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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는 축복도 받지 않은 채 분주하게 움직이고 일하며 모아들이고 있다. 너희는 기도하지 않고 있다! 오늘 나는, 구유 앞에 멈추어 내가 너희에게 낳아주는 예수님에 대해 묵상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또한 나는 너희를 축복하고, 그분이 없으면 너희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너희를 부른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그분께서 너희를 인도하시고 모든 악에서 지켜 주시도록 너희 삶을 예수님 손에 맡겨드려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는 축복도 받지 않은 채 분주하게 움직이고 일하며 모아들이고 있다. 너희는 기도하지 않고 있다. 

2005년 7월 25일 메시지에서 성모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너희의 하루를 짧고 열렬한 기도로 가득 채우라고 너희를 부른다. 기도할 때, 너희의 마음이 열리고, 하느님께서 너희를 특별히 사랑하시며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모님 말씀대로 우리의 하루를 짧고 열렬한 기도로 가득 채운다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서도 하느님께 마음을 드릴 수 있고, 일하는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으며 모아 들이는 가운데서도 탐욕에 빠지지 않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의 열쇠는 기도입니다. 기도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은 하느님께 열리게 되고, 하느님은 당신의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힘을 더 이상 믿지 않고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진정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오직 하느님의 힘, 그분의 축복에 자신을 온전히 의탁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힘의 원천은 하느님이십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시편 저자의 말씀을 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집을 지어 주지 않으시면 그 짓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리라. 주님께서 성읍을 지켜 주시 않으시면 그 지키는 이의 파수가 헛되리라.”(시편 127,1) 

오늘 나는, 구유 앞에 멈추어 내가 너희에게 낳아주는 예수님에 대해 묵상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또한 나는 너희를 축복하고, 그분이 없으면 너희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너희를 부른다. 

성모님 말씀대로 우리가 구유 앞에 멈추어 아기 예수님에 대해 묵상하게 되면 먼저 하느님의 겸손하신 사랑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그것도 우리처럼 아기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분의 위대한 겸손과 우리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합쳐진 그분의 겸손하신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그러한 하느님의 모습에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을 섬기기 위해 가난하고 연약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5-28)     
     마지막으로 우리가 우리의 주님이시며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우리 삶의 어느 자리에 모셔야 하는지 묵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11)고 한 요한 복음사가의 말처럼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인류의 냉대와 거부로 인해 동굴에서 태어나시고, 말구유에 눕혀지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즉 말구유는 인간으로 탄생하시는 구세주 하느님께 대한 인류의 배척과 거부의 상징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인류는 아기 예수님께서 누워 계신 말구유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분께서 더 이상 구유에 뉘어지지 않으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분을 거부하고 배척했던 죄를 뉘우치고, 그분을 삶의 가장 좋은 자리, 첫 자리에 모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에 진정한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그분께서 너희를 인도하시고 모든 악에서 지켜 주시도록 너희 삶을 예수님 손에 맡겨드려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어린 아기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오직 엄마가 이끄는 대로 자신을 내맡깁니다. 우리의 삶을 예수님 손에 맡겨드리기 위해 우리는 정말 작은 아기들처럼 되어야 합니다. 또한 그러기 위해 엄마를 신뢰하는 아기처럼 예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라고 말씀하시며 아버지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맡기셨던 예수님을 본받아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께 “예수님, 저희 삶을 당신 손에 맡겨드립니다.”라고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예수님, 지극히 겸손한 모습으로 저희 가운데 탄생하신 구세주이신 당신을 흠숭합니다. 예수님, 저희와 함께 하시는 당신의 현존에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 저희와 세상을 사랑하시어 인간이 되어 오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수님, 저를 비롯한 온 인류가 당신의 참된 겸손을 본받게 하소서. 또 그 길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소서. 예수님, 저는 어머니 마리아의 말씀대로 당신 손에 제 삶을 맡겨드리오니 선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모든 악으로부터 지켜주시며 축복하여 주소서. 

성모님, 저희에게 구세주 예수님을 낳아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작은 아기처럼 저희 자신을 어머니께 맡겨드리오니 저희를 세상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소서.
   
 
 
2008년 11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이 은총의 시기에 아기 예수님께서 너희 마음 안에 태어나시도록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평화 그 자체이신 그분께서 너희를 통해 온 세상에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평화가 없는 이 세상, 동요하고 있는 이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함으로써, 너희가 모든 사람에게 평화를 증거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너희 마음을 통하여 희망이 은총의 강물처럼 흘러넘치기를 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이 은총의 시기에 아기 예수님께서 너희 마음 안에 태어나시도록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평화 그 자체이신 그분께서 너희를 통해 온 세상에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예수님의 성탄이 아직 한 달 이상 남았어도 세상은 벌써 크리스마스의 열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각종 성탄 행사와 선물 준비에 바쁘고, 캐롤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있습니다. 구세주 아기 예수님의 탄생 그 자체를 말입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단순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성탄절의 핵심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나는 아기 예수님께서 너희 마음 안에 태어나시도록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성모님의 부르심처럼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다시 태어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은 우리 마음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성모님께서 기도하고 계실 때,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 받으신 것처럼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은 우리 마음 안에 태어나십니다. 오직 하느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구세주의 오심을 위해 기도할 때, 예수님은 우리 마음 안에 태어나 더욱 좋은 갈망들을 불러 일으켜 주십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탄생하시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이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던 말구유처럼 가난해야 합니다. 오직 하느님만을 갈망하는 마음 안에 그분은 새로이 탄생하십니다. 오시는 그분을 맞아들이기 위해 마음을 활짝 열고 있는 사람에게만 그분은 오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             
     예수님은 평화 그 자체이고,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 안에 모시고 있으면, 우리는 평화 그 자체를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평화는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평화는 온 세상 사람들이 함께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평화 그 자체이신 그분께서 너희를 통해 온 세상에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우리 마음에 임하신 평화는 우리를 통해 우리 가족들, 이웃들, 그리고 온 세상에 전해져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깁시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평화가 없는 이 세상, 동요하고 있는 이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함으로써, 너희가 모든 사람에게 평화를 증거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너희 마음을 통하여 희망이 은총의 강물처럼 흘러넘치기를 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제 책상 앞 벽에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적혀 있는 상본이 붙어 있습니다: “아무것도 당신을 어지럽게 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 어느 것에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인내함으로써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모신 사람은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음을 압니다. 하느님만으로 충분합니다.” 
     이 세상이 평화가 없는 이유는 사라져가고 있는 사물들에 집착하고, 하느님을 모시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동요하고 있습니다. 미국 월 스트리트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현재와 미래의 경제적 번영과 안전에 대한 걱정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사실, 경제적 위기보다 더 심각한 위기가 온 세상을 덮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 위기입니다.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걱정해야 할 것은 이 세상이 더 이상 하느님을 찾지 않고, 하느님 대신 다른 것을 그 자리에 앉힘으로써 점점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영적 위기 상황을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없는 문명을 건설하려고 애쓰는 인류의 모습은 마치 단 한 차례의 파도가 밀려오면 무너지고 말 모래성을 해변에 지어놓고 기뻐하는 어린 아이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인류는 더 이상 생명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느님을 찾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인류는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인류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성모님은 단순해 보이지만 가장 강력한 도구를 제시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평화가 없는 이 세상, 동요하고 있는 이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함으로써, 너희가 모든 사람에게 평화를 증거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모든 운명을 맡긴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사명은 그 믿음으로 세상 사람들이 평화와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모셔 들일 수 있도록 끊임없는 기도로써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열어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져 가지만 하느님은 변함이 없으시고, 우리마음이 진정으로 희망하는 것을 이루어주십니다. 참된 평화와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마음에 모신 사람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절대로 실망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로마 12,12) 

예수님, 당신은 평화 그 자체이시고, 저희 평화의 근원이시오니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저희 마음, 가정, 교회 그리고 온 세상에 당신의 평화를 주소서.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오니 저희 마음 안에 태어나시어 당신의 평화로 저희 모든 삶을 다스려 주소서.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 평화가 없는 이 세상, 동요하고 있는 이 세상이 당신을 하느님으로 알아 뵈옵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삶의 첫 자리에 모심으로써 참된 평화를 찾아 얻어 누리게 하소서.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 당신께서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낳아주셨듯이, 이제는 저희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해주는 사람들이 되게 해주소서. 그러기 위해 저희 마음 안에 예수님이 태어나실 수 있도록 저희가 먼저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008년 10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특별히 내 지향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매일매일 이 세상을 하느님에게서 더 멀어지게 하고, 하느님 자리에 세상을 대신 앉히며, 너희 각자의 영혼 안에 있는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는 사탄의 계획을 너희의 기도를 통해 멈추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기도와 단식으로 너희 자신을 무장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하느님께서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되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에 옮기게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특별히 내 지향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1973년부터 1997년까지 스테파노 곱비 신부에게 주신 당신의 메시지 모음집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 사제들에게』에서 성모님은 당신에게 ‘지도자’ 혹은 ‘사령관’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모님 말씀대로 그분은 우리의 지도자요 사령관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참 지도자, 참 사령관이 되시도록 우리는 그분이 어떤 지향을 가지고 계시는지 잘 알아야 하고, 철저하게 그 지향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의 지도자요 사령관이신 성모님께서는 이번 달 메시지에서 우리에게 당신의 지향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럼 성모님이 구체적으로 지향하시는 바가 무엇일까? 이를 알기 위해 메주고리예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신 둘째 날인 1981년 6월 25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여섯 명의 발현목격증인들은 발현산에서 성모님을 뵈었고,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수 천명의 사람들은 발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알기 위해 아이들의 옷을 끌어 당겼습니다. 그로 인해 여섯 명의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마리야는 홀로 발현산을 내려오다가 신비스러운 힘에 이끌려 다시금 이전 발현 장소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그 때 성모님께서 고상이 없는 십자가 앞에 나타나시어 눈물을 흘리시며 다음과 같이 애원하셨습니다: “평화, 평화, 평화! 오직 평화만이! 화해하여라.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기를!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평화가 있기를!” 이 말씀을 통해 성모님은 당신이 어떤 지향으로 이 세상에 오셨는지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평화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평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발현과 메시지를 통해 성모님은 우리가 그 평화를 이루기 기도하고 회개하며 단식하고 굳은 믿음을 지니도록 가르치고 계십니다.      
     평화의 모후께서는 모든 인류가 하느님과 화해하고, 서로 화해하는 가운데 평화를 찾고 구원의 길로 가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또한 그 메시지를 먼저 전해들은 우리가 당신을 도와 모든 인류를 평화와 구원의 길로 이끄는데 헌신하기를 바라십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는 우리가 당신의 지향들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특별한 방법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 부르심에 구체적으로 응답하기 위해 제가 아는 어떤 분이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지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분은 하루에 적어도 묵주기도 20단을 바치는 분입니다. 그분은 요일에 상관없이 환희의 신비로부터 하루의 묵주기도를 시작하는데 환희의 기도를 바칠 때는 ‘세상과 모든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빛의 신비를 바칠 때는 ‘교회의 쇄신과 성직자, 수도자들의 성화’를 위해서, 고통의 신비를 바칠 때는 ‘모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광의 신비를 바칠 때는 자신과 관련된 공동체와 가족들 그리고 친지들의 안녕과 평화를 지향으로 기도합니다. 하나의 예지만 성모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묵주기도,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가장 효과적인 무기인 그 기도를 바치면서 성모님의 지향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줍니다. 우리 자신이나 우리 가족 혹은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그 무엇을 얻기 위한 지향이 아니라 성모님께서 원하시고, 곧 하늘에서 원하시는 지향이 언제나 우리 기도 지향의 첫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매일매일 이 세상을 하느님에게서 더 멀어지게 하고, 하느님 자리에 세상을 대신 앉히며, 너희 각자의 영혼 안에 있는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는 사탄의 계획을 너희의 기도를 통해 멈추게 할 수 있다. 

비록 우리 눈에 직접 보이지 않을지라도 성모님 말씀대로 사탄은 갖가지 교묘한 계획으로 이 세상을 파괴하고, 우리를 멸망으로 이끌기 위해 힘차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 현 시대에 무슨 사탄이 존재하냐고 말하면서 그 존재를 믿으려고 하지 않지만, 사탄의 가장 큰 술책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1982년 성모님께서 발현목격증인 미리야나의 체험을 통해서도 보여주셨듯이 분명히 사탄은 존재하고, 지금은 사탄이 마구 판을 치는 세기입니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만을 위해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와 갖가지 쾌락을 탐하고, 쉽게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거짓 우상들을 하느님 대신 섬기게 만듭니다. 그는 또한 사람들 마음에 무신론과 불신 그리고 증오의 씨앗을 심어 사람들의 영혼을 파괴합니다. 그 모든 것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가장 무력하고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가장 강력하고 능동적인 행위인 기도, 성모님께서 원하시는 지향들을 담아 바치는 그 기도를 통해서 사탄의 계획을 멈추게 할 수 있다고 성모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기도와 단식으로 너희 자신을 무장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하느님께서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되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에 옮기게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께서는 “‘기도와 단식으로 너희 자신을 무장하여라.”라는 말씀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기가 영적 전쟁의 시기라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지금은 묵시록 12장에서 암시되고 있는 것처럼 성모님과 그분의 군대 그리고 사탄과 그의 군대 사이의 전쟁이 한참 진행되고 있는 때입니다. 사령관이신 성모님께서는 당신 군대의 병사인 우리들에게 기도와 단식으로 무장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기도와 단식은 우리가 악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며 동시에 무한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분의 뜻을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입니다. 명령은 실행에 옮길 때, 그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제 성모님의 명령을 들었으니 그 말씀을 실행에 옮길 차례입니다. 예수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당신의 말씀에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저는 기도하지 않을 때, 사탄이 제 마음과 삶에 교묘하게 파고들어 저를 유혹하고 죄에 짓게 하며 당신을 멀리하도록 만든다는 것을 매일의 일상에서 체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40일 동안 광야에서 기도하고 단식하시면서 그 힘으로 사탄의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하신 당신을 본받게 하소서. 

성모님, 저는 당신의 지향들을 저의 모든 기도에 담고 싶습니다. 저의 기도를 받으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들을 이루소서. 그리하여 모든 인류를 저희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님께로 이끄소서. 제가 당신을 도와 인류 구원을 위해 힘쓸 수 있도록 초대해주시니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평화의 모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2008년 9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다시 한 번 평화를 위해 살기로 결심하여라. 기쁘게 평화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하느님께서 나의 현존을 통해서 너희에게 주시는 크신 은총, 바로 그 은총의 시간 속에서 너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어린 자녀들아, 너희에게 주어지는 은총을 거부하지 말고 이 시간을 잘 활용하며,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평화와 사랑의 은총을 구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다른 이들에게 증거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나는 어머니로서 너희를 축복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다시 한 번 평화를 위해 살기로 결심하여라.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다시 한 번 평화를 위해 살기로 결심하여라.’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를 다시금 평화로 초대하십니다. 평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화를 선택하고, 그것을 살기로 결심하며 실행에 옮길 때,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하느님께서 평화의 근원이시기에, 평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곧 하느님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하느님을 우리 삶의 첫 자리에 모시고, 하느님께 우리의 마음과 삶을 온전히 드리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행할 때, 우리는 평화를 선택하는 것이고, 평화는 우리를 찾아옵니다.          
     ‘다시 한 번 평화를 위해 살기로 결심하기를 바란다.’고 하신 성모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며 우셨던 장면을 소개하는 루카 복음 19장 41-44절을 함께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 15)라는 말씀에서 드러나듯이, 회개였습니다. 마음과 삶, 그리고 존재 전체가 하느님께로 완전히 돌아서는 회개, 피조물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만을 섬기는 행위인 회개,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회개, 인간적인 수단이나 힘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에 온전히 삶을 내맡길 줄 하는 회개,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보여주셨고, 사람들이 평화를 누리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회개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실패를 성공을 위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게 평화에 이르는 길을 알려주셨지만, 그 도성은 그 길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대로 A.D. 70년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을 당신의 메신저로 이 땅에 보내심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선택하고 구원의 길로 걸어가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평화의 사도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집에 평화를 빌어주라.”고 말씀하셨고,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쁘게 평화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하느님께서 나의 현존을 통해서 너희에게 주시는 크신 은총, 바로 그 은총의 시간 속에서 너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어린 자녀들아, 너희에게 주어지는 은총을 거부하지 말고 이 시간을 잘 활용하며,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평화와 사랑의 은총을 구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다른 이들에게 증거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나는 어머니로서 너희를 축복한다.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평화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 살아 존재하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이 땅에 왔다.”고 말씀하신 평화의 모후 메주고리예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하느님 평화의 사도로 부르십니다. 평화의 모후께서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평화의 전달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써 우리를 평화의 근원이신 당신께로 초대하십니다. 성모님의 발현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는 은총의 표지, 아니 은총 자체입니다. 성모님 메시지대로 지금 우리는 성모님의 발현이 계속되고 있는 은총의 시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마련인 것처럼 1981년 메주고리예에서 시작된 성모님의 발현도 언젠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발현이 될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이 언제 끝날지 전혀 알려진 바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그 때가 그리 멀지 않았음을 예견할 수 있습니다. 이 은총의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매일 성모님의 메시지를 매일 읽고 묵상하고 실천에 옮기며 우리의 모범적인 삶으로 그 메시지가 다른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에게 주어지는 은총을 거부하지 말고, 이 시간을 잘 활용하며,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평화와 사랑의 은총을 구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다른 이들에게 증거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예수님, 당신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당신을 따르는 사람은 결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을 죄와 어둠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보내주시어 저희에게 생명의 빛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시니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 성모님께서 저희와 함께 하시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크신 은총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당신의 성령을 보내주소서. 

성모님, 당신이 저희와 함께 머무르시는 동안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의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저희가 당신의 손과 발이 되고자 하오니 저희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당신의 현존과 축복에 감사 드립니다.
   
 
 
2008년 8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너희 각자가 회개하도록 너희를 부른다. 회개하고, 너희 목숨을 다해 증거하며 사랑하고 용서하여라. 또한 너희는 내 아들이 죽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속에서 그분을 발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이 세상에, 부활하신 그분의 기쁨을 가져다주어라. 그분을 흠숭하여라. 그러면 너희의 희망이 예수님을 모시지 못한 이들의 마음에 희망이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너희 각자가 회개하도록 너희를 부른다. 

그 동안 성모님께서 수없이 회개에 관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도 역시 성모님은 우리 각자가 회개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왜 메주고리예 성모님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들을 새삼스럽게 메시지로 주고 계시는 걸까?”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메시지를 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인들이 남들이 평범하게 여기는 것을 마음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특별한 방법으로 실천함으로써 성덕에 이른 것처럼 평범하게 보이는 성모님 메시지를 진정으로 깊이 묵상하고, 실천에 옮긴다면, 그 결과는 아주 다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예수님은 회개를 하느님 나라와 연관 지으셨습니다. 죄를 끊어버리고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삶을 개혁한 사람, 마음을 온전히 하느님께 드리는 사람이 회개한 사람입니다. 회개하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고 하느님을 뵈올 수 있습니다. 하느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생명과 구원을 주시는 분이시기에 회개는 우리에게 있어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살려면 바로 지금 당장 회개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 메시지 곳곳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봄에 피었다 금방 시들어버리는 꽃처럼 그렇게 짧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집은 천국에 있고,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 함께 살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고 계시다고 말씀하셨고, 우리에게 그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첫 번째 과정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리고 회개의 첫 번째 단계는 우리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그 죄를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회개의 구체적인 외적 표지는 고해성사를 보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서방 세계가 구원되기 위해서는 서방 세계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봐야 하고, 우리 모두가 적어도 매월 한 번 고해성사를 봐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개인비서였던 폴란드 크라코프 대교구장 드즈위츠 추기경의 『A Life with Karol 카롤과 함께 한 삶』을 읽고 있는데 그 책에서 돌아가신 교황님께서 매주 고해성사를 보셨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요한 바오로 2세처럼 매주는 아닐망정 매월 정기적인 고해성사를 봄으로써 우리가 회개했다는 증거를 외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습니다. 고해성사를 정기적으로 보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있고, 하느님 앞에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분의 용서와 자비를 바라는 사람이기 때문에 회개한 사람입니다. 말로는 회개했다고 하면서 고해성사를 보지 않는 사람은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회개하고, 너희 목숨을 다해 증거하고 사랑하며 용서하여라. 또한 내 아들이 죽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속에서 그분을 발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이 세상에, 부활하신 그분의 기쁨을 가져다주어라. 

회개한 사람은 목숨보다 소중한 하느님 나라, 하느님, 그분의 생명과 구원을 발견한 사람이기 때문에, 진정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의 삶이나 재물, 심지어 자신의 목숨도 아닙니다. 그에게는 하느님과 그분의 뜻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 계속되는 천국이 중요합니다. 그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고, 실제로 목숨을 바치기도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목숨을 다해 우리가 완전히 회개하여 하느님의 사람, 하느님의 뜻만을 실천하고 증거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표징이 이웃에 대한 사랑과 용서로 드러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했다는 또 다른 외적 표지는 이웃 사랑과 용서입니다. 회개한 사람은 무한히 자비하신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체험하기 때문에 그 힘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가 참된 회개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2천 년 전 하느님이신 우리의 주님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 되시어 이 땅에 오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분이 우리의 죄를 없애주기 위해 당신 자신을 속죄와 희생의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목숨을 다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의 죄를 속죄하며 용서하고자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그분의 피가 흘려지고, 바로 이 땅에서 그분의 생명이 사랑과 용서의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또 그분의 그 희생 제사가 매일 미사성제를 통하여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그분이 생명과 구원의 주님으로 우리 가운데 현존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찾지 않고, 자신의 삶 속에서 함께 하시는 그분을 발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들이 우리를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 늘 우리 가운데 살아계시는 생명과 구원의 주님, 사랑과 용서의 하느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제를 통하여 매 미사 때마다 항상 바로 당신이 돌아가셨던 그 세상으로 우리를 파견하십니다. 당신 사랑과 용서의 사도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십니다. 회개한 우리의 삶, 증거하고 사랑하며 용서하는 우리의 삶, 오직 예수님께만 모든 희망을 둔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발견하도록 우리를 파견하십니다. 

그분을 흠숭하여라. 그러면 너희의 희망이 예수님을 모시지 못한 이들의 마음에 희망이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은 언제나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이 언제나 우리 삶의 중심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우리 마음의 첫 자리를 차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늘 우리가 성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흠숭하도록 요청하십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늘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는 분이라면 우리는 그분과 단 1초라도 떨어져 있기를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성체 앞에 앉아 아무런 바람도 없이 그저 “예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수님, 당신을 믿습니다. 예수님, 당신을 흠숭합니다.”라고 계속해서 말씀 드리면서 우리의 마음을 드린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세상 안에서 일상의 삶을 살아가야 하기에 그렇게 할 수 없는 우리에게 프란치스코 성인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다음과 같은 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예수님을 흠숭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의 거룩한 십자가로써 세상을 구속하셨사오니 저희는 여기와 전 세계에 있는 당신의 성당에서 주님을 흠숭하며 찬양하나이다.
   
 
 
2008년 7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가 육신의 휴식을 생각하고 있는 이때에, 나는 회개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너희 마음이 너희 영혼과 몸에 참된 휴식을 주시는 창조주 하느님을 갈망하도록 기도하고 일하여라. 그분께서 너희에게 그분의 얼굴을 보여 주시고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하느님 앞에서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가 육신의 휴식을 생각하고 있는 이때에, 나는 회개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무더운 한 여름, 사람들은 일손을 놓고 휴가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바다로, 산으로 혹은 해외로 휴가를 떠나려고 하는 때입니다. 매년 이 맘 때가 되면 늘 해오던 일이라, 그에 익숙한 우리에게 성모님은 색다른 제안을 하십니다. 육신의 휴식을 위한 휴가가 아니라 회개하라고 성모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휴가를 막으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휴가를 가지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느님 없는 인간적인 편안함과 휴식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그분 안에서 참된 자유와 쉼을 누릴 수 있는 회개의 여행을 떠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제가 메주고리예 첫 순례를 갔을 때, 인상적이었던 한 장면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묵주기도 15단과 미사, 치유예절 그리고 성시간으로 이어지는 저녁 기도 프로그램에 함께 한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가족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빠와 엄마 그리고 어린 아들과 딸이 매일 저녁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세 시간 동안 함께 서서 너무도 기쁜 표정으로 저녁 기도 프로그램에 참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함께 기도하고 예수님을 경배하면서 회개의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모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 오늘 나는, 너희 자신의 마음을 위해 일하기 시작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이제 들일이 다 끝나, 가장 돌보지 않던 곳까지 깨끗이 치울 시간은 있으면서도, 너희 마음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너희 마음 구석구석을 사랑으로 깨끗하게 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1985년 10월 17일) 지금은 우리의 육신의 휴식보다 우리 육신과 영혼에 참된 휴식을 주시는 하느님을 찾아 믿음과 기도가 바탕이 된 회개의 여행을 떠나야 하는 때입니다.  

너희 마음이 너희 영혼과 몸에 참된 휴식을 주시는 창조주 하느님을 갈망하도록 기도하고 일하여라. 그분께서 너희에게 그분의 얼굴을 보여 주시고,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그의 『고백록』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하느님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마음은 그분 안에서 쉬기 전까지는 늘 착잡하기만 합니다.” 성인의 말씀처럼 우리는 창조주 하느님의 피조물이기에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 안에서 쉬기 전까지는 착잡하고 불안하기만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 드리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는 참된 평화와 휴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은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1)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고생을 하고 있는지 어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그런 우리를 향해 당신에게 오라고 초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육신과 영혼을 달래기 위해 하느님 없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당신께로게 오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 모두 사랑의 선교회를 창설한 인도 캘커타의 성녀 마더 데레사를 알고 있습니다. 한 기자가 마더 데레사에게 물었습니다. “수녀님, 수녀님과 다른 수녀님들은 하루 종일 거리의 걸인들과 병자들을 돌보느라 애쓰시는데 어디에서 그 힘을 얻습니까?” 마더 데레사는 대답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 저희는 성체 앞에서 한 시간 동안 기도합니다. 성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가서 우리의 고생과 짐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 드리면 그분께서는 참된 휴식과 아울러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 기도와 미사 그리고 성체조배를 통해 그분의 얼굴을 뵈옵고자 하면, 우리 마음에 평화가 샘솟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하느님 앞에서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은 우리의 참된 어머니이십니다. 육신의 어머니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우리 육신과 영혼의 참된 휴식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고, 우리가 그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성모님의 기도 속에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억되고 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마음에 품고,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을 찾아 떠나는 회개의 여행길에 오릅시다. 

예수님, 당신은 저희가 어떤 고생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지 모두 다 알고 계십니다. 당신은 저희의 고생과 짐을 덜어주고자 하십니다. 당신의 그 사랑과 연민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 당신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권고에 따라 당신의 초대에 기꺼이 응답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성체 앞으로 나아가 앉아 성모님과 함께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참된 안식을 누리고 싶습니다. 

성모님, 저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알려주시니 감사 드립니다. 당신은 저희의 참된 어머니이시기에 저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사랑으로 알려주시고, 저희를 이끌어주십니다. 어머니 마리아여,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회개하고 기도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창조주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 안에서 참된 휴식과 평화를 얻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아멘.
   
 
 
2008년 6월 25일 메시지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는 나는, 나를 따르고 내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라고 너희를 부른다. 평화가 없는 이 세상에서 평화와 사랑을 기쁘게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평화의 왕이신 내 아들 예수님과 함께 너희 모두를 축복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역시 마음에 큰 기쁨에 간직한 나는, 나를 따르고, 내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라고 너희를 부른다. 

메주고리예 발현 27주년인 오늘 성모님께서는 ‘내 마음에 큰 기쁨을 간직하고 있다.’는 말로 당신의 메시지를 시작하십니다. 성모님께서 마음에 간직하고 계신 큰 기쁨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고 한 천사 가브리엘의 인사에서 볼 수 있듯이 주님께서 성모님과 함께 하시는 데서 온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또한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루카 1,47-48)라고 노래하신 데서 알 수 있듯이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했기 때문에 온 기쁨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느님과 함께 계시면서 우리 역시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하도록 도와주기 위해 메주고리예를 통하여 이 땅에 오고 계시는 성모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고, 당신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당신을 따르고, 당신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라는 성모님의 부르심에 잘 응답하기 위해 루카 복음 1장의 예수님 탄생 예고 장면을 간단하게 묵상해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성모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나자렛 집에서 예수님 잉태를 예고 받으셨습니다. 그날도 성모님은 다른 날들과 똑같이 당신 방에서 무릎을 꿇고 양팔을 십자모형으로 가슴에 얹고 약속된 메시아를 보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성모님은 약속된 하느님의 구원과 자비를 굳게 믿으셨고, 그 구원이 모든 인류에게 미치기를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바로 그러한 상태에 있던 성모님을 찾아와서 당신이 바로 약속된 구원자 예수님을 잉태할 동정녀이심을 알려주었습니다. 이에 대해 성모님께서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성모님의 강력한 신앙 체험 이야기이기도 한 예수님 탄생 예고 이야기는 먼저 성모님께서 구원자 하느님께 대해 지니셨던 굳건한 믿음과 모든 인류에 대한 사랑 그리고 끊임없이 바치신 기도의 모습을 배우고 그 길을 따라가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또한 이 이야기를 통해서 성모님께서는 당신이 그러셨던 것처럼 주님 앞에 우리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고, 모든 것에 앞서 주님의 뜻을 먼저 찾으며,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헌신하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온 힘과 마음과 영혼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심으로써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이 보여주신 모범을 따르고, 당신을 통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평화가 없는 이 세상에서 평화와 사랑을 기쁘게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평화의 왕이신 내 아들 예수님과 함께 너희 모두를 축복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평화가 없는 이 세상’이라는 표현으로 성모님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상황이 어떠한지 단적으로 드러내십니다. 세상에 평화가 없다는 것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가정에 또한 평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세상에 평화가 없다고 탄식하시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평화의 도구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우리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 몫이 아주 작아 보일지라도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평화의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성모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우리는 평화가 없는 이 세상에서 평화와 그 열매인 사랑을 기쁘게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평화와 사랑을 기쁘게 전하는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평화와 사랑의 원천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야 하고, 우리가 그분과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지 있지 않다면, 우리 안에 평화와 사랑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평화와 사랑을 전해주는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당신 몸에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고 엘리사벳을 찾아갔던 성모님처럼 우리도 우리 마음 안에 평화의 왕이시고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모든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평화와 사랑을 기쁘게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먼저 우리 마음과 가정에 평화를 심고,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평화를 빌어주어야 합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께서는 평화의 왕이신 당신의 아들 예수님과 함께 우리 모두를 축복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축복을 통하여 예수님의 평화와 성모님의 사랑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머뭅니다. 그리고 그 사도가 된 우리를 통해서 이웃에게 전해집니다.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다른 이들에게도 나누어줍시다. 말로, 혹은 마음으로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기도 중에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 그 가정을 축복해주시도록 기도합시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다음 말씀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창세 12, 2) 

주님, 당신을 제 안에 모시고 사는 것이 저의 가장 큰 기쁨이 되게 해주십시오. 오직 당신만이 저의 구원이시고, 저의 모든 것입니다. 당신께서 늘 저와 함께 하심을 깨닫기 위해 성모님처럼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기도가 기쁨이 될 때까지 기도하게 하소서. 

성모님, 저를 당신 평화와 사랑의 사도로 불러주신 은총에 감사 드립니다. 당신 부르심에 응답하여 먼저 제 마음 안에 평화와 사랑을 심겠습니다. 저의 말과 행동을 통해 제 가족들과 이웃에게 평화와 사랑을 기쁘게 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당신과 예수님의 축복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2008년 5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이 은총의 시기에, 나는 회개하라고 또 다시 너희를 부른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 특별한 방법으로 세상의 구원을 위해 힘써라. 하느님은 자비로우시고 특별한 은총을 주시는 분이시니, 기도를 통해서 그분의 자비와 은총을 구하여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어린 자녀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 이 은총의 시기에, 나는 회개하라고 또 다시 너희를 부른다. 

성모님께서는 우리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 어린 자녀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이 간단하고 짧은 호칭을 통해 성모님은 우리에 대한 당신의 관계를 분명하게 드러내십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어머니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입니다. 인종과 종교를 불문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그분의 자녀들입니다. 성모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향해 ‘사랑하는 자녀들아! 어린 자녀들아,’ 하고 외치십니다. 성모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어머니이십니다. 비록 그 사랑을 누구나 다 받아들이거나 느끼는 것은 아닐지라도, 성모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심지어 당신을 거부하고 박해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하십니다. 어머니의 사랑에서 제외되는 자녀는 아무도 없습니다. 성모님은 또한 우리를 당신의 어린 자녀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우리는 성모님의 아들과 딸들입니다. 비록 몸은 어른이 되었다 하더라도 영적으로 우리는 여전히 어린 아이들이기에 우리의 천상 영적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도움과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갖가지 시대의 징표들을 보면서도 눈먼 소경처럼 그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위험과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인류에게 성모님의 현존과 인도는 참으로 큰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 우리의 진정한 어머니이신 성모님이 계시고, 하느님께서 천상 어머니를 계속 우리들 가운데 보내주고 계심에 진심으로 감사 드려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시어 함께 하도록 하신 것은 우리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성모님은 우리 모두가 회개하여 구원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있도록 허락해주신 이 은총의 시기에, 나는 회개하라고 또 다시 너희를 부른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 특별한 방법으로 세상의 구원을 위해 힘써라. 하느님은 자비로우시고 특별한 은총을 주시는 분이시니, 기도를 통해 그분의 자비와 은총을 구하여라. 

우리는 보통 우리 자신이나 우리 가족의 안녕과 구원만을 위해 힘쓰고 기도하기 일쑤입니다. 그러한 우리를 향해 성모님께서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가족의 구원을 넘어서서 세상 만민의 구원을 위해 힘쓰는 사람의 모습은 하느님과 성모님의 모습을 닮은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몸소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고, 당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바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도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목숨을 바치기까지 순명 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세상의 구원을 위해 힘쓰라고 말씀하시는데 어떤 방법이 특별한 방법이겠습니까? 평범한 것 같지만 아주 특별한 두 가지 방법입니다. 바로 기도와 모범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함께 하도록 기도하고, 우리 자신이 그분의 자비와 은총을 다른 이들에게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44-48)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은 우리의 참된 어머니이시기에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가 위험에 처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고 하신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참으로 든든하게 만들어줍니다. 우리는 고아들처럼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어머니 품 안에 그리고 그분의 망토 아래 보호되고 있는 소중한 그분의 자녀들입니다.
   
 
 
2008년 4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따뜻한 봄기운을 느끼는 꽃과 같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성장하라고 너희 모두를 부른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또한 이렇게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성장하여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가져다주어라.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께서 너희 삶에서 만나게 하신 이들에게 선을 행하며 빛과 기쁨이 되어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따뜻한 봄기운을 느끼는 꽃과 같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성장하라고 너희 모두를 부른다.

겨우내 모든 잎을 떨구어냈던 나무에서 새싹이 돋아 잎이 나고 꽃이 피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주신 따뜻한 봄기운의 위대함을 강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무뿐만 아니라 작은 들꽃과 풀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그 기운에 자신을 맡기지 않고서는 절대로 자라거나 생명을 부지할 수 없음을 묵상하면서 우리 창조주,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께 철저히 나 자신을 맡겨드리자는 다짐도 해보았습니다. 시편저자는 말합니다: “주님께서 집을 지어 주지 않으시면 그 짓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리라.” (시편 127,1)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따뜻한 봄기운을 느끼는 꽃과 같이’라는 표현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철저하게 의탁하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또한 하느님의 힘과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비운 그 자리에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하기를 바라십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기에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없으면, 인간은 자신 안에 생명을 간직할 수 없고, 성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살게 만들고 끊임없이 성장하도록 만드는 것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으로 세상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식을 하든 못하든 그 사랑은 모든 피조물과 인간을 여전히 성장시키고 살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생명과 성장의 양식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또한 이렇게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성장하여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가져다주어라.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주고, 희생하며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기운으로 핀 봄꽃들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그렇듯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성장하여 아름다운 영혼의 꽃을 피운 사람들, 하느님처럼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 사랑의 아름다움을 체험하게 만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내리사랑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야 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 13,34-35) 먼저 우리 안에 생명을 주고 아낌없이 내어주는 하느님의 사랑을 지니고 그 사랑을 실천하면,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없고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날 수 없기에 성모님께서는 “너희는 또한 이렇게 하느님의 사랑으로 성장하여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가져다 주어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아무에게도 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께서 너희 삶에서 만나게 하신 이들에게 선을 행하며 빛과 기쁨이 되어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성장하라고 말씀하신 성모님께서는 이어서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을 찾으라고 권고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성장하고 그 사랑을 마음 깊이 체험한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어주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께서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으셨습니다. 우리의 주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마태 26,39)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의 뜻보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찾으시고,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기도와 희생입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 잉태 예고를 받으시던 순간 성모님은 깊은 기도에 잠겨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성모님과 예수님은 기도 중에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뜻에 자신들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두 분이 받아들이신 하느님의 뜻은 자신들을 희생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고난과 박해, 수고와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서 만나게 해주신 이들에게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너무도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사랑과 친절을 베풀기도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나를 미워하거나 적대시하거나 배신하며 상처를 주고 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때로는 심한 공격과 박해를 가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심지어 이러한 사람들에게까지도 선을 행해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성모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자연스럽게 상기시켜줍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 44-48)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빛이 되고, 기쁨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빛 그 자체이시고 참된 기쁨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가 어떻게 빛과 기쁨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사랑으로 성장하고, 그분의 뜻을 찾으며 모든 이에게 선을 행하는 사람은 늘 자신 안에 하느님을 모실 수 있고,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빛을 주고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 5,14-16) 예수님은 우리가 어둠을 저주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한 자루일망정 촛불을 든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2008년 3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너희 자신의 회개를 위해 힘쓰라고 너희를 부른다. 너희는 여전히 마음으로 하느님과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너희를 변화시키고 너희 마음에 살아 있는 신앙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을 불어넣어 주시도록,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흠숭하고 기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바쳐라. 어린 자녀들아, 모든 것은 사라져 가고 있고 오직 하느님만 사라지지 않으신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사랑으로 너희를 격려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너희 자신의 회개를 위해 힘쓰라고 너희를 부른다. 너희는 여전히 마음으로 하느님과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 

재의 수요일 우리는 머리에 재를 받으며 사제로부터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 라는 말씀을 듣고 회개와 보속을 사순절을 시작했고, 지금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 팔일 축제를 지내는 이틀째 되는 날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회개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거듭 경축하고 있는 이때 우리 자신의 회개를 위해 힘쓰도록 요청하시는 성모님의 부르심은 우리를 부활절 아침으로 다시 데려가는 듯싶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안식일 다음날 마리아 막달레나를 비롯한 몇몇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고, 두 천사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사도들에게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 이야기를 헛소리로 여겼고, 그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루카 24,9-12) 심지어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뵙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했지만 그 가운데 더러는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마태 18,17)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직접 자신들의 귀로 전해 듣고, 부활하신 그분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사도들에게 여전히 불신앙과 의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은 회개의 여정이 단번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시사해줍니다.     
     우리의 회개는 단 한 번의 고해성사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만나려고 하고, 그분을 우리 삶과 마음의 첫 자리에 모시지 않는 한 우리의 회개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 회개의 여정은 매일매일 계속되고, 일생에 걸쳐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너희를 변화시키고, 너희 마음에 살아 있는 신앙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을 불어넣어주시도록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흠숭하고 기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바쳐라.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도 자신의 약함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로마 7,15.24) 그러면 누가 우리의 연약함과 비참함에서 우리를 구해주실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로마 7,25)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켜주시도록 더 많은 시간 기도하고, 제단으로 나아가 성체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을 공경하며 그 앞에 머물도록 초대하십니다. 기도는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완전히 맡겨드리는 행위입니다. 기도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안으로 들어오시어, 우리 마음 구석구석의 모든 어두움을 몰아내시고, 우리 마음에 살아 있는 신앙을 넣어주십니다. 또한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을 불어넣어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들 가운데 살아 계십니다. 특별히 성체 안에 살아 계십니다. 성체 앞에서 예수님과 함께 머물며 그분께 드리는 기도는 우리의 사랑 고백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를 만나고, 그와 함께 머물고, 마음으로 사랑을 고백해야 하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성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분의 집인 성당의 제대로 우리의 발길을 향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그분과 함께 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 목요일 최후 만찬 때, 사도 베드로의 배반을 예고하시기 전에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 (루카 22,31-32)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환히 들여다보시고, 우리에게 살아 있는 신앙을 불어넣어주기를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성체 앞에 나아가 우리의 연약함을 간절히 호소하면서 우리를 변화시켜주시고, 우리 마음에 살아 있는 신앙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을 일으켜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어린 자녀들아, 모든 것은 사라져 가고 있고, 오직 하느님이 사라지지 않으신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을 불어넣어 주시도록 더 많은 시간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하면 우리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오직 하느님뿐이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토록 인간적으로 갈망하고 고대했던 것들로 가득했던 지나간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손에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지나간 한바탕의 꿈처럼 여겨집니다. 성모님 말씀대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사라지지 않으십니다. 지금과 앞으로의 모든 시간에 필요한 것은 오직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성모님께서 매주 목요일마다 성체 앞에서 읽도록 요청하신 다음 복음 말씀을 깊이 묵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 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 입지 못하였다.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마태 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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