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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평화의 왕께서 그분의 평화를 너희에게 주시도록 나는 그분을 너희에게 모셔 오고 있다. 너희 어린 자녀들아,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여라.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를 위해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기도의 결실이 맺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내 아들 예수님과 함께 평화의 축복으로 너희 모두를 축복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평화의 왕께서 그분의 평화를 너희에게 주시도록 나는 그분을 너희에게 모셔 오고 있다.

1981년 6월 24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첫 발현이 있은 후 이틀이 지난 6월 26일, 발현목격증인 마리아 파블로비치는 다른 다섯 명의 목격증인들과 더불어 발현산에서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발현산을 내려오는 중간에 다시금 성모님의 발현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성모님 뒤쪽으로 십자가가 있었고, 성모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평화, 평화, 평화, 너희는 화해해야 한다.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오직 평화만이 있어야 하고, 모든 사람들 사이를 평화가 다스려야 한다.” 성모님은 이 말씀을 통해 당신이 왜 메주고리예 발현을 시작하셨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바로 평화의 길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성모님 뒤쪽으로 십자가로 보임으로써, 그 평화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평화를 이룩하신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너희 어린 자녀들아,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여라.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를 위해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기도의 결실이 맺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미국의 16번째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은 “사람은 사십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얼굴에서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삶의 궤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얼굴은 우리의 일반적 삶뿐만 아니라 영적인 삶의 질을 반영해주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 참된 기도 생활을 지속해온 사람들의 얼굴은 여느 사람들의 얼굴과는 아주 다릅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를 위해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자기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으로 살면서 기도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맑고 빛나며 기쁨과 평화로 가득 찬 얼굴을 지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아들 예수님과 함께 평화의 축복으로 너희 모두를 축복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얼마 전에 병원에서 어느 미국 할머니 환자 방문을 했을 때 일입니다. 제가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그 할머니는 ‘아, 신부님, 올해는 제게 너무도 힘든 한 해였습니다. 아들은 직장을 잃었고, 딸은 이혼을 했고, 저는 이렇게 아파서 계속 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라고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께 도움을 청하자고 하면서, 성체를 모시고 왔는데 영하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할머니의 눈빛이 반짝이면서, “신부님이 예수님을 모셔 오셨는데 당연히 제가 그분을 모셔야지요.”라고 하시며 정성껏 성체를 영하신 후 눈을 감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저는 할머니를 사제 강복을 드리고, 안수를 해드렸습니다. 그런 다음 할머니는 감았던 눈을 뜨고, 한껏 기쁜 목소리로 “저는 이제 새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저를 새롭게 하시고, 힘을 주셨습니다. 저는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에 예수님을 모시고 난 다음 사제의 축복을 받고 그렇게 변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오히려 제가 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를 포함하여 모든 인류가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진정한 평화는 오직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이번 성탄절에 성모님께서는 다시 한 번 이를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시면서 바로 당신이 그분을 우리에게 모셔오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그분을 받아 모시라는 말씀은 없지만 이미 성모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겠습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먼 길을 마다 않고 별의 인도를 받아 베들레헴까지 찾아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한 동방 박사들처럼 되기를 바라십니다. 또 구세주 탄생을 알리는 천사의 말을 그대로 믿고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아기 예수님을 경배했던 들판의 목자들처럼 만사를 제쳐두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동방 박사가 되고, 목자들이 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희생과 수고를 감수할 줄 알고, 단순하게 믿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예수님을 찾아 나서고, 그분을 구세주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기도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저 외모가 어떤가를 살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우리의 얼굴이 영적인 얼굴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 거울 앞에서 조용히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물론 우리 자신이 기도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또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예전과는 달리 시간을 가지고 거울 앞에서 우리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어떤 모습으로 우리의 얼굴이 변해야 할까를 깊이 성찰해보면 좋겠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나는 내 아들 예수님과 함께 평화의 축복으로 너희 모두를 축복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늘 이중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이 함께 주시는 이 축복의 힘으로 우리는 매일의 삶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첫 번째 일은 바로 무릎을 꿇고 새로운 하루를 주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성모님과 더불어 그 하루를 축복해주시도록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청하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우리를 축복하시는 예수님과 성모님을 생각하면서 늘 힘차게 살아갑시다.
   
 
 
2013년 11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기도하라고 너희 모두를 부른다. 어린 자녀들아, 기도, 마음을 다해 바치는 기도에 너희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라. 그러면 그때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너희를 자유롭게 움직이실 수 있고, 회개가 시작될 것이다. 너희 신앙이 굳건해져 너희가 온 마음으로 “하느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여기 지상의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임을 너희는 깨닫게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기도하라고 너희 모두를 부른다. 

이번 달 메시지를 묵상하면서 성모님께서 예전부터 메시지에서 자주 쓰시는 단어인 ‘오늘’에 먼저 눈이 갑니다. 그 단어 없이 써도 내용은 전달되는데 왜 성모님은 굳이 ‘오늘’이라는 단어를 쓰고 계신 걸까요? 내일로 미루거나 지체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메시지를 받은 이 순간, 바로 오늘부터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매사를 내일로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은 바쁘고, 피곤하니까 내일 하지 뭐.’ 하다 보면 그 다음날은 또 다른 핑계를 찾게 마련입니다. 오늘 기도하지 않으면, 내일 기도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바쁘고 피곤한 이유로 내일로 미룬 기도는 언제 이루어질지 모릅니다. 바쁘고 피곤하고 힘들어도 오늘 기도하는 사람은 내일 더 바쁘고 힘들어도 더욱 열심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아, 기도, 마음을 다해 바치는 기도에 너희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라. 

“만물일체 유심조”라고 했습니다. 즉,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우리 기도의 내용과 질이 달라집니다. 온 마음을 다해 바치는 기도를 위해서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하고, 우리가 기도에 우리의 마음을 여는 그 만큼, 우리는 더욱 더 마음을 다해 기도를 바칠 수 있게 됩니다.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것과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서로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줍니다. 기도가 아니라 다른 것에 우리의 마음이 열려 있다면, 마음이 갈라져 있는 상태이기에 온 마음으로 기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도에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를 먼저 성찰하고, 그 장애물을 제거한 후, 온 마음으로 기도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때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너희를 자유롭게 움직이실 수 있고, 회개가 시작될 것이다. 너희 신앙이 굳건해져 너희가 온 마음으로 “하느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때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너희를 자유롭게 움직이실 수 있고”라는 말씀에서 하느님의 놀라운 겸손을 다시금 체험하게 됩니다. 인간은 물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우리가 기도에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 때에야 비로소 우리를 자유롭게 움직이실 수 있다고 말씀하시니 하느님 겸손의 깊이가 얼마나 대단한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시면서, 인간이 마음을 다해 바치는 기도를 통해 마음의 문을 당신께 활짝 열 때, 위대한 일을 시작하십니다. 인간의 마음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는 일, 즉 회개가 일어나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하느님의 자유, 힘, 은총, 사랑이 인간의 마음에 들어오지 않고서는 절대로 회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바치는 기도는 회개뿐만 아니라 신앙과도 절대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기도를 바치면, 우리의 신앙이 굳건해져 오직 하느님만을 우리 삶의 전부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성모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우리를 부른다고 말씀하시고, 마음을 다한 기도에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라고 권고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아, 여기 지상의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임을 너희는 깨닫게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인생무상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항상 같지 않고 변하며, 마침내는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오직 주님과 그분의 말씀을 빼고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계시다.” 바로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입니다.”(1 베드 1, 24-25) 구약 시편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인생은 풀과 같은 것, 들에 핀 꽃처럼 한번 피었다가도 스치는 바람결에도 이내 사라여 그 있던 자리조차 알 수 없는 것, 그러나 야훼의 사랑은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처음부터 영원히 한결같고 그의 정의는 후손 대대에 미치리라.”(시편 103, 15-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치 이 지상의 모든 것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고, 거기에 모든 가치를 두고 행동을 합니다. 루카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이야기에 나오는 그 어리석은 부자처럼 말입니다. 그는 부자였고,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그 소출을 보관할 더 큰 창고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하느님께서 그의 목숨을 되찾아가셨습니다. (루카 12, 16-21 참조) 그의 목숨도 지나가는 것이고, 그가 쌓아 올린 세상의 재물 역시 지나간다는 것을 그는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에 이어서 세상적인 것을 얻기 위해 걱정하지 말고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구하고, 하늘에 보화를 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지상의 것들은 사라져가는 것이기에 그것들이 우리 삶의 중심을 차지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이 지상을 사는 동안 지상의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만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영원하신 하느님, 그분의 의롭게 여기시는 것과 그분의 나라가 절대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것에도 걱정하지 말라. 어떤 것에도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의 모든 것은 흘러가버리는 것. 주님만이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 인내하는 것이 모든 것을 얻는 길. 주님과 함께 하는 이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다네. 주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네. 주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네. 주님과 함께 하는 이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다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2013년 10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기도에 너희 자신을 열라고 너희를 부른다. 기도는 너희 안에서, 또 너희를 통해서 기적들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너희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될 힘을 주시고, 마치 바람이 나뭇가지들을 흔들어대는 것처럼 사탄이 너희를 흔들어대지 못하게 해달라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 단순한 마음으로 청하여라.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을 위해 새롭게 결심하고 오직 그분의 뜻만을 찾아라. 그러면 너희는 그분 안에서 기쁨과 평화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기도에 너희 자신을 열라고 너희를 부른다. 기도는 너희 안에서, 또 너희를 통해서 기적들을 일으킨다. 

지난 9월 26일부터 10월 8일까지 58명의 순례자들과 함께 이태리와 메주고리예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순례 첫날 미사에서 제가 강조한 것은 기도였습니다. 기도하는 순례가 되지 않으면, 하느님을 만날 수 없고, 우리가 변화되지 않기에 순례 기간 내내 기도하자고 당부했습니다. 저는 기회가 생기는 닿는 대로 순례자들과 함께 기도했고, 약간의 시간차는 있었지만 모든 분들이 기도에 자신을 열고, 순례 기간 내내 많은 기도를 바쳤습니다. 이미 이태리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고, 메주고리예 순례를 마쳤을 때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기도에 자신을 연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선물이자 기적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은 한 인간이 하느님의 존재와 힘을 굳건하게 믿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하느님의 평화와 기쁨으로 가득 찬 모습과 얼굴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또한 그렇게 변화된 우리를 통해 하느님은 그와 같은 변화가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기적적인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너희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될 힘을 주시고, 마치 바람이 나뭇가지들을 흔들어대는 것처럼 사탄이 너희를 흔들어대지 못하게 해달라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 단순한 마음으로 청하여라. 

어떤 사람이 사람답지 않은 행동을 하면 우리는 “먼저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끊임없이 되어가는 존재인 것처럼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끊임없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가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힘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 자녀로서 올바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그를 시기하는 사탄이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라 자기의 하수인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유혹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탄의 유혹에 떨어지는 순간 죄를 짓게 되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당신 자녀의 존엄성에 큰 손상이 갑니다. 그렇기에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자녀가 될 힘을 주시고, 마치 바람이 나뭇가지들을 흔들어대는 것처럼 사탄이 우리를 흔들어대지 못하게 해달라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단순한 마음으로 청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에 당신 자녀로서 바르게 살게 해달라는 우리의 청, 사탄의 유혹과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달라고 하는 우리의 청을 절대로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마태 7, 7-11)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을 위해 새롭게 결심하고 오직 그분의 뜻만을 찾아라. 그러면 너희는 그분 안에서 기쁨과 평화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 말씀대로 우리가 하느님을 위해 새롭게 결심하고, 오직 그분의 뜻만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 삶의 무게 중심이 우리 자신에서 늘 하느님께로 옮겨져야 합니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게 마련’(창세 8, 21)이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 인간은 원죄로 인해 쉽게 죄와 악으로 기울어지고, 자기 중심적이며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우리를 죄와 악에서 구해주고, 하느님과 이웃 중심으로 사는 새로운 인간으로 만들어줄 수 있겠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당신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인류를 새롭게 하는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를 믿는 사람은 세례를 통해 낡은 인간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살려고, 율법과 관련해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 19-20)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위해 살 수 있고, 늘 그분의 뜻만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그렇게 살기 위해 우리 안에 사시면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예수님께 귀를 기울입시다.“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 3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 6, 9-10)
   
 
 
2013년 9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너희를 기도하라고 부른다. 너희는 기도와 매일 관계를 맺어야 한다. 기도는 너희 안에서, 너희를 통하여 기적을 일으키므로, 어린 자녀들아, 기도가 너희에게 기쁨이 되도록 하여라. 그러면 너희의 삶은 더욱 깊이가 있고 더욱 열리게 될 것이며, 너희 각자는 생명이 선물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너희를 기도하라고 부른다. 너희는 기도와 매일 관계를 맺어야 한다.

메주고리예 발현 초기에 성모님께서는 여섯 명의 발현목격증인들과 달리 내적으로 성모님의 음성을 들었던 두 명의 내적 담화자들과 더불어 메주고리예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기도의 학교를 직접 주관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던 성모님께서는 어느 날 여느 날과 달리 아이들과 함께 묵주기도 3단까지만 바치시고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을 보내시면서 성모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오늘 나와 함께 바치는 기도는 3단까지만 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거라. 가는 길에 4단을 바치고 집에 도착하여 집안 일도 도와드리고, 저녁도 먹고, 숙제도 한 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마지막 5단을 바치도록 하여라. 그러면 기도의 성령께서 밤새도록 너희와 함께 기도하실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심으로써 일상적인 삶과 기도가 함께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또한 성모님께서는 다른 메시지를 통해 “너희의 하루를 짧고 열렬한 기도로 가득 채워라.”, “기도가 매일의 삶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여라.”,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기 바란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기도가 우리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고, 늘 우리의 삶과 통합된 중요한 요소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기도는 마치 끊임없이 새로운 공기를 몸 안으로 받아들이는 호흡 작용과도 같습니다. 호흡하지 않는 육신은 죽은 몸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영혼은 하느님의 생명을 모셔 들일 수 없기에 영적으로 죽은 몸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기에 성모님께서는 이번 달 메시지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너희를 기도하라고 부른다. 너희는 기도와 매일 관계를 맺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다른 일상의 일들 때문에 며칠씩 미루어 두었다가 시간 날 때,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일상의 삶과 더불어 매일매일 함께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를 삶의 맨 마지막 자리에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기도가 삶의 맨 첫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기도가 매일 우리 삶의 중심에 있을 때, 하느님께서 우리 삶의 중심에 계시고, 우리는 하느님의 힘으로 매일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너희 안에서, 너희를 통하여 기적을 일으키므로, 어린 자녀들아, 기도가 너희에게 기쁨이 되도록 하여라. 그러면 너희의 삶은 더욱 깊이가 있고 더욱 열리게 될 것이며, 너희 각자는 생명이 선물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도 오 천명이나 되는 군중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그런데 이 기적을 행하시기에 앞서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드시고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선한 마음으로 바치는 기도는 하느님 아버지를 감동시키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그 기도를 통해 기적을 일으키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우리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과 닿기 때문에 때문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변합니다. 우리의 뜻보다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어주시는 기적입니다. 또 우리가 다른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 그 지향이 선한 것이라면,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 기적을 일으켜주십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하느님과 영적인 것에 대한 갈망을 더욱 많이 가지게 되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많이 기도하고 하느님 가까이 가려고 합니다. 그에 따라 당연히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에 대한 애착이 줄어 들면서 삶의 깊이가 달라지고, 하느님과 영적인 것에 더욱 더 개방된 마음을 지니게 됩니다. 그리고 비로소 하느님 안에 살아 있음을 강하게 느끼면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이 얼마나 큰 사랑의 선물인지 깨닫게 되고 감사하는 삶을 살게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는 때는 바로 기도할 때입니다!
   
 
 
2013년 7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의 믿음을 실천하고, 모든 면에서 마음을 다하고 모범을 보임으로써 그 믿음을 증거하라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너희 모두를 부른다. 어린 자녀들아, 죄와 유혹을 멀리하도록 결심하여라. 그러면 너희 마음에 기쁨과 거룩함에 대한 애정이 생길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나는 너희를 사랑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서 너희를 위해 전구함으로써 너희와 함께 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의 믿음을 실천하고, 모든 면에서 마음을 다하고 모범을 보임으로써 그 믿음을 증거하라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너희 모두를 부른다.

예수님 시대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사이는 '분리된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미 기원전 2세기 중엽부터 모세의 율법에 대해 보다 엄격한 해석과 실천을 내세웠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들을 구분하였고, 그들을 멸시하거나 적대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 그들은 율법의 정신을 살지 않고 외적으로만 율법을 준수하는 체하는 위선자로 비추어졌고, 율법학자들과 더불어 예수님께 큰 꾸지람을 받았습니다(마태 23장 참조).
     오늘날도 역시 우리 주위에는 바리사이와 같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외적인 종교 생활에는 충실한 듯 보이지만 복음 정신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입으로 믿음을 고백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믿음의 내용대로 살지 앟는 사람들이 바로 현대판 바리사이들입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실천하고 모든 면에서 마음을 다하고 모범을 보임으로써 그 믿음을 증거하기를 바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살고, 모범을 보이며, 그를 세상에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 14-16)
     야고보 사도는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 1, 22)라고 말씀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실천하는 믿음에 대해 강조하십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재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대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실천이 있소."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 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 그대는 하느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습니까?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아, 어리석은 사람이여! 실천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싶습니까?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사악을 제단에 바칠 때에 실천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대도 보다시피, 믿음이 그의 실천과 함께 작용하였고, 실천으로 그의 믿음이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그것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느님의 벗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보다시피, 사람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의롭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창녀 라합도 심부름꾼들을 맞아들이고 또 그들을 다른 길로 내보냈을 때에 실천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야고 2, 14-26)
     믿음은 우리의 말에 있지 않고, 우리의 행동에서 드러납니다. 아무리 우리가 입으로 자신의 믿음이 깊다고 이야기한다 해도, 실제 살메서 그 믿음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너희는 그들이 맺는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마태 7, 160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실천하는 믿음, 행동하는 믿음을 보여줄 때, 사람들은 우리의 믿음이 참되다는 것을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죄와 유혹을 멀리하도록 결심하여. 그러면 너희 마음에 기쁨과 거룩함에 대한 애정이 생길 것이다.

연젠가 성모님께서는 메시지에서 "너희의 자유는 너희으 약점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유혹 앞에서 자유를 잘못 사용하여 자주 죄에 떨어지는 우리의 약함을 아시기에 그와 같이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유혹 앞에서 더 약합니다. 따라서 어떤 유혹 앞에서든지 자신이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오판해서는 안 되고, 차라리 유혹을 멀리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게 상책입니다. 그래야 유혹으로부터 보호도 받고, 죄에 떨어지는 기회도 피할 수 있습니다. 죄와 유혹을 멀리하여는 우리의 의지와 결심이 중요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결심하면 우리 마음에 기쁨과 거룩함에 대한 애정이 생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아, 나는 너희를 사랑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서 너희를 위해 전구함으로써 너희와 함께 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두 번씩이나 우리는 '어린 자녀들'이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어린 자녀들은 누구보다도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을 간절히 원하고,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의존합니다. 그렇기에 성모님의 어린 자녀들인 우리는 그만큼 우리의 참된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사랑과 보호를 필요로 하는 존재들입니다. 어린 자녀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극히 단순하게 모든 것을 성모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면서 우리를 위해 전구하시는 성모님께 감사 드리며 모든 것을 의탁합시다.

예수님, 당신은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 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그 말씀대로 저는 입으로만 믿음을 고백하지 않고, 삶으로 그 믿음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예수님, 제 믿음의 증거를 통하여 제 주변의 사람들이 당신을 알아 뵈옵고, 그 믿음의 대열에 함께 동참하게 해주소서.

성모님, 저는 당신 보시기에 늘 작고 어리기만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저를 사랑하시는 어머니이시기에 항상 저를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시며 좋은 길로 이끌어주려고 하십니다. 어머니, 당신 말씀대로 죄와 유혹을 멀리하도록 결심하오니 하느님 아버지 대전에서 저를 위해 당신의 전구를 끊임없이 바쳐주소서. 
   
 
 
2013년 6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기쁜 마음으로 너희 모두를 사랑하고, 티 없이 깨끗한 내 성심에 더 가까이 오도록 너희를 부른다. 그래야 내가 너희를 내 아들 예수님께 더 가까이 이끌어 줄 수 있고, 그분께서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자양분인 그분의 평화와 사랑을 너희에게 주실 수 있다. 어린 자녀들아, 기도에 너희 자신을 열어라. 내 사랑에 너희 자신을 열어라. 나는 너희의 어머니이고, 너희가 방황하고 죄짓도록 홀로 내버려둘 수 없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나의 자녀들,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되도록 부름받았기 때문에, 나는 내 아들에게 너희 모두를 봉헌할 수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기쁜 마음으로 너희 모두를 사랑하고, 티 없이 깨끗한 내 성심에 더 가까이 오도록 너희를 부른다. 그래야 내가 너희를 내 아들 예수님께 더 가까이 이끌어 줄 수 있고, 그분께서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자양분인 그분의 평화와 사랑을 너희에게 주실 수 있다. 

마음은 인간 존재의 중심입니다. 이는 성모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모님의 마음은 일반적인 마음이 아니라 ‘티 없이 깨끗한 성심’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잉태를 받아 들인 첫 자리가 바로 그 마음이고, 성모님은 원죄에 물들지 않은 채 태어나 아무런 죄도 짓지 않으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모님의 마음에는 오직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과 인류에 대한 사랑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마음은 거룩한 마음, 즉 성심(聖心)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티 없이 깨끗하신 성심을 통해 이 세상에 오셨고, 늘 그 성심 안에 머무시기 때문에, 우리가 성모님의 성심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당연히 예수님께 더욱 가까이 가게 됩니다. 성모님의 목표는 우리를 예수님께로 더 가까이 이끌어 우리가 그분의 평화와 사랑을 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고,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구할 수 없는 예수님의 평화와 사랑, 바로 그 평화와 사랑이 우리를 살게 하는 자양분이라고 성모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와 사랑 없다면, 인간은 육신적으로 살아 있어도 겉껍데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를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완전한 길은 바로 성모님의 티 없이 깨끗하신 성심을 통하는 것입니다. 바른 길을 알았으면, 그 다음 행보는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성심에 더 가까이 다가 가십시오. 

어린 자녀들아, 기도에 너희 자신을 열어라. 내 사랑에 너희 자신을 열어라. 나는 너희의 어머니이고, 너희가 방황하고 죄짓도록 홀로 내버려둘 수 없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나의 자녀들,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되도록 부름받았기 때문에, 나는 내 아들에게 너희 모두를 봉헌할 수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은 기도와 당신의 사랑에 우리 자신을 열라고 말씀하시지만 결코 우리의 자유를 거스르지는 않으십니다. 비록 ‘열어라’고 명령어를 사용하시지만 강제적으로 하지는 않으십니다. 성모님은 전적으로 우리의 자유와 선택을 존중하십니다.     
     그런데 왜 성모님께서는 기도와 당신의 사랑에 우리 자신을 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어지는 메시지에서 그 답을 주고 계십니다. 먼저 그분이 우리의 어머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어머니로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부어주고 싶어하십니다. 두 번째로 성모님은 우리가 방황하고 죄짓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우리 인생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과 뜻을 알아 들을 수 있고, 죄를 피할 수 있습니다. 또 성모님의 사랑에 우리 자신을 열어 어머니의 보호에 우리 자신을 맡겨야, 어머니께서 우리를 당신의 품에 안고 우리가 방황하지 않도록 죄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시기 바로 직전 십자가 상에서 온 인류와 교회 그리고 사도들을 대표하여 그 자리에 서 있던 사도 요한을 보시고 성모님에게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요한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9, 26-27 참조) 예수님의 명에 의해 성모님은 온 인류의 어머니가 되셨고, 인류는 성모님을 자신들의 어머니로 받아 들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모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명, 즉 하늘의 명, 성소이고 소명입니다. 성모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받아들여야 하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성모님을 자신의 어머니로 모시지 않고, 그분의 자녀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예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셔 들이고, 기쁘게 그분의 자녀가 되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합시다. 

예수님, 당신은 저희를 고아들처럼 내버려두기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상에서 이 세상을 떠나시는 마지막 순간 당신의 어머니를 저희의 어머니로, 저희를 그분의 자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 제가 성모님과 한 가족이 되었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또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 역시 성모님의 자녀이기에 또한 저희 형제자매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 당신께서 죽음 직전에 마지막으로 주신 귀한 선물인 어머니 마리아를 더욱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에 저희 자신을 더욱 열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성모님, 당신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당신의 요청대로 당신의 티 없이 깨끗하신 성심에 더 가까이 나아가오니 제 온 존재가 당신의 성심과 하나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늘 예수님의 성심과 하나되어 있는 당신의 성심을 통해 제가 예수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그분과 완전히 하나될 수 있게 해주소서. 그를 위해 기도에 제 자신을 활짝 열고자 하오니 저를 끊임없이 인도해 주소서.
   
 
 
2013년 5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사랑하는 내 아들 예수님의 마음을 열 만큼 너희의 기도가 큰 힘을 발휘할 때까지, 신앙과 기도 안에서 힘과 용기를 내라고 너희를 부른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 마음이 하느님의 사랑에 열릴 때까지 끊임없이 기도하고 기도하여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 모두를 위해 전구하며 너희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사랑하는 내 아들 예수님의 마음을 열 만큼 너희의 기도가 큰 힘을 발휘할 때까지, 신앙과 기도 안에서 힘과 용기를 내라고 너희를 부른다. 

루카 복음 18장 35절부터 43절에는 예수님께서 예리코에서 눈먼 이를 고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36킬로미터 떨어진 도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군중들로부터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 짧은 한 마디 안에 엄청난 신앙 고백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그는 구세주가 다윗 가문에서 태어나시고, 바로 예수님이 그 구세주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었겠습니까? 그는 눈이 멀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직접 뵈온 적은 없습니다. 그는 다만 사람들이 예수님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들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은 말을 들으면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이 참 구세주이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 29)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실천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이 눈먼 거지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 예리코의 눈먼 거지가 어느 날 갑자기 그와 같이 큰 믿음을 가지게 되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날부터 자기 앞을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직접 만나던 그날까지 매일같이 그분이 하신 말씀과 행적을 생각하고 묵상하며 예수님을 생각하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의 믿음이 성숙되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은 묵상과 기도로 채워졌습니다. 그는 이미 예수님을 직접 뵈옵기도 전에 그분을 믿었고, 그분께 마음의 문을 열고 있었으며, 그의 영혼과 신앙의 눈은 이미 열려 있었습니다.     
     꿈 같이 예수님께서 자기 앞을 지나가시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앞서 가던 사람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의 외침은 예수님의 걸음을 멈추게 했고, 그분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하였고, 예수님은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하고 이르시자 그는 즉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 예리코의 눈먼 거지 이야기는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사랑하는 내 아들 예수님의 마음을 열 만큼 너희의 기도가 큰 힘을 발휘할 때까지 신앙과 기도 안에서 힘과 용기를 내라고 너희를 부른다.”고 하신 성모님 메시지의 가장 모범적인 예입니다. 지난 달 메시지 마지막 부분에서 성모님은 “성경이 항상 너희를 위한 자극제가 되기를 빈다.”고 말씀하셨는데, 신약성경 루카 복음에 나오는 이 예리코 눈먼 거지의 이야기는 항상 우리를 위한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 마음이 하느님의 사랑에 열릴 때까지 끊임없이 기도하고 기도하여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 모두를 위해 전구하며 너희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마음은 우리 존재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방향과 행동 양식도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악을 피하고 선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루카 복음 19장 예수님과 자캐오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따돌림 받았지만 예수님은 처음 만난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그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머물기도 하시면서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죄인이라고 단죄해도 예수님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캐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 들이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예수님이 청하시기도 전에 먼저 일어나 자발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자캐오의 마음이 예수님의 사랑에 의해 감동을 받아 활짝 열리고, 그 열린 마음은 이웃에 대한 자선과 선행 실천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진정으로 선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선하신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고, 우리 마음이 그분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예리코의 세관장이었던 자캐오 역시 예리코의 눈먼 거지와 같은 과정을 거쳤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장님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지만 그 역시 그 이전까지는 예수님을 실제로 뵈온 적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역시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들려오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가졌음에 분명합니다. 물론 그가 키가 작아 군중에 가려워 계신 예수님을 볼 수 없어서 무화과 나무 위로 돌아가 그분을 보려고 했지만 그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예수님을 갈구하고 있었습니다. 죄인들과 병자들, 심지어 창녀들마저도 단죄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친구가 되어 주시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말씀을 전해주시는 예수님을 그는 꿈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바로 예수님을 만나 사랑과 구원의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은 귀가 굉장히 밝으십니다. 우리가 입 밖으로 내기도 전에 우리 마음의 작은 외침도 들으시고, 우리의 기도 하나 하나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분의 사랑에 열릴 수 있도록, 아니 이미 주어지고 있는 그 사랑에 우리 마음의 주파수가 맞추어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하고, 또 기도합시다.
   
 
 
2013년 4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꽃이 따뜻한 햇살에 열리는 것처럼 너희 마음이 신앙 안에서 열릴 때까지 기도하고 기도하고, 계속 기도하여라. 지금은 하느님께서 나의 현존을 통해 너희에게 은총을 주시는 때이지만, 너희는 내 마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렇기에 나는, 개인적으로 회개하고 가정기도를 바치라고 너희를 부른다. 성경이 항상 너희를 위한 자극제가 되기를 빈다. 나는 나의 모성적 축복으로 너희 모두를 축복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꽃이 따뜻한 햇살에 열리는 것처럼 너희 마음이 신앙 안에서 열릴 때까지 기도하고 기도하고, 계속 기도하여라.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9, 23) “하느님을 믿어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 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르 11, 22-24)     
     이 말씀에서처럼 하느님을 믿는 사람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신앙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신앙은 기도를 통해 생기고 점점 더 커져 갑니다. 우리 신앙의 정도는 우리가 바치는 기도의 깊이와 양에 절대적으로 비례합니다. 그렇기에 성모님께서는 ‘너희 마음이 신앙 안에서 열릴 때까지’ 한 차례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기도하며, 계속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세 번씩 기도하라고, 마지막에도 멈추지 말고 ‘계속’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우리의 마음이 신앙 안에서 열리는 것을 체험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더욱 더 열심히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영어 관용구에 ‘Practice makes per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반복해서 하는 것이 그것을 잘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 말이 우리의 영성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를 잘 하려면, 기도를 반복해서 열심히 해야 합니다.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고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보면 분명 그 뒤에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피나는 노력과 연습의 과정이 있습니다. 그렇듯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남들보다 배가의 노력을 하면서 기도합니다.     
     “너희 마음이 신앙 안에서 열릴 때까지”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성모님께서는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는지 그 한계를 알려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신앙 안에서 열렸는지 아닌지는 오직 우리 자신만이 잘 압니다. 또 하느님과 성모님도 그를 아십니다. 성모님 보시기에 아직 우리의 마음은 신앙 안에서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너희 마음이 신앙 안에서 열릴 때까지 기도하고, 기도하며,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은 기도의 열매이고, 신앙은 우리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지금은 하느님께서 나의 현존을 통해 너희에게 은총을 주시는 때이지만, 너희는 내 마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렇기에 나는, 개인적으로 회개하고 가정기도를 바치라고 너희를 부른다. 성경이 항상 너희를 위한 자극제가 되기를 빈다. 나는 나의 모성적 축복으로 너희 모두를 축복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께서는 1981년 6월 24일 메주고리예 첫 발현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날은 바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시키기 위해 회개를 외쳤던 세례자 요한 대축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날을 택하여 당신의 어머니를 이 땅에 예언자로 보내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더 이상 이 세상에 관심이 없다면,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시지 않는다면, 결코 당신의 어머니를 보내지 않고, 모든 것의 막을 단번에 내리는 조치를 취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어머니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로 세상에 보내주셨고, 성모님은 메주고리예를 통하여 매일 지금도 당신의 현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성모님의 현존 그 자체가 우리에게 큰 은총의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아직까지 회개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메주고리예를 통해 매일 세상에 발현하시고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면서 우리가 회개하도록 도와주시고, 우리를 거룩함과 구원 그리고 평화의 길로 이끌어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그것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 들이고, 우리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만일 우리가 성모님 발현과 현존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 듣고 있다면, 성모님은 여전히 “너희는 내 마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말씀은 결코 꾸짖음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통해 성모님은 당신의 안타까움을 표현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마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십니다:     
     “그렇기에 나는, 개인적으로 회개하고, 가정기도를 바치라고 너희를 부른다. 성경이 항상 너희를 위한 자극제가 되기를 빈다. 나는 나의 모성적 축복으로 너희 모두를 축복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2013년 3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시기에 나는, 사랑하는 내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를 너희 손에 들고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너희의 고통이 그분의 고통과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사랑이신 그분께서 너희 각자를 구원하기 위해 사랑으로 그분 자신을 주셨기 때문에, 사랑이 승리할 것이다. 사랑과 평화가 너희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할 때까지,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시기에 나는, 내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를 너희 손에 들고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2013년 3월 25일 월요일 오후 제가 속하여 병원 사목을 하고 있는 해리스버그 교구 사제 전체가 모여 성주간을 시작하면서 하루 피정을 가졌습니다. 메주고리예 성모님이 발현하시어 메시지를 주신 것과 거의 같은 시각에 피정 강의를 하시던 신부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제가 언젠가 사제 연례 피정을 갔을 때였습니다. 피정 지도신부님께서 참석 사제들에게 공개적인 양심성찰을 함께 하자고 하시면서 자신의 중지 손가락을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에 직접 갔다 대면서 저희 사제들에게도 똑같이 하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루에 얼마나 기도하는데 시간을 쓰십니까?”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안경을 쓰신 당신의 눈을 역시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희에게도 아까처럼 따라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전문직종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더욱 잘 하기 위해 독서 등을 통해 자기 분야에 관한 업데이트를 계속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또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무엇을 즐기고, 시간을 보냅니까?”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준 오늘 해리스버그 사제 1일 피정 강사 신부님은 그처럼 직접 시계와 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양심 성찰을 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양심 성찰을 잘 할 수 있는 계기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 번 듣느니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즉, 어떤 일을 집행할 때 탁상공론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직접 가서 경험하고 행하는 것이 낫다는, 직접 경험해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뜻의 중국 고사에서 유래된 고사성어입니다. 말이 너무 거창해졌습니다만, 성모님도 같은 뉘앙스를 담아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은총의 시기에 내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를 너희 손에 들고,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라고 나는 너희를 부른다.” 성모님께서는 멀리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정도가 아니라 직접 우리 손에 들고 아주 가까이 그 십자가를 들여다보면서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성 금요일 수난 예식 때 십자가 경배 예절을 하면서 사제가 들고 있는 십자가에 깊은 절을 하거나 십자가에 직접 입을 맞추는 일은 있지만 아마도 혼자서 십자가를 손에 들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한 기억을 별로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성모님의 요청에 따라 십자고상을 직접 손에 들고 거기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를 위한 그분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를 묵상해보십시오. 십자가에서 달려 수난하시고 돌아가신 그분은 바로 우리의 하느님이시고, 우리의 주님이시며,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그 수난과 죽음과 감사 드리며 십자가에 입을 맞추고, 마치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님의 시신을 품에 안으신 성모님처럼 십자고상을 품에 안고 그분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표현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십시오. 

너희의 고통이 그분의 고통과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사랑이신 그분께서 너희 각자를 구원하기 위해 사랑으로 그분 자신을 주셨기 때문에, 사랑이 승리할 것이다. 

고통은 말 그대로 고통스러운 것이기에 누구나 다 피하고 싶어합니다. 또 고통이 있으면 빨리 없어지기를 바라고, 그를 없애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고통의 십자가를 지셨던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매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고통은 피해야 할 악이 아니라 감사하며 끌어 안아야 할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직접 지셔야 하는 십자가 나무를 끌어 안고 입을 맞추며 그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은총을 허락하신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어떠한 고통을 겪는다 하더라도 우리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겪으셨던 그 고통과는 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고통을 그분의 고통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가운데 우리는 큰 위로를 받고, 우리가 겪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우리의 고통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봉헌하면 우리의 고통이 단순히 인간적인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이의 구원을 위한 영적 봉헌이 됩니다. 어떠한 고통이든 고통이 있다면 바로 십자가에 달려 계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서, “주님, 당신께 봉헌할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저의 이 고통을 당신의 고통과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시고, 다른 이의 구원을 위해 도구로 써주십시오.”라고 말씀 드리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통과 죽음의 상징이지만 사실 그 핵심은 사랑입니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가장 크고 분명하게 드러난 자리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 사랑은 인간의 의로움이나 그 어떤 자격 때문에 주어진 것이 아니고 하느님 사랑 그 자체가 너무 크시기에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 5, 7-8)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죄인인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늘 먼저 떠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돌아가신 하느님께서 그 사랑의 힘으로 죽음을 없애고 부활하셨으며,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의 문을 열어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느님 사랑의 승리를 보여주는 가장 큰 표징입니다.   

사랑과 평화가 너희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할 때까지,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도 바오로께서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 22-23)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사랑과 평화는 하늘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러면 이 성령의 열매는 어떻게 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바로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그러기에 성모님께서는 사랑과 평화가 우리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할 때까지 기도하고, 기도하며, 또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줄 것이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들은 그 당부대로 예루살렘 다락방, 즉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셨던 그 다락방에 모여 성모님과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사도 1, 12-14절 참조). ‘전념’이라는 말에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은 다른 생각, 다른 활동 없이 오직 기도에만 몰두했습니다. ‘기도하고, 기도하며, 또 기도하여라’라고 하신 성모님의 말씀을 열심히 실천하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바로 그런 그들에게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물론 우리 각자는 매일 자신의 고유한 기도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끔 날을 잡아서 그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하루 종일 기도만 해 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기도하고, 기도하며, 또 기도하여라’라는 말씀을 실천에 옮기려면 오직 기도에만 전념하신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기도합시다.하느님, 저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구세주로 보내주신 그 크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뜻에 따라 수난과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십자가에 자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하느님,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통해 드러난 당신의 자비와 사랑 그리고 용서에 감사 드립니다. 또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신 당신의 권능을 찬양합니다. 사랑을 위해 희생하고 고통을 받으면, 죽더라도 다시 살고, 궁극적으로는 승리한다는 것을 늘 마음에 새기고,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게 해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13년 2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죄가 세상적인 것들 쪽으로 너희를 끌“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죄가 세상적인 것들 쪽으로 너희를 끌어당기고 있고, 나는 거룩함과 하느님의 일 쪽으로 너희를 이끌어 오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 안에 있는 선과 악의 전투에서 애를 쓰며 너희의 힘을 소진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기도가 너희에게 기쁨이 될 때까지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여라. 그러면 너희의 삶 자체가 하느님을 향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죄가 세상적인 것들 쪽으로 너희를 끌어당기고 있고, 나는 거룩함과 하느님의 일 쪽으로 너희를 이끌어 오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 안에 있는 선과 악의 전투에서 애를 쓰며 너희의 힘을 소진하고 있다. 

성모님께서는 이 메시지를 통해 우리가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 주고 계십니다. 죄를 짓거나 세상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거룩해지며, 하느님의 일에 온 마음을 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탄은 아주 교묘하게 우리를 죄짓게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때, 사탄은 영적으로 무방비 상태인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고, 세상적인 것에 관심을 두게 만들며, 결국 죄를 짓도록 우리를 유인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또 과거 경험을 통해서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를 쉽게 예감합니다. 그렇기에 영적 무장이 필요합니다.     
     우리 삶은 매일 영적 전투의 장입니다. 그 중심은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은 늘 선과 악 사이를 선택해야 하는 갈등과 싸움으로 가득 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항상 확신을 가지고 선을 선택하고, 단호하게 악을 물리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면 그 싸움은 결코 계속 될 수 없습니다. 또 그로 인해 엉뚱한 곳에 힘을 소비하며 영적으로 지칠 필요도 없습니다.     
     이 영적 전투에서 우리에게는 엄청나게 큰 원군이 있습니다. 바로 성모님과 수많은 성인들입니다. 성모님은 우리를 거룩함과 하느님의 일 쪽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메주고리예를 통해 우리와 함께 와 계십니다. 수많은 성인들은 성모님을 도와 우리가 이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도록 우리를 위해 전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 사는 동안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께 열심히 기도를 바치고, 기도의 힘으로 악을 물리치고 선을 택했던 분들이며, 우리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늘 새로운 힘을 가져다 줍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쉽게 악에 빠지지 않고, 영적으로 지치지 않습니다. 또한 기도하면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은총의 어머니이시며 우리의 변호자이신 성모님께서 예수님 앞에서 우리 각자를 위해 끊임없이 전구하고 계시니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기도가 너희에게 기쁨이 될 때까지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여라. 그러면 너희의 삶 자체가 하느님을 향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건강에 관련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의사나 건강 전문가가 어떤 것이 몸에 좋다고 하면 그 다음날바로 그것이 불티나게 팔린다고 합니다. 전문가의 말에 권위가 있다고 여기고, 누구나 자기 몸이나 가족의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우리의 영적 어머니, 천상에서 우리의 구원을 염려하여 메주고리예를 통해 매일매일 지상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성모님께서 우리 마음과 영혼의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당연히 그를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과 영혼에 기쁨과 생기가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생명을 체험하기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의사나 건강 전문가의 말을 듣고 육신의 건강을 위해 그 말을 따르듯이 천상의 어머니께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의 안녕을 위해 주시는 귀한 조언을 귀담아 듣고 실천에 옮겨야 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주님, 저희를 거룩하게 만들고, 하느님의 일에 온 마음을 쓰도록 하기 위해 어머니 마리아를 계속해서 보내주고 계시니 감사 드립니다. 저희는 늘 마귀와 육신과 세속의 유혹을 받으면서 자주 죄에 떨어지곤 합니다. 주님, 저희가 늘 거룩함과 선을 선택하고, 당신의 뜻만을 따를 수 있도록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당신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기도가 너희에게 기쁨이 될 때까지 기도하고, 기도하며, 또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시는 성모님의 초대에 응답하겠습니다. 당신의 은총으로 저희를 도와주소서. 주님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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