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어머니로서 너희를 회개로 부르고 있다. 어린 자녀들아, 이 때는 너희를 위한 때이고, 침묵과 기도의 때이다. 그러므로, 너희의 따뜻한 마음속에서 희망과 신앙의 낟알이 자라기를 바란다. 어린 자녀들아, 그러면 너희는 매일매일 더 기도할 필요를 느낄 것이다. 너희의 삶은 질서정연하고 책임감있게 될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가 여기 이 지상에서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있어야 할 필요를 느낄 것이며, 너희가 다른 사람들과 나누게 될 하느님과 너희의 만남의 체험을, 너희는 사랑으로 증거할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지만, 너희의 ‘예’가 없으면 나는 할 수 없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어머니로서 너희를 회개로 부르고 있다.
성녀 모니카는 아들 아우구스티노의 회개를 위해 29년 동안 끊임없이 기도했고, 눈물과 희생으로 가득한 그녀의 기도는 마침내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덕분에 아우구스티노는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더 나아가 사제, 주교, 그리고 최고의 가톨릭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아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어머니였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아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했던 것이고, 아들의 회개를 넘어서 그 아들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길로 갈 수 있게 해 준 것입니다.
이번 달 메시지에서 성모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어머니로서 너희를 회개로 부르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모님은 우리 육신의 어머니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속속들이 그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로서 우리를 회개로 부른다고 하시는 그분의 말씀을 우리는 진지하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이미 회개했기 때문에 더 이상 회개할 것이 없다.’고 말할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사람조차도 성모님께서 “너희를 회개로 부르고 있다.”고 하실 때 바로 그 ‘너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 어느 누구도 회개하라는 어머니의 부르심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회개로 부르시는 것은 우리의 죄와 잘못 때문에 우리를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에로 인도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여전히 죄와 잘못 그리고 오류 속에 살면서도 그를 인지하지 못하고 때로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혹은 죄에 대한 정당화나 합리화 속에 갇혀 있는 우리를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우리를 죄와 악으로부터 벗어나 예수님께 생명과 구원을 얻도록 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모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들아!” 라고 부르시는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회개하라는 어머니의 부르심은 바로 그 사랑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이 때는 너희를 위한 때이고, 침묵과 기도의 때이다.
어린이들은 순수하지만 분별력이 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의 지도와 인도가 필요합니다. 우리 자신이 다 큰 것같아도 성모님이 보시기에 우리는 여전히 어린 자녀들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성모님의 지도와 인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어린 자녀들아, 이 때는 너희를 위한 때이고, 침묵과 기도의 때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 들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십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때가 우리를 위한 때라고 인식할 때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이 때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먼저 깨닫게 됩니다. 이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이 시간을 잘 활용하여 진정으로 우리를 위한 때가 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침묵과 기도입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왜 침묵이 함께 따라오는 것입니까? 침묵이야말로 기도의 산실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마음으로 기도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에 침묵이 있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내적으로, 외적으로 너무 시끄러운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소리가 아닌 수많은 세상의 소리와 그에 교묘하게 숨어있는 사탄의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마음이 점점 없어지고,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데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또 너무 많은 말을 하느라 마음의 침묵을 지킬 틈도 부족하고, 기도할 시간도 계속 놓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너희는 말은 많이 하지만 기도하지는 않는다. 어린 자녀들아, 기도하기로 결심하여라.”(1993년 12월 25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 침묵과 기도를 생활화하도록 결심합시다.
그러므로, 너희의 따뜻한 마음속에서 희망과 신앙의 낟알이 자라기를 바란다. 어린 자녀들아, 그러면 너희는 매일매일 더 기도할 필요를 느낄 것이다. 너희의 삶은 질서정연하고 책임감있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온기를 불어 넣어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 가운데서도 가장 큰 사랑인 하느님의 사랑이 기도를 통해 우리 마음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온기를 넘어서 불꽃처럼 타오르게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은 사람만이 하느님을 바라고, 그분을 믿게 됩니다. 비록 처음에는 그 희망과 신앙이 낟알처럼 작은 것일지라도 우리 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있다면,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따뜻하다면 그 온기로 낟알은 싹이 트고 자라고 마침내는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따뜻한 마음 속에서 희망과 신앙의 낟알이 싹트고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게 되면 그에 영양분을 주고 물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우리 마음과 영혼에 영양분을 주고 물을 주는 것은 바로 기도이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매일 더 기도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은 사람, 하느님께 바라고 믿는 사람, 매일매일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속아내어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간직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삶은 질서가 잡히고, 작은 것 하나에도 성실하게 또 책임감있게 대하게 됩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가 여기 이 지상에서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있어야 할 필요를 느낄 것이며, 너희가 다른 사람들과 나누게 될 하느님과 너희의 만남의 체험을, 너희는 사랑으로 증거할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마음이 불타는 사람, 하느님만 바라고 믿는 사람, 매일매일 기도에 갈증을 느끼고 실제로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이 지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며 오직 하느님께만 속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진정한 집이 이 지상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지상에서 나그네처럼 살 수 있습니다. 또 이 지상의 것들은 모두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상 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기도처럼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이고, 오직 하느님만 변치 않으신다.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졌다. 오직 하느님만으로 만족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하느님만을 갈망하고, 점점 더 하느님 가까이 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 만남의 체험을 다른 이들과 나눔으로써 다른 이들 역시 그 하느님을 갈망하고 그분 가까이 가도록 만드는 참사랑을 실천합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지만, 너희의 ‘예’가 없으면 나는 할 수 없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런 성모님과 비교하여 우리는 어떻습니까? 늘 성모님께 감사드리고, 그분의 부름에 응답하여 그분 메시지 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너희의 ‘예’가 없으면 나는 할 수 없다.”고 하시는 성모님의 말씀에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안타까움을 느낍니까?
옛 격언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도록 성모님께 ‘예’하고 응답합시다. 성모님께 우리 자신은 온전히 의탁하고, 성모님의 메시지 대로 살려고 노력합시다. 지금이라도 ‘예’라고 응답할 수 있을 ‘예’라고 말씀드립시다. 지금은 우리를 위한 때이지만 이 시간은 지나가고 있습니다. 때가 다 지난 후 아무리 수천만번 ‘예’라고 해도 그 때는 늦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