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시지 > 신경남 신부 메시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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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것을 보고, 듣고, 느낀다. 그들은 기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평화가 없기 때문에, 그분을 원하지 않는다. 어린 자녀들아, 기도하고 하느님의 계명들을 지켜라. 맨 처음부터 내 부름에 ‘예’라고 말한 너희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과 내 현존을 증거하여라. 그리고 내가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를 사랑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나는 내 아들 예수님께 너희 모두를 매일매일 봉헌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것을 보고, 듣고, 느낀다. 그들은 기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평화가 없기 때문에, 그분을 원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시지만 어떤 사람의 마음 속에 하느님이 살아 계시는지 그렇지 않은지 우리는 그 사람의 말과 행동 심지어 눈빛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마음 속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은 사람은 모든 언어와 행동이 세속적이고, 몸에서 뿜어내는 기운 역시 그러합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하느님이 아니라 세속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속적이고 인간적이며 물질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사람의 마음 안에 들어가실 자리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에게 기도는 너무도 생소한 언어이고, 기도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는 마음에 참된 평화를 지닐 수 없고, 하느님께 대한 열망을 전혀 가질 수가 없습니다.     
     성모님은 이런 사람들이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언급만 하실 뿐, 그들을 판단하거나 단죄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메시지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그를 개선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아, 기도하고 하느님의 계명들을 지켜라.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기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하느님을 원하지 않는 상황을 말씀하신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하고, 하느님의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성모님은 우리가 그들에게 영적인 모범 혹은 영적인 대안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물론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도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니 기도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보다도 더 강력한 것은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실제 삶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하느님의 마음 안에 모시고 평화롭게 사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맨 처음부터 내 부름에 ‘예’라고 말한 너희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맨 처음부터’라는 표현은 성모님께서 메주고리예에서 발현하기 시작하신 1981년 6월 24일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우리 각자가 메주고리예 성모님과 그분의 메시지에 관해 처음으로 들었던 때로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다른 것들도 많지만 성모님 부름의 핵심은 기도하라는 것이었고, 그때 우리는 ‘예’라고 말씀 드리면서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이후 비록 굴곡이 있었을지라도 우리는 나름대로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그분의 부름에 응답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모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수준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기도 그 자체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 그 자체가 되려면 어느 정도 기도해야 가능하겠습니까? 적당한 기도를 가지고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적은 시간 기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할 수 있는 만큼 많은 기도를 바쳐야 할 것입니다. 또 정해진 기도 시간을 떠나 일상 생활을 할 때도 그 안에 기도가 스며 들도록 해야 합니다. 일, 운전, 도보 이동, 산책 중에도 묵주기도를 바치거나 다른 짧은 화살 기도를 반복해서 바치면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쓸데없는 잡담을 하거나, 혹은 별 할 일없이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이고, 컴퓨터 게임이나 인터넷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을 기도의 시간으로 바꾼다면,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 기도하게 되고, 기도의 양이 늘어나는 만큼 우리 자신이 기도 그 자체가 되는 쪽으로 점점 가까이 가게 됩니다. 시간과 노력이 함께 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절대 기도 그 자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아, 하느님과 내 현존을 증거하여라.

예수님께서는 12사도를 뽑아 3년 동안 함께 숙식을 하시면서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물론 당신의 공생활 중에 그들을 둘씩 짝지어 보내시면서 복음을 선포하도록 파견하기도 하셨지만 어찌 보면 그것은 마치 인턴쉽과 같은 것이었고, 예수님께서 주로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당신을 통해 복음 선포하는 법을 직접 보고 배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시고 난 다음 그들이 당신의 뒤를 이어 복음 선포를 계속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시간이 왔을 때 하늘로 승천하시는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19-20) 비록 인간적으로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들은 3년 동안 예수님에 의해 양성이 되었고, 이후에 강림하신 성령의 능력으로 훌륭하게 복음을 선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훌륭한 복음 선포자, 예수님 증거자가 되기 위해 먼저 예수님과 함께 3년 이라는 시간을 함께 지내면서 복음 선포하는 법을 배우고 예수님을 알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과 성모님의 현존을 증거하기 위해서 먼저 하느님을 알기 위해 그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성모님의 현존 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성모님과 함께 살아가지 않는데 어떻게 그 증거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과 당신의 현존을 증거하라는 성모님의 메시지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 14)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빛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그 누구에게도 빛을 비추어줄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하느님과 성모님을 우리 안에 모시지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그분들을 그 어느 누구에게도 증거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 성모님 현존의 증거자가 되기 위해 먼저 우리 자신이 그분들을 모시고 사는지 우리 마음과 삶을 살펴 봅시다.          

그리고 내가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를 사랑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우리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숨을 쉽니다. 공기 중에 있는 산소를 몸 안으로 유입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공기나 공기 중에 있는 산소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매일매일 너무도 당연하게 호흡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존재에 대한 생각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기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공기가 없다고 그 누구도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숨 쉬고 있고, 그 덕분에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지금까지 주신 수많은 메시지를 통해 당신이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렇다고 생각하다가 다시 그 말이 우리 머리에서 사라지면 그분의 현존과 사랑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의 현존과 사랑이 사라져버린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인식하고 못하고,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를 사랑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나는 내 아들 예수님께 너희 모두를 매일매일 봉헌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우리가 어떤 것이나 사람을 봉헌하게 되면 그 소유권이 봉헌을 받는 사람에게로 넘어가게 됩니다. 예컨대, 수도자가 자신의 삶을 예수님과 교회에 봉헌하게 되면, 수도자의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니고 바로 예수님과 교회의 것이 됩니다. 그렇기에 봉헌은 대단히 중요한 행위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님께 우리를 매일매일 봉헌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봉헌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의식을 하든지 못하든지 상관없이 매일매일 예수님께 바쳐진 존재, 즉 예수님 소유의 사람들이 됩니다. 이 메시지를 통해 성모님의 간절한 바람이 잘 드러납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오직 예수님의 사람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사탄이나 세상이나 물질이나 그 어떤 것에 자신의 존재를 내어주거나 봉헌한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만 우리 자신을 봉헌하고, 그분의 것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성모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처럼 매일매일 우리 자신을 예수님께 스스로 봉헌해야 합니다. 이미 교회 안에 마련된 봉헌 기도문을 사용해도 좋을 것이고, 아니면 다음과 같이 “예수님, 오늘 저 자신과 저의 모든 것을 당신께 봉헌합니다. 저는 오직 당신께만 속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라고 아주 간단한 봉헌 기도를 바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014년 1월 2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 기도의 광채가 너희를 만나는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도록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여라. 너희 가정에서 눈에 띄는 곳에 성경을 놔두고, 성경을 읽어라. 그러면 평화의 말씀이 너희 마음 안에 흘러넘치기 시작할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나는 매일매일 너희가 하느님의 뜻에 더욱더 열려지도록 너희와 함께, 또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 기도의 광채가 너희를 만나는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도록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여라.

구약성경 탈출기 34장에는 모세가 시나이산에 올라가 사십일 동안 단식하며 그곳에서 머문 후 주님께서 직접 써서 주신 십계명판 두 개를 받아 들고 내려오는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여기에 대단히 흥미로운 대목이 나옵니다. 29-30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어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게 되었으나,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모세를 보니, 그 얼굴의 살갗이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모세가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었다’는 표현은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기도하는 가운데 얼굴의 살갗이 빛나게 변화되었고, 그를 본 사람들은 그 광채에 압도되었습니다.     
     기도하면 우리의 얼굴은 달라집니다. 기도하면 하느님의 기운, 즉 성령께서 우리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 안에 들어오시기 때문에 우리는 선해지고 빛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 선함과 빛은 우리의 몸, 특별히 얼굴을 통해 드러나게 되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 광채를 저절로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 느낌은 그저 느낌으로 끝나지 않고, 느낀 사람이 의식하지 못해도 그 사람의 영혼에 파장을 주고, 그 파장은 그의 얼굴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웃음이 전염되는 것처럼, 기도의 광채도 전염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장에서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났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동생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하느님께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카인은 자신의 아우를 죽여서는 안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우의 생명이 보존되도록 그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했을 뿐만 아니라 존속살인의 범죄까지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분 안에서 모두 형제자매의 관계로 엮어져 있습니다. 비록 서로 다른 가정에 살면서 인간적으로 다른 가족관계를 이루고 있을지언정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서로서로에게 의무가 있습니다. 서로 존경하고, 지켜주며 사랑해야 할 절대적인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하느님 앞에서 “모릅니다. 제가 제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면 다른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지키고 도울 의무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데, 구체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입니까?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겠지만 성모님께서는 그보다 앞서 영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지키고 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고,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로 완전히 무장하고 충만한 사람이 되면, 우리의 존재 자체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적당히 기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 기도의 광채가 너희를 만나는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도록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여라.”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하라’고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가정에서 눈에 띄는 곳에 성경을 놔두고, 성경을 읽어라. 그러면 평화의 말씀이 너희 마음 안에 흘러넘치기 시작할 것이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인지상정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에 대한 탐욕을 절제하지 못해 낭패를 보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비록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주로 부정적인 맥락에서 많이 쓰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번 달 성모님의 메시지를 좀 더 깊이 새기기 위해서 여기에 대입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이 늘 우리 눈에 띄어야 합니다. ‘견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일차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견물’이 되려면 시간을 내서 실제로 그 성경을 펴서 그 안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견물(見物)’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이 있어야 우리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우리에게 “너희 가정에 눈에 띄는 곳에 성경을 놔두고, 성경을 읽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매스 미디어, 특별히 방송과 신문, 인터넷을 통해 하루에도 엄청난 말과 정보를 듣고, 뉴스를 접합니다. 물론 좋은 글들은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컨대, 매일 시청하는 저녁 뉴스를 생각해 보십시오. 거의 대부분이 사건과 사고, 비극과 공포로 가득한 이야기들뿐입니다. 그저 말미에 한 꼭지 정도 훈훈한 이야기라고 하면서 좋은 뉴스를 한 두 가지 정도 보내줍니다. 매일매일 같은 생활 패턴 속에 사는 우리는 이러한 환경이 너무도 익숙해 있는데, 성모님이 보시기에 그것은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적인 말들이나 뉴스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쁜 소식, 즉 복음을 듣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그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모님 말씀처럼 우리 마음 안에 평화의 말씀이 흘러 넘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참된 기쁜 소식, 복음은 오직 하느님의 말씀과 그 말씀이 담긴 성경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린 자녀들아, 나는 매일매일 너희가 하느님의 뜻에 더욱더 열려지도록 너희와 함께, 또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천사 가브리엘이 예수님 잉태 예고를 하기 위해 나자렛집을 찾아왔을 때,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 38)라고 응답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응답은 바로 그 순간에 행해지기는 했으나 절대로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래 준비 끝에 나온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마리아께서는 오랜 시간 동안 기도를 통해 오직 하느님의 뜻에만 자신을 열도록 훈련되신 분이셨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에 실제 응답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주저하지 않고 그 뜻에 따르겠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런 분이신 성모님께서 우리들에게 “어린 자녀들아, 매일매일 너희가 하느님의 뜻에 더욱더 열려지도록 나는 너희와 함께, 또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하지만 성모님께서 우리와 함께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기에 그 힘을 함께 받으면 분명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우리를 더욱더 열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와 힘만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힘겹다고 느껴질 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와 함께, 또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어머니 마리아를 떠올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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