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너희가 너희 마음 안에서 용서의 거룩함을 느낄 때까지 좀 더 많이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어린 자녀들아, 사랑과 거룩함이 없으면 세상에 미래가 없기 때문에 가정들 안에 거룩함이 있어야 한다. 거룩함과 기쁨 안에 있기 때문에, 너희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느님께 너희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분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시는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너희가 너희 마음 안에서 용서의 거룩함을 느낄 때까지 좀 더 많이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른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그러자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습니다.(루카 17, 3-5 참조) 예수님께서 죄의 용서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사도들은 왜 갑작스럽게 자신들의 믿음을 더해 달라고 예수님께 청했을까요? 그들은 그동안의 체험으로 미루어 볼 때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자기에게 잘못한 형제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하느님의 힘이 있어야만 잘못한 형제를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예수님께 청했던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의지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전능하심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맡겨드리는 행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겠습까? 아니 어떻게 해야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더하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길은 한 가지입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해야 우리 마음이 주님께로 열리고, 그 열린 마음에 주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내려 주십니다. 우리 자신이 믿음을 스스로 만들어내서 우리 안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시어 우리가 그 안에서 자라나도록,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주님께 활짝 열어드리기 위해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기 때문에 용서는 거룩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 그분과 화해하고 그분과 하나가 되기 때문에 용서는 거룩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용서를 통해 죄인이 성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기에 용서는 거룩한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용서를 통해 사람들 마음 안에 화해, 사랑 그리고 평화가 회복되기 때문에 용서는 거룩한 것입니다. 용서의 거룩함을 우리 마음 안에서 느낄 수 있으려면 우리의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교만, 미움 그리고 시기가 사라져야 합니다. 무엇을 통해 이것이 가능합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혹시 여전히 우리 마음 안에서 용서의 거룩함을 느끼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의 기도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너희가 너희 마음 안에서 용서의 거룩함을 느낄 때까지 좀 더 많이 기도하라고 너희를 부른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아, 사랑과 거룩함이 없으면 세상에 미래가 없기 때문에 가정들 안에 거룩함이 있어야 한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어머니이시기에 우리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미래에 대해 염려하십니다. 그분은 세상의 미래가 이 세상의 사랑과 거룩함 존재 여부에 달렸다고 말씀하시면서 이 세상의 가장 작은 단위 세포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장소인 가정들을 언급하십니다. 가정들에 거룩함이 있으면 이 세상의 미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형태나 상황이 어떻든지간에 한 가정에서 태어나 길러지고 세상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세상을 경험하는 첫번째 장소가 바로 가정이고, 그 가정 안에서 사랑과 거룩함을 체험하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다면 , 세상에는 사랑과 거룩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먼저 가정에서부터 사랑의 인간, 거룩한 인간 즉, 성인이 만들어져야 세상에 사랑과 거룩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가정들 안에 거룩함이 있게 될까요? 하느님이 계시면 됩니다. 어떻게 가정들 안에 하느님을 모셔들일 수 있을까요? 가족들이 함께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생활할 때, 모든 가족이 함께 주일미사에 참례하여 예수님의 성체를 모시고 그 성체의 정신으로 서로 사랑할 때, 하느님께서 그 가정 안으로 들어가시고 그 가정은 거룩함을 지니게 됩니다. 여기에 덧붙여서 우리의 가정을 거룩함을 상기시키는 물건들, 즉 성물들로 조화롭게 잘 꾸밀 필요가 있습니다. 십자고상, 예수성심과 성모성심상이나 상본, 자비의 예수님 상본, 요셉 성인을 비롯한 여러 성인상이나 상본 등으로 집안을 장식하면 모든 가족들이 그것들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룩함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게 마련입니다. 환경 면에서 우리의 성당이 거룩함을 일깨워주는 장소인 것처럼 작은 교회인 우리 가정도 거룩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다음 성모님 메시지는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오늘 나는 너희에게, 날마다 집에서 성경을 읽으라고 부탁한다. 늘 성경을 읽고 기도할 수 있도록 성경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어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1984년 10월 18일)
우리의 미래, 세상의 미래는 우리의 능력이나 재물, 군사력 혹은 고도의 과학기술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 안에 사랑과 거룩함을 간직하고 있을 때만 그 미래가 있습니다. 달리 말해 사랑과 거룩함 자체이시고 그 원천이신 하느님을 우리들 마음과 삶 안에 모시고 우리가 사랑하고 거룩하게 살 때, 비로소 우리와 이 세상에는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거룩함과 기쁨 안에 있기 때문에, 너희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느님께 너희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분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시는 것이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우리는 성경 봉독, 미사 강론, 영성 강의, 가톨릭 잡지나 신문, 영성 상담 등 각종 경로를 통해 이미 하느님께서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머리로는 그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잘 깨닫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이 어떤지 잘 헤아리지 못하고, 우리 또한 하느님께 마음을 온전히 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하느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우리의 마음과 하느님의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이것을 가능케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그냥 기도가 아니고 마음을 다해 바치는 기도입니다. 기도를 해야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아무 조건없이, 무한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바로 그 순간 우리에게 회개가 일어납니다. 진정으로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사람은 회개하게 되고 거룩하게 변하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헤아릴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는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분의 은총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 성모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시어 우리를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게 하십니다.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크신 은총입니다. 이 은총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닫고, 영적인 잠 혹은 영적 무의식상태에서 다시 깨어나기 위해 우리는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과 그 메시지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분의 부름에 충실하게 응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이사 6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