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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이기심을 버리고, 내가 너희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대로 살아라. 내 메시지 없이 너희는 너희 삶을 바꿀 수 없다. 실제 기도함으로써 너희는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너희는 지금 너희에게서 멀리 계시다고 느끼는 하느님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에, 평화 속에 삶으로써 증거할 필요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며 하느님께서 너희 마음에 들어오시게 해 드려라. 너희 안에, 또 너희 주위에 있는 악을 이겨내기 위해 단식하고 고해성사를 보아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이기심을 버리고, 내가 너희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대로 살아라. 내 메시지 없이 너희는 너희 삶을 바꿀 수 없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이 기브온에 제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 한밤중 꿈에 그에게 나타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솔로몬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당신 종을 제 아버지 다윗을 이어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만,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당신 종은 당신께서 뽑으신 백성, 그 수가 너무 많아 셀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당신 백성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 종에게는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어느 누가 이렇게 큰 당신 백성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솔로몬의 청이 주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것을 청하였으니, 곧 자신을 위해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그 대신 이처럼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자, 내가 네 말대로 해주겠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너 같은 사람은 네 앞에도 없었고, 너 같은 사람은 네 뒤에도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나는 네가 청하지 않은 것, 곧 부와 명예도 너에게 준다. 네 일생 동안 임금들 가운데 너 같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걸었듯이 내 길을 걸으며, 내 규정과 내 계명을 지키면 네 수명도 늘려 주겠다.”(1열왕 3, 4-14 참조)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께 무엇을 청해야 할지, 우리의 기도 지향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기 자신보다 백성들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와 분별하는 마음을 청하는 솔로몬을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백성들을 잘 통치하고, 선과 악을 잘 분별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솔로몬의 청은 당연히 받아들여졌고, 그에 덤으로 그가 청하지도 않은 부와 명예도 받게 되었으며, 조건부이지만 수명 연장까지 보장받았습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실 때 그 “평화” 앞에 어떤 소유격도 붙지 않았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저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누구를 위한 평화입니까? 모든 이를 위한 평화입니다. 우리의 이웃, 나라, 그리고 세상의 평화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청해야 할 것은 바로 이 평화입니다. 만민과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먼저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께서는 “이기심을 버리고, 내가 너희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 대로 살아라. 내 메시지 없이 너희는 너희 삶을 바꿀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제 기도함으로써 너희는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너희는 지금 너희에게서 멀리 계시다고 느끼는 하느님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에, 평화 속에 삶으로써 증거할 필요를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 만민과 세상의 평화를 위해 실제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도 그 평화의 선물을 나누어 받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자신보다 만민과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평화를 우리 마음과 삶에 내려 주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만민과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의 평화를 위한 기도가 되고, 우리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을 더 깊이 체험하는 시간이 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며 하느님께서 너희 마음에 들어오시게 해 드려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 20) 이 말씀처럼 예수님은 지금 우리 마음의 문을 여시기 위해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문을 열라고 직접 말씀도 하고 계십니다. 이젠 우리 차례입니다. 문 두드리시면서 문을 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먼저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들어오시도록 문을 열어드려야 합니다. 무엇을 통해서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바로 기도를 통해서 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마음의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당신에게 문을 열라고 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닫혀 있는 우리 마음의 문을 예수님께 열어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모님께서는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기도하고, 기도하며, 또 기도하고, 하느님께서 너희 마음에 들어오시게 해드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기도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끝을 보기 위해 사용하는 삼 세판처럼, “기도하고, 기도하며, 또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온 힘을 다해,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안에, 또 너희 주위에 있는 악을 이겨내기 위해 단식하고 고해성사를 보아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께서는 이미 수요일과 금요일에 물과 빵으로 단식을 하고, 적어도 매달 한 번 고해성사를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안에, 또 너희 주위에 있는 악을 이겨내기 위해 단식하고 고행성사를 보아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목적을 분명하게 해주셨습니다. 단식과 고해성사가 가지는 다른 많은 효과들이 있지만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단식과 고해성사가 우리 안에, 또 우리 주위에 있는 악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단식과 고해성사는 우리 안과 우리 주변에 있는 악과 그 악의 근원인 마귀를 극복하고 쫓아내는 구마의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 대로 살아라. 내 메시지 없이 너희는 너희 삶을 바꿀 수 없다.”고 하신 말씀처럼 단식하고 고해성사를 봄으로써 우리의 삶을 바꾸도록 합시다.

   
 
 
2016년 9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너희를 기도로 부르고 있다. 기도가 너희 삶이 되기를 빈다. 오직 이 길을 통해서만 너희의 마음이 평화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너희 가까이 계시고, 너희는 마음속으로 그분을 친구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너희는 마치 아는 사람과 말하는 것처럼 그분과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예수님께서 너희 마음 안에 계시고, 너희는 그분과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에, 너희는 증거자가 될 필요가 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내 모성애로 너희 모두를 사랑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너희를 기도로 부르고 있다. 기도가 너희 삶이 되기를 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기도로 부르고, 기도가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얼마나 기도해야 기도가 우리의 삶이 될 수 있겠습니까? 마치 계속 숨을 쉬어야 생명이 이어지는 것처럼 하루를 기도로 가득 채워야 기도가 우리의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하는 다른 일들은 모두 등한히 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가 우리 삶의 중심이 되게 하면서 우리의 삶이 기도와 조화를 이루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잘 알려주는 예가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메주고리예 발현 초기에 발현목격증인들을 통해 메주고리예 청소년 기도 모임을 직접 이끄실 때의 일입니다. 성모님께서 아이들에게 직접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시면서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과 묵주기도를 바치시다가 3단을 하고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나와 함께 바치도록 하지구나. 집으로 가면서 나머지 4단을 바치거라. 집에 도착하여 숙제도 하고 집안 일도 도와드리고 잠자기 전에 마지막 5단을 바치거라. 그리고 잠자리에 들면 너희가 자는 동안 기도의 영이 너희와 함께 계속 기도를 바칠 것이다. ”이렇게 성모님께서는 아이들에게 기도를 중심에 두면서,기도와 일상생활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 그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오직 이 길을 통해서만 너희의 마음이 평화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너희 가까이 계시고, 너희는 마음속으로 그분을 친구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너희는 마치 아는 사람과 말하는 것처럼 그분과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오직 이 길을 통해서만”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성모님은 기도가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얻는 유일한 길임을 알려주십니다. 또한 평화와 기쁨은 기도의 열매이고,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러니 지금껏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느껴보지 못했다면 성모님의 부르심 대로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기도했는데도 여전히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느껴보지 못했다면 지금껏 하던 기도의 양보다 두 배, 세 배 더 많은 기도를 마음으로 바치십시오. 기도가 삶이 될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누군가가 친해지기 위해서는 말문을 터야 하고, 계속 대화를 하면서 그 친밀함은 깊어져 갑니다. 그렇듯이 하느님과 친하기 위해 우리는 그분과 대화해야 하고, 그 수단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 친해질 수 있고, 기도하면서 하느님께서 우리 가까이 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 기도하면 하느님과의 친밀감은 더욱 강화됩니다. 우리에게 하느님은 더 이상가까이 하기에 먼 분이 아니라 친한 친구가 되십니다. 그렇기에 기도는 일차적으로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하느님과 친해지기 위해서 바쳐야 하는 것임을 잊지 않도록 합시다.

어린 자녀들아, 예수님께서 너희 마음 안에 계시고, 너희는 그분과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에, 너희는 증거자가 될 필요가 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내 모성애로 너희 모두를 사랑한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기도의 효과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기도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셨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마치 우리가 친한 사람과 헤어지고 싶지 않고 늘 함께 있고 싶어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셨기에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고 우리 마음 안에 머물고 싶어하시고 우리와 하나가 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이고,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계시며, 우리와 하나되어 계시다는 것은 우리의 얼굴과 말과 행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또 우리가 마음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지 않고 그분과 하나가 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결코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2016년 8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너희와 더불어 천상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 어린 자녀들아, 오직 하느님께서만 주시는 희망, 평화 그리고 사랑이 너희 마음 안에서 자랄 수 있도록 너희 마음의 문을 열어라.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지상과 지상의 것들에 너무 매여 있다. 그 때문에 바람이 바다의 파도를 일렁거리는 것처럼 사탄이 너희를 일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삶의 사슬이 마음을 다한 기도 그리고 내 아들 예수님께 대한 흠숭이 되게 하여라. 너희가 그분 안에서 기쁨이 되고 너희의 삶으로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너희의 미래를 그분께 맡겨드려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너희와 더불어 천상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 어린 자녀들아, 오직 하느님께서만 주시는 희망, 평화 그리고 사랑이 너희 마음 안에서 자랄 수 있도록 너희 마음의 문을 열어라.

 

발현목격증인 미리야나가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성모님 발현을 목격하고 나서 다시 이 지상의 현실로 돌아오면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아 혼자 방에 들어가 한참을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겨우 마음이 진정이 되면 그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천상의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님께서 가져오시는 그 천상의 기쁨을 체험했을 때 이 지상의 그 어느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무엇인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발현목격증인들처럼 성모님을 직접 뵈올 수는 없어도 성모님께서는 우리와 더불어 천상의 기쁨을 나누고 싶어하십니다. 그럼 어떻게 성모님께서 나누어주고자 하시는 천상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기도로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 열 때 그것이 가능합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시편 42, 2)라고 말하는 시편 저자처럼 우리 영혼이 하느님을 그리워하면서 그분께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 때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나누어주고자 하시는 천상의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하느님께 우리 마음의 문을 열면 하느님께서는 거기에 오직 그분만이 주실 수 있는 희망, 평화 그리고 사랑의 씨앗을 뿌리시어 그것들이 우리 마음 안에서 자라게 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지상과 지상의 것들에 너무 매여 있다. 그 때문에 바람이 바다의 파도를 일렁거리는 것처럼 사탄이 너희를 일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삶의 사슬이 마음을 다한 기도 그리고 내 아들 예수님께 대한 흠숭이 되게 하여라.

 

머리로는 하느님께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그렇지 못한 것은 우리가 여전히 지상과 지상의 것들에 너무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그러한 우리 마음에 걱정, 불안, 두려움, 의심, 탐욕, 그리고 분노 등의 악한 씨앗을 뿌려 유혹하고 죄를 짓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지상과 지상의 것들에 묶여 있는 마음의 사슬을 과감하게 끊어버리고, 우리의 마음이 기도와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흠숭으로 가득차게 만들어야 합니다. 어떤 아이에게서 벙어리와 귀머거리 영을 쫓아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 29)고 말씀하신 것처럼 오직 기도만이 우리 마음을 일렁거리는 사탄을 쫓아낼 수 있고, 지상과 지상의 것들에 매여 있는 우리의 마음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그분 안에서 기쁨이 되고 너희의 삶으로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너희의 미래를 그분께 맡겨드려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예수님께 맡겨드리려면, 먼저 그분의 선하심과 섭리적 보살핌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 위에서 아무런 미련이나 후회 없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맡겨드리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미래를 만들어 주십니다. 마치 어린 자녀들이 부모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신뢰하며 따라갈 때 부모의 마음이 흐뭇한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예수님께 맡기고 그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간다면 예수님의 마음도 흐뭇하고 기쁘실 것입니다.

 메주고리예 성모님께서 특별히 성체 앞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읽고 묵상하도록 권장하신 다음 성경 말씀을 우리도 목요일뿐만 아니라 매일 읽으면서 예수님께 우리의 미래를 맡기는 법을 배우도록 합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 25-34)

 

   
 
 
2016년 7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너희를 바라보고 있고, 너희가 길을 잃어버렸으며 너희 마음에 기도나 기쁨이 없다는 것을 안다. 어린 자녀들아, 다시 기도하기 시작하고,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첫자리에 모셔라. 내가 너희에게 가져다주고 있는 그 희망을 잃지 마라. 어린 자녀들아, 이 시기가, 매일매일이, 너희가 마음으로 침묵하면서 하느님을 더욱더 찾는 시간이 되기를 빈다. 그러니 기도가 너희를 위한 기쁨이 될 때까지,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너희를 바라보고 있고, 너희가 길을 잃어버렸으며 너희 마음에 기도나 기쁨이 없다는 것을 안다. 어린 자녀들아, 다시 기도하기 시작하고,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첫자리에 모셔라. 내가 너희에게 가져다주고 있는 그 희망을 잃지 마라.

어머니는 어린 아기에게서 결코 눈을 떼는 법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염려하면서 다정한 눈으로 아기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기 때문입니다. 그렇듯이 우리의 참된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도 당신의 사랑하는 어린 자녀들인 우리에게서 결코 눈을 떼지 않으십니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린 자녀들이기는 하지만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강제적으로 끌고 가지 않으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하여 길을 잃어버려도 그 또한 허락하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 길을 잃어버린 채 죽음과 멸망의 길로 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일깨워주시고 다시 바른 길로 걸어가도록 격려해주십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너희를 바라보고 있고, 너희가 길을 잃어버렸으며, 너희 마음에 기도나 기쁨이 없다는 것을 안다.”는 말씀 속에서는 그 어떠한 단죄나 판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우리를 향한 애틋한 사랑과 염려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럼 우리가 다시 길을 찾고, 마음에 기도와 기쁨을 간직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선 기도입니다. 성모님은 우리에게 “다시 기도하기 시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해야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도해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 6)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 갈 수 있습니다. 기도해야 우리 마음에 기도와 기쁨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또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셔라. 내가 너희에게 가져다 주고 있는 그 희망을 잃지 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우리 삶의 첫 자리에 모실 때, 하느님은 늘 우리 삶의 중심이 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 삶의 중심이 되셔야 우리의 모든 삶이 그분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이 우리 삶의 첫 자리에 계실 때 우리는 결코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고, 늘 희망할 수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아, 이 시기가, 매일매일이, 너희가 마음으로 침묵하면서 하느님을 더욱더 찾는 시간이 되기를 빈다.

나쁜 습관은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몸에 배이지만, 좋은 습관은 의식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일 때에야 비로소 어렵게 우리 몸에 배는 법입니다. 마음의 침묵, 하느님을 찾는 기도의 시간 모두 의식적으로 마련하고 행하지 않으면 절대로 우리 몸에 배이지 않습니다. 의식적으로 마음으로 침묵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상황들을 만들어야 하고, 시간을 내어 하느님을 찾는 시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일류 운동 선수가 되기 위해 체력단련과 자기 분야 운동에 대한 연습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매일 해야 하는 것처럼, 참으로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매일매일 마음의 침묵을 지키면서 그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기도를 끊임없이 바쳐야 합니다. 마음으로 침묵하는 영혼에게 하느님이 들어오실 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기도가 너희를 위한 기쁨이 될 때까지,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게임이나 드라마에 중독되는 것은 쉬운데 기도에 완전히 빠져드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게임이나 드라마는 접하는 그 순간 재미가 있고 쾌감이 느껴지는 반면, 기도는 어느 정도 적당히 한다고 해서 갑자기 재미있어지고, 기쁨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온 마음을 다해 끊임없이 기도하다 보면 정말 기도가 우리를 위한 기쁨이고, 이 기쁨은 세상의 그 어느 것에서도 맛볼 수 없는 기쁨이며, 우리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 참된 기쁨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카 18, 1)고 말씀하셨고, 바오로 사도 역시 “기도에 전념하십시오.”(로마 12, 12),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테살 5, 17)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고, 그래야 기도가 우리를 위한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도 “기도하고, 기도하며, 또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권고하십니다. 기도가 기쁨이 될 때가지 기도해 본 경험이 있는 영혼은 기도하기를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2016년 6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머무는 선물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라. 어린 자녀들아, 지상에서 너희가 잘 되려면 기도하고 하느님의 계명들을 실천하여라. 은총의 날인 오늘, 나는 너희에게 평화와 내 사랑의 모성적 축복을 주고 싶다. 나는 내 아들과 함께 너희를 위해 전구하고 있고, 내가 너희와 함께 내 계획들을 실현할 수 있도록 꾸준히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머무는 선물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라. 

성모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고 계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심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메주고리예 발현의 참된 주인공은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 구원을 위해 성모님을 보내주고 계시는 하느님을 먼저 생각하고, 그분께 감사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이 지상에 보내시어 우리 가운데 함께 머물도록 하신 것은 그분께서 여전히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우리의 구원을 염려하고 계시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우리의 불신앙과 배은망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모님을 우리에게 보내시는 것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있는 하느님의 귀한 선물입니다. 따라서 이 선물에 대한 감사는 물론이고, 그에 보답하기 위해 그 선물을 보내신 하느님께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아, 지상에서 너희가 잘 되려면 기도하고 하느님의 계명들을 실천하여라.

성모님께서 이 지상에 오시는 목적은 우리를 구원의 길, 즉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모님이 우리 지상의 삶을 경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지상에서의 삶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려 주신 큰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모님은 우리가 이 지상에서 사는 동안 잘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그 잘 되는 길은 우리가 기도하고 하느님의 계명들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하고 하느님을 계명들을 실천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하고, 하느님의 뜻대로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우리의 시간과 마음을 드리고, 온 마음과 정신과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우리 몸처럼 사랑한다면 우리는 이 지상에서 잘 될 수 있습니다. 이 지상에서 잘 된다고 하는 것이 반드시 물질적인 축복이나 번영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지상에서 잘 된다는 것은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넘어섭니다. 이 지상에서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와 기쁨을 누리면서 산다면 그보다 더 잘 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직 하느님만 원하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일만 하려고 노력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한없는 축복을 내려주시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좋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은총의 날인 오늘, 나는 너희에게 평화와 내 사랑의 모성적 축복을 주고 싶다. 

성모님께서 메주고리예에 처음 발현하신 날은 1981년 6월 24일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그 날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고, 그 다음날인 6월 25일 처음으로 발현목격증인들에게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이 때문에 매년 6월 25일을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 기념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 달 메시지가 주어진 날은 바로 발현 기념 35주년이 되는 날이고, 성모님은 바로 이 날을 “은총의 날인 오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성모님 말씀처럼 오늘은 은총의 날입니다. 천상 어머니께서 지상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발현을 시작하신 날이고, 35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발현하고 계시니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평화 자체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모셔다 주시고, 예수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회개하며, 보속하고, 굳은 믿음을 간직하라고 우리를 거듭 깨우쳐주시니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내 아들과 함께 너희를 위해 전구하고 있고, 내가 너희와 함께 내 계획들을 실현할 수 있도록 꾸준히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예수님과 성모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사업의 협력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 15, 16)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성모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협력자로 부르시고 뽑으셨습니다. 성모님은 우리 인류를 위해 많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지만 그 모든 계획은 결국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그를 위해 성모님께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에게 그 계획의 실현을 위해 꾸준히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처럼 성모님의 계획들이 실현될 수 있도록 꾸준히 기도하면서 우리는 기도 시작 혹은 전에 다음과 같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 제가 바치는 이 작은 기도가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그것처럼 저를 기쁘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도와 인류 구원 사업에 동참할 수 있도록 불러주신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 꾸준히 바치는 우리의 기도가 또한 우리 구원을 위한 기도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우리를 당신의 협력자로 불러주신 은혜에 감사 드리고, 끊임없는 기도로 성모님을 도와드리면서 그 부르심에 응답합시다.

   
 
 
2016년 5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의 현존은 너희 모두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고, 회개를 독려하기 위한 것이다. 사탄은 강하고, 너희의 마음과 생각 속에 무질서와 불안을 심어주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인 너희는, 성령께서 너희를 참된 기쁨과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도록 기도하여라.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내 아들 앞에서 너희를 위하여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의 현존은 너희 모두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고, 회개를 독려하기 위한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메주고리예 발현이 우리 모두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메주고리예를 통하여 우리에게 성모님을 선물로 계속 보내주고 계시는데 대해 우리는 무엇보다 그분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잊지 않고 계시고,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며, 여전히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을 성모님 발현을 통하여 보여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자격이 있기에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이라는 하느님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넘치기에 과분한 선물을 계속해서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이라는 선물을 우리 모두에게 주고 계십니다. 그 어느 누구도 이 선물을 받는 데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이 선물을 주시는 이유는 모든 인류가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보다도 회개입니다. 즉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악을 끊어버리고, 하느님께 완전히 우리 자신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구원될 수 있습니다. 회개가 없으면 구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메주고리예를 통해 계속해서 성모님을 이 세상에 보내어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느님을 생각할 때면, 그 누구보다도 우리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을 떠올리고, 온 마음을 다해 감사 드리며 지금 이 순간 회개해야 합니다. 

사탄은 강하고, 너희의 마음과 생각 속에 무질서와 불안을 심어주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인 너희는, 성령께서 너희를 참된 기쁨과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도록 기도하여라.

사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는 분명히 존재하고, 그가 지닌 초자연적인 힘으로 우리를 유혹하여 죄짓게 하고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사탄은 강하고, 너희의 마음과 생각 속에 무질서와 불안을 심어주고 싶어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성모님께서는 다시금 우리에게 사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도록 우리를 일깨워 주십니다. 혹시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무질서와 불안이 느껴진다면, 우리는 바로 그 순간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이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무질서와 불안을 심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즉시 사탄의 악령이 아니라 하느님의 거룩하신 성령께서 우리 마음과 생각 안으로 들어오시도록 바로 기도 드려야 합니다. 예컨대, 짧지만 대단히 강력한 기도인 “오소서, 성령님, 지극히 사랑하시는 당신 정배 마리아의 힘있는 전구를 들으시어 오소서!”와 같은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 말씀대로 우리를 참된 기쁨과 평화의 길로 인도해주시도록 성령께 간단한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내 아들 앞에서 너희를 위하여 전구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 25-27)
   이 성경 말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교회와 온 인류를 대표하여 당신의 십자가 아래 서 있던 사도 요한을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로 삼으셨고, 마리아를 그의 어머니로 맺어주셨습니다. 비록 우리가 그 자리에 없었을지라도 사도 요한은 우리를 대표하여 그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날 우리 모두는 성모님의 자녀가 되었고, 성모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직접 성모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성모님께서 우리들의 어머니가 되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육신의 어머니들이 어린 자녀들을 돌보기 위해 그 곁에 머무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의 어머니로 직접 맺어주신 성모님께서도 영적으로 어린 당신 자녀들을 돌보기 위해 늘 우리 곁에 머무십니다. 영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예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전구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참된 영적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시고,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기도의 중개자로 우리 곁에 머무신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합시다.

   
 
 
2016년 4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죄와 죄스러운 습관들에 빠져 있는 너희를 바라보면서 티 없는 내 성심은 피를 흘린다. 이 지상에서 너희가 잘 되기 위해 하느님과 기도에로 돌아오라고, 나는 너희를 부르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마음이 당신에게서 멀어져 있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과 기쁨이 되도록, 나를 통해 너희를 부르고 계신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시고 너희를 영원으로 부르고 계시는 창조주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도록, 나의 부름이 너희 영혼과 마음에 위안이 되기를 빈다. 어린 자녀들아, 인생은 짧으니 이 때를 잘 활용하고 선을 행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죄와 죄스러운 습관들에 빠져 있는 너희를 바라보면서 티 없는 내 성심은 피를 흘린다.

사제품을 받고 처음 부임했던 본당에 알코올 중독자들의 단주 모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떻게 모임이 진행되는지 알고 싶어 책임자에게 허락을 얻고 그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모임에 참석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예컨대, 남자면 자신의 실명을 대지 않고 “저는 미스터 알코올 중독자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임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알코올 중독자들은 자신이 결코 알코올 중독자라는 것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을 알코올 중독자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의 알코올 중독을 인정했습니다. 참된 겸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라는 것을 알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알코올 중독자라고 소개함으로써 치유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알코올 중독뿐만 아니라 모든 중독은 자신이 중독자임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치유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그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마치 루카 복음 15장 “되돌아온 아들”의 비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죄를 깨닫고 발길을 돌려 아버지의 집을 찾아간 그 작은 아들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우리의 가슴을 치면서 모든 것이 다 우리의 탓이라고 말함으로써 작은 아들과 같은 길을 걷습니다. 우리가 죄인이니 우리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의 죄를 아룁니다. 
   오늘날 우리 현대인에게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수많은 죄를 지으면서도 자신의 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아무런 죄의식도 가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남용하여 죄를 짓고, 죄스러운 습관에 빠져 있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양심이 너무 무디어졌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죄 중에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죄와 죄스러운 습관들에 빠져 있는 너희를 바라보면서 내 티 없는 성심은 피를 흘린다.”는 말씀을 통해서 성모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우리의 죄를 성찰하고 통회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우리의 죄와 죄스러운 습관은 티 없으신 성모님의 성심이 피를 흘리게끔 합니다. 우리의 죄와 죄스러운 습관으로 인해 우리의 영혼이 파괴되고 우리가 멸망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성모님은 그것이 안타까우신 것입니다. 그를 바라보시는 고통이 얼마나 크시면 마음에서 피를 다 흘리시겠습니까? 그만큼 성모님께서 당신 자녀들인 우리의 구원을 염려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지상에서 너희가 잘 되기 위해 하느님과 기도에로 돌아오라고, 나는 너희를 부르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마음이 당신에게서 멀어져 있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과 기쁨이 되도록, 나를 통해 너희를 부르고 계신다.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우리의 영원한 집이 있는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셨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성모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당신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우리가 이 지상에서도 잘 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잘 된다는 것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것을 지칭할 것입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참된 평화와 기쁨을 누리면서 이 지상에서 잘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는 길은 하느님과 기도에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과 기도 없이 우리가 이 지상에서 잘 될 수 없습니다. 참된 평화와 기쁨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시편 작가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시편 1, 2-3) 또한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또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마음이 돌아서서 말을 듣지 않고, 유혹에 끌려 다른 신들에게 경배하고 그들을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분명히 일러두는데, 너희는 반드시 멸망하고, 요르단을 건너 차지하러 들어가는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또한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 그리고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가 오랫동안 살 수 있게 해 주실 분이시다.”(신명 30, 15-20) 이처럼 우리가 이 지상에서 잘 되기 위해서는 오직 하느님만을 섬기고, 기도하면서 그분의 길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마음이 당신에게서 멀어져 있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과 기쁨이 되도록, 나를 통해 너희를 부르고 계신다. 

다음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어떻게 부르셨는지 알려주는 성경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12, 1-3)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누군가를 다른 이들을 위한 축복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을 위한 축복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당신에게서 멀어져 있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과 기쁨이 되도록 성모님을 통해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이 부르심이 완성되려면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희망과 기쁨을 넣어주십니다. 그렇게 된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져 있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 희망과 기쁨을 불러 일으키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시고 너희를 영원으로 부르고 계시는 창조주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도록, 나의 부름이 너희 영혼과 마음에 위안이 되기를 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우리에게서 무엇이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다만 사랑 자체이신 그분의 넘치는 사랑 때문에 우리가 창조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가 그분에게서 완전히 떠나가지 않는 이상 언제나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향해 시작하신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며 영원으로까지 부르고 계시는 하느님을 끊임없이 찬미하고 그분께 모든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바로 그 창조주 하느님께 우리의 시선을 돌리고 마음을 두도록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영원으로 부르고 계시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우리 영혼과 마음이 기뻐 뛰놀게 하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메시지가 성모님의 부름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고 있기에 우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위안을 얻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모습대로 우리를 귀하게 창조하신 하느님이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기를 바라신다는 이 메시지를 그 어디에서, 그 어느 누구에게서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메주고리예를 통해 매일 같이 우리에게 보내주고 계시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에게서만 들을 수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아, 인생은 짧으니 이 때를 잘 활용하고 선을 행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짧습니다. 긴 시간을 살아온 것 같은데 그 뒤를 돌아보면 마치 어제 같이 느껴집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와 앞으로 올 시간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질이 결정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모님께서는 “어린 자녀들아, 인생은 짧으니 이 때를 잘 활용하고, 선을 행하여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이 때를 잘 활용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일 미사뿐 아니라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조배를 하며, 매일 성경을 읽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고해성사를 보고,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물과 빵만으로 단식하면서 사랑으로 보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악을 끊어버리고 오직 선만을 행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부터 그렇게 산다면 우리는 이 생에서부터 거룩한 삶을 살고, 우리를 영원으로 부르고 계시는 창조주 하느님의 초대에 기꺼이 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016년 3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너희에게 내 사랑을 가져다주고 있다. 하느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고, 사랑으로 회개하도록 너희를 부를 수 있게 해 주셨다. 어린 자녀들인 너희는 사랑하는데 서툴며, 내 아들 예수님께서 너희를 구원하고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사랑으로 그분의 생명을 주셨다는 것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기도하고 기도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기도 중에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너희에게 내 사랑을 가져다주고 있다. 하느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고, 사랑으로 회개하도록 너희를 부를 수 있게 해 주셨다.

성모님께서는 오직 사랑만으로 가득한 천국에서 이 지상에 있는 우리를 찾아오고 계십니다. 그냥 빈손으로 오시지 않고 오실 때마다 당신의 사랑을 담뿍 가지고 오시어 우리에게 그 사랑을 전해주십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가져다 주시는 그 사랑은 바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입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가져다 주시는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되어 성모님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지는 내리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은 너무도 보잘것없고 작기만 하기에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사랑은 바로 천상으로부터 오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성모님을 거쳐 우리에게 끊임없이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온 마음과 몸으로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사랑을 갈구하고 알아 듣는 자만이 그 사랑을 느끼고 기뻐하며 한없는 감사의 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될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모든 것을 자기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비록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우리를 사랑할 능력을 주셨을지언정, 성모님은 그것마저도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허락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의지를 먼저 앞세우십니다. 그러하신 성모님께서 “회개하도록 사랑으로 나는 너희를 부르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회개한다는 것은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우선시하고, 그분의 뜻에 순명하면서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행동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모님께서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회개의 길입니다.

어린 자녀들인 너희는 사랑하는데 서툴며, 내 아들 예수님께서 너희를 구원하고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사랑으로 그분의 생명을 주셨다는 것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기도하고기도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기도 중에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 말씀대로 우리는 잘 사랑할 줄 모릅니다. 사랑하는데 서툴기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항상 자기를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안위와 편의를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다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야 마음이 놓이고 성이 차기 때문입니다. 주기보다는 받는 데만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이기적이기 때문에 잘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하는데 서툰 것입니다. 두 번째 큰 이유는 하느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진정으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 그에게 잃어버린 영원한 생명을 되찾아주기 위해 몸소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실 만큼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고 목숨마저 아낌없이 내어주셨는데도, 우리는 그 사랑의 깊이를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더 잘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사랑으로 그분의 생명을 주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성모님께서는 기도하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 중에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동안 기도를 했지만 여전히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 기도의 양과 정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고 보면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내신 하느님의 그 무한한 사랑을 깨닫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을 투자하여 기도해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우리 사명입니다. 

   
 
 
2016년 2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시기에, 나는 회개하라고 너희 모두를 부르고 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조금 사랑하고 기도마저 적게 한다. 너희는 길을 잃었고, 너희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따라가거라.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너희에게 그분 자신을 주신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가 기도 안에서 희망과 너희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마음으로 다시 기도하기 시작하라고, 나는 너희를 부르고 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시기에, 나는 회개하라고 너희 모두를 부르고 있다. 

사순절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구세주로 보내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보이셨는지 특별히 묵상하는 시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주시기 위해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영원한 생명을 되찾아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사랑으로 바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순절에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마저 십자가의 죽음을 겪게 하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의 시선을 맞추어야 합니다.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하느님께로 우리의 시선을 돌리고,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드리면서 그분의 사랑에 의탁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한 사람의 자세이고,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은총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 28)라고 하신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은총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분만을 온전히 사랑하며 그분의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성모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바로 그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녀들아, 이 은총의 시기에 회개하라고 너희 모두를 부르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조금 사랑하고 기도마저 적게 한다. 너희는 길을 잃었고, 너희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따라가거라.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너희에게 그분 자신을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 3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기에 당연히 사랑해야 하지만, 사실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반목하고 마음 속에 미움을 간직하고 있으면 우리는 행복하지 못하고 평화롭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꼭 사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사랑하고 있습니까?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조금 밖에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만큼 예수님의 계명을 잘 따르지도 못하고, 우리 자신도 큰 행복과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기도마저 적게 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조금 밖에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나마 기도를 많이 하면 우리가 사랑이신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가게 되기 때문에 우리 마음 안에 미움 대신 사랑이 차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마저 적게 하고 있으니 성모님께서는 그것이 안타까우신 것입니다. 
   우리가 별로 사랑하지도 않고, 기도도 적게 한다면, 하느님은 우리 마음과 삶에 깊이 자리 잡으실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느님 아닌 다른 것들로 우리 마음과 삶이 가득하게 되고, 그것들이 우리를 움직여 구원이 아니라 멸망의 길로, 거룩함이 아니라 타락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또 우리 인생의 최종적인 목표인 우리 영혼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는 생각할 틈을 갖지도 못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조금 사랑하고, 기도마저 적게 한다. 너희는 길을 잃었고, 너희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 자신을 다시 되찾고, 무엇이 우리의 목표인지 깨달으며 그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성모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따라가거라.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너희에게 그분 자신을 주신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우리에게 그 해답을 제시해 주십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은 곧 희생적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웃의 안녕과 구원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이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처럼 사랑할 때만 참된 자아 완성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으로 십자가를 질 때, 우리는 참된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 앞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그분만을 바라보고 그분을 따라간다면,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 12)라고 하신 그분의 말씀처럼 우리는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천국에 이르는 사다리는 하나뿐이다. 십자가가 아니고는 천국에 오를 수 있는 다른 길이 없다.”고 한 페루 리마의 성녀 로사의 말처럼 십자가는 우리는 부활로 이끌고, 천국으로 오르게 합니다. 우리 신앙과 삶의 궁극적인 목표인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고, 계속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보다 앞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그분께 늘 우리의 시선을 두고 있어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가 기도 안에서 희망과 너희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마음으로 다시 기도하기 시작하라고, 나는 너희를 부르고 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루카 복음 24장에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든 희망을 걸었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무참하게 돌아가시자 절망에 빠져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라는 동네로 가던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처음에 그분께서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걸어가시며 그들의 절망과 슬픔에 대해 들으시고, 당신에 관한 성경 말씀을 들려주시면서 그들의 마음에 희망을 불러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다 되어 그들과 함께 어느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기 위해 빵을 떼어 나누어주셨을 때, 그들의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 사라지셨습니다. 그들은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열 두 사도들을 비롯한 다른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 자신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을 증언했습니다. (루카 24, 13-35 참조)
   이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기도의 힘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길을 걸어가면서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열고 그 안에 담긴 자신들의 절망을 예수님께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들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하시면서 그들에게 희망을 다시 되찾아 주셨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말씀 드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에 대해 응답하십니다. 두 제자들처럼 우리가 희망을 잃어버렸다면, 그래서 기도로 그 절망으로 가득한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 드러내 보인다면, 예수님은 우리가 희망을 되찾을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주십니다. 또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도 깨달을 수 있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비록 희망을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하더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그분께서 다시 살아나시어 우리와 함께 걸어가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 20) 그러니 성모님께서 부르시는 것처럼 기도 안에서 희망과 우리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마음으로 다시 기도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도 다음과 같이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로마 12, 12)

   
 
 
2016년 1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기도하라고 너희 모두를 부른다. 기도는 너희를 하느님께 더 가까이 데려다주는 연결고리이기 때문에, 너희는 기도 없이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너희가 온 마음을 다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라고 말할 수 있도록,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과 그분의 계명에로 돌아오너라. 어린 자녀들인 너희는 자유롭게 하느님을 선택하거나 그분을 거스를 자유가 있다. 사탄이 너희를 죄와 노예살이로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려라.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내가 너희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내 아들 예수님께 인도할 수 있도록 내 마음으로 돌아오너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나는, 기도하라고 너희 모두를 부른다. 기도는 너희를 하느님께 더 가까이 데려다주는 연결고리이기 때문에, 너희는 기도 없이 살 수 없다.

2016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 인사말처럼 우리는 새해 정말 복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받아야 할 새해의 복 가운데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느님 자신입니다. 모든 복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살아가며, 그분 뜻대로 살아간다면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시편 1, 1-3)고 하신 성경 말씀대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하느님의 큰 복을 받아 잘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인간적이고 물질적이며 세상적인 복을 먼저 구하거나 빌어줄 것이 아니라 가장 근본적이고 영적인 축복인 하느님 자신을 먼저 구해야 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세상의 어머니들이 그러하듯이 우리의 영적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자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가장 큰 새해 축복은 바로 하느님 자신이십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하느님께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 늘 하느님 곁에 살면서 그분에게서 참된 생명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그렇기에 2016년 새해를 시작하는 첫 달 메시지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도 역시 나는, 기도하라고 너희 모두를 부른다. 기도는 너희를 하느님께 더 가까이 데려다 주는 연결고리이기 때문에, 너희는 기도 없이 살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모님 말씀대로 기도는 우리를 하느님 더 가까이 데려다 주는 연결고리입니다. 기도를 해야 우리는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그분 안에 머물며 언제나 그분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 4-5)
   기도는 생명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살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죽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붙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생명의 자양분을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다면 비록 육신의 몸은 살아 있으나 영적으로는 죽어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살기 원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생명이고, 우리가 살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너희가 온 마음을 다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라고 말할 수 있도록,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과 그분의 계명에로 돌아오너라.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하느님 아버지의 뜻보다는 우리의 뜻을 먼저 앞세우고, 하느님께서 뜻하신 방식대로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우리의 뜻이 땅에서와 같이 하늘에서도 이루어 지라는 식으로 기도하고, 그렇게 되도록 행동합니다. 왜 입으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는 그 반대로 움직이는 것입니까? 여전히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이 자기 삶의 중심이고, 자기 스스로의 생각과 힘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 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 우리 전 존재를 온전히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우리 자신이 우리 삶의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 삶의 중심이고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회개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철저한 순종과 겸손입니다. 늘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께 자신을 낮추며, 그분의 뜻을 먼저 헤아리고 그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언제나 온 마음을 다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인 너희는 자유롭게 하느님을 선택하거나 그분을 거스를 자유가 있다. 사탄이 너희를 죄와 노예살이로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려라. 그러므로 어린 자녀들아, 내가 너희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내 아들 예수님께 인도할 수 있도록 내 마음으로 돌아오너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자유 의지로 우리는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고, 심지어 하느님을 선택하거나 그분을 거스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자유 의지는 우리에 약이 되거나 독이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자유 의지 사용 배후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이 늘 먼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1베드 5, 8)라고 한 베드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의 적대자 악마, 즉 사탄은 우리를 죄와 노예살이로 끌어 들이고 싶어 눈에 불을 켜고 우리를 주시하며 집어 삼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초자연적 영적 존재이기에 우리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 어떤 유혹에 쉽게 빠지고, 무엇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고, 어떻게 죄를 짓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탄은 바로 그 약한 부분들을 치고 들어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어떤 부분에서 죄에 떨어지는지, 무엇 때문에 하느님이 주신 자유를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속박을 당하는지 언제나 깊이 성찰하고, 우리 자신을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강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 19-20)라고 말한 사도 바오로 조차도 자신의 약함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육적인 존재, 죄의 종으로 팔린 몸입니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로마 7 14-15) 그러나 자신이 그렇게 약하다고 해서 사도 바오로는 거기서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께 매달립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로마 7, 24-25)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과 함께 할 때만 우리가 모든 나약함과 비참함을 딛고 일어나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그분께로 인도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니 위해 먼저 당신의 마음으로 돌아오라고 초대하십니다. 성모님의 성심은 예수님의 성심과 하나된 성심이기에 우리를 성모님의 성심에 봉헌하면, 성모님께서는 지체 없이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해주시고, 그분의 성심과 하나되게 해주십니다.

주여 나를 받으소서

주여 나를 받으소서.
나의 모든 자유와 나의 기억과 지성과 의지와 
저에게 있는 모든 것과 제가 소유한 모든 것 받아주소서.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주여 이 모든 것을 주님께 도로 바치나이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오니
온전히 주님의 뜻대로 주관하소서.
저에게는 주님의 사랑과 은총만을 허락하소서. (성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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