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녀들아! 나와 함께 평화를 위해 기도하여라. 사탄이 마음들과 사람들 안에서 전쟁과 증오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평화를 주시도록 기도하고 단식과 보속으로 너희의 나날들을 희생 제물로 봉헌하여라.
성모님께서 당신과 함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성모님과 함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어머니와 그 자녀들이 함께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정기도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그 자녀들이 함께 기도하는 장면은 자연스럽게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 그리고 거룩한 여인들이 함께 기도를 바쳤던 초대교회의 모습을 연상하게 만듭니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 1, 14) 여기서 중요한 구절이 눈에 들어옵니다. ‘함께 한마음으로’ 입니다. 성모님을 중심으로 그들은 몸도 함께 있었고, 마음도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당신과 함께 평화를 위해 기도하자고 했을 때, 우리는 몸만 성모님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한마음이 되어 평화를 위해 기도에 전념해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 하루를 시작하면서 티 없으신 성모님의 성심께 우리 자신을 봉헌하지만 성모님과 함께 기도할 때마다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드리고 우리의 마음이 성모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고, 그분의 마음으로 바뀌어 그분과 온전히 하나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모님과 함께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사탄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초자연적 능력의 영적 존재인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과 사람들에게서 평화를 앗아 가기 위해 전쟁과 증오를 부추키고 있습니다. 그 어떤 인간적인 위력이나 더 큰 무력과 적대감으로 그를 막아낼 수 없습니다. 오직 기도만이, 사랑과 평화와 선으로 가득한 기도만이 그를 저지할 수 있습니다.
평화는 오직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귀한 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 메시지대로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도록 하느님께 청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즉 성령마저도 주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기도하며 평화를 청할 때 그를 반드시 들어주십니다.(참조 루카 11, 13)
사랑의 본질은 희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생 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신 그 육화의 사건에서 하느님은 희생하는 사랑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하느님이시면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모습으로 이 지상에 오셨던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시기 위해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우리 죄를 용서해 주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육화, 성체성사 그리고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을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 하느님의 모범을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통해서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바로 우리의 단식과 보속을 통해서 그것이 가능합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인류의 죄를 뉘우치고 그에 대신하여 속죄 행위를 하며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단식과 보속을 나날이 실천함으로써 우리도 하느님처럼 진정으로 희생할 줄 아는 사람, 그럼으로써 진정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현대인이 하느님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가 기로에 놓여 있다. 그 때문에 인류는 멸망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인류에게 모든 것이 다 현대화되어 있습니다. 과학, 기계, 기술 문명이 최고도로 발달하여 인류에게 엄청난 혜택과 편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 없이 살아가기가 힘듭니다. 예컨대, 앞으로 일주일, 아니 하루만 온 인류가 스마트폰을 쓸 수 없고, 써서는 안된다고 누군가 강제한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할 것이고, 세상은 뒤집어질 것입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예를 들어 봤지만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자동차, 세탁기, 냉장고 등과 같은 것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기술문명에 따른 발전과 풍요에도 불구하고 과연 현대인이 과거의 사람들에 비해 더 도덕적이고 영적으로 잘 살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만일 그렇게 잘 살고 있다면 지상의 모든 것들을 꿰뚫어 보시는 천상의 어머니 성모님께서 “현대인이 하느님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가 기로에 놓여 있다. 그 때문에 인류를 멸망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지금 인류는 대단히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현대인은 자신의 삶에서 빠져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고 그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럼 현대인의 삶에서 빠져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성모님께서 이미 답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이시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현재 인류는 하느님 없는 문명을 건설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하느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들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그 교만이 인류를 멸망의 길로 이끌고 있습니다. 아니, 인류 스스로 그 길을 찾아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물질이나 더 발달한 과학기술문명이 아니라 하느님입니다. 애타게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발길을 돌려 우리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직 그 길만이 현대인이 미래를 얻고 멸망에서 구원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어린 자녀들인 너희가 내 희망이다. 내가 파티마에서 시작하고 여기서 실현될 것에 대해 나와 함께 기도하여라. 기도가 되고 너희 주변에 평화를 증거하며 평화의 사람들이 되어라. 나의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
성모님께서는 어린 자녀들인 우리가 당신의 희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감히 무엇이건대 성모님께서 우리를 가리켜 당신의 희망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몸둘 바를 모를 지경입니다. 작은 우리들을 그렇게 대해 주시니 무척 고마우면서도 엄청난 부담과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왜 성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지만 하느님을 원하고 오직 그분만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있기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모님께서는 파티마에서 시작하신 것은 티 없으신 당신 성심의 승리 예고였습니다. 이제 그 티 없으신 성모 성심이 메주고리예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로부터 승리를 얻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바로 사탄으로부터의 완전한 승리입니다. 성모님께서 승리하시고 사탄은 결정적 패배를 당하고 지옥으로 영원히 감금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 때는 완전히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치열한 전쟁 중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영적 전투에 우리를 당신의 군사로 초대하십니다. 우리의 갑옷은 티 없으신 성모 성심께 대한 봉헌이고, 우리의 무기는 기도, 특별히 묵주기도입니다.
성모님의 희망, 성모님의 군사가 되기 위해서는 기도로 완전히 무장되어야 합니다. 아니, 기도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 경지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은 기도가 우리 삶이 될 때까지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기도하는 사람만이 평화 자체이신 하느님을 뵈올 수 있고 그분의 평화를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으며, 그를 주변에 증거할 수 있고 평화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