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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남 신부 메시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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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기쁜 날, 나는 평화의 왕이신 내 아들이 너희에게 평화와 축복을 주시도록 너희 모두를 그분 앞으로 데리고 간다. 어린 자녀들아, 그 평화와 축복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랑으로 나누어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기쁜 날, 나는 평화의 왕이신 내 아들이 너희에게 평화와 축복을 주시도록 너희 모두를 그분 앞으로 데리고 간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오셨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분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작은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오늘은 오래된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된 날입니다. 창세기 3장 15장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원죄를 짓게 했던 뱀으로 표상된 사탄에게 하느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최초의 인류가 원죄를 짓고, 그 결과로 죽음과 고통이 이 세상 안으로 들어왔던 바로 그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여인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올 구세주를 약속하셨고, 그 약속은 바로 동정 마리아의 예수님 잉태와 탄생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사탄의 머리를 짓밟아 그를 무찌르고, 인류에게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실 분이 이 세상에 오셨으니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모님은 우리에게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을 낳아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 모두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와 축복을 얻어 누릴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그분 앞으로 데리고 가고자 하십니다. 인간이 되어오신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축복은 세상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고,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평화와 축복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성모님의 인도하심에 우리를 온전히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어린 아기는 엄마의 손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도 성모님의 손길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기려면 어린 아기가 되어야 하고,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세상의 어머니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 참된 어머니이시며 우리 영신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인 우리에게 최고의 것을 주려고 하십니다. 바로 예수님의 평화와 축복입니다. 이 성탄절에 우리는 성모님에게서 태어나 그분 품에 안겨 계신 작은 아기 예수님처럼 우리도 작은 아기들이 되어 성모님 품에 안겨져야 합니다. 그러면 성모님께서 우리 모두를 예수님 앞에 봉헌하고, 그분께서 주시는 평화와 축복을 받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그 평화와 축복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랑으로 나누어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실 때, ‘사랑하는 자녀들’이라는 표현을 매번 사용하시지만 ‘어린 자녀들’이라는 표현도 종종 사용하십니다. 이번 성탄절에 이 표현은 우리에게 얼마나 적절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정말 작은 사람들입니다. 아니 작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작은 아기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모님의 손길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그분께서 우리 모두를 평화의 예수님 앞에 데려가시도록 하기 위해서는 작은 아기, 어린 아이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당신이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하시면서,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2-3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먼저 복을 내리시는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종족들에게 복을 주시려는 분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모님은 예수님께로부터 받는 그분의 평화와 축복을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온 평화와 축복은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이를 위한 것이고,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사랑만이 나눔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렇기에 성모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아, 그 평화와 축복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랑으로 나누어라.”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 세상의 그 어느 것으로도 당신께서 주시는 평화와 축복을 사거나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당신의 평화와 축복을 주십시오. 저희를 당신께로 인도하기 위해 이 세상에 보내주신 어머니 마리아께 저희 자신을 온전히 맡기오니 어머니 마리아를 통하여 가장 완전하고 빠르게 당신께 갈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십시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 오늘 저는 당신의 품에 안기고, 당신의 손에 이끌리어 예수님께 인도되어 그분의 평화와 축복을 받기 위해 어린 아기가 되고자 합니다. 저의 모든 것을 어머니 손에 맡겨드리오니, 저를 예수님께로 데려가 주십시오. 어머니, 저의 모든 것은 어머니의 것이옵니다.
   
 
 
2009년 11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시기에 나는, 너희 가정 기도를 새롭게 하라고 너희 모두를 부른다. 예수님의 오심을 위해 기쁘게 너희 자신을 준비하여라. 어린 자녀들아, 너희 마음을 순수하고 기쁘게 만들어라. 그러면 너희를 통해 그분의 사랑에서 멀어져 있는 모든 마음 안으로 사랑과 따뜻함이 흘러들어 가게 될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내 손이 되어 주어라. 길을 잃고, 더 이상 신앙과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모든 이들을 위해 사랑의 손이 되어 주어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시기에 나는, 너희 가정 기도를 새롭게 하라고 너희 모두를 부른다. 예수님의 오심을 위해 기쁘게 너희 자신을 준비하여라. 

지나간 메시지들을 통해 성모님께서는 ‘매일,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기도 모임은 힘이 있으니 기도 모임을 만들어 함께 기도하고, 우리의 가정 자체가 하나의 작은 기도 모임이 되어야 한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족의 구성원들을 ‘식구’라고 부릅니다. ‘식구’의 문자적 의미는 ‘음식을 함께 먹는 사람들’이고, 가족들은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며 육신적인 음식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음식, 곧 사랑과 따뜻함을 함께 나누며 서로의 삶을 지탱해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식구라면 우리는 영적인 음식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가족, 식구들이 어떻게 함께 영적 음식을 나눌 수 있을까요? 바로 ‘함께 기도하는 것’을 통해서 입니다. 식구들이 주일미사에 함께 참례하고, 매일 함께 모여 묵주기도를 바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그에 비추어 자신들의 삶과 신앙을 함께 나눈다면, 그 가정은 성 가정으로 변화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사랑뿐만 아니라 그를 넘어서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가운데 참된 평화를 맛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은총의 시기인 이 대림절을 시작하면서 성모님과 요셉 성인의 성 가정에 탄생하시는 예수님께 우리 가정에도 태어나시도록,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어주시도록 우리의 가정 기도를 새롭게 합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늘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고, 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기쁘게 우리 자신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우리 자신을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세 가지 방법을 통해서 입니다. 먼저 그분에 대한 사랑을 더 한층 키워가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정도가 어떠한지 들여다보고, 그보다 더 큰 사랑의 마음을 지니는 것입니다. 또 그분에 대한 사랑이 그 어느 것에 대한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이 되게 해야 합니다. 입버릇처럼 “예수님, 사랑합니다. 제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지요?”라고 사랑 고백의 기도를 바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더욱 많이 갖는 것입니다. 즉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며 그분의 말씀을 듣고, 묵주기도와 성체조배를 하며 성모님과 함께 그분의 얼굴을 바라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 보시기에 마땅치 않은 삶의 부분을 개혁하고, 성경과 교회에서 가르치는 바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 마음을 순수하고 기쁘게 만들어라. 그러면 너희를 통해 그분의 사랑에서 멀어져 있는 모든 마음 안으로 사랑과 따뜻함이 흘러들어 가게 될 것이다. 

요한 복음 1장 4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모든 사람의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보십니다. 성모님께서 요청하신 대로 우리 마음이 참으로 순수하게 되려면, 주님 보시기에 거짓이 없는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죄나 부족함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전혀 없는 마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통회하는 마음, 용서 청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 오직 하느님만을 갈망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에 참된 순수함이 깃듭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항상 기뻐하십시오.” (1 테살 5,16)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기에 우리의 행동과 얼굴에도 그대로 드러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사랑과 그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의 홍보대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 마음을 순수하고 기쁘게 만들어라. 그러면 너희를 통해 그분의 사랑에서 멀어져 있는 모든 마음 안으로 사랑과 따뜻함이 흘러 들어가게 될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내 손이 되어 주어라. 길을 잃고, 더 이상 신앙과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모든 이들을 위한 사랑의 손이 되어 주어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에 우리의 동참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너희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실 정도입니다.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이번 달 메시지에서 다시 한 번 우리의 도움을 요청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아, 내 손이 되어다오. 길을 잃고, 더 이상 신앙과 희망을 가지고 있는 않은 모든 이들을 위한 사랑의 손이 되어다오.” 이사야서 6장에서 하느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라고 말씀 드렸던 예언자 이사야처럼, 우리도 “성모님,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제가 당신의 손이 되어 드리고자 하오니 저를 쓰십시오.”라고 기쁜 마음으로 말씀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모님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에 동참하도록 초대를 받고, 그에 응답하는 것처럼 소중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모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도 “예”로 응답합시다.
   
 
 
2009년 10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너희에게 나의 축복을 가져다준다. 나는 너희 모두를 축복하고, 너희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시작하신 이 길을 가면서 성장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기도하고 단식하며 너희의 신앙을 기쁘게 증거하여라. 어린 자녀들아, 너희의 마음이 언제나 기도로 가득 차기를 바란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너희에게 나의 축복을 가져다준다. 나는 너희 모두를 축복하고, 너희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시작하신 이 길을 가면서 성장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주일 미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신자들과 인사를 나눌 때, 아이들을 보면 저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을 해 줍니다. 아이들과 부모들 모두 좋아합니다. 사제의 축복을 통해 하느님의 축복을 전해 받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축복을 가져다 주시고, 우리 모두를 축복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어찌 보면 반복되는 말씀인 듯 하지만, 두 번씩이나 이어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그만큼 당신의 축복을 우리에게 한없이 나누어주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하느님께로부터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은총은 그분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어머니이시기에 어머니의 특성상 그것을 당신 자녀들에게 아낌없이 주고자 하십니다. 그분의 축복에서 제외되는 자녀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성모님은 “나는 너희 모두를 축복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당신의 자녀들인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포용하십니다. 그분의 축복을 받기 위해 그 어떤 조건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유순한 어린이처럼 그분께서 손을 얹어 축복해주시도록 그분 앞에 머리를 숙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축복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의 구원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인 구원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열심히 달릴 수 있도록, 영적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시고 격려하시며,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그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기도하고 단식하며 희의 신앙을 기쁘게 증거하여라. 어린 자녀들아, 너희의 마음이 언제나 기도로 가득 차기를 바란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기도와 단식은 우리를 구원에로 인도하는 쌍두마차와도 같은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혼이 더욱 하느님을 바라게 만들고, 단식은 우리의 육신적 욕망을 제어하는 법을 배우게 만들어 우리를 참으로 영적인 인간, 우리의 뜻보다는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열한 제자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마태 28,19-2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교회에 선교 사명을 주셨습니다. 교회 구성원 모두가 이 사명에 불림 받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선교 사명을 잘 완수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우리 기쁨에 찬 신앙 증거를 통해서 입니다. 야고보 사도께서는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 (야고 2,17.26)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행동하는 신앙, 실천이 뒷받침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기쁘게 우리의 신앙을 증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쁜 마음으로 신앙을 증거하려면, 당연히 우리의 마음이 늘 기도로 가득 차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도하지 않는 마음에는 기쁨과 신앙이 자리 잡을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매 미사가 끝날 때마다 당신은 사제를 통하여 아버지와 성령 그리고 당신의 이름으로 저희를 축복해주십니다. 말씀으로 저희 마음을 바꾸어 주시고, 성체로 저희에게 생명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저희에게 축복을 아끼시지 않는 당신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 매일 매일 당신의 크신 축복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마음으로 감사 드리지 못하고, 축복의 근원이신 당신을 잊고 사는 저희를 용서해 주십시오. 

성모님,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신 당신의 은총을 저희에게 나누어주고자 하시니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성모님, 당신을 통하여 저희를 구원하려고 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저희가 잘 알아 듣고 기도하며 단식하고, 저희의 신앙을 기쁘게 증거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2009년 9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기뻐하며 끈기 있게 너희의 회개를 위해 힘써라. 내가 너희 모두를 지극히 사랑하는 내 아들에게 인도할 수 있도록 너희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내 티 없는 성심에 봉헌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그분의 성심 안에서 기쁨을 찾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를 가르치고 너희를 영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너희와 함께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기뻐하며 끈기 있게 너희의 회개를 위해 힘써라. 

지난 달 메시지에서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너희의 개인적인 회개를 위해 힘써라.”라고 말씀하신 성모님께서는 이번 달 메시지에서도 다시금 우리 자신의 회개를 위해 힘쓰도록 독려하심으로써 같은 주제를 반복하고 계십니다. 그 반복의 이유는 너무도 간단합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우리 나름대로 우리 개인의 회개를 위해 열심했을지라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회개할 부분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 지난 달 메시지에서 우리 자신의 회개를 위해 가장 본질적인 조건인 기도에 대해 언급하셨다면, 이번 달 메시지에서는 기도하면서 계속적으로 회개하려고 하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태도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기쁨과 끈기’ 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뻐하며 끈기 있기 너희의 회개를 위해 힘써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지금 당장 우리가 완전한 회개에 도달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회개의 여정에서 이전보다 진일보한 부분이 있고, 또 회개하려고 애쓰는 우리의 노력과 모습을 지켜보며 기뻐하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회개를 위한 우리의 작은 노력은 우리 자신과 예수님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기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부모는 팔을 벌리고 아기에게 자신들을 향해 오도록 신호를 보냅니다. 아기는 뒤뚱거리며 부모를 향해 걸어가려고 애씁니다. 늘 기어 다니기만 하던 아기가 서서 한 발 두 발 걸음을 떼며 걸어가는 모습은 아기 자신에게 자신감을 주고, 그에게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비록 뒤뚱거리며 쓰러질 듯하면서도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아기의 모습은 부모의 눈에는 참으로 대견스러워 보이고, 여간 기쁜 일이 아닙니다. 아기가 걸어오다가 넘어졌다고 해서 그 아기를 야단치는 부모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직 아기의 다리에 힘이 부족하고, 균형 감각이 덜 발달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회개의 궁극적 지향점은 우리에게 구원과 평화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을 향해 가는 길에서 우리의 나약함으로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실망해서는 안됩니다. 완전하지는 못할망정 어느 만큼이라도 회개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다시 일어서서 그분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회개의 여정을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시면서 우리를 격려하시는 성모님과 예수님을 떠올리며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 9,12-13) 

내가 너희 모두를 지극히 사랑하는 내 아들에게 인도할 수 있도록 너희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내 티 없는 성심에 봉헌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그분의 성심 안에서 기쁨을 찾게 될 것이다.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이 너무 오래 동안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28년 3개월 동안 성모님의 발현이 매일 계속되고 있다면, 오히려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왜 성모님께서 메주고리예 발현목격증인들을 통해 그처럼 오랫 동안 이 땅과 우리 인류에게 찾아오시고 계시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우리 모두가 완전히 회개하고, 모든 인류가 예수님을 자신들의 삶의 중심에 모셔 들였다면, 성모님은 굳이 매일 발현하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아니 온 인류를 우리의 참된 평화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해주시기 위해서 계속 이 땅에 오고 계십니다. 성모님의 사명은 우리 모두를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당신이 우리 모두를 예수님께 인도할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당신의 티 없는 성심에 봉헌하라고 요청하십니다. 성모님의 티 없으신 성심은 예수님의 성심과 온전히 하나된 마음이고, 당신의 노래 ‘마니피캇’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느님 사랑과 당신 자녀들인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성모님의 성심에 봉헌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을 전적으로 어머니께 의탁하게 되고,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성심과 하나된 예수님의 성심께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 11,28-30) 

나는 너희를 가르치고 너희를 영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너희와 함께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얼마 전에는 스와인 플루, 지금은 신종 플루로 인해 전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지난 목요일 운전 중 라디오를 통해 펜실베니아 주지사가 ‘감기 증상이 있다면, 꼭 입을 가린 채 기침을 하고, 손은 항상 깨끗이 씻고, 될 수 있으면 외부와 접촉을 삼가하고 집에 머물라.’는 메시지를 졍규 방송 중간 중간 반복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기에 사람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메주고리예 발현 초기 성모님께서는 당신을 ‘평화의 모후’ 라고 소개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느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너희에게 알려주기 위해 왔다.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평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기를! 평화, 평화, 오직 평화만이 있기를!”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그분을 찾지 않으며 평화를 잃어버린 이 세상 사람들에게 평화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가르쳐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메시지를 통해 구체적인 가르침들을 주셨고, 지금도 계속 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가르침은 별반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이미 우리가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다 알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예컨대, 성모님 메시지의 핵심 주제들인 ‘기도, 회개, 신앙, 보속 그리고 평화’는 우리에게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성모님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모든 내용과 주제를 가르쳐주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실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모든 관심이 하느님을 완전히 떠나 있어 머리로 조차도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이 시대의 참된 교사로 성모님을 우리에게 보내주고 계십니다.     
     지금은 성령의 시대이고, 성령의 정배이신 마리아, 곧 성모님의 시대입니다. 성령께서는 성모님을 통하여 당신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왜 성모님을 이 땅에 교사로 보내고 계시는지 묵상해 봅시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요한 14,23-26) 

예수님, 제가 기쁨과 끈기를 잃지 않고 매일 매일 회개할 수 있도록 어머니 마리아를 통하여 저를 이끌어주시는 당신의 은총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 저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어머니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을 통하여 봉헌하오니 당신 사랑의 성심 안에서 모두 기쁨으로 바꾸어 주소서. 저의 참된 기쁨은 오직 당신에게서만 오고, 저의 모든 슬픔은 당신의 위로와 능력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를 통하여 제 삶 모두를 당신께 봉헌하오니 받아주소서. 

성모님, 당신은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당신 몸 안에 모셔 들이고, 몸과 마음 모두 늘 그분과 함께 하심으로써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 몸소 체험하셨습니다. 성모님, 또한 당신은 시메온의 예언처럼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당신의 아드님, 당신의 하느님을 뵈오면서 영혼이 칼에 찔리는 듯한 고통과 슬픔을 겪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당신을 온전히 신뢰하면서 저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당신의 티 없으신 성심에 봉헌합니다. 어머니, 제가 당신의 성심을 통하여 예수님의 성심 안에서만 오직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제가 오직 예수님만을 저의 참된 구세주로 모실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저를 가르쳐 주소서. 아멘.
   
 
 
2009년 8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회개하라고 또 다시 너희를 부른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의 거룩함은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고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며, 너희의 개인적 회개를 위해 힘써라. 그러면 너희는 다른 이들에게 하느님 사랑의 표징이 될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모든 마음이 갈망하고 있는 영원에로 너희를 인도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회개하라고 또 다시 너희를 부른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의 거룩함은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고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지 않고 있다. 

성모님께서는 이번 달 메시지를 통해서 또 다시 우리를 회개로 부르십니다. 아직 우리의 회개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회개는 우리의 성화, 즉 거룩함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완전한 회개는 우리를 완전히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회개한 사람은 하느님께로 자신의 모든 몸과 마음, 정신과 영혼 모두를 들어 높이고, 거룩하신 그분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옷 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하게 되려고 애쓰는 모습을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는 거룩하지 않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너희의 거룩함은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모님께서는 또한 우리의 거룩함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십니다. 말이 아니라 우리의 거룩한 모습과 삶을 통해서 말입니다. 즉, 우리의 거룩함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서 발산되어 다른 이들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에게나 멸망할 사람들에게나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 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2코린 2,15)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거룩함으로 모든 이들을 거룩함에로 인도해야 하고, 또한 우리의 거룩함으로 모든 사람이 회개와 거룩함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도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께서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죽음으로 이끄는 죽음의 향내고,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는 생명으로 이끄는 생명의 향내입니다.”(2코린 2, 16) 결국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구원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구원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이렇게 중대한 일을 하도록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진정으로 회개하고 참으로 거룩하게 되라고 우리를 또 다시 부르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고, 적당한 것으로는 다른 이들에게 진정한 감화를 줄 수 없기에, 우리는 더욱 더 거룩하게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며, 너희의 개인적 회개를 위해 힘써라. 그러면 너희는 다른 이들에게 하느님 사랑의 표징이 될 것이다. 

기도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참된 모습을 보게 만들어 줍니다. 기도는 우리 모습 안에 하느님이 살아계시고, 우리 자신이 하느님을 닮은 사람임을 인식하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죄스러운 모습까지도 깊이 있게 들여다 보고, 마음으로 뉘우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가 얼마나 큰지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회개하려면 반드시 기도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냥 기도가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 바치는 기도, 즉 기도에 전념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노력이 기도로부터 시작되지 않거나, 기도 없는 활동이라면,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하고, 금방 지치게 만들며 활동주의에 빠지도록 만듭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사랑이 오는 것을 느낍니다. 하느님의 그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회개하도록 이끌어 주고, 이웃에게로 향하게 만듭니다. 물이 차면 저절로 넘치듯이, 우리 마음에 하느님의 사랑이 차고 넘치면 저절로 이웃을 향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너희의 개인적 회개를 위해 힘써라. 그러면 너희는 다른 이들에게 하느님 사랑의 표징이 될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모든 마음이 갈망하고 있는 영원에로 너희를 인도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께서는 자주 당신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성모님의 현존을 더 잘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우리의 집과 각 방, 차, 혹은 직장 책상에 성모님상을 모시거나 그분의 성화 혹은 상본을 비치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메주고리예 성모님처럼 아름다운 모습의 성모님을 우리가 쓰는 컴퓨터 화면에 깔아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걸어놓거나 우리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그 사진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존재를 늘 상기시켜 줍니다. 그렇듯이 그 누구보다도 우리에게 소중한 성모님이시라면, 우리는 당연히 그와 같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미사 중에 사제가 여러 기도를 마무리하면서 ‘주님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제의 기도처럼 주님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아야 할 것이 아닙니까? 우리의 생은 지상에서의 삶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삶은 영원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영원하신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 우리의 최대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모든 마음이 갈망하고 있는 영원에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영원하신 주님을 믿고, 그분께 우리를 온전히 의탁하도록 어머니께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모님의 손에 우리의 손을 드리고, 그분께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드리면서 우리를 영원하신 주님께로 계속해서 인도해주시도록 간청합시다.

예수님, 기도하고, 기도하며 또 기도하면서 회개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십시오. 그리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저희도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예수님, 저희보다 앞서간 성인들처럼 저희도 거룩하게 살아 성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이들도 거룩함의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성모님, 다른 이들의 결점이나 죄를 보기에 앞서서 저희 자신의 것을 먼저 들여다 보고, 저희의 개인적 회개를 위해 힘쓰고자 합니다. 당신의 전구를 통하여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가 먼저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모님, 제 손을 당신께 드리오니 저의 손을 잡고 저를 영원하신 주님께로 인도하여 주소서.
   
 
 
2009년 7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시기가 너희를 위한 기도의 때가 되기를 바란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이번 달 성모님 메시지는 대단히 짧습니다. 그러나 내용이 비록 짧기는 하지만 이번 달 메시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각자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성모님의 자녀로 맺어진 우리의 관계는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것이고, 이 세상에서만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서 영원히 맺어지는 아주 귀한 관계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영신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늘 그러하시듯이 이번 달 메시지에서도 “사랑하는 자녀들아!”라는 말씀으로 메시지를 시작하십니다. 늘 들어온 말씀이라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이 말 속에 담긴 의미는 참으로 깊습니다. 성모님은 온 인류를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라고 부르십니다. 성과 인종, 국적과 종교, 그리고 남녀노소를 초월하여 세상 모든 이를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라고 부르십니다. 모든 인류를 향한 성모님의 사랑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죄 중에 있거나 그분에게서 멀리 있거나 혹은 심지어 그분을 거부하고, 그분을 전혀 모른다고 할지라도 성모님께서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딸로 여기시고 그들을 부르십니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고, 세상의 구원자시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부르신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큰 특전이고 기쁨인지 모릅니다. 늘 들어와서 무디어진 마음으로 대할 수 있지만 이번 달 메시지 서두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아” 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현재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어머니 마리아께 마음으로 감사 드립시다. 개인적으로 그분의 사랑을 더욱 깊이 느껴보기 위해 ‘사랑하는 자녀들아’에서 ‘자녀들아’ 대신에 각자의 이름을 넣고, 우리의 이름을 알고 계시고, 우리를 사랑으로 부르시는 성모님의 그 음성을 들어보려고 노력해보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넣고 성모님께서 부르시는 것처럼 ‘사랑하는 xx야’ 하고 부드럽고 자애로운 목소리로 자신을 불러보면서 말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시기가 너희를 위한 기도의 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가정, 이웃, 교회 혹은 세상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은 언뜻 보면 이기적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많은 기도를 바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먼저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며 회개하여 거룩하게 되고, 우리 안에 그분의 사랑과 평화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거룩함과 하느님의 사랑 그리고 그분의 평화를 간직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가족, 이웃, 그리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나누어줄 수 있겠습니까? “이 시기가 너희를 위한 기도의 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성모님은 다른 사람의 변화에 앞서 우리 자신이 먼저 변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시가가 우리를 위한 기도의 때’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일을 하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미리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따라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렇듯이 우리는 이 시기를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의 때로 만들기 위해 구체적인 매일 기도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어느 시간과 장소 혹은 어떤 기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그 계획에 따라 꾸준하게 마음으로 기도를 바치다 보면, 그 기도의 계획은 우리에게 매우 좋은 영적인 결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께서는 이번 달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말씀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그분의 부름에 응답할 차례입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선함을 믿어주시고, 우리를 격려해주시는 성모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이 시기가 참으로 우리를 위한 기도의 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2009년 6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와 함께 기뻐하고 기쁨 속에서 회개하며, 내가 너희 가운데 함께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려라.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께서 너희 마음 안에, 너희 삶의 중심에 계실 수 있도록 기도하고,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너희 삶으로 증거하여라. 모든 피조물이 사랑의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올 수 있도록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너희의 손을 내밀어 주어라. 나는 어머니로서 너희를 축복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와 함께 기뻐하고 기쁨 속에서 회개하며, 내가 너희 가운데 함께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려라. 

오늘은 성모님께서 메주고리예에서 발현을 시작하신 지 28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비록 매년 6월 25일을 성모님 발현 기념일로 지내고 있지만, 사실 성모님께서 처음 발현하신 날은 1981년 6월 24일이었습니다. 그 날 성모님은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고, 그 다음날인 6월 25일 발현목격증인들에게 처음으로 말씀을 건네시며 앞으로 계속해서 발현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매년 6월 25일을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 기념일로 지내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메주고리예 발현을 시작하신 첫 날인 1981년 6월 24일은 교회 전례력에 따르면 성 요한 세례자 대축일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우연이 아니라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그 날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했던 예언자 세례자 요한처럼 성모님께서는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인류를 준비시키고자 그 날을 택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를 외쳤던 것처럼 성모님께서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인 메주고리예에서 회개의 메시지를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을 하느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했던 것처럼, 성모님께서는 성체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께로 인류를 인도하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바로 그 성모님께서 이번 달 메시지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와 함께 기뻐하고, 기쁨 속에서 회개하며, 내가 너희 가운데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 드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루카 복음서는 예수님을 잉태하신 성모님께서 사촌 언니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엘리사벳의 뱃속에 든 아기, 즉 세례자 요한이 기뻐하며 뛰놀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 엄마의 뱃속에서 이미 성모님과 함께 기뻐했습니다. 성모님께서 자신에게 모셔온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뵐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새로운 계약의 궤이시며 최초의 성당, 최초의 감실이신 성모님 안에 모셔진 예수님의 거룩하신 몸, 즉 성체를 보고 기뻐 뛰놀았습니다. 19세기부터 급증하고 있는 수많은 발현들과 그 발현들의 정점을 이루는 메주고리예를 통하여 오늘날 계속해서 우리를 찾아오고 계시는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모셔다 주시면서, 우리 마음과 신앙의 눈으로 그분을 바라보도록 지속적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성모님과 함께 기뻐하려면 그분께서 우리에게 모셔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말씀과 성체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또한 기쁨 속에서 회개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멀리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서 예수님께로 발걸음을 옮기고 예수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며 예수님을 닮은 사람으로 변화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처럼 오랫동안 성모님께서 우리 가운데 머무시면서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것은 바로 우리의 회개를 위해서입니다. 회개하여 예수님께로부터 영원한 생명과 구원 그리고 평화를 얻도록 해주시기 위해 성모님은 계속해서 이 땅에 오시고, 천상의 메시지로 우리의 영혼을 일깨워주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성모님을 보내주고 계시는 그 은총에 진정으로 감사한다면, 우리는 성모님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 즉 하느님의 말씀을 귀 담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성모님의 현존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신 하느님의 은총에 진정으로 보답하는 길이고,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평화와 구원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께서 너희 마음 안에, 너희 삶의 중심에 계실 수 있도록 기도하고,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너희 삶으로 증거하여라. 모든 피조물이 사랑의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올 수 있도록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너희의 손을 내밀어 주어라. 나는 어머니로서 너희를 축복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이고 그분과의 만남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만날 수 없고 그분을 느낄 수도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뜻보다 인간적인 욕망에 따르기 십상이기에 하느님 중심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삶의 중심이 되고 맙니다. 그렇기에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 삶의 중심에 계실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청소년 사목의 대부인 돈 보스코 성인은 “아이들에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고, 그들이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은 입에 있지 않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보여주고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너희 삶으로 증거 하여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우리의 하느님 사랑 증거가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미치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작가는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어떠한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신 분 그 자비 당신의 모든 조물 위에 미치네. 주님, 당신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합니다. 모든 눈이 당신께 바라고 당신께서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제때에 주십니다. 당신의 손을 벌리시어 모든 생물을 호의로 배불리십니다.”(시편 145;9-10.15-16)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자비하시고 충실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의 삶으로 증거하려면, 우리 마음 안에 들어와 있어야 할 그 사랑의 크기와 깊이가 얼마만 해야 하겠습니까?    
     인도 캘커타의 성녀 마더 데레사가 아주 가난한 한 여인의 집에 양식을 가져다 주었을 때였습니다. 그 여자는 양식을 받자마자 집을 나가 잠시 후에 돌아왔습니다. 마더 데레사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엘 다녀오셨습니까?”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앞 집에 다녀왔습니다. 그 집도 우리처럼 먹을 것이 전혀 없어서 계속해서 굶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수녀님께서 주신 양식을 그들에게 나누어주고 왔습니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 자신의 고통에 앞서 다른 이의 고통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마음에 간직한 사람이고 삶으로 그 사랑을 증거 하는 사람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써 우리가 당신의 사랑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사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이렇게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 요한 4:9-10) 예수님께서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한 것처럼 성모님께서는 우리도 당신을 대신하여 하느님 사랑의 참된 증거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모든 피조물이 사랑의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올 수 있도록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너희의 손을 내밀어다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당신 손에 들려 있는 하느님 사랑의 도구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창조주의 어머니이시며 우주의 여왕이신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을 위해 우리가 일할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예수님, 평화의 모후이신 어머니 마리아를 저희에게 보내주고 계시는 당신의 은총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당신께서 어머니를 통하여 저희를 구원과 평화의 길, 즉 당신께로 인도하고자 하신다는 것을 저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어머니를 통하여 주시는 천상의 가르침에 저희 마음을 온전히 열고, 그 가르침을 통해 참된 기쁨을 찾고, 그 기쁨 속에서 회개할 수 있도록 저희를 이끌어주십시오. 

성모님, 늘 저희 가운데 함께 하시면서 저희가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수 있도록 저희를 인도해 주시고 준비시켜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가 그저 당신의 메시지를 듣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고 마음에 새기며 실제 삶을 통해 실천함으로써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2009년 5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시기에 세례 받은 모든 피조물 위에 성령께서 임하시도록 기도하라고 너희 모두를 부른다. 그러면 성령께서는 너희 모두를 새롭게 하시고,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이들에게 너희의 믿음을 증거하도록 너희를 이끌어 주실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서 너희를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시기에 세례 받은 모든 피조물 위에 성령께서 임하시도록 기도하라고 너희 모두를 부른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세례 받은 모든 피조물’이라는 색다른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오직 사람만이 세례를 받을 수 있기에 ‘세례 받은 모든 이’라는 표현을 쓰실 수도 있었을텐데 성모님께서는 왜 ‘세례 받은 모든 피조물’이라는 표현을 쓰셨을까요? 이 표현을 묵상하면 할수록 그 의미가 참으로 깊은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 표현은 우리가 어떤 은총을 받았고, 현재 우리가 어떠한 처지에 있으며,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는 존재인지 깊이 묵상하게 만들어줍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손에 의해 창조된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모습대로 만드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당신 교회로 부르시어 세례성사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 예수님의 제자 그리고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성사의 은총과 특전은 세상의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짓고, 불신앙 속에 삶으로써 그 은총을 잃어버리고, 세례로 고귀해진 우리의 존엄함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피조물임을 잊고, 우리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냥, 마치 하느님처럼 행세하기도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세례 받은 모든 피조물’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우리가 받은 세례성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되돌아보고,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피조물이며, 하느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심을 더욱 깊이 묵상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성모님께서는 또한 ‘세례 받은 모든 피조물 위에 성령께서 임하시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성찰과 묵상을 넘어서서 성령 강림을 위해 기도하도록 우리 모두를 부르십니다. 

그러면 성령께서는 너희 모두를 새롭게 하시고,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이들에게 너희의 믿음을 증거하도록 너희를 이끌어 주실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서 너희를 위해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우리가 아무리 굳게 결심하고 굳은 의지가 가지고 선하게 살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나약한 피조물이기에 죄에 떨어지고, 악에 빠지곤 합니다. 성 바오로 사도께서도 자신의 나약함과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습니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사실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을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나는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할 수 있습니까? (로마 7:15,17-19,24)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우리 인간은 참으로 약하기 그지 없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참된 선과 구원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참으로 선하게 살고, 늘 쇄신되려면 우리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 아니 하느님 자신이 필요합니다.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는 보호자 성령(요한 14:16 참조)이 필요합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오셔야 우리는 모든 악에서 보호를 받고,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성모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이 있었던 그 다락방에서 열두 사도들을 비롯한 다른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성령의 오심을 체험하셨습니다. 그분은 성령의 힘으로 박해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문을 박차고 나가 힘차게 복음을 전하는 열 두 사도의 모습, 자신의 힘이 아니라 온전히 하느님의 힘, 즉 성령께만 의지하는 제자들의 쇄신된 모습을 직접 목격하셨습니다. 바로 그 성모님께서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 모두를 새롭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르코 복음에 따르면 배반자 유다를 제외한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이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마르 16, 14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승천하실 당시에도 여전히 의심하는 사도들이 더러 있었습니다(마태 28, 17 참조). 이러한 사도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바로 성령 강림을 통해서였습니다. 불 혀 모양으로 사도들 위에 내리신 성령께서는 그들의 마음에서 모든 완고함을 없애주시고, 그들의 믿음을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모든 이들에게 그들의 믿음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가득 찬 그들의 설교와 모범을 통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받아들였습니다(사도 2장 참조).          
     우리가 참된 믿음의 증거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이 충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위해 온갖 박해와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그런 충만한 믿음은 오직 성령께서만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성령께 우리 모두에게 충만한 믿음을 주시고,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의 믿음을 증거하여 모든 이가 영원한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 11, 9-10. 13) 예수님 말씀대로 하느님 아버지께 세례 받은 당신의 모든 자녀들 위에 성령을 내려주시도록 청합시다.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성령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며 기도하던 사도들에게 당신의 성령을 보내주셨음에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 당신께서 약속하신 대로 임하신 성령께서는 사도들을 비롯한 당신의 제자들을 새롭게 하시고, 굳은 믿음으로 힘차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 오늘날 당신의 또 다른 제자들인 저희에게도 성령을 보내주십시오. 저희는 당신 성령의 힘으로 마음과 삶이 완전히 새롭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예수님, 성령의 능력으로 저희의 믿음을 충만하게 해 주시어 어머니 마리아의 말씀처럼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이들에게 그 믿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사도들의 모후이신 성모님, 세례 받은 저희 위에 성령께서 임하시도록 기도하라고 불러 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어머니께서 사도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성령의 오심을 전구하셨던 것을 저희는 굳게 믿습니다. 성모님, 당신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고, 저희를 위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대전에서 전구해주시니 감사 드립니다.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저희도 사도들처럼 당신과 함께 마음을 모아 성령의 오심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소서, 성령님, 당신 정배 마리아의 티 없는 성심의 힘있는 전구를 들으시어 오소서!
   
 
 
2009년 4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평화가 없는 이 땅에서 평화가 최고의 보물이 될 수 있도록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너희 가정에서 평화를 증거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나는 너희의 평화의 모후이고, 너희의 어머니이다. 나는 오직 하느님에게서만 오는 평화의 길로 너희를 인도하고 싶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평화가 없는 이 땅에서 평화가 최고의 보물이 될 수 있도록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너희 가정에서 평화를 증거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요한 복음 20장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무서워 문을 닫아 걸고 있었던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두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미사 때마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라고 외치는 사제의 음성을 통해 지금도 계속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계속되는 초대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여전히 평화가 부족합니다. “평화가 없는 이 땅에서”라는 표현을 쓰시는 성모님의 메시지로 미루어 보면 하늘에서 보시기에 이 땅에는 평화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평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는 평화를 원하면서도 그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참다운 노력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오직 하느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선물이기에 그 평화를 얻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서 성모님께서는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평화는 기도의 열매입니다. 오직 기도하는 사람만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땅의 평화는 ‘나’ 로부터 시작됩니다. 내 마음 안에 평화를 간직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평화를 전해줄 수 없고, 평화가 없는 이 땅에 평화의 씨앗을 심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먼저 자신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 다음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평화를 갈망하고, 평화를 최고의 보물로 선택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평화를 증거 하는 사도가 되고, 우리 가정이 그 증거의 첫 번째 장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가정은 사회의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핵심적인 조직입니다. 우리 가정이 진정으로 평화롭다면 그 평화는 옆 가정으로 옮겨가게 되고, 그 물결은 온 세상 모든 가정에 미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가정에서 평화를 증거 할 것입니까?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스런 눈으로 서로 바라보고, 따뜻한 미소로 반겨주고, 위로와 격려의 말로 서로 힘을 주며, 부족한 허물이 보이면 비판하기 보다는 감싸주고 채워주려는 자세면 충분합니다. 집 밖에서는 따뜻한 미소와 말로 다른 사람들을 근사하게 대하면서, 집에 돌아와서는 인상 쓰고, 거친 말과 행동으로 식구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은 절대 평화를 증거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모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나는…너희 가정에서 평화를 증거 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나는 너희의 평화의 모후이고, 너희의 어머니이다. 나는 오직 하느님에게서만 오는 평화의 길로 너희를 인도하고 싶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시기 바로 직전 두 가지 큰 선물을 우리에게 남겨주셨습니다. 성 목요일에는 우리를 위해 ‘성체성사’를 세워주셨고, 성 금요일에는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주셨습니다. 요한 복음 19장 26-27절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을 ‘여인’이라고 부르심으로써 그분을 만민의 어머니로 만들어주셨고, 모든 인류를 대표하여 그 자리에 서 있던 제자 요한을 그분의 아들이라고 하심으로써 모든 인류를 성모님의 품에 맡겨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주셨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입니다. 비록 우리 육신의 어머니가 계시기는 하지만 성모님이야말로 우리의 참된 어머니이십니다. 그분을 자신의 어머니로 인식하든 못하든, 그분을 어머니로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모든 사람이 다 그분의 자녀들이고, 그분은 모든 이의 영적 어머니이십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지금도 우리에게 유효합니다. 성모님을 우리의 참된 어머니로 모셔 들여야 합니다. 제자 요한처럼 그분을 우리 집에 모셔 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어머니로 받아들이고, 우리 집에 모셔 들인다면, 그분은 우리를 예수님께로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고, 우리 가정을 예수님이 함께 머무시는 하느님의 집으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1981년 6월 24일 메주고리예 첫 발현을 시작하신 성모님께서는 당신을 ‘평화의 모후’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이는 성모님의 호칭이면서 동시에 그분의 메주고리예 발현 이유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목적어입니다. 평화의 모후께서는 우리 인류를 평화로, 그 평화의 근원이신 하느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28년 10개월이 지난 지금도 계속해서 같은 목적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열망은 단 한 가지입니다. 즉, 우리를 오직 하느님에게서만 오는 평화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여전히 지치지 않는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기도하며, 또 기도하여라.” 

예수님,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을 빌어 당신께 기도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 제 마음은 착잡하기만 합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 평화가 없는 제 마음 안에 당신의 평화를 주십시오. 두려움과 공포에 가득 찼던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셨던 당신의 그 음성을 저도 듣고 싶습니다. 평화의 근원이신 예수님, 오직 당신만이 저에게 참된 평화를 주실 수 있습니다. 당신께서 주시는 평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기도로 제 마음을 당신 앞에 열어 놓습니다. 예수님, 제 마음 안으로 들어오시어 당신의 평화로 저를 다스려 주소서.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 당신의 부르심 대로 저는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제 가정에서 가장 먼저 평화를 증거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결심을 받아주시고, 제가 이를 실제로 잘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어머니 마리아여, 아주 작고 유순한 아기처럼 저를 어머니 당신의 품에 맡겨드리오니 저를 평화의 근원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해주시고, 평화의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 있으면 저의 손을 다시 잡아 올바른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2009년 3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이 봄에, 너희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의 빛을 받을 준비가 되도록 기도로 너희의 영혼을 깨워야 한다. 어린 자녀들아, 그분께서 너희를 그분의 성심에 더욱 가까이 이끌어 주시어 너희가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게 되기를 빈다. 나는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고, 너희가 진심으로 회개하도록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서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이 봄에, 너희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의 빛을 받을 준비가 되도록 기도로 너희의 영혼을 깨워야 한다. 

봄기운은 겨우내 얼어붙었던 대지를 녹이고, 만물을 겨울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활력으로 움직이게 만듭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자연의 이치가 우리 영혼에도 그대로 적용되기를 바라십니다. 왜냐하면 성모님이 보시기에 우리의 영혼도 겨우내 얼어붙어 있는 대지처럼 여전히 잠 속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기운이 우리 영혼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채널입니다. 수도꼭지를 틀어야 물이 나오는 것처럼 우리가 기도할 때만 하느님의 기운이 우리 영혼 안에 쏟아져 들어올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기운이 우리 영혼 안에 들어와야 우리 영혼이 잠에서 깨어나고 활력을 얻게 됩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기도하고, 기도하며, 또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성모님께서는 이번 달 메시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빛을 받을 준비가 되도록 기도로 우리의 영혼을 깨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로 우리의 영혼을 깨워야 하는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빛을 받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 입니다. 사순절은 그 자체로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 정점은 예수님의 부활이고, 따라서 현재 우리가 지내고 있는 사순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시기입니다. 사순절이 끝나고 부활절이 시작되는 부활성야에 어둠으로 상징되는 죽음을 이기고 생명의 빛으로 부활하시어 우리들 가운데 오시는 예수님을 경축하기 위해 부활초를 든 사제는 “그리스도 우리의 빛”을 세 번이나 외칩니다. 이 외침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과 인생을 환하게 밝혀주는 빛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시려고 예수님은 빛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요한 12,46절 참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빛은 생명의 빛입니다. 단순한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빛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영혼을 깨워 부활하신 예수님의 빛을 받을 준비가 되도록 하기 위해 바치는 우리의 기도는 영원한 생명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인도하기 위해 “기도하고, 기도하며 또 기도하라.”고 간청하시는 성모님의 초대에 ‘오늘 그리고 지금’ 응답합시다. 

어린 자녀들아, 그분께서 너희를 그분의 성심에 더욱 가까이 이끌어 주시어 너희가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게 되기를 빈다. 

비록 기도를 통해서 잠자고 있는 우리의 영혼을 깨운다고 해도 그것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노력과 협력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입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요한 6, 44)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늘에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그분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주도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주도권이 있습니다. 기도는 잠자고 있는 우리 영혼의 눈을 뜨게 하여 하느님께서 모든 주도권을 가지고 계심을 깨닫도록 만들고, 그분의 손길에 모든 것을 맡기도록 만들어줍니다. 에제키엘 예언자의 말을 빌어서 표현하자면, 기도는 우리에게 ‘새 마음, 새 영을 넣어주시고, 우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주고자 하시는 하느님’(에제 36,26절 참조)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의 마음과 만나게 만들어줍니다.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님께 바치는 우리의 기도는 그분 성심의 용광로에 우리의 마음을 던지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당신의 성심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당신의 성심과 하나가 되게 해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예수님과 그분께서 주고자 하시는 영원한 생명에 우리 자신을 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모님께서는 “그분께서 너희를 그분의 성심에 더욱 가까이 이끌어 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너희 자신을 열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고, 너희가 진심으로 회개하도록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서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에 의해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 기억은 사랑의 기억입니다. 이 사랑의 기억과 관련해서 얼마 전에 주님 품에 안기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 생각이 납니다. 제가 서울 대교구 사제로 서품 되기 전 당시 교구장이셨던 김 추기경님께서 모든 교구 사제들 영명 축일에 직접 전화를 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제서품 1년 차 신부로서 처음 맞이한 제 영명 축일인 1990년 12월 26일, 그 말대로 정말 추기경님께서 제게 전화를 주시어 축하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대단히 황공하고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누군가 높은 분이 자기를 기억해주는 것은 사람을 기쁘게 만들어 줍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고 우주의 여왕이신 성모님께서 사랑으로 우리를 기억하고 계시고, 우리에 대해 염려하고 계시다면, 세상에 그처럼 황공하고 감격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당신 자녀들인 우리를 사랑하시어 메주고리예를 통해 매일 발현하시면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께서 인도하시기 위해 천상의 메시지로 우리를 가르치시는 어머니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더군다나 “나는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고, 너희가 진심으로 회개하도록 지극히 높으신 분 대전에서 전구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시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든든한 일입니까? 이전에도 말씀하신 바 있지만 올 2009년 3월 18일 발현목격증인 미리야나에게 발현하시어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둘러다 보시고 성모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너희에게 말하거니와,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안다면, 너희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말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으로 기억하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특별히 그분께서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대전에서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도록 전구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그분의 사랑과 기도에 감사하며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할 차례입니다. 

예수님, 당신은 세상의 빛이시고, 저희 인생과 영혼을 밝게 비추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빛이십니다. 어머니 마리아의 가르침대로 기도로 저희 영혼을 깨워 부활하신 당신의 빛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겠습니다. 허나 저희는 저희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그 빛을 받아들이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은총으로 저희를 이끌어 주시니 않으면, 저희를 결코 당신의 빛을 온전히 받을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저희를 온유하고 겸손하신 당신의 성심 더욱 가까이 이끌어 주소서. 저희의 마음을 온전히 바꾸어 주시어 당신의 마음과 하나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에 저희 자신을 활짝 열 수 있게 해주소서. 

성모님, 당신의 가르침과 사랑 그리고 기도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것을 마음에 새기셨던 당신처럼 저희도 당신께서 주시는 사랑의 메시지를 마음에 새기고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주님의 은총을 전구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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