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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1-27 06:02
글쓴이 :
아그네스
조회 : 2,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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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고리예에서 회개한
낙태 의사
야콥 마쉬너
번역: 신미라 요세피나
(평화의 모후 사도회, 『평화 MIR』 편집위원)
존 부루칼스키는 과달루페와 메주고리예를 방문한 것이 회개하게
된 큰 계기였습니다. 일상적으로 낙태시술을 하던 이
의사는 미국에서도 매우 큰 생명존중 병원을 세우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을 활용한 새롭고 건강한
의술을 펴고 있습니다.
자신의‘고객’을 안고 있는 존 브루칼스키 의사. 많은 낙태시술을 행하던 그는
과달루페와 메주고리예를 방문한 후 이를 멈추고 완전히 새 삶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씨앗: 1531년 동정 마리아 성모님이 발현했던 과달루페에 뿌려졌던 것, 동정 마리아가 현재 발현 중인 메주고리예에서 결실을 맺기 위해 뿌려진 것이었습니다. 버지니아주 태생인 50세 미국 의사인 존 브루칼스키은 일상적으로 낙태시술을 행하다 의술에 대해 전혀 입장이 바뀌어 이제 잘 나가는 생명존중 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지만 존 브루칼스키는 집을 떠나 가톨릭 대학에 입학하면서 신앙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고 LifeSiteNews에 얘기합니다. 거기서 문화에 따라 가톨릭 교회는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교수와 친구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가톨릭의 결혼, 이혼, 낙태, 피임에 대한 가르침은 결국 현대 문화 가치관에 순응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존 브루칼스키가 1983년 사우스 알라바마 대학 의대에 입학했을 무렵 그는 피임과 낙태를 “여성의 생식을 위한 건강과 행복과 온전함을 증진시키는 방법”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최고의 부인과 의사가 되고자 그는 다양한 낙태, 불임법, 인공수정을 공부했고 레지던트를 하면서 그러한 시술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낙태를 하는 악이 낙태가 원하지 않은 임신의 스트레스를 주는 악보다는 나은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낙태시술을 했지만 수술 후 사람들이 정말 더 무너지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임신이라는 스트레스와 압박에서 잠시 벗어날 수는 있지만 낙태 후 대부분의 상대와는 관계가 끝나 버렸습니다,”라고 존 브루칼스키는 말합니다.
과달루페 및 메주고리예의 메시지
메주고리예에서
브루칼스키
레지던트 하기 직전 존 브루칼스키는 친구의
설득으로 교회가 인정한 1531년에 동정
마리아가 발현한 멕시코 시티에 가게 되었습니다. 브루칼스키는 천주교인들이 태어나지 못한 아기들의 수호성인이라고
받드는 과달루페의 성모님이 “너는 왜 나를 아프게 하느냐?”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는 거기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얘긴 그냥 마음 한 쪽에 접어두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년 후 존 브루칼스키의 어머니는 레지던트2년차와 3년차 중간 무렵 그를 메주고리예 순례에 데리고 갔습니다.
부모님이 그가 어렸을 때 심어주었던 예수님과 성모님에 대한 큰 사랑을 다시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시 돌아오라는 간단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거기서 생명존중을 위해 기도하고
있던 벨기에에서 온 젊은 여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모님이 나를 위해 보낸 메시지를 갖고 있다고 하면서
나의 삶에 관한 얘기를 저에게 하기 시작했습니다.”라고 존 브루칼스키는 회상합니다. “그것으로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의술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갖게
되었고, 더 이상 낙태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생명존중 모임에서 연설하는 존 브루칼스키 의사
미국에서 존 브루칼스키는 자신이 선택한 전문분야에서
자신이 재발견한 신앙을 적용할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우선 또 다른 중요한 경험을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내 자신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저의 인생 전체가 제 앞에 지나갔다고나 할까요? 뿐만 아니라 의술을 펼 더 나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사실 보게 되었습니다,” 라고 존 브루칼스키는
라이프사이트뉴스에 얘기했습니다. “그런 생식 건강법은 가족계획연맹에서 하는 말과는 반대였습니다.
성모님은 제가 할 역할이 그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담당 교수에게 더 이상 낙태나 불임술을 할 수 없다고 얘기했지만1년이 지나서야 완전히 그런 시술에서 손을 뗄 수 있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몸의 신학”을 여러 해 연구한 다음
존 브루칼스키는 자신의 의술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펴고자 1994년에 아내와 자신의 집 지하실에서 테페약
패밀리 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이제 이 산부인과 병원은 생명존중 의사 6명과 간호사 한 명을 고용하게 되었고 미국에서 매우 큰 독자적인 생명존중 병원이 되었습니다. 가톨릭 의료 비전을 바탕으로 이 센터는 여성의 자연적인 사이클 리듬과 인간생명의 신성함을 존중하는 건강의술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피임 대신 자연적인 가족계획을 지원하고, 불임의 경우 실험실 수정 같은 기술을 사용하기
보다 근본적인 불임원인 치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은 “혁신”적이고, 의료에서도 그렇습니다
존
브루칼스키의 생명존중 의술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저술한 “몸의 신학”
테페약 패밀리 센터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몸의 신학의 실행을 특히 강조하고 있으며
브루찰스키 의사는 이것이 “인간관계, 의료, 가족에게 획기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의료에서 “몸의 신학”이란 자신의 몸에 협조하고 몸을 억누르지 말라는 뜻입니다. 질병이 아니라 건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욕망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질환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제품처럼 치료하는 게 아닙니다. 최상의 테크닉으로
최고로 건강한 아기를 만들기 위해 최고의 의사를 찾아가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제품이 아니고 인간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존 브루칼스키 의사는 말합니다. “우리는 종교적이고
인간학적인 <몸의 신학>을 의학과 과학적인 용어와 언어로
변환하는 방법을 이제 개발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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