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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남 신부 메시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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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가 회개로 초대받은 이 은총의 때에, 나는 너희를 격려한다. 어린 자녀들아, 내 아들 예수님의 성심에서 멀어진 마음들의 회개를 위하여 너희의 기도와 고통, 그리고 눈물을 나에게 봉헌하여라. 나와 함께 기도하여라.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 없이는 너희에게 미래도, 영원한 생명도 없다. 나는 너희를 사랑하지만, 너희 없이는 너희를 도와줄 수 없다. 그러니 하느님께 ‘예’라고 응답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교회 승인 하에)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가 회개로 초대받은 이 은총의 때에, 나는 너희를 격려한다.


     우리 중에 은총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 중에 하느님께 다양한 은총을 내려주시기를 청합니다. 각자의 처한 상황에 따라 그 내용은 다르지만, 주로 건강, 취업, 결혼, 입학, 승진, 재물, 그리고 가정의 평화 등을 기도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것들이기에, 우리가 하느님께 그것을 청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번 달 성모님의 메시지에서는 이러한 은총들 대신,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가 회개로 초대받은 이 은총의 때에, 나는 너희를 격려한다.”라고 말씀하시며, ‘회개로 초대받는 것’이 진정한 은총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회개로 초대하시는 분은 누구이십니까?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을 통하여 우리를 회개로 초대하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우리가 멸망의 길로 가지 않도록 막아 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시려는 깊은 사랑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성모님과 함께 이 지상에서 하느님을 섬기며 기쁨 속에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천국에서 모든 성인들과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이미 성경 곳곳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그리고 성모님의 메시지를 통해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상기시키시듯,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가는 것이며,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실제로 그것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청해야 할 은총은 세상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영원한 것, 곧 천상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청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회개입니다. 우리가 회개함으로써 온전히 하느님만을 모시고 살며, 그분의 뜻을 언제나 따르고자 할 때, 우리는 이 땅과 하늘에 영적 보물을 쌓게 되는 것입니다. 

     그 보물은 기도와 단식, 자선과 믿음, 용서와 사랑, 그리고 거룩함과 구원, 평화의 열매들로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우리의 참된 영적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지금 이 시기에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고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이 ‘회개’임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가 회개로 초대받은 이 은총의 때에, 나는 너희를 격려한다.” 

     이 지상에서 우리가 이루는 회개는 하늘도 기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루카 15,7).

     오늘, 아니 바로 지금 이 순간, 회개하여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와 성모님, 그리고 모든 성인들을 기쁘게 해 드립시다. 


어린 자녀들아, 내 아들 예수님의 성심에서 멀어진 마음들의 회개를 위하여 너희의 기도와 고통, 그리고 눈물을 나에게 봉헌하여라. 


     비행기를 타면 이륙 전에, 모니터나 승무원을 통해 안전 수칙에 대한 안내를 받게 됩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중요한 지침이 있습니다. 어린이와 함께 탑승한 부모나 보호자는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먼저 자신이 산소호흡기와 구명 조끼를 착용한 후 아이에게 착용시켜 주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먼저 준비된 사람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거나 준비할 수 없는 이를 도와야 하듯, 성모님께서도 우리가 먼저 회개한 다음, 다른 이들의 회개를 도우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아, 내 아들 예수님의 성심에서 멀어진 마음들의 회개를 위하여 너희의 기도와 고통, 그리고 눈물을 나에게 봉헌하여라.” 

     우리가 끊임없이 회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희생할 줄 알며,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고, 우리 자신과 이웃을 위해 흘리는 눈물을 하느님께 봉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지상에 계실 때 누구보다도 그것을 깊이 체험하고 실천하셨기에, 지금도 우리 모두를 도우시기 위해, 우리의 기도와 고통, 그리고 눈물을 당신께 봉헌하라고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정성껏 봉헌한 모든 것을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 바치실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그 봉헌을 통하여 당신의 성심에서 멀어진 영혼들의 회개를 위해 풍성한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나와 함께 기도하여라. 


     혼자 기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기도를 실천해 온 사람이라 해도, 아주 의식적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혼자서 기도를 이어가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적인 기도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하는 기도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무엇이든 함께할 때 더 큰 힘과 시너지가 생기듯, 기도 또한 함께 바칠 때 놀라운 시너지가 일어납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기도해야 함을 분명히 말씀하시지만, 동시에 가능한 한 매일 공동으로 기도할 것을 더욱 강하게 권고하십니다. 가정에서든, 기도 모임에서든, 성당에서든, 혹은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어느 자리에서든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공동 기도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줍니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 18,19-20)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서 계신 곳이라면 어디든 당신도 항상 함께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는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향하고 있기에, 우리가 바치는 모든 기도에 성모님도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잊거나 의식하지 못하곤 합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 “나와 함께 기도하여라.”라고 하신 말씀을 언제나 마음에 간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묵주기도를 바칠 때는, “어머니, 저는 지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예수님께 이 기도를 드리오니, 저를 예수님께로 인도해 주소서.” 라고 고백해 보십시오. 또한 자유롭게 화살 기도를 드릴 때는 마지막에, “예수님, 성모님의 전구를 통하여, 이 기도를 당신께 바치나이다.” 라고 덧붙일 수 있습니다.

     기도의 형식이 무엇이든, 어떤 상황이든,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는 습관이 우리의 영혼 깊숙이 스며들도록 합시다. 그 기도 안에서 성모님은 언제나 우리를 예수님께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 없이는 너희에게 미래도, 영원한 생명도 없다. 나는 너희를 사랑하지만, 너희 없이는 너희를 도와줄 수 없다. 그러니 하느님께 ‘예’라고 응답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우리는 늘 내일을 준비하며 살아갑니다. 나이가 들수록 은퇴 이후의 삶, 곧 노후 준비에 더 많은 관심과 신경을 기울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안전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험에 가입하고, 연금을 준비하며, 여러 가지 투자를 통해 미래의 안전을 도모하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련하는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미래를 완전히 보장해 줄 수는 없습니다. 얼마 전 미국 캘리포니아와 우리나라 경상북도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에서도 보았듯이, 예상치 못한 순간, 예기치 못한 일로 인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과 모든 재산을 잃는 일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 없이는 너희에게 미래도, 영원한 생명도 없다.” 이 말씀은 우리가 진정 의지해야 할 분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일깨워 줍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모든 희망을 오직 하느님께 두도록 부르고 계십니다.

     온갖 삶의 풍파를 겪은 듯한 시편 저자도 우리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산들을 향하여 내 눈을 드네. 내 도움은 어디서 오리오?

내 도움은 주님에게서 오리니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네 발이 비틀거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지키시는 그분께서는 졸지도 않으신다.

보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께서는 졸지도 않으시고 잠들지도 않으신다.

주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주님은 너의 그늘 네 오른쪽에 계시다.

낮에는 해도, 밤에는 달도 너를 해치지 않으리라.

주님께서 모든 악에서 너를 지키시고 네 생명을 지키신다.

나거나 들거나 주님께서 너를 지키신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시편 121, 1-8)


     우리는 우리에게 미래를 열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으로 이끄시는 성모님의 말씀에 따라, 하느님께 언제나 “예”라고 응답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025년 2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번 봄이 너희에게 개인적인 회개의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 너희의 삶을 통해 하느님을 무엇보다 사랑하며,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린 자녀들아, 나의 평화와 기도의 손이 되어라. 사랑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며, 평화를 원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위해 사랑이 되어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교회의 승인 하에)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번 봄이 너희에게 개인적인 회개의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 너희의 삶을 통해 하느님을 무엇보다 사랑하며,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날씨는 따뜻해지고, 나뭇가지에는 새순이 돋아 꽃이 피어납니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며,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겨울이 지나 봄으로 넘어가는 이 시점에, 성모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번 봄이 너희에게 개인적인 회개의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인 봄을 맞이하기를 바라시기에 이러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적인 봄을 맞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우리의 ‘개인적인 회개’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온기와 빛, 사랑과 평화로 가득 채워지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의 근원이신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 그리고 삶을 하느님께 되돌리는 과정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회개를 통해서만 하느님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특별히 우리의 ‘개인적인 회개’를 언급하십니다. 회개는 항상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이 먼저 회개해야 한다고 말하거나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는 미사의 참회 예식에서 우리가 가슴을 치며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도록 이끕니다.

       온 세상 모든 사람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우리의 개인적인 회개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한 방울의 빗물이 다른 방울들과 모여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며, 마침내 바다가 되듯이, 모든 변화는 우리의 개인적인 회개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적인 회개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영적인 봄을 가져다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시어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요한 3, 16 참조).이 말씀은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지를 보여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 주시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나 말이 아닌, 행동하는 사랑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느님을 무엇보다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이는 곧 우리의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각자의 상황과 처지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그 사랑이 반드시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말로만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삶으로는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위선자라 부를 것입니다.

      또한,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겉으로만 사랑하는 척한다면, 그것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 진실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심지어 그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 깊은 곳까지 아시는 하느님을 속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만을 생각할 때는 하느님도, 이웃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먼저 생각하고, 이웃의 처지를 우선적으로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기도와 사랑, 그리고 연민은 늘 함께 가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을 아는 사람은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먼저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신 ‘지금 이 순간, 나 혹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그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도록 간구합니다. 동시에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며,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합니다.


어린 자녀들아, 나의 평화와 기도의 손이 되어라. 사랑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며, 평화를 원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위해 사랑이 되어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은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님의 어머니이십니다. 이처럼 귀하고 존경스러운 분께서 우리에게 “나의 평화와 기도의 손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감히 무엇이기에 성모님의 평화와 기도의 손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 초대는 세상 그 누구의 초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영예로운 초대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초대를 통해 우리의 존엄성을 한층 높여 주십니다. 우리의 손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존재를 성모님께 내어 드려, 성모님께서 그것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시도록 한다면, 그보다 더 가치 있고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모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 심지어 죄 중에 있더라도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느님의 존재와 사랑을 깨닫기 위해 무엇보다도 기도하라고 권고하십니다. 평화 없이 살아가는 인류에게 하느님의 평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을 열라고 끊임없이 초대하십니다. 이 부르심과 초대, 권고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온 인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자녀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사랑을 실천하라고 초대하십니다. 비난과 지적, 단죄가 아닌, 공감과 연민, 그리고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 기도하지 않는 사람,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따뜻하게 품어 주기를 원하십니다. 성모님의 이 부르심에 온 마음으로 응답합시다.


   
 
 
2025년 1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해에 나는 너희를 회개로 초대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하느님을 너희 삶의 중심으로 모셔라. 그러면 그 열매로 이웃에 대한 사랑과 증거의 기쁨이 나타날 것이며, 너희 삶의 거룩함이 참된 신앙의 증거가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교회 승인 하에)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해에 나는 너희를 회개로 초대하고 있다.

     성모님께서는 ‘이 은총의 시기’라는 일반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하시지만, 이번 달 메시지에서는 그보다 더 구체적인 표현인 ‘이 은총의 해’를 사용하셨습니다. 왜 성모님께서 ‘해’를 특정하셨을까요? 이는 교회가 2025년을 희년으로 지정한 사실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24년 5월 9일에 발표하시기를, 2024년 12월 29일 성가정 축일부터 2025년 12월 28일 성가정 축일까지 1년 동안 전 세계 가톨릭 교회가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주제로 희년을 지낸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를 염두에 두시고, 희년이 시작된 2025년 1월 25일 메시지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해에 나는 너희를 회개로 초대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희년의 개념은 구약 성경 레위기 25장에서 시작됩니다. 시나이산에서 주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 50년마다 희년을 선포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희년은 이스라엘 백성이 빚을 탕감받고, 노예를 해방하며, 잃었던 땅과 재산을 되찾는 등 정의와 자비를 실천하는 시기였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이 전통을 영적인 차원에서 계승하며, 신앙의 쇄신과 하느님의 자비를 강조하는 특별한 시기로 희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교회의 첫 희년은 1300년 교황 보니파시오 8세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후 보통 25년마다 정기적인 희년과 특별 희년이 교황에 의해 선포되고 있습니다. 희년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체험하고, 다른 이들에게 용서를 베풀며, 평화와 정의를 실천하는 시기입니다. 신자들은 이 기간 동안 성지 순례, 고해성사, 미사 참례, 자선 활동 등을 통해 전대사의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2025년 희년은 25년마다 선포되는 정기적인 희년입니다. 이번 희년은 우리 신앙을 쇄신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기회로, 이를 위해 우리는 영적이고 실천적인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 모든 노력의 시작은 바로 회개에서 출발합니다.
      회개는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화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처음 하신 말씀도 바로 회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5) 회개 없이는 복음을 진정으로 믿을 수도,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나아가 회개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의 체험 역시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예언자로 메주고리예에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성모님께서는 회개가 가장 필요한 덕목임을 아시기에 1996년 2월 25일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너희를 회개로 초대한다. 이것이 내가 여기에서 너희에게 준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다.”
      2025년 희년의 첫 번째 달인 1월 25일, 성모님께서는 다시금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해에 나는 너희를 회개로 초대하고 있다.” 1996년에 가장 중요한 메시지로 회개를 강조하셨던 성모님께서, 약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를 회개의 여정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이는 성모님께서 우리의 회개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이 넘쳐 흐르기를 간절히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우리가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어서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고백하고 하느님의 용서를 받음으로써 본격적인 회개의 길이 열립니다. 이 과정은 고해성사를 통해 이루어지며, 고해성사는 참된 회개의 외적인 표징이자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따라서 고해성사 없는 참된 회개는 불가능합니다.
      이번 희년이 우리에게 은총의 해가 되도록, 성모님의 초대에 응답하여 무엇보다 먼저 고해성사를 받읍시다. 고해성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사탄과 악으로 인해 잃었던 우리의 삶, 마음, 영혼을 되찾아 주시는 은총의 도구입니다. 또한, 고해성사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체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희년이라는 특별한 시기에 하느님의 자비를 온전히 체험하기 위해, 성모님의 초대에 응답하며 우리의 회개 여정을 시작합시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하느님을 너희 삶의 중심으로 모셔라. 그러면 그 열매로 이웃에 대한 사랑과 증거의 기쁨이 나타날 것이며, 너희 삶의 거룩함이 참된 신앙의 증거가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회개로 초대하시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가 하느님께 구원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이 없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신다면 우리의 구원에 대해 염려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모님께서 회개로 초대하시는 것은 우리를 향한 성모님의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늘 사랑이 담긴 음성으로 “사랑하는 자녀들아” 하고 우리를 부르시고, 이번 달 메시지에서는 두번이나 우리를 그렇게 부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길 간절히 바라십니다. 회개한 사람에게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회개 이전에는 자신의 욕망이나 죄가 삶의 중심에 자리했지만, 회개 이후에는 하느님을 중심에 모시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삶의 가장자리로 밀어내거나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중심에 두듯이, 하느님이야말로 우리의 삶, 마음, 영혼에서 가장 중요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항상 우리 삶의 중심에 계셔야 합니다.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면,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 마음, 영혼은 물론 육신의 상태까지도 변화시키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채우실 때, 우리의 모든 것이 빛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때, 그분은 우리 안에 머무르시며,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을 더 사랑하려 노력하게 되고, 그 사랑은 자연스럽게 우리 이웃에게 흘러갑니다. 마치 부모의 사랑이 자녀들에게 전해지듯이,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를 통해 이웃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사랑은 이러한 ‘내리사랑’의 형태를 띱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먼저이고, 그 사랑이 이웃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며, 우리가 그분을 닮아 거룩해지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레위 19,2). 거룩하신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사람은 누구보다 거룩한 삶으로 초대받습니다. 사제, 수도자, 신자 모두가 거룩함으로 불리움을 받으며, 거룩한 삶은 단순히 종교적 열정이나 신심에만 국한되지 않고 정의와 자비를 실천하는 삶을 포함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거룩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삶 자체가 참된 신앙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삶은 바로 이러한 삶입니다. 하느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고, 그분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며, 그 사랑을 자연스럽게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삶. 나아가 거룩함, 정의, 자비를 실천하며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 이것이 바로 성모님께서 우리를 향해 간절히 바라시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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