되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약해서는 안 되고 늘 강해야 한다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도록 부추깁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존재를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열심히 믿는 사람들을 광신적으로 여기고 때로는 조롱하기까지 합니다. 또한 신앙은 합리적이지 않고 미신적인 것으로 폄하하고, 인간의 이성에 기반을 둔 합리성과 과학을 절대시합니다. 이렇게 이 시대에 십자가와 신앙이 거부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세상이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을 모든 것의 중심으로 놓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한다고해도 하느님은 분명 존재하시고, 인간은 그저 하느님의 한 피조물에 불과할 뿐입니다.
너희는 신앙과 희망이 여전히 살아 있고 새로운 평화의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너희의 삶으로 비추어 주고 모범이 되어야 한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내 아들 예수님 앞에서 너희를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 12) 라고 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 14-16)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빛을 밝혀 어둠을 몰아내고 착한 행실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자신들의 착한 삶을 통해 증거하고 사람들이 그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그분을 찬양하게끔 하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해서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행실이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착하고 순수하고 사심없으며 온전히 영적인 것으로 비추어 질 때 그것은 가능합니다. 마치 인도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 성녀가 그러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그분에 의해 세상의 빛이 되라고 불리움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고 모든 것 위에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언제나 그분께 대한 신앙과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평화 자체이시고 평화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평화로 이 세상을 새롭게 만들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종국에는 그것을 완전히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이사 65, 17)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2베드 3, 13)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묵시 2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